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바꾸는 무리들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Ryu Jin
  • PHOTOGRAPHY BY jeon jaeho

군산을 바꾸는 무리들

The Changers of Gunsan

외국인, 외지인이 끊임없이 드나든 역사를 가진 군산은 100년 넘는 시간 동안 이방인의 도시였다. 지금 이곳의 이방인과 원주민, 지역 재생의 꿈을 안고 활동하는 창작자와 소상공인들은 섬처럼 각개로 서 있던 과거와 달리 무리 지어 활동하고 협업한다. 그 무리들이 만든 군산의 활기를 일곱 가지 키워드로 포착했다.
  • written by Ryu Jin
  • PHOTOGRAPHY BY jeon jaeho
2024년 09월 03일

Creator

조권능

Q 현재 운영하는 회사 ‘지방’을 군산의 지역관리회사라고 소개하고 있다. 지역관리회사라는 단어가 생소한데, 어떤 일을 하는가? 엄밀히 말하면 미국과 유럽에서 정책으로 시행하는 ‘로컬 매니지먼트’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로컬 매니지먼트는 좀 더 넓은 범위의 에어리어 매니지먼트(area management)와 소단위의 타운 매니지먼트(town management)로 나뉘는데, 현재 내가 하는 일은 후자에 가깝다. 골목 상권에서 창작자, 창업자들이 활동하고 정착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일을 한다.

Q 도시재생이라는 단어가 없던 시절부터 군산에서 온갖 일을 벌였다. 당신이 한 일을 보면 문화기획자·소상공인·지역관리회사·농업회사법인 설립 등으로 요약된다. 이 자취가 지속가능한 도시 재생을 모색하며 그때그때 찾은 답일까? 맞다. 내가 2008년부터 군산에서 해온 일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지역의 자원을 연결해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개복동에 예술가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그들이 활동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동체 공간과 장을 열고, 영화동에 ‘영화타운’을 조성해 건축 공간 연구원, 로컬 매니저, 창업자들과 공간·콘텐츠를 함께 개발하기도 했다.

Q 군산에서 15년을 꽉 채워 ‘지역재생’이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부딪힌 한계와 찾은 타개책은 무엇인가? 군산을 찾는 사람이 줄고 하나둘 현실적인 문제로 지역을 떠나는 것. 다시 빈 공간이 되는 것. 프로젝트에 힘이 빠져나가면 자연스럽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 권한도 처음보다 축소된다. 이걸 해결하고 싶었다. 타운을 지속적으로 매니징할 수 있으려면 부동산 권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마스터 리스(master lease)에 눈을 돌렸다. 공간을 사서 젊은 소상공인에게 임대하고, 그들의 콘텐츠 자율성을 보장하되 ‘한 팀’으로 움직이자, 해서 탄생한 것이 영화타운이다. 이 역시 처음의 임팩트가 지속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걸 원하기 때문이다. 지방에선 서울처럼 빠르게 업종 변환을 하거나 팝업 이벤트를 여는 것이 쉽지 않다. 플레이어가 적어서 그렇다. 결국 지역도 기업형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제조업에 눈을 돌렸고, 지금 하고 있는 ‘흑화양조’가 그 답이다.

Q 그 얘기를 듣고 싶었다. 흑화양조를 통해 군산을 ‘술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당신의 포부. 왜 ‘술’인가? 몇 년 전 모종린 교수가 쓴 글을 읽은 게 계기다. 군산을 혁신시킬 산업은 양조 산업이고, ‘청주’를 로컬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군산은 백화수복을 생산하는 백화양조가 있던 도시다. 군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간과했다는 사실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백화양조를 잇는 게 아니라 군산의 양조 문화, 술에 기반을 둔 라이프스타일을 되살리는 일이다.

Q 그래서 무엇을 하고 있나? 영화타운 안에 들어선 수복이라는 청주 바를 기획했고, 술 익는 마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첫해엔 술에 관심 많은 이들과 술을 빚고 창업과 브랜딩 교육을 했다. 100여 명의 청년이 거쳐갈 만큼 반응이 좋았다. 술을 주제로 한 로컬 콘텐츠와 공간, 브랜드를 만들고 군산이라는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술을 론칭하는 일이 지금 하고 있는 작업들이다.

Q 군산의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 계속 움직이게 하는가? 처음에 내려왔을 땐 원도심의 옛 건축물들, 살아남은 노포 등 오래된 것에 매료됐다. 지금은 조금 다른 시선으로 이 도시를 바라본다. 알다시피 군산은 이방인의 도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미 공군 부대가 자리 잡으며 들어온 미국인, 자동차 공장과 조선소로 인해 유입된 타 도시 사람들 등 이방인이 끊임없이 드나든 역사가 있다. 그래서 이방인에게 친화적이고 개방적이며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인다. 지금도 여전히 여기에서 무언가를 시작해보려는 이들이 많이 유입되는 이유다. 반면 이 이방인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다가 소멸하기도 쉽다. 그 단점을 해결하고 싶다. 그래서 지역 술 브랜드를 론칭하고, 플랫폼을 만들어서 그걸 중심으로 다양한 크리에이터와 끊임없이 협업하려고 한다. 각개가 아니라 무리 지어 움직이는 것. 우리가 가진 자산으로 ‘군산의 것’을 만드는 일. 그게 지금 나의 비전이다.

Project

‘지방’이 만든 군산의 활기

도시재생이라는 단어가 성행하기 전부터 군산은 일찌감치 새로운 변화를 겪었다. 그 중심에 조권능 (주)지방 대표가 있다. 그가 이 도시에 가져온 변화를 직관적으로 경험하고 싶다면 영화타운으로 향하자. 2018년 골목재생사업으로 탄생한 영화타운은 그 전엔 공실률이 70%에 달하는 재래시장이었다. 네 개의 입구를 가진 영화타운 안으로 들어서면 원래부터 있던 것과 새롭게 들어선 것이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다. 미군 부대로 흘러들어가는 외제 물건을 파는 한일상회와 전국 떡볶이 팬들을 군산으로 모여들게 하는 노포 안젤라분식 등이 원주민이라면, 타파스를 비롯한 스페인 음식을 파는 돈키호테, 청주 바 수복, 칵테일 바 해무, 오코노미야키 바 야끼끼 등이 새 얼굴. 지방이 직영하는 바 럭키마케트와 게스트하우스 후즈 넥스트도 원도심의 인구밀도를 높이는 공간이다. 영화동에서 로컬과 친교를 쌓고 싶다면 영화타운의 SNS 계정(@yhtown.official)을 눈여겨볼 것. 지방에서 이 공간을 중심으로 로컬과 여행자, 혹은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끊임없이 열기 때문이다. 기타리스트 박주원과 뮤지션 김오키, 김일두 등을 라인업으로 하는 ‘군산은 Bar다’, 군산의 보물 같은 가게를 만들어낸 소상공인과 각종 먹는 얘기를 나누는 ‘군산 식food 토크’, 원도심 안 다섯 곳의 바를 호핑하며 함께 술을 마시는 ‘군산 바투어’ 등이 지난날 영화타운의 영화를 장식했다. 조권능 대표가 이 일대를 바 스트리트로 만들고 싶다는 계획을 밝힌 만큼, 새 친구와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라면 이 동네를 꼭 기웃거려보자.

Community

시민을 위한 회관

군산엔 적산가옥으로 불리는 옛집 말고도 건축사에 남을 만한 가치를 지닌 공간이 있다. 건축가 김중업의 유작으로 알려진 군산시민문화회관이다. 1989년에 개관한 건축물로 한국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구사하는 김중업 건축미학이 응축된 결정체로 유명하다. 군산 시민의 문화생활과 여가를 책임지는 예술 공간으로 활용됐던 이곳은 2013년 군산 예술의전당 개관과 함께 폐관 절차를 밟았다. 군산시는 유휴 공간이 된 이 건축 유산을 시민들에게 돌려줄 방법을 끈기 있게 모색했다. 10여 년 동안 잠들었던 공간을 깨운 주체는 ‘커넥트 군산’. 군산의 자원을 새로운 눈으로 재발견하고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콘텐츠 그룹이다.

지금은 ‘소통협력센터 군산’으로 불리며 내년부턴 ‘군산회관’이라는 이름으로 문 열 예정인 이 건물은 군산 사람과 여행자 모두에게 열려있다. 이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이하늬 지역협력팀 매니저는 “군산이 가진 자원을 다양한 프로젝트로 기획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프로젝트엔 군산 서수면의 청보리밭을 함께 걷고 보리로 만든 음식을 맛보는 ‘청보리너리 산책’, 월명산·선유도·청암산 등 군산의 구불한 길이 이어진 곳곳에서 야생을 따라 트레킹하는 ‘구불구불 LNT 탐험’, 배우·작가·안무가·음악가 등의 아티스트와 옛 군산시민회관의 빈 무대에서 연극·춤·글쓰기·만들기 등의 창작 활동을 해보는 ‘군산유학’ 같은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있다 . “우리가 지향하는 키워드는 ‘창작’, ‘동시대’, ‘매개’입니다. 이 커뮤니티의 목표는 너무 당연하고 익숙해서 지나친 지역 자원을 새로운 관점으로 제안하고 해석해 보여주는 거예요. 일방적인 제시가 아닌 군산 시민과 함께 협업하면서요.” 올 가을에 선보일 예정인 프로그램으론 1박 2일 동안 군산회관을 거점으로 반경 3km 이내의 지도를 1박 2일 동안 만드는 ‘캠핑 앤 매핑’, 군산 시내 독립 서점 13곳과 손잡고 함께 여는 ‘군산 북페어’ 등이 공개되어 있다.

Architecture

근대의 집

군산을 톺아볼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적산가옥.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이 지은 일본식 가옥을 가리키는 건축이다. ‘적의 재산’이라는 뜻을 함축한 네거티브 헤리티지지만 군산은 도시가 겪은 과거를 지우는 대신 역사의 일부로, 고유한 지역 자원으로 품는다. 그 덕에 과거의 흔적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도시에 사는 이들이 분주히 군산을 찾는다.
일본인 상류층 주택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신흥동 일본식 가옥을 찾아 겉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오감으로 속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도 많다. 옛집을 자기만의 취향과 방식으로 편집해 사용하고 있는 새로운 로컬 공간이 꽤 많기 때문이다. 1920년대에 지어진 적산가옥을 겉은 살리고 안은 고쳐 숙소로 개조한 ‘소설여행’은 조각가 허숙경과 그의 조카 허승희가 함께 가꾸고 운영하는 공간. 객실 안에 들어서면 이탈리아에서 살다 온 예술가의 미적 감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정원과 계절의 정취를 온몸으로 누릴 수 있는 야외 저쿠지, 정갈하게 꾸민 침실과 거실 등이 차례로 눈에 든다. 숙소 옆에 자리한 허숙경의 작업실에선 그가 유럽에서 하나둘 모은 빈지티 아이템, 직접 빚고 구운 화기와 그릇, 액세서리 등을 구경하거나 살 수 있다.

안쪽에도 옛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궁금하다면 ‘군산과자조합’이라는 이름을 가진 카페로 향하자. 일본식 2층 목조주택인 히로쓰 가옥의 원형이 꽤 보존된 곳이다. SNS나 블로그에선 음식과 차에 관한 정보와 품평뿐이지만 ‘집 구경’을 목적으로 방문했다면 눈앞의 디저트 맛 대신 한 세기를 건너온 나무 서까래와 기둥, 높은 천장을 찬찬히 뜯어보며 100년 전의 시간을 상상해보는 것도 좋겠다. 1937년 김외과병원으로 지어진 일본식 가옥에 둥지를 튼 ‘한일옥’, 일본인이 수탈한 쌀을 쌓아둔 미곡 창고를 개조한 카페 ‘틈’도 군산의 과거를 그려볼 수 있는 공간이다.

brand

군산 물건

군산에서 만든 군산 물건과 브랜드는 아직 태동 단계로 젊은 창업가들의 모색과 실험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나타났다 사라진 것이 많은 시장에서 ‘보리당’은 꾸준한 행보를 보이는 브랜드다. 군산의 특산품인 흰찰쌀보리로 차 브랜드를 만든 이는 디자인 스튜디오 ‘블루 머스타드’와 스테이 ‘소설여행’을 운영하는 허승희 대표. 자신이 운영하는 숙소를 찾은 여행자들에게 지역 특산품을 소개하다가 흰찰쌀보리에 관심이 생겨 차로 개발하게 됐다고 말한다. “국내 흰찰쌀보리 생산량의 70%가 군산에서 나온다고 해요. 건강에도 좋고 맛도 훌륭한 지역 특산품을 그냥 먹거나 빵 재료로만 쓰는 게 아깝더라고요. 흰찰쌀보리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것이 뭘까, 하다가 좋아하는 차와 커피로 만들어보자 해서 보리당을 시작했죠.” 그렇게 탄생한 보리당 제품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흰찰쌀보리에 검은콩, 감잎, 결명자, 솔잎, 계피를 조합한 ‘보리당 블렌디드 01’, 대추와 캐머마일, 귤피를 섞은 ‘보리당 블렌디드 02’는 디자이너 출신의 허 대표가 공들여 만든 패키지에 곱게 담겨 군산 여행자들의 세련된 기념품으로 활약 중이다. 맥주에서도 군산 보리의 활약을 만날 수 있다. 째보선창으로 불리는 죽성포에 들어선 ‘비어포트’는 군산시가 지역 맥아 소비 확대, 관광자원 육성과 활성화를 위해 문 연 수제 맥주 문화 공간. 이 안에 들어선 ‘메인쿤브루잉’은 군산에서 생산된 보리 맥아로 맥주를 빚고 군산의 이야기와 지명을 맥주의 캐릭터에 담는 브랜드다. 일제강점기에 만든 부잔교를 주제로 한 ‘뜬부두 페일에일’을 비롯해 ‘째보선장 라거’ ‘해망굴 스타우트’ ‘서해의 맛’ ‘월명동 힙스터 IPA’ 등 6가지 맛의 수제 맥주를 선보인다.

군산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품을 사고 싶다면 셀렉트 숍&카페 ‘룩투’로 향할 것. 대기업과 지자체가 손잡고 청년 창업과 지역재생을 지원한 프로젝트 ‘로컬 라이즈 군산’을 통해 이 도시에 정착한 크리에이터들의 아지트 같은 공간이다. 공간을 운영하는 도예가 박미선의 작품을 비롯해 일러스트 엽서, 마그네틱, 룸 스프레이, 차 등 군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다양한 물건들을 만날 수 있다.

space

책의 도시

1920년대에 지어진 적산가옥에 들어선 ‘마리서사’가 기획하고 경암동의 철길 위에 들어선 ‘리루서점’이 취재한 후 한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독립 출판사로 유명한 프로파간다가 운영하는 ‘그래픽숍’이 제작한 ‘군산 동네 서점 지도’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군산의 13곳 동네 서점을 소개합니다. 이 중 6곳은 2021년에서 2023년 사이 문을 열었으니 3년 사이 서점이 2배로 늘어난 것이지요. 새로운 공간은 신선한 물결을 만들었고, 이런 활기와 흐름을 이 지도에 담아보고자 했습니다. 여기 소개된 동네 서점에 독자와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져 군산에 책의 길이 활짝 열리길 바랍니다.”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서점이 한 개도 없는 지역이 10곳, 단 한 개뿐인 지역이 25곳이나 될 정도로 열악한 서점 수 현황(<2024 한국서점편람>)을 가진 지방 서점 세계에서 인구 25만 8,585명(2024년 7월 기준)의 소도시 군산엔 13개나 되는 동네 서점이 있다. 개수보다 더 흥미로운 건 이 서점들이 따로 또 같이 꾸미는 일들. 군산에 처음으로 생긴 ‘참고서 없는’ 동네 서점 마리서사는 ‘초단편’이라는 타이틀로 단편 문학 공모전을 열어 선정작으로 책을 출간하고, 상담 교사가 문 연 ‘심리서점 쓰담’은 심리 전문 도서를 큐레이션하며 심리 검사와 상담까지 겸한다. 프로파간다의 김광철 대표가 문 연 그래픽숍을 관람하고, 그가 소통협력센터 군산과 협업해 도시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지휘하며 낸 출판물 <아틀라스 군산-시티 가이드>와 <군산 구도심 자영업 시각 지도>를 읽다 보면 적산가옥 활용에 머물러 있던 군산 재생의 미래가 책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까지 든다. 이 13개 서점의 연합체, 군산책문화발전소의 활약이 궁금하다면 시와 손잡고 개최하는 ‘군산 북페어’를 눈여겨볼 것. 소설가 황석영과의 대담, 김현·이소연·유현아 등의 작가가 진행하는 ‘군산 이야기 낭독회’, 전국의 이름난 지역 서점 운영자들이 참여하는 토크 ‘서점은 도시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등 수준 높은 프로그램으로 꽉 채웠다. 올해 북페어는 9월 1일에 막을 내리지만 크고 작은 책방들의 모의는 도시 곳곳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Platform

술의 마을

군산의 로컬 크리에이터들은 술로 도약을 꿈꾼다. 그 선두에 ‘흑화양조’가 있다. 흑화양조라는 이름은 백화양조에서 가져왔다. 국민 청주로 이름을 날린 백화수복을 만든 기업, 백화양조가 이 도시에서 탄생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근대부터 청주를 빚은 군산엔 술의 원료, 인적 자원, 술 문화 등 술과 관련한 자원이 많아요. 그걸 찾아서 활용해 양조 문화를 살리고 지역의 미래로 가져가고 싶습니다.”
‘술 익는 마을’은 흑화양조의 첫 프로젝트다. 초기엔 창업과 브랜딩 교육을 통해 술과 관련된 공간을 내는 커리큘럼으로 운영했다. 지금 술 익는 마을은 군산에 정착하려는 사람뿐 아니라 여행자도 품는다. 1박 2일로 진행하는 ‘술 익는 마을 투어’는 한마디로 술을 공부하고, 담아보고, 술로 힐링하는 여정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은 신흥동 말랭이 마을에서 수십년 업력을 자랑하는 마을 할머니들과 술을 담그고 탁주를 비롯한 다양한 술을 시음한 후 술지게미로 족욕도 즐기며 군산을 경험할 수 있다. ‘모락’은 흑화양조가 최근 선보인 스파 브랜드다. 적산가옥 양식으로 만든 이 공간의 용도는 목욕하는 집. 이곳에서 제공하는 입욕제는 흑화양조에서 술을 빚은 후 남은 부산물, 술지게미로 만든 제품이다. “술지게미 목욕을 마친 후엔 다실에 앉아 군산의 도예가와 협업한 다기에 군산 보리로 만든 차를 내려 마실 수 있어요. 한마디로 술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지역의 산물과 사람, 이 동네와 저 동네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거죠. 올해 하반기엔 오랫동안 준비한 흑화양조의 첫 술이 나와요. 군산을 대표하는 새로운 청주를 선보이는 것뿐 아니라 술로 군산의 곳곳을 연결하는 일을 해볼 생각이에요. 화장품, 디저트 등 확장할 수 있는 분야가 많거든요. 제 목표는 술을 매개로 타운을 매니지먼트하는 거예요. 군산을 청주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조권능 대표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