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KAYAMA
일본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내려 오사카 남쪽에 위치한 와카야마현으로 향한다. 총면적의 80%가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변화무쌍한 600km의 해안선을 품고 있는 와카야마현은 한국인에게는 아직 낯설지만 일본인에겐 인기 있는 여행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구마노 고도, 고요한 절과 해변을 마주한 온천, 아름다운 해변이 이어져 순롓길을 걷거나 조용하게 쉬며 온천을 즐기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먹거리 또한 풍부하다. 유아사는 일본 간장의 발상지이며, 가쓰우라 어항은 일본 최대 생참치 어획량을 자랑하는 곳 중 하나다. 아리다 지역은 일본 최대 귤 산지이고, 미나베 초는 최대 매실 생산지이기도 하다. ‘물’ 좋고, ‘장’이 맛있는 곳은 예로부터 미식이 발달했다. 박준우 셰프에게 와카야마 미식 여행을 제안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주로 일과 관련된 여행을 하다 보니 유럽을 많이 다녔고, 일본을 찾을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어느 나라든 디저트나 와인에 대해선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일본 와인에 대해서도 최근 관심이 생겼고, 프랑스에서 요리 공부를 했으니 일본의 프렌치 요리도 궁금하네요.”
와카야마의 명물, 생참치 해체 쇼


셰프에게 여행은 영감의 원천이다. 특히 시장은 가장 재미있는 놀이터다. 와카야마시에 도착해 처음 향한 곳은 마리나시티에 위치한 구로시오 시장. 일본의 안전하고 신선한 생선을 맛볼 수 있고, 바로 구입할 수 있는 어시장으로 이곳의 백미는 매일 낮 12시 30분(주말과 공휴일엔 하루에 세 번) 열리는 참치 해체 쇼다. 오전에 간사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서둘렀던 이유도 참치 해체 쇼를 보기 위해서다. 매일 낮 12시가 넘으면, 해체 쇼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박준우 셰프도 시장에 도착하자마자 자리를 잡았다. “와, 이렇게 큰 참치는 처음 보는데요.” 조리대 위에 올라온 거대한 참치를 보고 놀라기도 잠시, 12시 30분 정각, 종소리와 함께 등장한 전문 해체사가 커다란 생참치를 능숙한 손놀림으로 해체하기 시작했다. “오늘 해체한 참치는 어제 저녁 구시모토 오시마 해안에서 잡은 참치로 35킬로그램이고, 네 살입니다.” 일본에서 유통되는 참치는 90%가 냉동, 10%가 생참치다. 와카야마현은 일본에서도 접하기 힘든 10%의 생참치를 만날 수 있는 곳. 참치는 지방이 많은 겨울철이 가장 맛있다. 겨울 끝자락에 맛볼 참치 맛이 기대됐다. 해체 쇼가 끝나면 바로 옆 매대에서 구입해 별도로 마련된 테이블에서 먹을 수 있다. 참치 뱃살(O-toro sushi) 한 피스와 등살(Chu-toro sushi) 한 피스 세트에 1000엔이다. “생참치는 차원이 다르네요. 와규처럼 부드럽게 입안에서 살살 녹는데요.” 신선한 생참치를 맛본 박준우 셰프의 감탄이 이어졌다.

구로시오 시장은 1994년에 오픈, 2004년에 리노베이션을 했다. 신선한 참치회를 비롯한 다양한 해산물·초밥·건어물 등을 판매하며, 구입한 해산물과 고기 등을 즉석에서 구워 먹을 수 있는 바비큐 코너도 있다. 시원하게 펼쳐진 와카우라만을 바라보며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어 가족여행객, 데이트족이 즐겨 찾는다.
www.kuroshioichiba.co.jp
행복한 가이세키



구로시오 시장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 30여 분 달리면 새하얀 모래사장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 시라하마에 다다른다. 바다와 함께 온천도 즐길 수 있어 일본인들에게 인기 있는 휴양지다. 와카야마현에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7개가 있는데, 시라하마에 위치한 ‘치쿠호(竹寳)’는 미슐랭 1스타를 획득한 가이세키 식당이다. 나가노현 쇼엔온천(현 호시노 리조트 카이 알프스)에서 요리장을 지내고 호시노야 가루이자와 리조트에서도 근무한 다케나카 셰프가 2019년에 오픈했다. 비밀의 문을 통과하듯 3개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칠기로 만든 단아한 장식장, 결이 고운 통나무 테이블이 나타난다. 칠기 장식장은 와카야마 지역 아티스트가 만든 작품이고, 음식 재료도 대부분 지역에서 난 것을 사용한다.
치쿠호는 매달 메뉴가 바뀐다(크게는 계절에 따라, 세분하면 절기에 따라 메뉴가 바뀐다). 13개 요리가 순서대로 나오는데, 이중 5개 정도는 그때그때 메뉴에 변화를 준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고 쓰인 메모와 빨간색 술 장식, 액운을 쫓는 나뭇잎을 장식한 칠기 찬합에 담긴 요리가 나왔다. 박준우 셰프는 식전주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만 공급되는, 샴페인처럼 가벼운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봄에는 몸에서 안 좋은 것을 빼내는 요리를 합니다. 산나물의 쓴맛이 독소를 배출하는 역할을 하죠. 또 ‘입춘 두부’라는 말이 있어요. 입춘에 두부를 먹으면 ‘액’을 막을 수 있다고 해요. 두유를 먹으면 몸이 따뜻해집니다.” 셰프의 설명을 들으며 식사를 시작했다. 첫 요리는 세토우치 해안에서 잡히는 아나고 치어(어린 물고기)에 양파 퓌레와 유채를 얹은 요리. 한 점 먹자, 입안에 푸른 바다와 봄 향이 가득 찬다. 다음으로 가쓰오와 흰 된장을 넣고 끓인 국물에 푹 익힌 참마와 눈을 뚫고 나온 머위를 얹은 요리와 함께 이 계절에만 먹을 수 있다는 사케를 곁들인다. 두 번째 요리를 맛본 박준우 셰프가 말했다. “참마와 머위, 흰 된장 맛의 조화가 너무 훌륭합니다. 쌉사래한 머위가 달짝지근한 국물 맛을 잘 잡아줘요. 이 음식은 12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케나카 셰프는 와카야마에서 나는 품질 좋고 몸에 이로운 고기나 해산물은 물론 소박한 채소 또한 많이 사용한다. 양파와 무도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고른다. 요리 철학을 묻자 다케나카 셰프가 답했다. “손님들 상황에 맞게 먹기 편하고 몸에도 좋은 음식을 하려고 합니다. 추울 땐 몸을 따뜻하게, 더울 땐 차갑게, 소화가 잘되고 몸도 보호할 수 있는 음식이요.” 자연산 참치, 백합조개와 파래를 넣은 차완무시, 비비추를 넣고 저온으로 천천히 익힌 새우, 곰치에 순무를 넣어 찐 요리, 무조림에 은어 새끼를 얹은 요리, 두유와 흰 된장에 넣은 돼지고기, 마지막으로 정어리 솥밥까지 먹으면 다케나카 셰프가 선보인 ‘봄의 여정’이 끝난다.
“어릴 적에 먹을 것이 충분하지 못해 형제들이 나눠서 먹었어요. 제 몫은 언제나 적었죠. 풍족하지 못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지만 음식을 먹는다는 건 제겐 가장 큰 행복이었어요. 치쿠호에 오는 분들이 음식을 다 먹고 나면 ‘집’에서 밥을 먹은 것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기억을 갖고 돌아가면 좋겠어요.” 식사를 마친 박준우 셰프의 얼굴에는 발그레한 미소가 번졌다. 사케 한잔의 술기운이 아닌, 좋은 음식들로 채워진 온기였다. 그가 경험한 첫 번째 가이세키 요리는 보기에 화려하기만 한 음식이 아니라, 마음이 느껴지는 음식이었다.
oryori-chikuhou.com
발효의 힘


와카야마현 유아사는 일본 간장의 발상지로 현재 남아 있는 간장 양조장은 열 곳이 채 안 되지만 간장 양조로 번성했던 거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유아사에서 멀지 않은 동네 아리다군 히로카와, 목조 가옥이 늘어선 고풍스러운 골목에 위치한 ‘시오카 이사리(潮香)’는 지난해 가을에 문을 열었다. 그물 공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레스토랑 내부에 공장에서 사용했던 그물 만드는 기계와 그물 장식이 모던한 가구와 어우러져 멋스러움을 풍긴다. 프랑스 퐁텐블로의 악셀 레스토랑(L’Axel Restaurant)에서 6년 정도 경력을 쌓은 후 시오카에 합류한 가네마루 료 셰프는 고지(일본 누룩)를 베이스로 인근 어항에서 매입한 신선한 해산물과 근처 농장에서 수확한 채소를 사용해 이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프렌치 코스를 선보인다.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즐겨 먹는 고지는 장에 이로운 균을 만들어주는 건강한 식재료로, 술뿐 아니라 다양한 요리에 사용된다. 가네마루 료 셰프는 양파 고지, 무 고지, 시소 고지, 간장 고지 등 본인이 직접 만든 고지를 소스, 조미료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한다.

달걀, 햇양파, 파르메산 치즈와 베이컨, 머위, 간장 고지를 넣어 만든 포타주는 프랑스에서 일하던 시절, 스승 셰프에게 전수받은 레시피다. 오징어에 시소잎이 들어간 리소토는 양파 고지가 들어가 짠맛을 잡아주었다. 음식을 맛본 박준우 셰프는 고지의 역할이 궁금해졌다. “발효 과정을 거치면 식재료는 맛과 향이 더욱 풍부해져 놀라운 맛을 냅니다.” 가네마루 료 셰프는 취재진을 주방으로 안내했다. 주방은 ‘고지 실험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가 만든 고지로 가득했다. 각각 다른 고지를 맛본 박준우 셰프는 고지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정말 재료마다 다른 감칠맛과 풍미를 갖고 있네요. 흥미로운데요.”
시오카는 레스토랑뿐 아니라 히로카와의 역사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사용된다. 그물 가방 만들기 체험과 버려진 그물을 활용한 공예 워크숍 등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최근엔 식사와 함께 숙박할 수 있는 스테이도 오픈했다. 고택을 개조해 각기 다른 스타일로 꾸민 4개의 객실은 취향이 남다른 여행자를 기다린다.
shioka-isari.com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크래프트 맥주

‘마시다(nomu)’와 ‘장인(craft)’의 의미를 지닌 단어를 조합한 ‘놈 크래프트 브루잉(NomCraft Brewing)’. 아리다가와초의 풍광 좋은 센바야마산에 둘러싸인 놈 크래프트가 위치한 건물은 원래 유치원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시카고 출신의 애덤 배런(Adam Baran)은 영어 교사를 하다가 맥주가 너무 좋아 양조를 공부했고, 평화로운 자연에 반해 이곳 아리다가와에 정착했다. 그리고 미국, 영국, 호주, 독일 등에서 경험을 쌓은 크루들과 의기투합해 색깔이 뚜렷한 크래프트 맥주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메리칸 스타일의 IPA 등 홉이 강한 맥주를 기반으로 하며, 개성이 강한 사워 맥주도 만든다. “일본 어디에 양조장을 열까 고민할 때 언젠가 만난 아리다가와 사람들이 떠올랐어요. 조사할수록 이곳이 맥주 양조에 적합한 장소라는 것을 깨닫게 됐죠. 우리는 ‘크래프트 맥주를 통한 커뮤니티 개발’이란 큰 꿈을 갖고 놈 크래프트 브루잉을 시작했어요.” 지역색을 살리기 위해 이 지역에서 생산된 귤이나 산초 등을 배합해 맥주를 만들기도 하고, 지역 주민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벌인다. 유치원 건물 일부를 리노베이션한 것부터 시작한 프로젝트는 하나씩 확장 중이다. 브루어리 옆에는 놈 크래프트의 맥주와 햄버거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카페 ‘골든 리버’가 자리한다. 교실로 사용하던 공간에는 베이커리와 게스트하우스 시설도 있다. 이처럼 맥주를 통해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놈 프로젝트 브루잉의 비전이다.
nomcraft.beer
바닷가에서 맛보는 초콜릿

와카야마현 시라하마초 바닷가 근처에 위치한 ‘K타입 초콜릿 컴퍼니(K型 Chocolate Company)’는 가나, 탄자니아, 볼리비아, 트리니다드토바고, 베트남, 아이티 6개국에서 직접 공수한 카카오 빈으로 초콜릿을 만드는 공장 겸 카페다. 와카야마 출신의 시마 아키고 씨가 직접 만든, 산지의 특성을 살린 초콜릿을 맛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초콜릿의 카카오 함량은 40~50%인데, 이곳에서 만든 제품은 약 70% 넘는 카카오 함량을 자랑한다. 가나는 카카오 빈 본래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고, 탄자니아는 입에서 녹기 시작하면 베리 향의 산미가 난다. 볼리비아는 식감과 타닌감이 강하고, 트리니다드토바고는 카카오 함량 80%의 하이 카카오 초콜릿으로 위스키와도 잘 어울린다.
“초콜릿은 사람들에게 일상적이지 않은 특별한 음식입니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와 다른, 휴양지인 시라하마의 비일상적 느낌이 초콜릿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대도시에선 초콜릿 숍이 흔하기도 하고요.” 오너의 말 때문일까? 한 조각 맛본 초콜릿이 더욱 달콤하게 느껴졌다. 탄자니아 핫초코, 카카오 스파이시 밀크 카페 모카 등 초콜릿과 잘 어울리며 초콜릿이 함유된 다양한 음료도 판매한다. 패키지가 예뻐서 선물하기에도 좋다. 패키지는 로컬 작가들이 디자인했으며, 카페에서 작가들의 작품 전시도 이루어진다.
ktype-chocolate-company.square.site
시라하마의 낭만을 완성해주는 숙소


하얀 모래사장과 눈부신 바다를 품은 시라하마의 매력은 바다와 함께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것. ‘키 테라스 시모어(Key Terrace Seamore)’는 여러 종류의 온천과 넓고 탁 트인 공간에서 온천욕을 할 수 있는 노천탕을 갖고 있다. 리셉션에도 인피티니 족욕탕이 자리해 물속에 발을 담근 채 시라하마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리뉴얼을 해 더욱 쾌적해진 객실 한편에는 다다미로 된 공간이 있어 편안한 숙박이 가능하다. 1층엔 도쿄의 베이커리 테티 베이커리&카페(Tetti Bakery&Café)가 입점해 있으며, 4개의 레스토랑에서는 신선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 ‘시라하마 키 누들(Shirahama Key Noodle)’에서는 와카야마산 참돔을 듬뿍 넣은 도미 라멘을 맛볼 수 있다. 도미에 고소한 참깨를 조합해서 휘핑한 수프로 만든 도미 라멘은 부드럽고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특별한 라멘을 원한다면 도미를 반죽한 다진 고기와 감자튀김, 샐러드가 올려진 국물 없는 도미 라멘이나 이세에비(닭새우) 라멘도 도전해볼 것.
seamore-residence.com
KOBE
세계 최고의 조식

와카야마현에서 오사카만을 따라 북쪽으로 2시간여 달려 효고현 고베시에 도착했다. 일본 최초 개항 도시 중 하나로, 1868년 무역을 위해 개항한 이 도시는 오랜 세월 동안 외지인을 환영해왔다. 한때 유럽 상인들의 거주지였던 유서 깊은 기타노 이진칸 거리가 아직 남아 있으며 일본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이 거주했던 지역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다양성은 미식에도 반영된다. 일찍 서양문화를 받아들여 디저트가 발달했고, 세계 각국의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이 많다. 그중에서도 프렌치가 강세다.
고베 여행을 앞두고 내가 기대했던 것은 혀로 느끼는 미각만이 아닌, 온몸으로 느끼는 우아한 감각이었다. 클래식한 공간에서 햇살을 받으며 고급스러운 식기에 담긴 아름다운 음식을 먹는 것. 기타노 이진칸 거리에 자리한 ‘기타노 호텔(Kitano Hotel)’은 그런 로망을 완벽하게 실현할 수 있는 곳이다. 멋진 공간에서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고베다운 오베르주(숙박 시설이 있는 레스토랑) 호텔, 유럽 전원 속 저택을 떠올리게 하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호텔 로비에는 모던 프렌치의 전설 베르나르 루아조(Bernard Loiseau) 셰프의 사진이 걸려 있다. 총지배인 겸 총주방장 야마구치 히로시가 이끄는 기타노 호텔은 그의 스승 베르나르 루아조에게 공식적으로 전수받은 유러피언 조식을 즐길 수 있는 곳. 이 호텔의 아침 식사는 일명 ‘세계 최고의 조식’이라는 명성을 자랑한다.

야마구치 히로시는 를레&샤토 세계요리위원회 회원이며, 일본 요리계에서도 프랑스 요리 명인으로 존경받는 셰프다. 야마구치 히로시는 라코트도르(La Côte d’Or)에서 일할 때 프랑스의 풍부한 음식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 버터 향이 나는 크루아상과 현지에서 재배한 딸기로 만든 콩피튀르를 먹었던 순간의 두근거림을 잊을 수가 없었다. 기타노 호텔의 조식에 사용하는 식재료는 고베 지역 농산물이다. 신선한 유제품과 엄선한 버터·잼을 사용하며, 직접 만든 심플하면서 재료 본연의 맛을 지닌 요리를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크루아상·팽오쇼콜라·피낭시에 등의 다양한 빵, 전통적인 맛과 향을 지닌 이치반 다시, 과일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냄비를 사용하지 않는 기법으로 완성한 생콩피튀르, 신선한 잠봉과 생햄, 저속으로 갈아 채소의 효소가 살아 있는 마시는 샐러드, 검은콩과 견과류를 넣은 타피오카 오레, 선명한 노른자의 반숙란…. 엄청난 양의 음식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달걀과 크루아상부터 엄청 부드럽네요. 그런데 ‘다시’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박준우의 질문에 야마구치 셰프가 답했다. “유럽에선 ‘당’이 들어가면 에너지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일본에서는 밥, 된장, 생선구이를 먹어야 몸이 따뜻해지죠. 처음엔 이 메뉴가 일본인들에겐 조금 차갑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본인들에게 익숙한 몸을 따뜻하게 하면서 감칠맛이 나는 다시마와 가쓰오로 만든 다시를 코스에 넣었죠.”


프랑스에서 시작됐지만 동양인에게 맞게 재료에도, 만드는 방식도 변화를 줬다. “동양인은 입이 작아 타액도 적게 나오기 때문에 피낭시에를 먹다 보면 음료를 마시게 돼요. 그래서 피낭시에를 찍어 먹을 수 있게 콩고물로 시럽도 만들었죠.” 식감에도 신경 썼다. 씹을 때의 질감 외에 소리도 식욕을 자극한다. 타피오카를 씹을 때의 질감, 견과류와 시리얼을 씹는 소리는 계속해서 더 먹고 싶게 만든다. “‘세계 최고의 조식’이란 타이틀에 대해서 스스로 자문을 많이 합니다. 오베르주 호텔에서 조식은 소중한 사람과 함께 식사하고, 술도 마시고, 숙박도 한 행복한 시간의 마무리를 의미합니다. 기타노 호텔의 조식이 저마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00년부터 시작된 기타노 호텔의 메뉴 구성은 25년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 변함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계속 변화해왔다. 손님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손님에게 다가간 음식으로.
www.kobe-kitanohotel.co.jp
고베다운 클래식함


고베다운 클래식함은 무엇일까? 품격 있는 장소에서 클래식한 프렌치를 즐기고 싶다면? 간사이 지방을 대표하는 건축가 시다라 사다오가 건축한 니시오 저택에 자리 잡은 ‘루안(Le Un)’은 고베 스타일의 극진한 환대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다이쇼(大正) 시대의 성공한 무역상 니시오 루이조 씨가 지은 저택은 영빈관으로도 사용됐는데, 당시 고베 사교계에선 니시오 저택에 초대받는 것이 신분의 표시였다고. 3000평의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효고현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저택에 들어서자 특별한 연회에 초대받은 것처럼 설레었다. 다이쇼 시대의 오래된 나무로 된 창 밖 풍경마저도 고전적 서정을 불러일으킨다.
기타노 호텔, 포토피아 호텔 등 호텔 뷔페 연회에서만 20년 경력을 쌓은 구보타 쓰요시 셰프는 6년째 루안을 이끌고 있다. 세토 내해의 신선한 해산물과 아침에 딴 싱그러운 채소,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베규 등 효고현의 식재료를 사용한 프렌치 요리를 제공한다.

볕이 좋은 창가에 자리 잡은 박준우 셰프는 와인 리스트를 먼저 본 후 평소에 즐겨 마시던 샤블리를 한 병 주문했다. 무·채소와 함께 나온 훈제 방어와 방어 리예트, 모시조개가 들어간 백된장으로 맛을 낸 도미 수프, 하루 전 와인에 매리네이트한 닭 다릿살과 효고현의 채소, 이와지 소금을 넣은 캐러멜로 만든 타르트와 피스타치오, 오렌지 콩포트까지, 런치 코스로 준비된 음식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즐겼다. 구보타 쓰요시 셰프의 음식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효고현과 면한 세토 내해는 여러 개의 강이 모이는 곳이라 플랑크톤이 풍부해서 ‘식재료의 보물 창고’라고 불립니다. 방어, 도미, 갯장어, 문어가 특히 맛있죠. 프렌치 요리에선 양파가 중요한데요, 고베의 양파는 엄청 달기로 유명합니다. 클래식한 프렌치 요리지만 와사비나 유자 등을 가미해 일본인에게 익숙한 맛을 내려고 해요.”
메뉴는 3개월에 한 번씩 바뀌고, 그 기간 안에 두세 번 오는 손님을 위해선 메뉴를 변경해 주기도 한다. 조금 사치스러운 점심 식사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하프 코스 요리는 언제나 인기라 예약은 필수다. “루안은 특별한 날, 기념일에 많이 찾아오세요. 출발하기 전부터 어떤 옷을 입고 갈지, 분위기가 어떨지 기대를 품고 오시죠. 마치 여행할 때처럼요. 그렇게 여행하는 느낌으로 식사가 끝날 때까지 이 시간을 즐기면 좋겠어요.” 구보타 쓰요시 셰프의 말처럼, 루안에서의 시간은 짧지만 특별한 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www.vizcaya.jp/restaurant/
자연을 요리하다

복잡한 도심을 지나 차로 30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롯코산 북쪽 한가로운 시골 마을에 다다른다. 산과 계단식 논에 둘러싸인 아담하고 모던한 건물에서 셰프가 나와 취재진을 맞이한다. 고베 쉐라톤 호텔과 기타노 호텔을 거쳐 신사이바시 뤼미에르에서 총지배인 겸 총괄 조리 책임자를 지낸 요시다 시게오 셰프가 하타초라는 이 작은 마을에서 ‘세탄(Settan)’을 운영한 지도 5년째에 접어든다. 세탄은 프랑스에서 <미슐랭 가이드>와 호각지세를 이루는 식당 평가서 <고 에 미요(Gault&Millau) 2024>에 오른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요시다 셰프는 이곳에서 쌀농사를 짓는다. 레스토랑 앞 논에서 직접 모내기도 하고 수확도 한다.
“2000년 무렵 밀밭과 물레방아 창고가 있는 프랑스 부르고뉴 시골마을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일했는데 참 평화로웠어요. 일본에서 이런 편안한 풍경을 어디 가면 누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직접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여러 해 동안 찾아다녔죠.”
다행히 고향과 가까운 곳에서 지금의 자리를 찾았다. 수확한 쌀은 요리에 사용한다. 이를테면 죽순이나 숭어알로 만든 카라스미를 넣은 리소토 같은 메뉴다. 벼를 수확한 후 이삭은 손님이 함께 볼 수 있도록 야외 정원에서 직접 요리할 때 사용한다.

“산에서 버섯과 산나물도 직접 땁니다. 차로 30분 이내 거리에서만 공수할 수 있는 식재료를 사용하고 있어요. 은어, 옥수수, 가지, 양파가 특히 질이 좋아요. 지역에서 나는 재료만 사용하는 것을 취지로 하기 때문에 메뉴는 한정적이지만 현지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죠.”
그가 준비해준 음식엔 롯코의 봄이 담겨 있었다. 고베 아카시 해안에서 잡은 보리멸에 레몬, 유채 오일, 차조기 오일을 뿌리고 유채와 초록색 채소로 만든 소스를 올린 접시는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이어서 화려한 튀일(Tuile)을 얹은 티라미수를 맛보았다. 플레이팅은 아름답고 재료는 단순하지만 맛은 섬세했다. 오후 5시, 기울어진 해가 부드러운 빛을 만들어내는 시각, 요시다 셰프는 박준우 셰프를 논으로 안내했다. 추수를 끝내고 휴식기에 접어들었지만 몇몇 식물에서는 봄기운이 느껴졌다.
“세탄은 단골손님이 많아요. 손님들과 함께 모내기 체험도 하고, 정원에서 생선이나 버섯 등을 구워 먹기도 하죠. 봄철엔 양파를 구우면 좋겠네요.”
음식을 먹는 것에서 나아가 손님들과 함께 계절의 향과 땅의 기운을 느끼고 풍경도 감상하며 자연을 만끽하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그렇게 세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느긋하게 흐르고 있었다.
settan-ko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