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igama & Galle
스리랑카의 바다의 새 주인
인도양의 눈부신 바다를 품은 남쪽의 해양도시, 웰리가마와 갈레엔 이제 장대 위에 앉은 어부 대신 서퍼가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가고 있다.
선디 Sundy
서퍼, 25세
언제부터 서핑을 시작했어요?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웰리가마에 살면 자연스럽게 서핑을 하게 돼 요. 바다에 나가면 늘 서퍼들이 있으니까요. 서핑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8년 전이에요. 여자친구에게 서핑 보드를 선물 받았거든요. 그 순간이 제 인생을 바꾼 매직 포인트예요.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파도의 움직임을 따르죠. 보통 새벽 5시 반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나요. 그때 파도가 타기 좋거든요. 서핑 강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진 강습을 해요. 더 이상 서핑을 할 수 없을 만큼 어두워지면 제 일과도 끝나죠. 서핑 포인트로서 웰리가마의 매력은 뭔가요? 누구든 서핑을 쉽게 즐길 수 있어요. 말굽을 닮은 웰리가마만의 아치형 지형 덕에 파도의 결이 곱고 고르거든요. 날씨랑 수온도 따뜻해서 수트를 입지 않고 가벼운 차림으로 탈 수 있고요. 무엇보다 다른 서핑 데스티네이션에 비해 비용이 저렴해요. 서퍼들이 만든 카페나 레스토랑, 바, 게스트하우스 같은 공간도 꽤 쿨하고요. 웰리가마에서 스리랑카의 서핑 문화를 즐겨보세요.
스리랑카 남부의 해변도시 웰리가마를 상징하는 장면의 주인공은 바다 위, 가냘픈 장대에 곡예꾼처럼 앉아 물고기를 낚는 스틸트 피셔맨(Stilt Fisherman)이었다. 지금 스리랑카에서 이런 풍경을 발견했다면 십중팔구는 관광객에게 팁을 받고 연출한 장면이다. 어부가 사라진 바다는 서퍼들이 채우고 있다. 구글맵에 웰리가마 비치를 찍고 달리다 보면 해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서핑스쿨이 시야에 들어온다. 출발 전 가이드에게 “나 오늘 서퍼 꼭 만나야 해. 무조건! 갔는데 아무도 없는 건 아니겠지?” 수선을 떨었던 것이 무색하게, 온갖 나라에서 모여든 서퍼들과 무수한 서프숍이 해변과 바다를 점령하고 있었다. 선디와 대화를 마친 후 서너 곳의 서핑스쿨 직원들이 “보드도, 수트도, 샤워장도 다 있어. 서핑 한번 하고 가.”라는 말과 함께 던지는 유혹을 겨우 뿌리친 후 그가 추천해준 웰리가마 서퍼들의 아지트로 향한다. 스리랑카 서핑 챔피언이 운영하는 카페 안엔 그 장본인이 떡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락시타 마두산(Lakshitha Madusan)이라는 본명 대신 ‘럭키’로 불리는 그의 나이는 겨우 19살. 11살에 삼촌을 따라 처음 서핑을 시작했고, 내셔널 서핑대회에서 우승해 국가대표 선수가 됐다. 그의 서가에서 발견한 책에 따르면 이 나라에 처음 ‘서핑 트립’을 온 사람은 미국의 서프 챔피언 러스티 밀러(Rusty Miller)이며 무려 1964년에 일어난 일이다. 1973년 호주의 서퍼 데이브 피셔(Dave Fisher)와 브루스 웰러(Bruce Weller)가 히카두와(Hikkaduwa)에서 환상적인 파도에 반해 정착한 후 스리랑카 남부 해안은 질 좋은 파도와 한적한 바다를 갈구하는 유럽과 호주 서퍼들이 모여드는 목적지로 부상했다. 로컬들의 서핑 시대는 1993년 첫 서 핑대회가 개최된 히카두와에서 열렸다. 이후 20년 동안 웰리가마, 히카두와, 카발라나(Kabalana) 같은 해변을 중심으로 ‘스리랑카 서핑 신’이라고 부를 만한 문화와 변화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국내 서퍼들도 발리의 바글대는 해변, 비용과 거리가 부담스러운 하와이나 호주를 피해 웰리가마를 새로운 서핑 여행지로 주목하고 있다. 서핑이 취미가 아닌 이들은 돌고래를 찾아 나서는 배 위에 오르거나 아름다운 산호로 유명한 우나와투나(Unawatuna) 해변에서 해수욕과 다이빙을 즐긴다. 바다 안에서 실컷 시간을 보낸 후엔 스리랑카에서 가장 유명한 휴양도시, 갈레의 호화로운 리조트에 짐을 풀 차례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지였던 흔적이 건축과 유적으로 고스란히 남은 갈레 포트(Galle Fort) 지구는 시간을 잊은 채 배회하기 좋은 동네. ‘트로피컬 모더니즘’이라는 건축 사조의 대가 제프리 바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제트윙 라이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세련된 부티크와 레스토랑이 늘어선 페들러 스트리트(Pedler St.)를 산책하다가 동행에게 뜬금없는 다짐을 통보했다. “다음엔 웰리가마에 한 달 정도 지낼 수 있는 집을 얻을 거야. 그리고 주말마다 갈레에 놀러 와야지.”
Yala National Park
야생의 일상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생물 다양성이 높은 나라. 인간의 손길이 ‘덜’ 닿은 스리랑카 대자연의 야성을 얄라국립공원에서 목도했다.
하시타 마노즈 Hasitha Manoj
국립공원 레인저, 26세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나요? 얄라국립공원을 지키죠. 어떻게요? 기본적으로 이틀에 한 번 공원을 정찰 해요. 밀렵꾼이 많거든요. 그리고 아프거나 부상당한 동물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즉시 출동해 구조하고요. 출퇴근이 따로 없겠네요? 정해진 시간이 있긴 하지만 사실 24시간 동안 일하고 있다고 봐야죠. 그래서 센터 뒤 숙소에서 생활하고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야생이 일터잖아요. 이곳에서 겪은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뭐예요? 음. 표범, 곰을 본 것? 그게 다인가요? 더 드라마틱한 순간은 없어요? 야생동물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는 건 그저 제 ‘일’일 뿐이에요. 물론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상이기도 하죠. 보람을 느낀 순간은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밀렵꾼이 정말 많아요. 그들은 식용을 목적으로 혹은 가죽을 벗겨내 상품으로 만들어 팔기 위해 표범이나 사슴 같은 동물을 마구잡이로 사냥합니다. 실제로 한 달에 약 10명 정도의 밀렵꾼이 체포되고 있어요. 이곳에서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할까요? 코끼리나 표범 같은 큰 동물을 보는 것도 좋지만 숲, 늪, 석호 등지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얄라국립공원에서만 볼 수 있는 종이거나 멸종위기종, 희귀종이 정 말 많거든요. 작은 생명체라고 해서 덜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3 스리랑카의 생물다양성을 잘 아는 전문 가이드가 포함된 사파리 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하면 더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다.
얄라국립공원의 입장 시각은 아침 6시부터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짐을 챙긴 후 4시에는 출발해야 야생동물이 땡볕을 피해 죄다 숨어들기 전에 공원에 입성할 수 있다. 승합차에서 오프로드용 지프로 옮겨 탄 순간엔 야생표범과 그 유명한 스리랑칸 코끼리를 곧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배꼽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물소와 사슴과 야생멧돼지, 당최 이름을 알아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새들만 만나다보니 기대감이 조금 식은 게 사실이다. 물론 스리랑카는 (과장을 조금 섞자면) 코끼리가 길 고양이만큼 빈번히 출현하는 나라이므로 나무보다 키 큰 수컷코끼리 한 마리를 멀찍이에서, 그리고 사파리 투어 지프들이 제 앞에서 긴 줄을 이루든가 말든가 초연하게 갈 길 가던 아기코끼리 한 마리를 가까이에서 만나긴 했다. “수십 마리가 무리를 이룬 채 드넓은 초원을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을 봤다”는 문장을 내 경험으로 만들려면 계획은 보기좋게 실패. 한국에 돌아와 “거기 어땠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답했다. “정말 평화롭더라. 스리랑카에서 사파리는 명상이나 마찬가지더라고.” 그리고 며칠 전, 이 나라의 야생을 얕잡아 본 나의 교만을 깊이 후회했다. 2023년 12월 14일, BBC가 보도한 한 영상에서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코끼리가 미식축구 선수의 기세로 지프에 돌진하는 장면, 창문을 가뿐히 깬 후 그 굵고 긴 코를 쑤셔 넣어 차 안을 거칠게 헤집던 모습, 필사적으로 내쫓아도 다시 끈질기게 따라붙는 근성을 봤다. 이를 보도하던 앵커가 “습격을 받은 호주 출신의 카순 바스나야케가 기지를 발휘해 먹다 남긴 샌드위치와 감자튀김을 창문 바깥으로 던진 덕에 현장을 빠져나왔으며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고 말한 대목에선 등골이 서늘했다. 그 샌드위치와 감자튀김이 담긴 도시락은 보통 전날 머문 호텔에서 사파리 투어를 위해 새벽에 일찍 나가는 투숙객에게 싸주는 거고, 그게 나한테도 있었기 때문이다.
야생은 역시 야생이다. 얄라국립공원 공식 홈페이지엔 이런 소개글이 걸려 있다. “1900년엔 야생동물보호구역, 1938년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얄라엔 44종의 포유류와 215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표범, 코끼리, 나무늘보곰, 삼바, 자칼, 점박이여우, 공작새, 악어 등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서식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판테라 파두스 코티야(Panthera Pardus Kotiya)로 불리는 스리랑카 표범은 얄라국립공원의 상징과도 같은 동물. 사파리 투어 중간 쯤 하늘에서 현금 다발이라도 떨어진 양 사방에서 달려오는 차들 사이에 끼어 있었는데 필드 가이드가 “저 숲 안에서 누가 표범을 봤다더라” 한 말을 들은 것도 표범과의 만남에 끼울 수 있을까? 크고 사나운 짐승과의 조우는 불발됐지만 나의 감흥을 자극한 건 예상 밖의 장면들이다. 난생 처음 맡아보는 이름 모를 짐승의 몸 냄새, 코끼리가 갓 싼 똥에서 피어오르는 뜨끈한 김, 새벽부터 부지런히 반신욕하는 물소와 나무 그늘 아래에서 꾸벅꾸벅 조는 사슴의 게으른 자태. 야생의 지극히 사소한 일상 앞에서 심박은 조용했지만 마음은 호수처럼 일렁였다.
Nuwara Eliya
홍차의 땅으로
전 세계 홍차의 심장부, 힐 컨트리의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한 누와라엘리야에서 실론티의 명성을 만드는 이들을 만났다.
산지와 위라싱헤 Sanjeewa Weerasinghe
필드 마스터, 37세
어떤 일을 하나요? 차 밭과 관련된 일을 총괄해요. 매일 아침 피커(찻잎 따는 농부)들에게 ‘오늘은 어디에서 수확할지’ 알려주는 것부터 일과가 시작되죠. 차나무와 토양의 상태를 살피며 차의 품질을 관리 하는 것도 제 일 중 하나고요. 티 테이스팅, 팩토리 관리도 합니다. ‘모든 일’을 하시네요.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자연스럽게 흘러왔어요. 누와라엘리야에서 나고 자랐고 차를 좋아해요. 답답한 사무실에서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보다 매일이 새로운 일의 연속인 자연 속에서 일하고 싶었고요. 지난 15년 동안 피커부터 시작해 차 농부가 하는 모든 과정을 다 경험했어요. 그래야 이 자리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거든요. 그럼 당신이 누와라엘리야 차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겠네요. 해발 고도 1800m 이상에서 자라는 차를 ‘하이 그로운 티(High Grown Tea)’라고 해요. 고지대에선 차가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깊고 은은한 맛을 냅니다. 그래서 ‘최상급 홍차’의 대명사로 불리죠. 그 최상급 차를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주세요. 찻잎에 뜨거운 물을 붓고 패키지에 써 있는 시간만큼 우려내세요. 있는 그대로 마시라는 얘기예요. 아무것도 더하거나 빼거나 섞지 말고요. ‘최상급’이니까요.
3 힐 컨트리 풍경의 백미, 누와라엘리야의 차 밭.
스위스에선 가는 곳, 만나는 사람마다 초콜릿을 준다. 스리랑카에선 홍차다. 여정 내내 우유를 넣은 홍차, 과일 향을 입힌 홍차, 사탕수수로 만든 캔디 ‘재거리’를 베어문 채 마시는 홍차, 가루 홍차, 잎 홍차 등 온갖 홍차로 속을 적시다 보면 자연스럽게 산지가 궁금해진다. 그런 여행자들이 일제히 모여드는 곳이 힐 컨트리(Hill Country)다. 스리랑카 중부 내륙, 스리랑카 5대 홍차 산지. 그중 누와라엘리야를 선택한 건 들춰본 가이드북마다 이 곳에 ‘최상급’이란 수식어를 붙였기 때문이다. “1850년 스코틀랜드인 제임스 테일러가 스리랑카에서 처음으로 차를 재배했으며 연간 30만 톤 이상의 홍차를 전 세계로 수출 하는 생산국” 같은 역사보다 차 맛, 차 밭, 차를 재배하는 사람, 차 산지의 일상과 문화가 궁금했다. 고작 하룻밤 머물며 그걸 다 알 수는 없으므로 ‘실론티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체험관에 들러 공장 견학, 티 테이스팅, 기념품 쇼핑으로 이어지는 관광객 루틴을 따르기로 한다. 우리의 행선지는 ‘담로(Damro)’에서 운영하는 라부켈리 티 팩토리(Labookellie Tea Factory.) 영국의 맥우드(Mackwoods)가 전신으로 지금은 스리랑카 기업이 운영하는 로컬 브랜드다. 차의 등급과 종류 안내부터 시작하는 티 팩토리 투어의 여정은 공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데크로 이어진다. 팩토리 가이드가 그날 수확한 찻잎을 골라내서 덖고, 갈고, 산화하는 과정과 ‘왜 우리 브랜드 차의 품질이 월등한지’를 설명하는 동안 나의 시선은 각자의 작업대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노동자들에게 꽂혔다. 저들은 어디에서 무슨 차를 마실까? 한 달에 얼마를 벌고, 주말엔 뭘 하고 놀까? 그 답을 알고 싶다면 언덕 아래로 내려오면 된다.
누와라엘리야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 이 펼쳐지는 시내엔 공원, 호수, 시장, 우체국 등 여느 마을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 있다. 빅토리아파크(Victoria Park)는 1897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만든 공원이다. 그 맞은편에선 1894년에 문 연,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된 누와라엘리야 우체국이 여전히 제 역할을 한다.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면 영국식 대저택을 개축한 호텔들이 펼쳐진 언덕과 그레고리 호수(Lake Gregory)가 나타난다. 이 장면들을 한 폭에 담으면 누와라엘리야가 ‘리틀 잉글랜드’로 불리는 까닭이 십분 이해된다. 시가지는 유럽의 소도시 분위기를 띠지만 거리엔 잘 차려 입고 소풍과 데이트, 산책과 운동을 나선 스리랑카 사람들이 넘친다. 그들, 차 산지에 사는 로컬이 마시는 홍차는 여행자를 타깃으로 한 ‘애프터눈 티 세트’나 가지 끝의 새순을 덖고 말리고 발효한 최고급 FOP(Flowery Orange Pekoe) 홍차와 거리가 멀다. “우리는 주로 더스트(Dust)로 불리는 D등급 가루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어 먹어요. 재거리랑 같이 즐기기도 하고요.” 누와라엘리야의 고급 호텔에서, 담로 티 팩토리의 테이스팅 룸에서, 그리고 가이드가 데려간 기사 식당에서 거의 모든 등급의 차를 다 마셔봤다. FOP든 D든 누와라엘리야의 차 맛은 모두 아름다웠다. 힐 컨트리의 질 좋은 흙, 만개한 꽃, 맑고 촉촉한 공기가 만든 맛이니까.
Kandy
스리랑카를 지킨 도시
싱할라 왕조의 마지막 수도에서 실론의 국민들은 침략자에 맞서 저항했다. 캔디는 오늘날 스리랑카를 있게 한 정신적 지주다.
라훌라 히미 Rahula Himi
승려, 30세
불치사에서 수행하는 스님이신가요? 아뇨. 저는 콜롬보에서 왔어요. 캔디는 저의 고향이고요. 어머니를 뵈러 내려왔는데, 항상 불치사에 먼저 들른 후 집으로 갑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스님이 된 이유를 여쭤도 될까요? 저는 원래 캔디안 댄스라는 전통춤을 추는 무용수였어요. 캔디에서 가장 유명한 행사인 ‘에살라 페라헤라(Esala Perahera)’는 불치사에 보관된 석가모니의 치아 사리에 경의를 표하는 축제인데요. 매년 이 축제가 열릴 때 불치사에서 공연을 하면서 불교와 승려의 삶에 관심이 깊어졌죠. 캔디안 댄스의 전통을 잇는 무용수라는 자부심도 있었지만, 불교라는 세계에 좀 더 깊이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고 때마침 기회가 와서 승려가 됐습니다.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불치사는 굉장히 의미 깊은 장소란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게도, 이 나라 사람들에게도 불치사는 온 우주에 존재하는 장소 중 가장 신성한 곳이에요. 부처님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불교도가 아니라도 인생에서 꼭 한 번 와볼 만 한 곳입니다. 석가모니의 현신으로 여겨지는 진신사리 앞에 서면 부처의 자비와 불교의 정수를 온 감각으로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캔디가 ‘스리랑카의 정신적 고향’이자 부처의 자비 아래에 자리한 성지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왔지만 여러 가지 세속적인 이유로 내 마음엔 번뇌가 넘쳤다.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서. 취재 때문에 스리랑칸 승려를 꼭 만나야 했는데, 이 나라에 머문 며칠 동안 거리에서, 사원에서 단 한 명의 스님도 마주치지 못했다. 게다가 최후의 보루로 기대했던 불치사까지 스님이 ‘살고 있는’ 절이 아니라니! 모든 걸 내려놓고 ‘그냥 이 성스러운 장소의 기운이나 누리고 가자’ 했을 때 거짓말처럼 저 멀리에서 보라색 연꽃을 든 히미 스님이 석가모니가 보낸 흰 코끼리(불교에서 상서로움의 상징이다)처럼 저벅저벅 내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조심스럽게 청한 인터뷰는 따뜻한 환대로 돌아왔다. 싱할라어-영어-한국어라는 긴 통역의 여정을 겪으며 나누는 대화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의 또렷하게 빛나는 눈과 단단한 미소, 짧지만 따뜻한 축복의 언어를 가까이에서 접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석가모니의 사리를 운반한 코끼리까지 성스러운 존재로 기리고 사원을 세우는 불교계에서 무려 부처의 송곳니(불치) 사리가 봉안된 불치사의 지위는 인도의 보드가야(부처의 탄생지다) 다음으로 높다. 스리랑카에선 이를 국보 1호로 정하고 장관급 지위를 부여한 불치 사리 수호 책임자를 선출할 정도. ‘살아 있는 부처’를 모신 불치사의 공양 의례는 아침, 점심, 저녁에 세 차례 진행되는데 20여 명의 비구와 비구니가 엄격한 절차와 법례로 의식을 치른다.
2 불치사 옆에는 캔디 시대의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도 함께 있다.
이곳이 ‘스리 달라다 말리가와(Sri Dalada Maligawa)’라는 이름으로 캔디에 봉헌된 1592년부터 오늘날까지 국가가 침략과 약탈, 테러라는 위기를 겪을 때도 불치는 황금빛 지붕 아래, 법당 안 향실을 떠난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 그 영험한 서사를 가진 ‘부처의 송곳니’를 가까이에서 만난 경험보다 나를 더 감화시킨 건 사원 곳곳에서 만난 신자들이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참배객의 행렬에 좀처럼 집중하기 힘든 환경에도 지그시 눈을 감고 기도에 몰입한 얼굴, 평생 꿈꿔온 성소에 들어선 이들의 벅찬 눈, 어떤 존재와 순간에 자신을 완전히 던진 이의 순수한 믿음이 모여 만들어진 분위기에 순식간에 압도됐다. 보라, 분홍, 흰 연꽃이 수북이 쌓인 봉헌대 앞에서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에 약속의 손가락을 건 기독교 신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그들을 바라보는 일, 무슨 내용인진 몰라도 그 간절한 기도가 이뤄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일뿐이었다.
Colombo
도시 애호가의 놀이터
콜로니얼 시대의 근대 건축물, 온갖 종교의 예배당, 매끈한 고층 빌딩들이 그리는 마천루가 분방하게 어우러진 콜롬보는 ‘고르는 재미’가 쏠쏠한 도시다.
차마라 라시카 Chamara Rasika
티 스페셜리스트, 40세
스리랑카 사람들이 홍차를 즐기는 색다른 방식을 듣고 싶어요. 어느 지역에선 고수나 생강 같은 향신료를 섞어 마시던데요? 딱 정해진 방식이라든가, 맞고 틀린 건 없어요. 마시는 사람의 입맛을 따르는 거죠. 이 티 라운지에서 시나몬, 라임, 생강, 설탕 등을 홍차와 함께 내는 건 자신의 블렌딩 취향을 찾아보라는 의미예요. 당신이 즐기는 방식은 어떤 건가요? 과일 향이 나는 홍차, 예를 들어 얼그레이는 우유와 섞어 마시지 않아요. 시나몬은 아로마를 살리면서 향신료의 풍미를 가미해 종종 곁들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건 재거리를 한 입 베어 물고 진한 홍차를 머금는 거예요. 많은 스리랑카 사람들이 그 방식을 즐기죠. 주로 언제 차를 마셔요? 아침, 점심, 저녁이죠. 아, 저는 아내, 아이들과 퀄리티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티 타임을 가져요. 아이도 홍차를 마셔요? 그럼요. 스리랑카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홍차를 즐겨요. 단, 우유를 많이 넣죠. 우리 아이들은 파우더 밀크와 섞는 걸 좋아해요. 스리랑칸에게 ‘차’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 나라에선 상대가 차를 권할 때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친구에게 급하게 부탁 할 게 있어서 찾아갔는데 그가 “차부터 마시자”고 하면 아무리 바빠도 일단 찻자리를 갖습니다. 차로 환대하고, 유대감을 다지고, 여유를 찾는 거죠. 그래서 스리랑카 사람에겐 집에 차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해요. 아내가 “차가 다 떨어져가니 퇴근길에 사 와”라고 했는데 깜빡 잊기라도 하면 큰일나는 거죠.(웃음)
2 콜롬보엔 스리랑카의 커피 신을 다시 일으키는 로컬 바리스타와 그들이 만든 카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콜롬보를 스리랑카의 수도로 알고 있지만 그건 1985년, 결코 이름을 외울 수 없는 도시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의 일이다. 그래도 여전히 이 도시는 스리랑카의 경제와 무역,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지역 마다 특색이 강해서 별다른 고민이 필요 없었던 지난 여정(캔디, 누와라엘리야, 웰리 가마, 갈레 등)과 달리 콜롬보에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놀지 결정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다. 여행자들은 주로 콜롬보1로 불리는 포트 지구, 각종 도매 상점과 쇼핑몰, 시장을 품은 콜롬보 11의 페타 지구, 박물관과 갤러리, 세련된 카페 등이 모여 있는 콜롬보7의 시나몬 가든 지구로 향한다. 영국식 홍차 문화 대신 로컬의 진짜 차 문화 얘기를 들려준 차마라 라시카를 만난 곳은 콜롬보1 포트 지구의 딜마 티 라운지(Dilmah Tea Lounge). ‘역사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보존된 콜로니얼 건축물이 만드는 이국적인 풍경이 눈길을 끄는 이 거리엔 영국이 식민지 시절에 세운 근대 건축물이 몰려 있고 그 안을 카페, 레스토랑, 상점, 스튜디오 등이 빼곡하게 채운다.
스리랑카가 세계적인 차 생산지가 되기 전, 힐 컨트리의 비옥한 땅을 함께 나눠 썼던 건 커피 농장들이다. 1870년대 말, 커피나무를 고사시키는 바이러스가 돌면서 명성이 자자했던 실론의 커피 농장들은 자연스럽게 문을 닫았다.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는 공간이 트렌디한 문화가 된 지금, 콜롬보에선 커피 산지라는 유리한 조건을 십분 활용해 흥성했던 옛 커피 문화를 되찾으려는 로컬 카페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포착되고 있다. 커피의 맛향에 민감한 로컬과 여행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가장 유명해진 코피 케이드(Kopi Kade)는 안타깝게도 ‘폐업’ 표지판을 내건 상태. 콜롬보7에 둥지를 튼 카페 쿰북(CaféKumbuk)은 런던에서 유학을 마치고 콜롬보로 돌아온 오너가 문 연 공간으로 코피 케이드의 빈자리를 채우는 브랜드다. 이스트 런던과 콜롬보의 분위기를 절묘하게 섞은 이 공간은 ‘젊고 세련된 바이브’를 경험하고 싶은 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쿰북 나무 덩굴 아래 앉아 꽃향기 물씬한 스페셜티 커피,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브런치, 스리랑카산 블랙티로 만든 로컬 콤부차 등을 테이블 위에 부려놓고 오랜만에 ‘익숙한’ 시간을 보냈다.(근사한 인테리어의 카페에서 사 진 찍고 싶은 브런치로 시작하는 한가로운 주말 일과 말이다.) 더치 호스피탈(Dutch Hospital)이나 울벤달 교회(Wolvendal Church) 같은 명소를 건너뛰고 마지막 날에 이런 데서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지금 이 순간, 이 장면도 ‘콜롬보 다운 경험’이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