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사람의 전주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EDITed BY RYU JIN
  • PHOTOGRAPHY BY CHO SUMIN

전주 사람의 전주

Seeing Jeonju from Within

연간 1천500만여 명의 여행자가 찾는 관광도시 이면에는 어떤 삶과 일상, 공간이 있을까? 전주에서 나고 자라거나 이 도시로 이주한 로컬을 만나 전주살이의 매력, 도시의 정서와 서사를 품은 공간을 물었다.
  • EDITed BY RYU JIN
  • PHOTOGRAPHY BY CHO SUMIN
2025년 11월 06일

Local

양조사, 노매딕 브루잉 컴퍼니 대표
존 개럿

저는 맛을 탐구하는 일에 늘 관심이 많았습니다. 오래전부터 전통적인 아시아를 경험하고 싶은 꿈도 있었고요.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인 전주는 그 여정을 시작하기에 완벽한 도시였죠.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 사자락 아래 포근하게 안긴 옛 건축물, 도시를 부드럽게 감싸는 잔잔한 강이 만드는 ‘한국적인’ 풍경이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늘 양조사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이곳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며 번 돈으로 독일과 미국의 양조학교에서 유학을 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북미의 크래프트 브루어리에서 일하다가 다시 전주로 돌아와 노매딕 브루잉을 연 건 내가 전주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아서예요. 어쩌면 이 도시도 나를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전주에서 좋아하는 곳이 무척 많은데요.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깊은 통찰을 주는 멋진 공간이 있는 한옥마을과 산책로, 숲, 기암괴석, 고대 성곽 유적, 절, 성당, 순교지를 모두 품은 승암산의 기린봉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오래된 나무들에 둘러싸인 전주향교는 나 자신과 삶을 성찰하고 싶을 때 종종 찾는 곳이에요.
전주는 제가 살아본 지역 중 가장 걷기 좋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독립 브랜드 상점, 카페, 식당이 많아 사는 사람에게도 지루하지 않죠. 필요한 것은 전부 도보 10분 거리에 있고, 흥미로운 예술 전시가 늘 열리며 도심 언덕 끝자락에서 대자연으로 곧장 연결된다는 점도 저를 행복하게 만들고요. 한마디로 언제나 새롭고, 물처럼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살 수 있는 도시입니다.

딸기 농부
서승준

전주에 살며 완주에서 딸기 농사를 짓습니다. 차로 30분 거리라 회사처럼 출퇴근하고 있죠. 원래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부모님께서 하던 농사를 이어받았어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모습을 지켜보며 농부가 되는 걸 상상해 보기도 했고, 사람에 치이는 회사 생활보단 혼자서 묵묵히 그날그날 해야 할 일만 잘해내면 되는 이 일이 더 잘 맞을 것 같단 생각을 했습니다. 쉬운 길은 아니지만 6년째 딸기 농사를 지으며 제 삶에 만족하고 있어요. 전주에 살기 때문에 이런 선택지를 가질 수 있는 것 같고요. 주변에 저처럼 전주와 완주 일대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젊은 농부들이 꽤 있습니다. 청년 농부를 위한 지자체의 맞춤형 지원이나 정책, 네트워크도 잘 조성되어 있는 편이고요.
이곳 봉동읍은 완주의 삼례, 고산과 함께 원래부터 딸기로 유명한 동네예요. 완주 딸기는 단단한 과육과 아삭한 식감, 부드러운 당도가 특징이죠. 제가 몸으로 부딪히며 쌓은 재배 노하우로 생산한 ‘준이 딸기’는 주로 전주 내에서 소비되고 있는데요. 한 번 드셔본 고객들의 다수가 단골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 보람을 느낍니다.
완주는 전주 사람들이 쉬는 날 교외 나들이지로 즐겨 찾는 지역이라 세련된 카페나 식당이 꽤 있는데, 저도 언젠가 딸기를 주제로 하는 근사한 카페를 열고 싶어요. 완주 딸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맛볼 수 있는 잼이나 청, 디저트 같은 것도 함께 만들고요. 가까운 미래에 꼭 이루고 싶은 꿈입니다.

시인, 북페어 ‘전주 책쾌’ 기획자, 책방 물결서사 대표
임주아

글을 쓰고 서점이라는 공간을 통해 문학과 예술 콘텐츠를 만드는 저와 ‘책의 도시’를 지향하는 전주는 합이 좋은 터전이죠. ‘책이 삶이 되는 도시’를 지역의 비전으로 제시한 만큼 제도와 지원이 탄탄하거든요. 전주시립도서관에서 발급하는 도서관 회원증이 있으면 협약을 맺은 지역 서점에서 책을 살 때 20%를 할인 받을 수 있는 ‘전주책사랑포인트 책쿵20’ 같은 제도를 예로 들을 수 있어요. 실제로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높고, 시민들의 독서 빈도와 구매율이 높아졌다고 해요. 독립서점은 약 12개 정도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참고로 전주는 업계에서 독립서점이 잘 망하지 않는, 오래 유지되는 지역으로 소문이 꽤 자자해요. 올해로 3년째 기획자로 참여 중인 독립출판 북페어 ‘전주 책쾌’도 지난 6월에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처음엔 65팀이 참여했는데 올해는 전국의 독립출판사 약 100여 곳이 전주에 모였어요.
전주에 온다면 덕진공원 안에 있는 연화정 도서관에 들어가 책을 읽어보세요. 연꽃이 피는 계절에 찾으면 꽃으로 뒤덮인 호수 위에 둥둥 떠서 독서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완판본문화관’이라는 곳을 참 좋아하는데요. 조신시대 전라도 완산(지금의 전주)에서 간행·출판된 판본을 전시하는 일종의 책 도서관이에요. 전주에서 출판된 도서 유산을 보전하고 옛 시대의 기록과 인쇄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으로 <홍길동전> <춘향전> 등의 고전 원본을 만날 수 있죠. 문화관을 다 둘러본 후 바로 앞 천변, 한옥마을의 경기전과 전동성당 사이를 산책하다 보면 옛 시대의 흔적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전주의 매력을 감각할 수 있을 거예요.

NATURE & THE OUTDOORS

청연루

남천교는 전주천을 가로지르며 도시의 남서쪽 얕은 기슭과 남쪽 평지를 잇는 다리다. 교사와 학생이 많이 살아 ‘선생촌’으로 불리던 서학동과 전주한옥마을을 연결한다. 이 교각 위에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다리 위 건축물’, 청연루가 있다. 맑을 청(晴)과 안개 연(煙)을 붙여 지은 이름은 ‘맑은 날 아스라히 피어오르는 안개’를 뜻한다. 기세 좋게 뻗은 팔작 지붕 누각으로 정면은 아홉 칸, 측면은 두 칸으로 지어 드넓다. 전주시는 이 누각 앞에 한시의 한 구절 같은 안내판을 세웠다. “여기에 서면 승암산의 위용과 전주천의 관대한 흐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바람을 품어 안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마침맞은 곳이다. 낮에는 전주 8경 한벽청연이 그대로 시야에 머무니….” 시원하게 뻗은 전주천을 발 아래 두고 승암산의 혁혁한 기린봉과 독대하며 서 있으면 대쪽 같은 전주 양반이라도 된 양 시 한 수 읊고 싶은 기분이 든다. 굽은 척추를 곧추세우고 구름·천변·물·산·숲을 실컷 구경하다 고개를 돌리면 학교 끝나고 학원 가기 전 친구들과 모여 숙제를 하거나 수다를 떠는 동네 학생들, 한옥마을 분식점에서 사 온 옛날식 꽈배기 빵으로 배를 채우며 딸과 호젓한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 전주가 초행인 게 분명한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각자의 한때를 보내는, 평화로운 풍경이 나타난다. 사는 이에겐 사랑방, 찾은 이에겐 품 넓은 쉼터가 되어주는 공간이다.
주소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940

경기전

조선을 건립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왕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을 모신 곳. ‘경기’는 조선의 왕조가 일어난 경사스러운 터라는 뜻이다. 1410년에 지어졌다가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없어지고 광해군 6년인 1614년에 재건립해 지금까지 이어졌다. 보통의 유적은 대개 관광이나 견학을 위한 일회성 방문지지만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한 경기전은 사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책로이자 나들이지다. 전주에서 독립서점 ‘물결서사’를 운영하는 시인 임주아는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정원의 나무들, 오래된 담장과 돌길, 정갈한 기와지붕이 시선을 사로잡는다”는 말과 함께 좋아하는 산책로로 이곳을 꼽았다. 경기전에 처음 방문하는 이라면 <조선왕조실록> 784권 614책 47궤와 기타 전적 64종 556책 15궤가 격랑의 5세기 동안 손상 한 점 없이 봉안된 ‘전주사고’도 놓치지 말자.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국보를 알현할 수 있는 기회다. 비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작은 도서관 같은 공간이 펼쳐지고 그 안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순간을 생생하게 기록한 예조판서 정인지의 서문을 비롯해 놀랍도록 정교한 실록 편찬 과정 등이 보기 좋게 전시되어 있다. 그 밖에 어진의 제작 방식과 의례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어진박물관, 제례에 필요한 음식과 기물을 만들고 보관하는 어정, 제기고 같은 부속 공간들이 구경하는 재미를 돋운다. 대부분의 옛집들이 툇마루를 기꺼이 내어주고 있어 잠시 앉아 쉬어가기에도 그만이다.
주소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건지산

전주의 승암산이 산행지라면 건지산은 산책지다. 길이 많고 높이는 낮아 생각을 덜어내며 한가롭게 걷기에 더없이 좋다. 전주 시민이라면 누구나 이곳에서 산책과 소풍, 그리고 삼림욕을 즐긴다. 사방으로 입구가 뚫려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전주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 이원경은 건지산 오송제 주변을 최고의 산책로로 꼽는다. “덕진공원 북서쪽에 있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뒤편과 맞닿은 입구로 진입하면 편백나무 숲이 깜짝 선물처럼 느닷없이 나타나요. 깊은 산속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을 초입부터 만날 수 있죠. 장대비처럼 쭉쭉 뻗은 나무 아래에 앉기 좋은 벤치와 평상이 꽤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이곳에서 가족·친구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았어요.” 편백나무 향에 몸과 마음을 충분히 적셨다면 오송제 주변길을 걸어볼 것. 정자와 능수버들, 꽃창포와 부처꽃이 수채화처럼 흐드러지는 생태 저수지다. 좀 더 걸을 여유가 있다면 ‘건지산 숲속 작은 도서관’도 놓치지 말자. 편백나무 숲 안에 자리한 소박한 나무집에 들어선 공립 도서관으로 산장에 온 듯한 분위기에 발길이 절로 간다. 2850여 권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숲, 자연과 관련된 온갖 책들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통유리창 앞 책상에 앉아 책 한 장, 나무 한 번 번갈아보다 보면 숲이 내가 되고 내가 숲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주소 전주시 덕진구 건지산로 40

Eat & Drink 

평화와 평화

양복집과 금은방이 결혼을 앞둔 커플들로 문전성시였던 시절, 전주 남부시장과 풍남문을 지나면 닿는 골목은 전주 사람들에게 ‘웨딩의 거리’로 불렸다. 인구 감소, 결혼 문화 급변으로 반짝이던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며 썰렁해진 원도심을 다시 살린 건 카페, 바, 펍, 서점 같은 공간이다. 카페 평화와 평화는 웨딩의 거리에서 ‘웨리단길’이 된 중앙동 3가와 그 전에 ‘객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 재부흥한 객사길 사이에 2019년에 둥지를 틀었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텍스트 기획자 강평화가 문 연 공간으로 지금은 동문의 ‘식물 상점’, 송천의 ‘산책 종점’, 한옥마을의 ‘좋은 주방’, 전북대 앞 ‘구내 매점’이라는 네 곳의 분점까지 총 다섯 곳이 운영 중이다. 중앙동 상가 건물 3층에 위치한 본점, ‘커피 상점’에 들어서면 모눈처럼 반듯하게 구획된 테이블 배치와 공간 곳곳에 메시지처럼 붙여 놓은 타이포그래피 장식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원두는 전주의 커피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스몰 배치 로스터리 ‘바이아 커피 스토어’에서 가져오고 10종류를 훌쩍 넘기는 휘낭시에는 직접 굽는다. 카페 한쪽 공간에선 평화와 평화가 직접 제작한 문구, 소품, 패션 아이템을 비롯해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아이템을 큐레이션해 소개한다. 전주의 창작자들 사이에선 작업실처럼 드나드는 공간으로 인기가 높다.
주소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4길 16-7 3층(본점)
영업시간 9:00~22:00
인스타그램 peace.or.peace

하우스먼트

구시가지가 사는 사람과 관광객이 두서없이 섞이는 동네라면 완산구의 서부 권역에 속하는 신시가지, 효자동과 서신동 일대는 로컬들의 직장과 집이 있는 동네다. 2022년 9월 효자동 3가에 들어선 카페 하우스먼트는 신시가지 일대에서 일하는 회사원들이 프랜차이즈 커피 말고, 직접 로스팅해 정성스럽게 내린 스페셜티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즐겨 찾는 공간. “찾는 이들이 집처럼 편안하게 머물다 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름을 짓고 나무를 마주할 수 있는 2층이란 위치를 십분 활용해 전면을 통창으로 시원하게 냈다. 그 덕에 로컬 사이에선 ‘눈에 아름다운 것을 담고 싶을 때 갈 만한 곳’으로 입소문이 났다. 바리스타들의 몸짓, 표정, 모습이 무대처럼 펼쳐지는 개방형 커피 바 공간, 옆 사람의 움직임이나 소리가 크게 거슬리지 않는 여유로운 테이블 간격, 귀가 편안한 음악은 이곳을 운영하는 로스터이자 대표 박종대의 섬세한 배려와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 다양한 산지, 풍미, 개성을 갖춘 원두를 직접 로스팅해 소개하며 케이크와 구움과자도 하우스먼트에서 구워낸다. 올해 9월엔 혁신도시 일대로 불리는 중동에 ‘하우스먼트 인어로우’ 지점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주소 전주시 완산구 마전들로 67 2층 201호
영업시간 11:00~22:00
인스타그램 hausment.official

노매딕 브루잉 컴퍼니 & 노매딕 비어 템플

수제 맥주를 빚는 양조장 노매딕 브루잉 컴퍼니는 전주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브랜드다. 양조사 존 개럿(이하 조니)과 그의 아내 한나 부부가 2013년부터 공간을 준비하고 선보였다. 미국 미시건 출신의 브루어 조니는 미국 시카고와 독일 뮌헨의 월드 브루잉 아카데미에서 양조법을 배우고 미국의 크래프트 브루어리에서 경험을 쌓은 후 전주에 돌아와서 ‘노매딕’의 여정을 시작했다. 맥주는 ‘인식의 문을 열어주는 신성한 액체’, 펍은 로컬이 함께 어우러지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으로 여기는, 고유한 철학과 신념으로 빚는 조니의 맥주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벼운 맛부터 미각 모험을 좋아하는 맥주 애호가를 자극하는 독창적인 풍미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갖추고 있다. 전주를 포함한 전라도 지역의 딸기, 꿀, 쌀 등을 사용하고 전주의 향토 음식의 어울림까지 고려하는 조니의 섬세함 덕분에 연령 불문, 로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웨리단길에는 양조장인 ‘노매딕 브루잉’과 1947년에 지어진 건축물의 결을 고스란히 살려 안을 꾸민 ‘노매딕 비어 템플’이, 한옥마을엔 고즈넉한 마당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노매딕 비어 가든’이 있다.
주소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4길 13-16(노매딕 비어 템플)
영업시간 일~금 17:00~00:00 토 15:00~1:00
인스타그램 nomadicbrewingco

왱이콩나물국밥전문점

전주 사람들에게 콩나물국밥집은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물었을 때 열에 여덟은 “콩나물국밥 잘 안 먹어요”라고 답한다. 그래도 맛 좋다고 여기는 곳이 있지 않느냐고 채근했을 때 여섯 명이 ‘왱이집’을 내놨다. 전주한옥마을 근처, 동문길에 있는 ‘왱이콩나물국밥전문점(이하 왱이)’은 불리는 이름이 여러 개다. 가게 안에는 ‘SINCE 1991 왱이집’으로 쓰여 있고 어떤 간판엔 ‘왱이’만 덜렁 있다. 자신이 만든 콩나물국밥에 단단한 자부심을 가진 유대성 사장은 ‘왱이, 엥이, 욍이, 웽이, 앵이, 왕이’ 등 비슷하게 느껴지는 모든 단어를 특허청에 고유 상표로 등록했다. 전주식 콩나물국밥엔 뚝배기째로 팔팔 끓인 직화식과 육수의 깔끔하고 개운한 맛, 콩나물의 아삭한 식감을 살리는 토렴식이 있는데 왱이는 후자다. 반찬과 국밥이 나오면 가장 먼저 쇠그릇에 중탕한 수란에 김과 국물을 서너 수저 넣고 잘 섞어서 따로 먹으라고 안내한다. 수란을 국밥에 넣지 말고 콩나물을 건져 수란에 적셔 먹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정직하게 끓여낸 담백 칼칼한 육수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한약재와 조청, 계피, 생강 등을 넣고 달짝하게 발효시킨 탕주인 ‘모주’를 곁들이면 맛의 균형이 완벽해진다.  
주소 전주시 완산구 동문길 88
영업시간 7:00~21:00 

이모갈비전골

비빔밥, 콩나물국밥 말고도 전주에서 꼭 먹어야 할 것이 있다. 전주 사람들이 ‘향토 음식’으로 자부하는 물갈비다. 매콤하게 양념한 갈비에 콩나물, 당면 등을 넣어 전골처럼 끓여 먹는 요리를 뜻한다. 물갈비의 원조를 따질 때 1972년에 문 연 남노갈비가 가장 자주 언급된다. 관광객들이 한옥마을 안에 있어 눈에 쉽게 띄는 남노에 갈 때 현지인들은 이모갈비전골을 즐겨 찾는다. 10여 년 전 전주한옥마을 끝자락에 문 연 이곳은 평일에만 문을 연다. “함께 식당을 열었던 이모님께서 은퇴하시고 혼자 운영하고 있어요. 그래서 관광객이 많아지는 주말엔 조금 버거워요.” 국물이 자작하게 끓을 때 살을 잘 발라낸 돼지갈비 살점을 먹기 좋게 잘라주며 사장님이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물갈비’로 알려진 이 음식은 옛날 전주 사람들 사이에선 ‘콩나물 돼지갈비전골’로 통했다고. “저는 이 음식의 진짜 주인공이 콩나물이라고 생각해요. 전주가 콩나물이 좋기로 유명하잖아요. 돼지갈비에서 나오는 육수에 콩나물이 더해지면 국물 맛이 한층 깔끔하고 시원해집니다. 계속 끓여도 짜지 않고, 그래서 숟가락으로 국물을 푹푹 떠먹을 수 있죠.” 물갈비에 적합한 굵기와 길이의 콩나물을 선별하고, 싱싱한 돼지갈비를 쓰는 것이 이 집 맛의 진짜 비결이다. 
주소 전주시 완산구 동문길 81-3
영업시간 11:00~21:00 (15:00~17:00 준비시간, 일요일 휴무)

하숙영가마솥비빔밥

전주비빔밥의 맛을 결정 짓는 요인 중엔 밥알의 찰기도 있다. 비빌 때 쉽게 으깨지지 않도록 탱글탱글하게 밥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 갓 지은 솥밥과 놋그릇에 콩나물, 황포묵, 소고기육회, 접장, 버섯 등 정통 전주식 비빔밥 고명을 담아 14가지 반찬과 함께 내는 하숙영가마솥비빔밥은 전주에서 나고 자란 노매딕 브루어리의 매니저가 강력히 추천해 알게 됐다. “언제인지 기억도 잘 안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엄마랑 종종 찾는 식당이에요. 음식도 맛있지만 직원이 직접 비벼주는 게 꽤 특별해요.” ‘특허 받은 반찬’ ‘직접 담근 장’ 같은 소개 문구와 사진을 식당 곳곳에 배치한 이곳에선 식사 메뉴로 가마솥비빔밥과 가마솥육회비빔밥만 판다. 직원이 직접 비벼주는 퍼포먼스는 가게가 붐비는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타이밍에 진행되는데, 그냥 비벼주는 것이 아니라 청양장(청양고추를 으깨 만든 고추장)을 취향만큼 밥 위에 얹고 매콤 칼칼한 맛을 더하는 것이 특징이다. 처음엔 나온 그대로 먹다가, 중간에 청양장을 넣어 비벼 달라고 요청하면 두 가지 맛을 모두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도 역시 직접 담아 잔술로 내는 모주를 곁들여볼 것.
주소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5길 19-3
영업시간 월·화·목·금 11:00~20:30 (15:30~17:30 준비 시간) 수 11:00~15:30 토·일 11:00~20:30  

Art & Culture 

물결서사

책방 물결서사의 안쪽 복도 벽에는 공간과 도시의 이야기가 내레이션처럼 흐른다. “2018년 겨울, 물결서사의 탄생. 12월 22일 동짓날, 이방인 7명이 선미촌 골목에 책방 문을 열었다. 물이 좋은 동네라는 의미를 지난 ‘물왕멀’ (옛) 지명에서 물결을, 옛 서점이자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뜻의 서사를 합쳐 물결서사라 이름 지었다.” 선미촌은 1950년대 옛 전주역 주변으로 성매매 업소가 모인 동네였다. 2014년 전주시가 ‘서노송예술촌 문화 재생 사업’으로 업소가 들어섰던 건물을 사들여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물결서사는 시가 네 번째로 사들인 집에 들어섰다. 이후 7년 동안 물결서사는 흥미로운 서사를 써왔다. 선미촌의 마지막 남은 업소가 문을 닫았고 김영하, 김애란, 오은, 안희연 같은 쟁쟁한 이름들이 이 책방에서 시와 소설로 꽉 찬 시간을 만들었다. 지금도 시인이자 책방 주인 임주아가 시인, 문학평론가, 소설가, 수필가, 배우 등 분야를 막론한 예술인과 함께 이 공간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1층 서점 공간에서 책을 사면 2층 다락의 안락한 방구석에서 책과 나만 있는 순간을 비밀스럽게 누릴 수 있으며 얼마 전부터 출판사와 함께 문학을 주제로 하는 전시도 진행하고 있다.
주소 전주시 완산구 물왕멀2길 9-6
영업시간 화·토 12:00~19:00 (일·월 휴무)
인스타그램 mull296

서학동 사진미술관

남천교 서쪽에 자리한 서학동엔 예술마을이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2010년경부터 작가, 사진가, 도예가, 음악가, 화가 등의 예술인이 하나둘 모여 살며 예술촌이 됐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1980~90년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옛날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이 시선에 든다. 이정표를 따라 모퉁이를 돌면 서학동 사진미술관이 나타난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김지연이 문 연 곳으로 2010년대 초 작업실로 둥지를 틀고 서양화가 이일순 교수와 함께 전시 공간으로 확장하며 지금의 틀을 갖췄다. 김지연 관장은 2007년 전북 진안의 폐업한 정미소를 공동체 박물관으로 개조해 개관한 ‘계남 정미소’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사진미술계에 잘 알려진 이름이다. 공간의 규모는 15평 남짓이지만 전시의 스펙트럼은 넓다. 존 버거, 노승택, 성남훈, 강홍구, 박하선 등이 이 공간을 거쳐갔다. 안쪽엔 방 한 칸과 거실, 안쪽 중정과 바깥쪽 마당이 소박하게 어우러져 있다. 호젓하게 전시를 감상하는 것도 좋고, 두 평 갤러리의 작은 벤치에 앉아 1972년에 지어진 옛날 집의 운치를 누려도 좋다. 평일엔 인근 초등학교와 대학교의 교실 밖 교실로, 주말엔 동네 사람들이 마실 가다 들르는 사랑방으로 분주하다.
주소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16-17
영업시간 10:30~18:00
인스타그램 seohakdong_gallery

팔복예술공장

폐공장을 개조해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드는 건 이제 꽤 흔한 현상이 됐다. 그 공간을 찾아가고 싶게 만드는 건 ‘어떻게 근사하게 바꿨냐’가 아니라 ‘그 공간이 다시 볼 수 없는 옛 서사를 제대로 재현하고 있는지, 새로운 사건(전시와 행사)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지’다. 전주 시가지에서 약 6km 떨어진 외곽에 자리한 팔복예술공장은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 건축가 황순우는 1979년 카세트테이프를 만들던 쏘렉스 공장으로 문을 열었다가 25년 동안 폐공장으로 방치된 이곳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 약 1년 동안 설계도를 그리는 대신 팔복동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기억을 수집하고 예술가들과 함께 공간의 새로운 밑그림을 그렸다. 2017년 10월에 개관한 이곳은 전시뿐 아니라 창작, 공연, 교육을 아우르는 플랫폼이다. 폐산업공장의 잔존물을 예술 재료로 전환해 도시의 기억을 재구성한 《Grey Matter》, 앤디 워홀의 작품과 미디어 아티스트의 협업 전시인 《OH! My 앤디 워홀》, 그래피티와 전통적 조형언어를 결합해 한국 미감의 확장 가능성을 실험한 《전통+현대: 숨바꼭질》, 팔복동 산업지대의 재생 과정을 여덟 가지 시각예술 장면으로 해석한 《팔복팔경》 등 흥미로운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주소 전주시 덕진구 구렛들1길 46
영업시간 10:00~17:30 (월요일 휴관)
인스타그램 __palbok__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