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봉사의 조화
모녀 여행 크리에이터 나우쮸
엄마와의 여행은 언제 시작했나요? 처음 해외여행을 함께 다녀온 건 11년 전, 일본이었어요. 당시엔 길 한복판에서 소리 질러대며 싸우기도 했지만, 이젠 눈빛만 봐도 마음이 읽히는 여행 메이트가 됐죠. 지금까지 17개국 45개 도시를 함께 다녀왔어요. 유튜브 <양띠메이트>를 통해 모녀 여행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있어요. 몇 해 전부터는 캄보디아로 봉사 여행도 떠나고 있고요. 캄보디아 봉사 여행을 가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18년, 엄마와 씨엠립(Siem Reap)에 앙코르와트를 보러 갔는데 당시 가이드가 “많은 한국인이 씨엠립에서 봉사활동을 한다”고 말했어요. 사원 앞에서 구걸하던 아이들이 눈에 밟히던 우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어디서 봉사활동을 하면 되는지 물었고, 그게 시작이었어요. 어떤 봉사활동을 하나요? 여러 지역의 가정을 방문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예체능 수업을 하거나 우물이 없는 곳에 우물을 파주기도 해요. 캄보디아 아이들은 평생 사진을 한두 번밖에 못 찍는다고 해요. 그 얘기를 듣고 아이들 사진과 가족사진을 찍어 인화하는 봉사도 했는데 정말 좋아하는 모습에 뿌듯했어요. 기억에 남은 봉사활동은요? 어느 날 가정방문 봉사를 갔는데 한 아주머니가 맨발로 계셨어요. 엄마는 ‘이분도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일 텐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안 좋으셨대요. 다음 날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지만, 엄마는 그 발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고 새벽시장에서 신발을 사주셨어요. 그 이후로 두 분은 해마다 만나는 친구가 됐어요. 엄마와의 여행을 앞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해외 여행지와 숙소는요? 동남아시아요. 비용도 저렴하고 비행시간도 적당해요. 무이네, 사파, 발리 같은 친자연적인 장소에 가보세요. 저희는 발리 우붓의 ‘코마네카 앳 비스마’에 묵은 적이 있는데, 정글 속에 있는 풀 빌라 숙소라 야생을 더 생생히 느낄 수 있었어요. 음식도 잘 맞았고요.
엄마의 제2 고향은 한국
저널리스트 라파엘 라시드
언제 처음 한국에 왔나요? 2006년에 배낭여행으로 첫발을 디뎠어요. 지금과는 아주 달랐죠. 당시에는 게스트 하우스가 종로3가에 몇 개밖에 없었고, 부산에는 겨우 한 곳뿐이었어요. 그것도 개인 아파트에 있는 데다가 영어도 거의 통하지 않았고요. 지금은 모든 안내문이 다국어로 쓰여 있고 모바일 앱도 영어로 지원되며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안전해요. 한국에 산 지는 13년이 되었어요. 엄마의 첫 한국 여행은 어땠나요?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던 10년 전 엄마가 처음 한국에 왔어요. 비 내리는 늦은 밤에 도착하셨죠. 학교 근처 삼계탕집에 갔는데 처음 나온 반찬이 번데기였어요. 저도 놀랐는데 엄마는 더 충격을 받은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곧 유쾌하게 웃으셨죠. 엄마는 한국 음식과 문화에 금방 푹 빠지셨어요. 지금은 한국이 제2의 고향 같다고 하세요. 그간 엄마와 어디를 다녀왔나요? 서울 곳곳은 물론 부산, 경주, 울릉도, 속초, 설악산, 삼척 등 다양한 곳을 다녔어요. 적어도 2년에 한 번씩은 오셔서 저와 여행을 다니죠. 모든 곳을 다 좋아하셨지만, 아무래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서울에 애정이 깊은 것 같아요. 인사동을 갈 때마다 자개 상자 같은 수공예품을 구경하세요. 창덕궁과 후원도 좋아하시고요. 성북동의 한옥 찻집에 계속 다시 가고 싶어 하고, 광장시장에서 마약김밥이나 빈대떡을 즐겨 드시죠. 국립중앙박물관이 제일 좋아하는 박물관이라며 그중에서도 금동 반가사유상 등 불교 조각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어요. 또 서울을 벗어나면 그 지역 사람들의 따뜻한 인심에 항상 감동하세요. 마지막으로 방문하신 건 2022년 9월인데, 요즘 다시 오고 싶단 말을 자주 하세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인가요? 많은 곳이 생각나지만, 찜질방을 꼽고 싶어요. 서양에는 누드 비치 문화가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누드에 대해 수줍어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찜질방에 가자고 했을 때 엄마는 조금 망설였어요. 하지만 한번 가보곤 푹 빠지셨어요. 이젠 제가 로비에서 엄마를 기다릴 정도죠. 최근엔 이대 인근 찜질방에 갔는데, 그곳에선 군고구마를 구워 먹거나 야외에서 자연을 즐길 수 있었어요. 아이처럼 좋아하셨죠. 다음번엔 어디를 갈 계획인가요? 아직 제주도에 함께 가본 적이 없어서 꼭 가고 싶어요. 전 친구들과 여러 번 가봤고 사진도 보내드렸는데, 엄마가 “다음에는 꼭 같이 가자”고 하셨어요. 맛있는 고기국수도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한국을 찾는 외국인 모녀 혹은 모자가 딱 한 곳을 가야 한다면요? 울릉도를 추천하고 싶어요. 너무나 아름다운 그 섬이 아직도 생생해요.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들더라고요. 바다 색깔이 정말 곱고 전체적으로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예요. 다만 배를 타고 가야 해서 뱃멀미를 할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엄마가 여행을 기억하는 방법
<보그> 웹 에디터 이소미
엄마와 언제 처음 여행했나요? 제가 독립한 2013년이었어요. 엄마에게 등짝을 맞는 게 일과 중 하나였던 제가 독립 후 비로소 엄마의 빈자리를 느꼈거든요. 더 이상 엄마와 일상을 보낼 일이 없다는 걸 깨닫자 마음이 허해져서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죠. 첫 여행지는 도쿄였고 이후로 프랑스, 오키나와, 대만, 벨기에, 네덜란드, 발리 등을 다녀왔어요. 국내든 해외든 1년에 한 번 이상 꼭 가는 편이에요. 여행을 계속하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2017년 엄마의 첫 유럽 여행으로 같이 네덜란드를 다녀왔어요. 열흘간의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 날, 무얼 할지 고민하다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가서 렘브란트의 <야경>을 한 번 더 보기로 했어요. 여행 첫날에 엄마가 그 그림을 보고 유난히 감동했거든요. 이후 틈날 때마다 이야기할 정도였으니까요. 캔버스에 조명이 달린 것도 아닌데 그림에서 빛이 났다며 신기해했어요. 그렇게 우리 둘은 다시 렘브란트의 <야경> 앞에 섰어요. 그런데 처음처럼 좋아할 거란 예상과 달리 엄마의 반응은 차분했어요. 감상 내내 말 한마디 없으셨죠. 미술관에서 나와 엄마에게 괜찮냐고 물었어요. 엄마는 잠시 주저하더니 렘브란트의 <야경>을 감상하는 게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이상해져서 그랬대요. 그러면서 대뜸 “여행이 이렇게 재미있는 걸 이제 알아서 너무 아쉽다”고 했어요. 복잡한 감정이 들었죠. 엄마와 여행을 자주 다녀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였어요. 모녀가 가장 좋아했던 여행지는요? 파리와 암스테르담요. 저는 여행 계획을 잘 짜는 편도 아니고,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요. 엄마도 랜드마크를 도장깨기 하는 소위 ‘빡센 관광’을 즐기지 않아요. 두 도시에선 제 여행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고도 엄마와 순탄하게 여행할 수 있었어요. 교통이 편리하다는 점도 한몫했죠. 엄마와의 여행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는 팁이 있나요? 필름 카메라를 각자 따로 사용해보세요. 서로뿐만 아니라 사물과 풍경을 담는 거예요. 저희는 여행에서 돌아와 서로의 사진을 바꿔 보며 한 번 더 그 여행을 곱씹어요. 둘만의 의식 같은 거죠. 여행이 더 애틋하게 기억되는 건 물론, 같은 공간에서 서로가 봤던 다른 시선도 알아챌 수 있어요.
새로운 여행 메이트
유튜버 여행자메이
엄마와 여행하게 된 사연이 궁금해요. 오래전 엄마와 약속했어요. 제가 여행 유튜버를 하며 다녀온 여행지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을 당신의 환갑에 데려가겠다고요. 엄마는 약속을 손꼽아 기다린 모양이에요. 2020년, 엄마가 환갑을 맞았을 때 저는 별다른 고민 없이 최고의 여행지로 스위스를 꼽았어요. 동네 뒷산부터 국내 명산을 빠짐없이 다녀온 엄마는 소녀처럼 좋아하셨죠. 스위스에서 어떤 여행을 했나요? 엄마를 위한 하이킹을 했어요. 가장 고심했던 것은 ‘어떤 코스를 걸을까’였어요. 스위스의 하이킹은 다양하기로 유명한데요. 얼마나 많은지 코스 길이를 다 합치면 지구 한 바퀴 반이라고 해요. 웬만한 코스는 시시해하는 엄마에게 15.8km, 약 8시간짜리를 제안했어요. ‘융프라우 62번 하이킹’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피르스트 전망대부터 바흐알프제 호수를 거쳐 쉬니케플라테까지 걷는 종주길이죠. 장거리 코스인 데다가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해 대부분의 여행자는 잘 가지 않아요. 확실히 중후반부터는 저도 엄마도 체력이 많이 떨어졌어요. 그때 파울호른 전망대 구간을 패스하면 30분 이상을 줄일 수 있어서 엄마에게 물었죠. “엄마, 힘들면 이 구간 패스하고 옆에 평지로 가면 돼. 평지로 갈까?” 하지만 엄마는 절 쳐다보지도 않고 파울호른 전망대를 향해 손짓하며 말했어요. “가보자.” 그 뒷모습이 얼마나 멋있었다고요. 여행 유튜버로서 대부분 혼자 다녔는데, 엄마와의 여행은 무엇이 달랐나요? 혼자 여행할 때는 오롯이 제 감정에만 집중하면 그만이었는데, 엄마와 함께하면서 계속해서 엄마의 감정을 살피는 저를 발견했어요. 엄마의 만족도가 곧 저의 만족도가 되는 신기한 경험이었죠. 저에게는 그저 적당히 좋은 곳이라도 엄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행복해지고, 그곳에 대한 기억도 좋아졌어요. 엄마와의 여행을 준비할 때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할까요? 우선순위를 엄마에게 두라고 말하고 싶어요. 스위스 여행 당시 종주길을 다 걷고 로마로 넘어갔어요. 사실 코스에 로마를 슬쩍 끼워 넣었던 것은 전적으로 제 취향이었어요. 유적지를 거닐었던 기억이 너무도 낭만적이어서 엄마와 같이 느껴보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엄마는 값비싸고 인기 많은 로마 레스토랑에 데려갔을 때보다 융프라우의 거친 비탈길 오르는 걸 더 좋아하셨죠. 아무리 완벽한 일정도 엄마가 즐겁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러니 엄마와의 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지도를 펼치기 전에 엄마의 취향을 먼저 물어보세요. 엄마는 뭘 좋아하는지, 어떨 때 행복한지를요.
뒤늦게 알게 된 엄마의 취향
<더갤러리아> 디지털 에디터 정예진
엄마와 해외여행을 자주 하나요? 제가 어릴 적부터 엄마는 항상 바쁘셨어요. 그래서 아빠와 더 많이 여행을 다녔죠. 엄마랑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심한 건, 2018년에 갑자기 생긴 엄마의 짧은 휴가 덕분이었어요. 즉흥적이고 모험적인 여행을 좋아하는 저와 달리 엄마는 철두철미 계획적인 성향이라 떠나기 훨씬 전부터 짐을 싸고 기다리셨죠. 목적지는 어디였나요? 일본 교토요. 유럽이나 북미로 떠나기엔 시간이 부족했고, 청결하면서도 훌륭한 음식을 즐기기에 일본만 한 곳이 없으니까요. 첫 여행을 앞두고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오로지 두 가지, 위생과 음식이었어요. 엄마는 해외여행 경험이 많지 않아서 익숙한 환경을 선호했어요. 특히 향신료가 강한 음식이나 지저분한 환경은 견디기 힘들어했죠. 예전에 동남아시아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기념품 가게에서 산 초콜릿을 가장 맛있게 드실 정도였으니까요. 여행에서 엄마의 만족도가 궁금하네요. 엄마는 가기 전까지 숙소에 대한 걱정을 꽤 하셨어요. 여행을 주도하는 저를 그다지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막상 호텔에 들어서고 나서는 안도하셨어요. 5성급은 아니었지만, 깨끗하고 정갈한 호텔이었거든요. 3박 4일 동안 숙소에 발을 들일 때마다 가성비가 좋다며 만족해했어요. 이후에도 엄마와 여행을 다녀왔나요? 오사카를 다녀왔는데 그때도 좋아하셨어요. 의외로 엄마는, 깨끗한 잠자리와 먹거리만 해결되면 나머지는 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엄마가 좋아하는 국내 여행지와 숙소는요? 저희 둘 다 제주도를 좋아해요. 어딜 가나 아름다운 풍경, 깨끗한 도로와 맛있는 음식이 있잖아요. 가장 좋아하는 숙소는 표선의 해비치 호텔이에요. 지금이야 워낙 잘 알려졌지만 저희는 처음 생겼을 때부터 매년 다녀오는 곳이에요. 붐비지 않아 조용하게 쉴 수 있고 호텔 앞에 펼쳐지는 해변을 따라 산책하다 보면 평화로움이 뒤따라와요. 마치 제주도를 축소해놓은 것처럼 이 섬의 아름다움을 모두 살펴볼 수 있는 곳이죠. 사실 엄마는 웬만한 해외보다 이곳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엄마와 여행하면 무엇이 좋나요?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가족이라 더 편해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것도 많고요. 그러다 보니 좀 더 주도적으로 여행할 수 있어 좋아요. 서로의 취향에 맞게 여행지만 잘 정한다면, (이제야 말하지만) 여행은 엄마와 다니는 게 아빠보다 편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