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뛰어넘는 튀르키예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RYU JIN
  • PHOTOGRAPHY BY Jeon jaeho
  • Supported by Turkish Airlines

시간을 뛰어넘는 튀르키예

Türkiye: An Old, New Land

시작은 이랬다. 이스탄불에선 새로운 변화를, 샨르우르파와 가지안테프에선 잘 지켜온 전통을 보여주는 것. 동서를 종횡무진하는 동안 내가 경험한 건 오래된 것을 아끼는 새 세대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옛 세대였다. 시간과 시대, 올드와 뉴, 옛날과 지금이 자유분방하게 뒤섞인 튀르키예를 만나고 돌아왔다.
  • written by RYU JIN
  • PHOTOGRAPHY BY Jeon jaeho
  • Supported by Turkish Airlines
2025년 01월 02일

발라트의 한 카페에서 질 좋은 콜롬비아 원두를 제즈베에 끓여 낸 튀르크 카흐베시(Türk Kahvesi)로 마셨다. 옛날식 달임 커피를 요즘 로스터가 갖은 기술을 부려 볶은 커피콩으로 만들면 무슨 맛일지 궁금했다. 가루가 가라앉길 기다린 후 한 모금 머금었다. 미처 내려앉지 못한 미분이 입안에서 맴돌았고, 듣던 대로 탕약처럼 진했다. 물로 입안을 헹군 후 접시에 얹어 나온 로쿰을 약이라도 되는 양 허겁지겁 집어넣었다. 젖은 흙같은 가루만 남은 빈 잔을 본 이스탄불 친구가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넨다. “커피점 봐줄까요?” 잔에 남은 무늬를 이리저리 살피던 그가 내게 해준 얘기. “여기 범선 모양이 보이는 걸 보니 앞으로 여행할 일이 더 많겠어요. 그리고 당신에게 곧 귀인이나 연인이 나타날 것 같아요.” 로쿰보다 더 달콤한 덕담을 덥석 받아든 후 궁금한 걸 물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도 커피점을 즐겨 봐요?” 당연한 걸 왜 묻냐는 얼굴. “그럼요. 친구들을 만나 커피를 마실 때마다 서로 점을 봐주는 걸요. 대부분 다 무늬를 읽을 줄 알고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커피점 봐주는 앱을 써요.” 세련된 인테리어로 최신 유행을 이끄는 카페에서 오래된 역사를 가진 전통 커피와 간식을 즐기며 앱으로 커피점을 보는 이스탄불의 MZ들. 내가 만나고 싶었던 건 ‘옛날’이 완전히 빠진 새로운 이스탄불이었지만 찾으면 찾을수록 반대의 장면들이 나타났다. 오스만 제국 시대의 빈티지 찻잔과 가구로 잔뜩 꾸민 앤티크 카페에선 10대들이 쇼츠 영상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고 이스탄불의 MZ가 가장 좋아한다는 카페 거리, 쿠즈군죽엔 낡고 오래된 건축물만 잔뜩 있었다.

옛날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샨르우르파(Şanlıurfa)와 가지안테프(Gaziantep)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5대째 전통 직물 쿠트누를 만드는 예순다섯 살의 장인은 자신이 짠 천으로 만든 예복 대신 런던의 젊은 디자이너가 쿠트누로 만든 헤어밴드와 가방을 보여주며 내게 ‘브랜딩’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가이드 하산과 함께 시장에서 카펫 만드는 장인을 찾아 헤매던 때, 우리를 지켜보던, 족히 칠순은 넘어 보이는 시장 상인이 자신의 낡은 책상에서 꺼낸 것은 꾸깃한 수첩이 아니라 최신 기종의 태블릿 PC. 그리고 그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유튜브 앱을 켜서 우리에게 보여준 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카펫 공방을 운영을 하고 있는 젊은 공예가였다.


튀르키예로 떠나기 전 나의 계획은 이스탄불에선 최신을 발견하고, 구석기의 흔적이 아직도 일상의 공간에 남아 있는 남동부의 도시에선 전통을 탐사하는 것이었다. 14세기 동안 로마, 비잔틴, 오스만 제국이라는 시대를 건너며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수도로 군림하고, 유럽과 아시아라는 두 대륙에 몸을 걸친 복잡하고 다층적인 나라를 이 단순한 이분법적 구분으로 읽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1923년 터키공화국이 건국된 이후 한 세기 동안 100만 명에서 1천600만 명으로 인구가 급증하며 메가 시티가 된 이스탄불은 ‘콘크리트 바다에 고대의 유적이 고립되는’ 급진적인 개발 시기를 지나 지금은 옛 문화와 유산, 건축을 복원하는 일에서 도시의 미래를 찾는다. 문화센터로 재개관한 20세기 초 건축물 불구르 팔라스(Bulgur Palas), 오스만 제국 최초의 은행 본사에서 갤러리로 분한 살트 갈라타(SALT Galata), 전망대와 공연장이 된 이스탄불의 가장 오래된 오스만 요새 아나돌루 히사르(Anadolu Hisarı) 등이 새 모습을 드러낸 건 2023년과 2024년의 일이다.

이스탄불의 카라쾨이에서 만난 한 아티스트에게 인기 많은 카페, 레스토랑 정보나 얻을 요량으로 “요즘 이스탄불에서 가장 새롭게 뜨는 동네가 어디야?”라고 물었을 때 되돌아온 질문이 있었다. “너한테 새로운 건 뭐야?” 그 질문 이후 나는 옛날과 새로움의 개념을 이분화하는 일을 멈췄다. 튀르키예에선 옛것과 새로운 것이 평행선을 그리지 않는다.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은 요즘 문화에서, 새로운 세대는 옛날 것에서 자신의 ‘다음’을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