Meet the Locals
아브둘카디르 메키 Abdulkadir Mekki (직조 장인)
“쿠트누는 튀르키예의 전통 직물로 가지안테프의 특산품입니다. 비단과 면을 섞어 줄, 꽃 등 다양한 무늬로 짠 천인데, 화려함과 실용성을 모두 갖춰 옛 왕실과 귀족들의 옷감으로 인기가 높았죠. 지금은 중요한 의례나 결혼식, 행사에 입는 옷을 만들 때 사용해요. 메키 가문은 이 지역에서 5대째 쿠트누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저는 5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일을 배워 60년째 이 일을 하고 있네요.
쿠트누는 가지안테프뿐 아니라 튀르키예가 지켜야 할 예술이자 유산이에요. 하지만 이 전통을 이어나갈 다음 세대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아요. 우리 아이들도 텍스타일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긴 하지만, 쿠트누의 전통을 잇는 공예가는 아니거든요. 그래도 젊은 튀르키예 디자이너, 그리고 쿠트누의 우아하고 고유한 디자인의 가치를 아는 유럽·미국의 디자이너들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런던의 ‘Safarah’ 튀르키예의 ‘Muay’ 등 많은 브랜드에서 쿠트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옷, 가방, 로브 등을 만들고 있죠. 아주 반갑고 고마운 관심입니다. 내가 부를 좇았다면 이 일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돈을 많이 버는 사업은 확실히 아니거든요.(웃음) 하지만 좋아하는 일, 자부심을 느끼며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매일 신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주마 보즈테킨 Cuma Boztekin (커피 메이커)
“튀르키예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커피를 만드는 사람을 ‘카흐베지(Kahveci)’라고 부릅니다. 저는 가지안테프에서 태어나 45년째 이 도시에서 카흐베지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역시 커피하우스를 운영하며 카흐베지로 일하셨고, 저도 자연스럽게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됐죠. 튀르키예 사람에게 커피는 아주 중요합니다. ‘함께 마신 한 잔의 커피가 40년의 인연을 만든다’, ‘커피는 인내로 끓이고 우정으로 마신다’ 같은 내용의 속담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어요. 단순한 마실 것이 아니라 인연을 맺고 관계를 깊이 다지는, 사회적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튀르키예 지역마다 그곳의 문화, 역사, 특산품 등이 반영된 각기 다른 커피들이 있는데요. 샨르우르파에선 므라(Mırra)를, 가지안테프에선 메넨기치 카흐베시(Menengiç Kahvesi)를 꼭 마셔보세요. 므라는 성글게 간 원두를 황동 주전자인 귐귐(gümgüm)에 오랜 시간 달여낸 커피로 아주 진하고 씁쓸한 맛이 특징입니다. 야생 피스타치오로 불리는 테레빈 나무 열매를 덖은 후 빻은 가루를 팔팔 끓인 우유에 설탕과 함께 넣어 마시는 메넨기치는 내가 일하고 있는 타흐미스 카흐베시(Tahmis Kahvesi)에 와서 마셔야 해요. 1635년부터 커피하우스로 이름 날린 곳인 만큼 맛과 질이 보장된 커피를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아브두라흐만 잘리시르 Abdurrahman Calissir (구리세공인)
“샨르우르파는 구리 세공으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여러 역사적인 배경도 있지만 튀르키예 남동부가 구리 산지이기도 하거든요. 저는 30년 동안 이곳, 우르파 바자르(Urfa bazaar)에서 구리 세공을 하고 있습니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죠. 여기 제 아들도 옆에서 작업을 구경하거나 이것저것 만들기를 좋아하는데요. 나중에 이 일을 하고 싶어할지는 모르겠지만, 저처럼 구리세공인이 되면 좋겠어요.
저는 제가 하는 일, 그러니까 전통을 지키는 것, 내가 만든 물건이 누군가에게 이로움을 준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요즘 쓰는 소재들, 예를 들면 스테인리스스틸 같은 것은 편리함은 있을 수 있지만 건강엔 그다지 좋지 않아요. 반면 구리로 만든 식기는 우리 몸에 아주 좋거든요. 지금 제가 만들고 있는 건 치 쿄프테(생고기와 밀, 각종 양념을 오랜 시간 치대서 빚는 튀르키예식 완자)를 반죽하는 그릇인데, 구리에 항균성이 있어서 날것의 식재료를 사용하는 음식을 만들 때 변질을 막아줍니다. 위생적일 뿐 아니라 미네랄도 풍부하고요.”
Neighborhood
기도하는 사람들의 도시, 샨르우르파
“괴… 뭐라고요?”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라는 지명을 처음 들은 사람들에게서 약속이라도 한 듯 돌아오는 똑같은 질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이스탄불행 터키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쯤에야 이 어려운 이름을 더듬지 않고 읊을 수 있었으니까. ‘구석기 시대에 지어진 인류 최초의 사원’이란 정보만 들고 괴베클리 테페를 품은 도시, 샨르우르파(이하 우르파)로 향하는 길, 미리 챙겨둔 자료를 꺼내 예습을 시도했다. ‘튀르키예에선 지금 석기시대의 정착생활과 사회공동체의 흔적을 보여주는 고고학 유적 단지, 타쉬테펠레(Taş Tepeler) 발굴과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아나톨리아 반도(튀르키예의 영토)를 인류 문명의 출발점으로 재조명하는 프로젝트다. 터키항공에선 2024년부터 2029년까지 이 프로젝트의 공식 후원사로 튀르키예 문화관광부와 함께 발굴, 글로벌 홍보 활동을 지원한다.’
괴베클리 테페, 우르파와 같은 지명에 겨우 익숙해진 내게 타슈 테펠러 프로젝트니, 비슷한 흔적이 발견된 카라한테페(Karahantepe), 하르베트수반(Harbetsuvan) 같은 지명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 세계 7대 불가사의 같은 거창한 수식어가 따르지 않는 한 남의 나라 유적이란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 관심을 기울이기가 쉽지 않다.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진 채, 다큐멘터리 내레이터처럼 유창하게 설명을 잇는 가이드 하산 아칸의 말을 우걱우걱 씹어 삼키며 전 세계의 고고학자들이 ‘인류사를 통째로 뒤엎을 만한 발견’이라고 입을 모으는 미지의 세계를 궁금해하려고 애썼다.
우르파에서 출발해 이소트(isot, 지역 특산물로 깊은 매운맛을 가진 고추)와 올리브, 피스타치오 밭이 드넓게 펼쳐진 대로를 한 시간 남짓 달리면 1만 2천 년 전의 흔적 앞에 당도한다. 방문자 센터를 지나 야트막한 언덕 위 포장로를 따라 오르니 깊이 약 15m, 직경 300m 규모의 구덩이와 그 안을 가득 채운 돌무덤이 나타났다. “괴베클리 테페는 1만 2천 년 전, 그러니까 구석기시대에 지어진 구조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963년에 튀르키예와 미국의 고고학자·과학자들이 실시한 조사 중에 고고학 유적지로 확인된 후 1995년 독일 고고학 연구소의 하랄트 하우프트만(Harald Hauptmann) 박사와 이후 클라우스 슈미트(Klaus Schmidt) 박사의 발굴팀이 참여한 가운데 발굴을 시작했죠. 그리고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전 세계에 알려졌고요.” 그의 손끝을 따라 오벨리스크로 시선을 돌린다. 설명이 귀에 잘 안 들어올 땐 시각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약 5~6m 높이의 T자형 거석을 뚫어지게 쳐다보니 대충 훑었을 땐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양들이 하나둘 눈에 띄었다. “저 거석 위에 부조로 새겨진 팔과 손이 보이나요? 인간의 몸을 본뜬 형태죠. 그 시대 사람들이 숭배하던 신이나 제의를 이끈 제사장들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이곳은 약 1만 2천여 년 전 구석기시대의 사원, 예배당으로 쓰였던 장소예요. 많은 학자들이 이곳을 죽음, 사후세계와 관련된 의식이 행해진 곳으로 봅니다. 이곳에서 죽음의 신 하데스의 지하세계를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와 비슷한 짐승을 본뜬 부조가 발굴된 것이 그 근거 중 하나고요.” 당신이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빙하기와 역사 시간에 배운 기원전 시대에 대해 아주 약간이라도 기억한다면 가이드의 말에 굉장한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것이다.(교과서는 우리에게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고 마을을 이룬 청동기부터 문명 활동이 시작됐다고 알려주고 있다.) “수렵과 채집을 하며 제각각의 삶을 영위한 구석기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변변한 도구 없이 화살촉과 돌칼만으로 신전을 세웠다는 것은 한마디로 굉장한 반전입니다. 저 구조물들, 신상을 지키는 동물 조각상의 정교함과 완성도도 놀라운 수준이고요. 더 놀라운 건 타슈 테펠러에 아직 발굴되지 않은 1만 수천 년 전의 흔적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죠.”
문명의 시발점을 수천 년이나 앞당기는 발견 앞에서 머리가 뜨거워졌다. 사방이 뻥 뚫린 언덕 꼭대기에 올라가 뇌를 식히며 보고 들은 것을 소화시키려는데 하산이 눈앞에 우뚝 선 나무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이 뽕나무는 괴베클리 테페가 발견되기 전부터 사람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찾아온 신성한 나무예요. 특히 여자들이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그 바람이 종종 이뤄졌죠.” 언덕 아래론 아득히 먼 옛날 사람들이 영생을 빌었던 신전이, 위로는 새 생명의 잉태를 꿈꾸는 이들의 ‘기도하는 나무’가 있는 구릉에 서 있으니 ‘신비롭다’는 단편적인 표현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꼬리를 무는 질문과 온갖 상상을 뒤로한 채 우르파 시내로 나왔다. 괴베클리 테페가 나타나기 전에 우르파는 아브라함의 땅으로 이름이 더 높았다. 아브라함은 ‘우주에서 신은 하나’라는 종교론을 최초로 설파한 인물로 기독교, 가톨릭교, 이슬람교와 유대교 신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성자다. 그가 태어난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동굴, 넴루트 왕이 우상 숭배를 비판하는 아브라함을 화형시키려고 했지만 불길은 물로, 불씨가 이글대던 장작은 작은 물고기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호수 발르클르굘(Balıklıgöl)이 순례자들의 발길이 닿는 장소들. 차례로 다 둘러본 후 우르파 성곽 아래에 자리한 동굴 카페의 노천석에 자리를 잡았다. 우르파 커피로 유명한, 지독하게 쓴맛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므라 한 잔을 얄궂게 홀짝이며 하산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도시의 정체성을 한 단어에 담아야 한다면 어떤 말을 고르고 싶나요?” 아주 잠깐 고민하던 그의 입에서 나온 답은 ‘이슬라믹(Islamic)’이었다. 이슬람 신자인 그가 말하는 ‘이슬라믹’이란 결국 ‘신을 주로 삼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낯선 우르파를 간파할 언어를 찾고 있던 내게 그의 답은 열쇠가 되어줬다. 우르파는 그런 땅이다. 1만 2천 년 전부터 신의 존재를 자신의 삶 전체에 둔 사람들의 도시. 신의 존재를 믿으며 사후세계를 염두에 둔 삶을 사는, 그래서 죄를 멀리하고 선을 따르는 사람들이 구석기부터 오늘날까지 터전의 맥을 이으며 살아가는 곳.
먹는 정이 넘치는 가지안테프
고고학도의 역사 기행을 방불케 한 우르파를 떠나 가지안테프로 향하는 길. 하산의 표정이 기말고사 채점을 다 끝내고 긴 방학에 돌입한 교수처럼 밝고 가볍다. “튀르키예엔 이런 말이 있어요. ‘세계가 집이라면 가지안테프는 부엌이다.’ 가지안테프는 이 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미식 도시예요.” 들뜬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가 대뜸 스마트폰을 꺼낸다. 온갖 음식 사진으로 가득한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몇 가지 사진을 골라 보여주며 한 말은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고 요것도 먹어봐야 한다’는 내용의 권유였다. “뭐든 좋아요. 지금 보여준 음식들 오늘 다 먹어요, 우리.”
그 말을, 처음 찾아간 식당에서 뼈저리게 후회했다. 구운 양간을 채소, 양념과 함께 튀르키예식 밀전병 라바쉬(Lavash)에 쌈처럼 싸 먹는 케밥집이었는데 양간의 냄새가 꽤 거칠었다. 두 번째 찾은 집에도 양이 있었다. 베이란 초르바스(Beyran Çorbası). 가지안테프 사람들이 든든한 아침 식사로, 혹은 보양이 필요할 때 찾는 고깃국이다. 메타네트 로칸타스(Metanet Lokantası)는 가지안테프 사람들이 아끼는 베이란 맛집. 찰떡 반죽 같은 양기름 위에 밥, 잘게 찢은 양의 살코기 등을 얹은 후 육수를 부어 팔팔 끓이다가 고춧가루를 팍팍 뿌려 내는 이 음식은 한국의 육개장과 놀라울 만큼 닮았다. 곁들여 나오는 레몬, 고추, 양파 등의 채소로 양기름의 느끼한 향을 걷어내며 일행과 함께 국밥 두 그릇을 비웠다. 잠시 먹기를 멈추고 소화나 시킬 겸 시장 산책을 가려는데 하산이 옷깃을 붙든다. “잠깐만요. 카트메르(Katmer)도 맛봐야 하는데….” 메타네트 로칸타스는 짠 것을 먹은 후 자연스럽게 당기는 단맛을 찾는 미식가들을 위해 디저트집도 운영한다. 그 집 돌화덕에서 수시로 구워져 나오는 카트메르는 얇은 밀가루 반죽 위로 잘게 부순 피스타치오를 듬뿍 뿌리고 카이막을 얹어 만드는 디저트다. “카트메르는 가지안테프가 원조예요. 튀르키예에선 카트메르를 결혼 첫날밤에 먹습니다. 신혼 부부가 결혼 후 처음 맞이하는 밤에 맛보면 음식만큼 달콤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거든요.” 레귤러 피자만 한 카트메르 한 판을 다 해치우니 물 한 모금 들여보내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위가 가득 찼다. 다행히 미리 약속한 인터뷰 일정 덕분에 아주 잠깐 속을 비우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산의 진두지휘 아래 출동한 다음 전장은 카페다. 1635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는 커피하우스, ‘타흐미스 카흐베시’. 이곳에선 메넨기치 커피(Menengiç kahvesi)를 꼭 맛봐야 한다. 야생으로 자라는 피스타치오인 테레빈 나무의 열매를 달달 볶아 잘게 빻은 후 제즈베에 우유, 설탕과 함께 팔팔 끓여 마시는 이 커피엔 카페인이 전혀 없다. “커피가 아주 귀했던 시절에 가지안테프 사람들이 ‘커피 같은 것’을 마시고 싶어 만든 대체품이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세 잔째 커피를 홀짝이며 하산이 말했다.
더 이상 무언가를 위장으로 내려보내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 마지막 힘을 쥐어짜보기로 한다. 튀르키예의 상징적인 디저트, 바클라바가 남았기 때문이다. 밀가루 반죽을 최대한 얇게 민 후 버터, 피스타치오, 꿀을 올리고 다시 반죽 덮는 과정을 반복해 만드는 이 음식 역시 가지안테프에서 탄생했다. 1887년부터 지금까지 영업하는 이맘 차다슈 케밥 & 바클라바(İmam Çağdaş Kebap ve Baklava)는 로컬과 여행자 모두 사랑하는 바클라바 맛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옛 인테리어를 고스란히 간직한 홀이 나타난다. 바클라바만 맛보려고 했지만 튀르키예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쉬웠다. 닭고기에 고춧가루를 발라 숯불에 구운 키마리 케밥(Kimari Kebab)을 시킨 후 직원을 불러 이소트로 만든 페이스트를 ‘조금만’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케밥에 곁들여져 나온 풋고추를 튀르키예식 고추장에 찍어 먹고 싶어서. 페이스트를 가져다준 직원의 말. “고추를 고추에 찍어 먹는다니 기발하네요. 나도 어렸을 때 엄마가 외출해서 집에 없으면 빵에 그 고추 페이스트를 발라 먹곤 했어요.” 그날 밤 나는 우르파와 가지안테프에 품었던 경계심을 전부 거뒀다. 너무 낯설어서 불안감마저 일었던 두 도시엔 먹는 데 진심이며 손님이 배부르지 않으면 슬퍼하고 맛있는 것을 시시때때로 나누는 일을 사랑하는, 그리고 고추장을 밥상에 올려놓는 사람들이 산다.
가지안테프에서 놓치면 아쉬울 즐거움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
가지안테프에서 동쪽으로 10km 거리에 위치한 제우그마(Zeugma)는 로마 제국기의 중요한 거점 도시였다. 당시 이 도시에 살았던 부호들에겐 자신의 화려한 저택을 수놓을 벽화와 모자이크 장식이 중요했고, 모자이크 장인에게 작품을 의뢰해 집을 꾸몄다. 그 로마시대의 모자이크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이 박물관에선 튀르키예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신비로운 눈을 가진 ‘집시 소녀’를 놓치지 말자.
넴루트산 일출 감상
가지안테프 북쪽 인근에 위치한 넴루트산(Nemrut Dağ)은 튀르키예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만날 수 있는 명소로 유명하다. 콤마게네 왕국의 왕, 안티오코스 1세의 능묘유적지이기도 하다. 새벽부터 해발고도 2134m의 산을 부지런히 오르면 신비롭고 황홀한 일출을 마주할 수 있다.
가지안테프 바자르 탐험
가지안테프는 튀르키예에서 맛과 품질이 가장 좋은 피스타치오 생산지다. 이스탄불에서 가지안테프산 피스타치오를 구매하려면 생각보다 꽤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한다. 가지안테프의 올드 바자르에선 피스타치오를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판다. 품종에 따라 1kg당 500~700 튀르키예 리라에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