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은둔


파말리칸섬, 필리핀 | 아만풀로 Amanpulo
여행을 떠날 때 비용의 구애가 비교적 적은 이들이 중요시하는 요소가 있다. 일상으로부터 유리된 시간,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은둔처. 두 조건이 우선순위인 셀러브리티들 사이에서 ‘아만’이라는 브랜드가 종종 선택되는 이유다. 필리핀 파말리칸섬에 자리한 아만풀로는 섬의 유일한 인적이다. 닿는 방법은 경비행기뿐. 착륙장에 내리면 필리핀 출신의 건축가 프란시스코 마뇨사가 전통 주택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빌라가 약 85만m² 부지 위에 마을처럼 펼쳐진다.
개인 셰프, 집사, 컨시어지의 24시간 전담 마크를 보장받은 투숙객들이 아만풀로에서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나이, 직업, 지위, 체면 같은 것은 잊고 어린아이처럼 놀고 먹고 쉬는 것. 아만풀로가 제공하는 놀이는 무궁하다. 아침 댓바람부터 배 타고 나가 거북, 열대어와 함께 수영하기, 대나무(카와얀)로 짠 보트 위에 누워 햇빛 쬐기, 패들보드 위에서 노 젓기, 그러다 모험심이 일면 트롤 낚시나 카이트 서핑에 도전해보기. 바다에서의 일과에 정신을 쏟다 보면 청량해진 뇌로 낮과 밤에 걸쳐 질 좋은 수면을 ‘획득’할 수 있다. 잘 먹는 일이 곧 잘 쉬는 일인 미식가들은 아만풀로의 화려한 다이닝 리스트를 즐긴다. 지역에서 공수한 필리핀·동남아 요리를 선보이는 ‘더 클럽 하우스 레스토랑’, 일식 요리를 내는 일출 명소 ‘라군 클럽’, 지중해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일몰 명소 ‘비치 클럽’이 격렬한 물놀이로 허기진 투숙객을 반긴다. 살면서 한 번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오직 ‘유희의 본능’에만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버킷리스트에 올려둘 만한 곳.
슈퍼리치의 삶


케이프타운, 남아프리카공화국 | 엘러먼 하우스 Ellerman House
영국 출신의 회계사이자 해운 재벌 존 엘러먼(John Ellerman)은 1930년대 영국 최고 부호이자 세계 3위권 부자로 이름을 날렸다. 극도의 은둔주의자였던 그는 191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부촌, 반트리 베이(Bantry Bay)에 대저택을 매입해 별장으로 꾸몄다. 13개의 방과 2채의 독채 빌라, 약 6만m²의 정원을 갖춘 대부호의 집이 모두의 별장으로 변화한 건 1990년대 초. 남아공의 은행가이자 미술품 컬렉터 폴 해리스는 저택에 얽힌 엘러먼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살려 이곳을 모두를 위한 별장으로 꾸몄다. 호화로운 인테리어, 케이프타운의 절경이 한눈에 담기는 뷰도 근사하지만 엘러먼 하우스의 진짜 매력은 다른 데 있다. 이곳의 직원들은 투숙객을 손님이 아니라 ‘엘러먼’처럼 대한다. 일과(여행)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은제 찻주전자에 갓 따온 민트를 넣어 우린 차를 내오고, 슈트케이스 안에서 잔뜩 구겨진 옷은 다림질해둔다. 알맞은 온도의 온수와 적당한 거품으로 덮인 욕조에서 하루의 피로를 푼 후 원하는 음식을 이야기하면 셰프가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요리에 남아프리카 전역에서 공수한 와인을 곁들인다. 온갖 영화를 다 누린 20세기 부호의 삶에 새삼스러운 질투마저 느껴질 것이다.
남프랑스식 리트리트


라 크루아-발메르, 프랑스 | 릴리 오브 더 밸리 Lily of The Valley
생트로페에서 약 15km 떨어진 라 크루아-발메르는 생트로페의 번잡함과 소란을 피해 한적한 남프랑스를 누리려는 여행자들이 찾는 지역. 지중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해안 절벽 위에 들어선 릴리 오브 더 밸리는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사저를 디자인하고 알레시의 주시 살리프로 ‘20세기 아이콘’이 된 디자이너 필립 스탁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인간과 자연이 완벽한 합을 이루는 낙원’을 표방하는 이곳에선 궁극의 리트리트를 경험할 수 있다. 2000m² 규모를 자랑하는 웰니스 센터 ‘더 빌리지’는 릴리 오브 더 밸리를 찾는 목적 그 자체다. 영양 전문가 자크 프리커가 개발한 맛과 칼로리 조절을 모두 아우른 맞춤 식단은 더 빌리지의 하이라이트. 영양과 맛을 모두 잡는 ‘뉴트리셔널 가스트로미’로 몸속 독소를 제거한 후 체중 감량, 운동력 증대, 웰-에이징 등 투숙객의 목적에 따라 세밀하게 프로그램을 설계해준다. 휴식에 그치는 다른 웰니스 리조트와 달리 원하는 목적, 성취를 획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투숙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알랭 뒤카스를 사사한 후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은 셰프 뱅상 마야르가 주방을 지휘하는 ‘비스타’ 레스토랑에선 지중해식 웰빙 다이닝을 경험할 수 있다.
진짜 로컬이 되는 곳



이쿠치지마, 일본 | 아즈미 세토다 Azumi Setoda
한 지역의 옛날과 지금을 함께 경험하는 일, 여행을 위한 살아 보기가 아닌 지역의 일상을 깊이 경험하는 데 관심이 많다면 히로시마 공항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섬, 이쿠치지마를 여행 후보지 목록에 올려놓자. 염전업과 해운업으로 번성했던 세토다 지역의 거상, 호리우치 가문의 저택이었던 공간을 개조한 아즈미 세토다는 그런 당신을 위한 공간이 되어준다. 아즈미 세토다는 일본 건축가 미우라 시로가 140년 전에 지어진 고민가의 전통 목구조를 고스란히 살려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고 세토다의 자연에서 얻은 건축재로 마무리한 스키야식 료칸이다.
아즈미 세토다는 지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로컬의 삶을 투숙객의 경험으로 전환한다. 일본 최고의 사이클링 루트로 손꼽히는 시마나미카이도를 자전거로 달리는 경험, 세토다 지역의 특산품인 레몬 수확 체험, 전통 어업 방식을 배우는 낚시 프로그램 등 섬의 삶에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지역 장인과 함께 보리가 데님(Boriga Denim) 을 만들거나 료칸 앞에 자리한 공중목욕탕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목욕을 하는 등 소소한 일상을 즐기다 보면 소도의 고즈넉한 삶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지역의 맛‘을 주제로 하는 다이닝은 아즈미 세토다의 하이라이트다. 셰프 아키타가 반경 50km 이내에서 공수한 식재료로 생산지의 이야기, 재료 자체의 풍미를 살려 만든 음식은 호리우치 가문에서 오랜 세월 보유한 도기에 담겨 나온다. 대접에 관해 고유하고 엄격한 철학을 가진 일본의 전통과 문화를 함축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룻밤


아테네, 그리스 | 더 돌리 The Dolli
문자 그대로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 머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더 돌리가 올해 유네스코와 유엔, 세계무역기구가 후원하는 국제 건축 및 디자인상인 ‘프리 베르사유’에서 건축물의 미적 가치, 지속가능성, 사회적 조화성을 함께 평가해 수여하는 ‘글로벌 어워즈’에 호텔 부문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뤘기 때문이다. 1920년대, 아테네의 왕궁을 국회의사당으로 재탄생시킨 저명한 건축가 안드레아스 크리에지스(Andreas Kriezis)가 신고전주의와 장식예술을 결합해 설계·디자인한 이 건축물은 오랜 시간 동안 텍스타일 백화점으로 사용됐다. 2016년, 그리스의 럭셔리 호텔&리조트 체인 그레코텔 그룹이 이 건축물을 매입한 후 7년간 복원 작업을 거쳐 호텔로 탈바꿈했다.
더 돌리가 지닌 ‘아름다움’의 정수를 감각하고 싶다면 루프톱에 자리한 인피니티 풀로 향해야 한다. 아테네 중심부인 미트로폴레오스 한복판에 자리한 이곳에선 무려 고대 그리스의 상징적인 장소인 파르테논 신전의 파사드를 마주볼 수 있기 때문이다. 파르테논 뷰를 좀 더 오래 누리고 싶다면 3.5m 높이의 천고와 통창을 갖춘 객실 중 아크로폴리스 주니어 스위트와 아크로폴리스 럭셔리 주니어 스위트를 선점할 것. 피카소와 장 콕토, 프랑수아 자비에&클로드 라란의 작품에 둘러싸여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더 살롱’에 머물다 보면 아름다운 것 속에 사는 호사의 진정한 가치를 깨칠 수 있다.
모험가처럼 아프리카


칼라하리, 보츠와나 | 잭스 캠프 Jack’s Camp
보츠와나 칼라하리 생태구역의 마카디카디 팬(Makgadikgadi Pan)은 세계 최대의 소금 평원이다. 1만 년 전 남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내륙 호수였던 마카디카디 호수가 마르면서 남은 염분이 퇴적해 형성된 지형이다. 이곳은 건기엔 화성의 표면처럼 황량하고, 우기엔 얕은 물이 고여 은빛으로 반짝이는 경관으로 유명하다. 땅이 물을 머금을 때 플라밍고, 얼룩말, 기린, 누, 미어캣이 투명한 물 위에 반사되며 만들어진 비현실적인 풍광이 펼쳐진다. 잭스 캠프에선 이 BBC 다큐멘터리 같은 장면의 일부가 될 수 있다. 1990년대, 랄프 부스필드가 아버지이자 탐험가 잭 부스필드를 기리기 위해 문을 연 이곳은 1940년대 미지의 아프리카를 종횡무진한 모험가들의 낭만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잭스 캠프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오전 6시에 굴 밖으로 나와 밤새 차가워진 몸을 데우는 미어캣의 활동을 관찰하려면 5시엔 눈을 떠야 한다. 화석이 된 호수, 스프링복과 박쥐귀여우 같은 희귀 동물도 만난다. 낮에는 원주민과 함께 아프리카의 옛 생활을 경험하는 부시맨 워크를 즐기거나 더위를 피해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다. 오후엔 쿼드 바이크를 타고 평원을 질주하거나 게임 드라이브를 더 즐기기도 한다. 해 질 무렵, 잭스 캠프의 상징과도 같은 웰컴 칵테일 ‘필리필리-호호’를 마시고 고급 페르시안 카펫 위에 꾸민 36인용 만찬 테이블에 둘러앉아 그날 경험한 이야기를 나눈 후 남십자성이 반짝이는 별 무리 아래에서 잠자리에 들면 ‘잭 부스필드’식 하루가 완벽히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