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점 & 파이드로스 서점


제주시 탑동의 랜드마크가 된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에는 팝업 공간으로 쓰이는 뉴스룸이 있다. 수많은 브랜드가 머물다 나간 그곳에 새로운 정착자가 들어섰다. 아이웨어를 컨설팅하며 제주의 생활 방식과 어울림이 좋은 옷을 만들어 소개하는 허상점 얘기다. 애월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취향 좋은 도민들을 맞이했던 허상점이 탑동으로 자리를 옮긴 건 올해 4월. “서울, 대구 등 전국을 돌며 15번의 팝업 상점을 마치고 이 공간에서 시즌 2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직접 만든 겨자색 셔츠를 입고 장인이 만든 안경들을 가지런히 정리하던 ‘허’가 친절히 설명한다. 허상점의 작품 같은 상품을 다 둘러봤다면 위 공간으로 연결되는 계단을 오를 차례다. 1.5층엔 ‘허’와 그의 남편 ‘한’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작업 공간이자 아틀리에가 있고, 반 층 더 올라가면 사진가 ‘한’이 정성껏 큐레이션한 사진, 예술 서적을 모아둔 서점이자 전시 공간 파이드로스가 나타난다. 적당히 밝고, 적당히 어두운 조도로 꾸민 이 공간은 영화관처럼 이미지에 집중하기 좋아 사진집을 천천히 넘기며 조용히 머물다 가기에 좋다.
주소 제주시 탑동로 2길 3
영업시간 11:00~17:00 수·토 휴무
인스타그램 heosangjeom, phaidros_official
문화예술공공수장고


제주시 한경면과 안덕면의 경계에 자리한 저지리는 요즘 제주를 찾는 이, 사는 이들 사이에서 ‘뉴저지’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영어 교육 도시로 자리 잡으며 들어선 세련된 카페와 식당들,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이 어우러지며 만드는 새로운 분위기 때문이다. 저지 문화 지구의 새 얼굴 중 하나인 문화예술공공수장고는 원래 제주도의 공립미술관에서 위탁 받은 작품들을 보관·보존·관리할 목적으로 문을 연 공간. 지금은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운영하는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바뀌었다. 안으로 들어서면 박공지붕 건축물 특유의 시원한 천고가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높이 8m의 벽면과 지붕이 미디어아트를 상영하는 스크린이 된다. 제주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마을 작가들의 작품을 몰입형 실감 콘텐츠로 구현한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주소 제주시 한경면 저지12길 84-2
영업시간 10:00~18:00 월요일 휴관
만춘서점


작은 책방이 가진 고유한 개성을 즐기는 이들에게 서점은 여행의 목적이 된다. 함덕 해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자리한 만춘서점도 그런 존재감을 가진 공간. 서울에서 편집 디자이너로 일한 이영주 대표가 2016년에 문 연 이곳은 소설가와 시인, 에세이스트의 글과 싱어송라이터의 노랫말에 종종 등장할 정도로 영감을 주는 분위기와 서사를 갖췄다. 책과 독서를 좋아하는 제주도민 사이에선 ‘찾고 있는 책이 늘 있는 서점’으로 통한다. 순백의 건물 뒤로 야자수가 펼쳐진 이국적인 외관을 갖춘 1호점의 문을 열면 매대와 카운터 없이 서가만으로 구성된 공간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맘에 드는 책을 골랐다면 붉은벽돌 건물에 자리한 2호점으로 건너가 계산하면 된다. 1호점엔 소설과 에세이, 2호점엔 인문과 고전, 예술 서적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만춘에서 책을 구매한 후엔 그냥 나가지 말고 공간에 머물며 책 읽는 시간을 가져볼 것. 날 좋을 땐 뒤뜰의 노천 테이블이, 궂은 날엔 창가에 놓인 책상 앞이 독서 의지를 고취한다.
주소 제주시 조천읍 함덕로 9
영업시간 11:00~18:00
인스타그램 manchun.b.s
김창열미술관


김창열미술관을 찾는 방문객 대부분은 여행자지만 도민들 중엔 때마다 거듭 찾는 이들도 꽤 있다. “작가가 기증한 수백 점의 작품들을 다채로운 큐레이션으로 선보이는 전시를 보러, 그리고 예술가의 생애를 응축해 표현한 공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명상하는 시간을 갖고 싶을 때 종종 찾습니다.” 영감을 주는 장소로 이곳을 꼽은 강미승 작가의 말이다.
김창열의 작품과 삶을 형상화한 공간의 매력은 날것의 현무암을 성곽처럼 높게 두른 입구부터 드러난다. 본관을 에워싼 흑석 울타리, 깨진 돌로 덮은 지붕, 동굴처럼 깊숙이 돌아들어가는 안쪽 구조는 ‘돌아올 회(回)’ 자를 형상화한 설계도를 그대로 재현한다. 건축가가 김창열의 <회귀>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이 공간에서 작가가 수도하듯 그려낸 물방울들을 보고 있으면 번뇌로 가득한 정신에 고요가 깃드는 순간을 만난다.
주소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883-5
영업시간 하절기 9:00~19:00 월요일 휴관
웹사이트 kimtschang-yeul.jeju.go.kr
고요편지


이곳을 운영하는 서점지기 한민정은 이 작은 책방이 추구하는 정체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안내한다. 한 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니라 두고 두고 꺼내 여러 번 읽을 만한 책을 큐레이션 하는 곳. 독서의 흥을 돋워줄 차와 커피와 술을 사 마실 수 있는 곳. 추억을 품은 애착 ‘반려책’을 가져와 읽을 수 있는 비밀의 방이 있는 곳. 그뿐 아니라 독서 의지는 투철하지만 도무지 활자에 긴 시간 집중할 수 없는 도파민 중독자들을 다독이는 프로그램도 때마다 내놓는다. 저녁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산책, 소셜 다이닝, 음감회와 책 수다, 독서와 명상을 알차게 채워 넣은 ‘책피서’, 제주의 소소하고 수수한 자연 속을 함께 걷는 ‘오늘은 산책’ 등이 그 예. “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감각하고 독서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크고 작은 경험을 계속해서 주고 싶다”고 말하는 서점지기의 다정한 마음에 반한 로컬들이 단골처럼 드나드는 살롱이자 사랑방이다.
주소 서귀포시 하효동 129
영업시간 12:30~21:00 목·금 휴무
웹사이트 goyoletter.bookshop
삼매봉도서관


1986년, ‘문예회관’이라는 이름으로 문 연 공공 도서관이다. 설립 연도에 걸맞은 복고적인 외관과 간판 글씨체가 주변의 신식 건물 사이에서 이국미를 뽐낸다. 서귀포 출신 주민들에게 이곳은 밤 11시까지 문을 여는 동네 도서관 정도로 통하지만, 외지에서 섬으로 이주한 로컬에겐 ‘통창으로 무려 한라산 뷰가 펼쳐지는 도서관’으로 암암리에 인기가 높다. 2층 안내 데스크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으면 책과 한라산을 번갈아 보며 망중한을 즐길 수 있다. 차양을 드리운 옥상에선 창살과 유리 반사의 방해 없이 한라산의 정기를 온몸으로 맞을 수 있다.
주소 서귀포시 남성중로153번길 15
영업시간 종합자료실·정보이용실 주중 9:00~22:00 주말 9:00~18:00 / 열람실 8:00~23:00 금요일 휴관
기당미술관


제주도 출신이거나 제주에서 살았던 경험으로 이름을 건 미술관을 낸 화가들이 있다. 김창열, 이중섭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이름이다. 제주 토박이로 <제주 탐닉> <제주 오름 걷기 여행>을 쓴 여행 작가이자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문신기는 도민이 아끼는 또 다른 이름을 건넨다. “흔히 서귀포를 대표하는 작가로 이중섭을, 대표 미술관으로 이중섭미술관을 떠올리겠지만 서귀포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달라요. 시민들은 변시지와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기당미술관을 첫손에 꼽곤 합니다.” 서귀포 태생인 변시지는 6세 때 일본으로 떠났다가 25년 뒤인 1957년에 귀국해 서라벌예대, 제주대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제주화’라는 새로운 작품 세계를 창조한 작가. 바람이 부는 제주를 배경으로 사람, 새, 말, 초가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거친 땅과 바다에서 삶을 힘겹게 개척해온 제주 사람의 사연 많은 내면이 그림에 잘 드러나 있어요.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제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내면의 외로움을 대신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아 은근히 가슴이 아립니다.” 제주민의 삶과 정서의 뿌리를 만날 수 있는 기당미술관은 ‘한라산 뷰’ 열람실을 갖춘 삼매봉도서관 바로 옆에 자리했다.
주소 서귀포시 남성중로153번길 15
영업시간 9:00~18:00 월요일 휴관
웹사이트 culture.seogwipo.go.kr/gid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