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내린 축복의 땅, 알자스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LEE JIHYE
  • PHOTOGRAPHY BY jeon jaeho, SHIN IHYEON

자연이 내린 축복의 땅, 알자스

A Taste of Alsace

사는 곳도, 직업도 바꾸고 파리지앵에서 농부가 된 부부. 와인과 삶에 자연을 담는 프랑스인 도미니크와 소설가 신이현은 알자스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수안보 마을에 작은 알자스를 만들었다.
  • written by LEE JIHYE
  • PHOTOGRAPHY BY jeon jaeho, SHIN IHYEON
2025년 01월 07일

서울에서 남쪽으로 두세 시간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충청북도 충주, 한국에서 처음으로 온천이 분출됐다는 수안보에 다다랐다. 얕은 산 언저리, 멀리서도 눈에 띄는 하얀 건물과 볕 좋은 데 들어선 너른 포도밭이 보이자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달했음을 알렸다. 농사를 짓고 와인을 빚으며 자연이 준 그대로의 삶을 추구하는 신이현·도미니크 부부가 해사한 미소로 마중 나와 있었다.
“술 담는 사람은 모두 자신과 닮은 술을 빚어요.” 나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작은알자스 레돔’의 신이현 대표. 그는 파리 유학 중에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은 남편 도미니크 씨와 자신들을 닮은 술을 빚는 중이다. 파리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도미니크가 “더 이상 이렇게 힘들게 일하며 살 수 없다”면서 잘 다니던 IT 기업을 그만둔 것이 시작이었다. 차로 5~6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자신의 고향 알자스로 돌아가 농사를 짓겠다며 농업학교에 편입해 와인양조학을 공부하는 남편을 보자 신 대표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파리에서 살다가 알자스로 가려니 온갖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타지 생활도 힘들었는데, 프랑스 시골에서 나이 들어가는 제 모습이 상상되지 않았어요. 고민 끝에 남편에게 한국으로 가 농사를 짓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도미니크는 농사만 지을 수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했죠. 무작정 한국에 들어와 연고도 없는 충주에 터를 잡고 처음 양조장을 만든 게 2016년이에요.”
하지만 와인을 마시기만 했을 뿐 잘 모르기는 둘 다 마찬가지. 아무리 와인양조학을 공부했다 하더라도 덜컥 양조장을, 그것도 한국에서 시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도미니크는 농사와 와인 제조를 책임졌고 신 대표는 이를 제외한 양조장의 제반 업무를 맡았다. 우당탕탕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도미니크는 프랑스에서 배운 대로 땅과 나무를 함께 살리는 일종의 순환 농법인 ‘생명역동농법’을 시도했다. 그러나 잡초를 뽑고 약을 쳐가며 키운 한국 사과나무가 단시간에 적응하긴 힘들었다. 병충해가 심해 첫해엔 풋사과를 서둘러 따서 술을 담갔다. 발포주를 담는 병을 잘못 구입해 술이 폭탄 터지듯 줄줄이 폭발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부부는 포기하지 않고 그들의 삶의 방식, 취향과 지향을 와인에 담으려 노력했다.
“와인이 가진 맛과 향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을 ‘테루아’라고 해요. 테루아의 기본 요소 네 가지가 있는데 땅의 성질과 기후, 땅의 경사나 방향 그리고 농부의 농법과 철학이죠.”(신이현)

그들은 처음 농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연스러운 밭’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자연스러운 밭은 쉽게 말해 다양한 식생이 심어진 밭을 의미한다. 포도밭에 포도나무만 심는 건 일종의 자연 불균형이라는 것. 그 때문에 포도나무에 좋은 영향을 주고 서로 상생하는 나무들을 함께 심는다. 보리수나 회화나무는 질소를 고정해줘 ‘토양의 개척자’로 통한다. ‘땅의 광부’라는 별명을 가진 잡초들은 토양에 꼭 필요한 미네랄을 유지한다. 영양분이자 땅을 보호하고 스스로 퇴비가 되는 호밀은 매해 가을마다 뿌린다. 천 평이 넘는 밭에는 포도와 사과를 비롯해 떡갈나무, 버드나무, 대추나무, 무화과, 복분자, 복숭아나무, 민트, 토마토, 라벤더, 캐모마일, 토끼풀, 비타민, 키위, 버섯 등 무려 50여 가지의 나무와 허브가 자라고 있다.
“과일 나무를 키워 수확하고 와인을 만드는 게 우리 일이기도 하지만, 땅도 같이 키운다는 생각으로 농사지어요. 미생물을 키운다는 뜻도 되겠죠. 건강한 식물이 자라는 밭은 우리 부부에게 좋은 기운과 행복감을 주고, 이 기쁨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거든요.”(도미니크)
이처럼 부부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땅으로부터 터득했다. 도미니크는 알자스에서 마셨던 와인을 떠올리며 끊임없이 맛을 연구하는 중이다. 그들은 일 년에 최소 한 번은 알자스에 길게 머물며 그곳의 자연과 음식, 문화를 몸으로 느낀다. 도미니크에게 알자스 와인에 대해 물었더니 내내 무뚝뚝하던 그가 수다쟁이로 변했다.
“알자스 와인은 매우 독특해요. 땅에 미네랄이 풍부해 맛이 고소하고 향도 진하게 느껴지죠. 또 단일 품종으로만 만든 와인을 ‘알자스 와인’이라고 부를 수 있어요. 커피로 치면 싱글 오리진만 취급하는 것과 같아요. 덕분에 품종의 특성이 매우 도드라져요. 특히 게뷔르츠트라미너 와인은 향긋하고 달콤해서 제가 무척 좋아하죠.”
그렇다면 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알자스는 어땠을까. 파리와 프놈펜 등에 오래 살았던 신 대표에게도 알자스는 유난히 특별했다.
“처음 알자스로 갔을 때가 지금도 생생해요. 아무리 가도 나오질 않는 거예요. ‘이러다 지구 끝까지 가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때쯤 보주산맥이 나타났어요. 빽빽하게 하늘로 솟은 전나무숲을 지나 그제야 알자스에 도착했죠. 입을 못 다물 정도로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을 제대로 만난 거죠. 사람들이 ‘알자스는 몇 월에 가야 해?’라고 물을 때마다 여름이나 겨울을 추천하지만, 막상 저 역시 매년 ‘올해는 몇 월에 갈까’ 고민할 만큼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워요.”

7~8월이 되면 알자스에는 주말마다 포도주 축제가 열린다. 같은 품종의 포도라도 동네마다 다르고 와인메이커에 따라 각기 다른 맛을 내는 와인이 흘러넘친다. 축제에는 얇은 반죽에 생크림을 바르고 훈제한 삼겹살을 올려 굽는 플랑뵈르 파이, 육즙 넘치는 수제 소시지, 신선한 푸아그라 요리 등이 와인의 풍미를 배가한다. 지천에 핀 야생 블루베리를 안주 삼아 따 먹는 사람도 많다.
“쨍쨍한 여름 햇볕 아래, 사람들은 이 집 저 집 들어가 와인을 마셔요. 한두 잔씩 마시다 보면 어느새 취하는 사람도 많아요. 인근의 모든 소방관이 축제마다 배치돼 있을 정도죠. 한편에서는 벼룩시장이 열려 구경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도 몰라요.”
신 대표가 알자스의 여름을 좋아한다면, 도미니크는 알자스의 겨울을 좋아한다. 알자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크리스마스 도시 중 하나로, 빽빽하게 심긴 전나무에 눈이 쌓이면 산맥 전체가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되는 장관이 펼쳐지기 때문. 1500여 년 전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이 그대로인 중세 마을에선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데,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뱅쇼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마켓은 동화 속에 들어온 듯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향신료, 과자, 빵 그리고 와인이 가득하고, 장인들이 정성을 다해 만든 물건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인근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알자스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보러 오는 단체 관광객도 많다.
“제가 겨울의 알자스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스키 때문입니다. 보주산맥에서 타는 스키는 코스가 길진 않아도 꽤 익사이팅하죠. 산책용 스키를 타고 눈밭을 하염없이 걸어보는 것도 좋아요. 스키를 잘 못 타는 이현은 눈밭에 있는 레스토랑에 앉아 차가운 화이트 와인 마시는 걸 좋아해요. 불에 녹인 민스터 치즈와 곁들여서요.”

그들은 알자스에서 터득한 대로 와인이 단순히 술이 아닌 문화이자 역사임을 안다. 부부는 ‘도미니크 가족’이라는 뜻을 가진 와인 브랜드 ‘레돔(Lesdom)’을 통해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 알자스에서 익힌 철학을 한국에서 이어가고 있다. 작은알자스 역시 단순히 와인을 양조하는 공간을 넘어, 수안보라는 작은 마을을 대표하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 중이다.
“양조장을 배경으로 여러 문화 행사를 진행하고, 포도밭과 양조장을 체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우리의 농사법과 양조법을 보고 이런 방식으로도 농사를 짓고 술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작은알자스가 와인을 매개로 우리의 철학을 다양한 사람들과 공유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거든요. 지치지 않고 오래 이곳을 가꿔나가고 싶어요.”(신이현)

베코프(10인분) Baeckeoffe

재료
돼지 어깨살 300g, 양 어깨살 300g, 뼈 없는 소고기 양지머리 300g, 감자 1kg, 양파 200g, 당근 4개, 드라이 화이트 와인 500ml, 향이 나는 풀들(백리향, 월계수 잎, 정향, 타임), 소금, 후추 적당량
1 적당한 크기로 자른 고기에 화이트 와인, 소금, 후추, 타임, 월계수 잎, 정향을 넣고 24시간 동안 재워둔다.
2 얇게 자른 당근을 오븐용 냄비 맨 아래에 깐다.
3 당근 위에 채 썬 양파를 깔고 그 위에 감자를 얹는다.
4 3 위에 1의 고기를 듬뿍 넣는다.
5 고기 위에 당근, 양파, 감자를 차례대로 얹는다.
6 화이트 와인을 채소가 잠길 정도로 추가로 붓는다.
7 180℃로 예열된 오븐에서 약 3시간 동안 익힌다.
TIP
고기와 향신료는 취향에 따라 바꾸거나 빼도 괜찮다. 마늘과 파를 넣어도 맛있다.

알자스 스타일 구겔호프(6인분) Kougelhopf sucré(Alsace)

재료
구겔호프 틀(6인분), 효모(이스트) 25g, 부드러운 버터 150g, 소금 10g, 설탕 75g, 밀가루 500g, 달걀 2개, 미지근한 우유 200ml, 건포도 75g, 아몬드 40g, 슈거파우더 약간
1 건포도를 미지근한 물에 담가서 부풀어 오르게 한다.
2 이스트에 우유 100ml, 밀가루 약간을 섞어 반죽을 만든 후 부피가 두 배가 될 때까지 휴지시킨다.
3 남은 밀가루에 소금, 설탕, 달걀, 남은 우유 100ml를 섞어 반죽에 공기가 들어가도록 15분간 반죽한다.
4 3의 반죽에 부드러운 버터를 넣고 잘 섞어준다.
5 4의 반죽에 휴지시킨 2의 효모를 넣어 반죽이 가장자리에서 떨어져 나올 때까지 몇 분간 반죽한다.
6 천으로 덮은 다음 따뜻한 곳에 1시간 동안 놓아둔다.
7 반죽을 두드려서 원래의 양으로 되돌린다.
8 7의 반죽에 건포도를 넣고 섞는다.
9 구겔호프 틀의 홈까지 버터를 바른다. 각 홈에 아몬드를 놓는다. 반죽을 넣고 틀 가장자리까지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린다.
10 200~210℃ 오븐에서 50분간 굽는다. 반죽이 너무 갈색이 되면 유산지를 덮어준다.
11 틀 속의 빵을 꺼내어 슈거파우더를 듬뿍 뿌린다.
TIP
6의 과정에 젖은 천을 덮으면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다. 또 살아 있는 효모를 쓰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