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아래의 땅, 코타키나발루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ing & photogaphy by YEO HAYEON
  • Supported by airasia, sabah tourism board

바람 아래의 땅, 코타키나발루

Pure Kota Kinabalu

코타키나발루에 갔다. 눈이 시원해지는 자연 속에서 숨막히게 아름다운 선셋을 바라볼 수 있는 ‘순수’의 땅, 코타키나발루에서 보낸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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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7일

코타키나발루는 한국인들에게 선셋으로 명성이 높은 여행지다. 선셋 말고 뭐가 있을까? 궁금하다면 위치부터 살펴보자. 코타키나발루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자 보르네오섬 북단에 위치한 사바주의 주도이다. 보르네오섬은 세계에서 산소 배출량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눈이 시원해지는 자연 풍광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신성한 기운을 가진 깊고 울창한 정글, 불꽃 같은 털을 가진 오랑우탄들이 그네를 타듯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옮겨 다니고, 해 질 무렵이면 광활한 남중국해가 숨 막히게 황홀한 빛깔로 물드는 곳.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키나발루산과 에메랄드빛 바다를 품고 있기에, 산과 바다 중 어디로 갈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최적의 여행지다. ‘코타키나발루’는 말레이어로 ‘바람 아래의 땅’이라는 뜻. 지리상으로 태풍이 생성되는 궤도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어 1년 내내 자연재해의 영향을 받지 않아 안전하기에 가족여행객에게 최고의 여행지로 인식된 지 오래다. 건기와 우기로 구분되지만 우기에 하루 종일 비가 내리지 않는 것도 여행객이 많이 찾는 이유 중 하나다.


1DAY

AM 7:30 르메르디앙 호텔

지난 3월 5일, 코타키나발루로 향하는 에어아시아의 첫 비행기를 타고 코타키나발루 국제공항에 내렸다.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보다 약 한 시간 더 빨리 도착한 데다 공항에서 시내에 위치한 숙소까지 이동 시간이 10~15분 정도라 아침에 도착했음에도 피로감이 덜했다. 이른 아침, 호텔 인근 로컬 식당에서 락사로 코타키나발루에서의 첫 끼를 맛본 후 호텔에 체크인을 한다. 숙소인 르메르디앙 호텔은 공항에서의 접근성도 좋지만 시원한 바다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오션뷰 맛집으로 명성이 높다. 유려한 곡선으로 마감한 통유리창 너머 펼쳐진 드넓은 바다를 전세 낸 듯 즐길 수 있는 클럽 라운지와 360도로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루프톱 바는 달콤한 칵테일과 함께 바다를 물들이는 석양을 감상하기에 좋다.

PM 6:00 코콜 헤이븐 리조트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음 여정지로 향하기 위해 가이드 필립을 만났다. 필립은 코타키나발루에 온 지 12년이 됐다고 했다. “코타키나발루의 매력이요? 때 묻지 않은 자연이죠. 코로 깊이 숨을 들이마셔보세요. 공기가 정말 깨끗하단 걸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30분만 나가도 대자연이 펼쳐지는 이곳에서 그는 매주 캠핑을 즐긴다. 얼마 전에는 운전하며 캠핑하러 가는 길에 도로에서 피그미코끼리와 마주쳤다고. 해발 약 4천95미터,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산인 키나발루산은 현지인들이 조상의 영혼이 머무르는 신성한 안식처라고 믿어온 곳. 1천600여 종의 자생식물과 긴꼬리원숭이, 보르네오섬에서만 사는 코주부원숭이, 피그미코끼리, 오랑우탄, 바다악어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한다. 아쉽게도 이번 일정에 키나발루산 트레킹은 빠졌다. 아쉬운 마음은 시내에서 한 시간 거리의 코콜힐(Kokol Hill)에 가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한다. 코콜(Kokol)은 말레이어로 ‘구불구불’이란 뜻. 시내에서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이름처럼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면 해발 800미터 정상인 코콜힐에 다다른다. 고도가 높지만 차량이 다닐 수 있게 길이 잘 닦여 있다. 정상에 이르니 기온이 낮아 시원하고, 무엇보다 공기가 맑아 코가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코콜힐은 코타키나발루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수평선 너머로 붉게 물드는 석양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일몰 명소다. 최근에는 정상까지 올라가는 구불구불한 길가에 여행자를 위한 크고 작은 카페가 많이 생겼다. 그중에서도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코콜 헤이븐 리조트다. 겹겹이 포개진 산과 드넓은 바다, 그 사이에 점점이 박힌 섬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광에 구름 위로 물드는 드라마틱한 석양과 바다로 떨어지는 붉은 해를 바라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리조트 곳곳에 다양한 조형물이 많아 인생 사진을 남기기에도 좋다.

PM 7:30 필리피노 마켓

현지인의 일상에 스며들기에 시장만큼 좋은 곳도 없다. 특히 동남아시아 여행지에서 한국에서 자주 먹지 못하는 열대 과일을 마음껏 먹기 위해 재래시장은 필수 코스다. 호텔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마켓이 위치해 있었다. KK 워터프런트 북쪽에서 수공예품 시장 뒤쪽을 지나 중앙시장 전까지 이어지는 시장이 필리피노 마켓이다. 코타키나발루에 이주한 필리핀 사람들을 중심으로 열리던 작은 시장이 현지인까지 모여들며 점점 규모가 커졌다. 채소, 과일, 건어물과 현지인들이 식사를 하며 맥주 한잔을 마시는 노점까지, 맛있는 냄새와 흥겨운 열기가 가득하다. “싸다 싸~” 유창한 한국어로 호객하는 과일가게 청년에게서 사바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밤방안’이라는 야생 망고와 망고스틴을 샀다. 과일을 안주 삼아 워터프런트에서 맥주 한잔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2DAY

AM 10:30 마리 마리 민속촌

코타키나발루의 시장이나 반딧불이 투어를 가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마리 마리’다. 이는 ‘오세요, 오세요’라는 뜻. 마리 마리 민속촌(Mari Mari Cultural Village)은 사바 지역에 거주하는 5개 부족의 전통 가옥과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한 마을이다. 원주민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5개 부족이 살았던 독특한 가옥들을 둘러보며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사바주에서 원주민은 사바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키포인트다. 사바는 50개 이상의 언어와 80개 민족 방언을 사용하는 33개 원주민 그룹으로 생성되어 있다. 사라져가는 원주민의 언어와 요리, 음악, 춤 등 민속을 보존하고 전통 생활 방식을 후대에 계승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마리 마리 민속촌이다. 사바에서 가장 큰 부족인 두순족의 집에서는 쌀로 만든 술을 맛보고, 룽구스 부족의 집에서는 대나무와 코코넛을 비벼 불을 붙이는 경험을 해본다. 해상을 떠돌았던 바자우족이 만든 화려한 직조물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있다. 이런저런 체험과 전통주와 먹거리로 요기를 하다 보면 배도 부르고, 원주민의 생활상에 흥미가 생긴다. 현재 숲속에 사는 원주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키나발루산 계곡에는 극소수의 원주민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투어의 마지막은 관람객이 모두 모여 전통 공연을 관람하며 다 같이 어울리는 뱀부 댄스로 마무리된다.

PM 1:00 파파르 래프팅

코타키나발루의 대자연을 체험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강의 급류를 따라 즐기는 래프팅이다. 코타키나발루의 강줄기를 따라 여러 곳에서 래프팅을 즐길 수 있다. 키울루, 페이퍼, 파파르 등 여러 포인트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파파르(papar)는 물살이 잔잔해 어린아이도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코스다. 시내에서 40~50분 차를 타고 깊은 계곡으로 들어간다. 휴게소에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사륜구동 차를 타고 상류로 올라간다. 한탄강이나 동강에서 익스트림한 래프팅을 즐기던 한국인이라면 약간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덕분에 한적하게 주변 풍경을 감상하는 묘미가 있다. 급류가 없는 지점에 이르면 자연이 만든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기 위해 강물로 뛰어든다. 깊게 우거진 정글과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유유자적 헤엄치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지점에 다다른다. 래프팅이 끝나면 삼겹살 바비큐와 열대 과일로 이루어진 식사를 즐긴다. 물놀이 후에 먹는 식사는 그야말로 꿀맛이다.

PM 6:00 탄중아루 세컨드 비치

탄중아루 해변은 코타키나발루에서 손꼽히는 일몰 명소다. 시내에서 서남쪽으로 차를 타고 20분 정도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데다 해변의 길이가 2킬로미터 정도로 길고, 폭도 넓어서 해변가를 거니는 재미가 있다. 단점이 있다면 일몰 시간 무렵엔 선셋을 보러 모인 관광객과 현지인들로 붐빈다는 것. 필립은 사람들이 덜 붐비는 탄중아루 세컨드 비치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탄중아루 샹그릴라 리조트 옆쪽에 위치한 바닷가는 탄중아루 메인 해변과 워터프런트보다는 한적한 편이다. 관광객보다는 선셋과 바닷가 피크닉을 즐기러 온 현지인이 더 많았다.
비가 내렸는데도 오후 6시가 넘자 구름을 머금은 하늘이 온통 짙은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뉘엿뉘엿 바다로 빠지는 붉은 태양을 따라 한 아이가 파도를 향해 달려간다.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아이들 틈에 섞여 낭만적인 선셋 타임을 즐긴다. 문득 왜 이곳이 세계 3대 석양 명소에 꼽혔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날씨가 좋든 나쁘든 코타키나발루의 일몰은 평균 이상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3DAY

AM 11:00 가야 아일랜드

섬 여행의 묘미는 섬 호핑 투어다. 사피섬, 마무틱섬, 가야섬, 술룩섬, 마누칸섬 총 5개 섬으로 이루어진 툰구 압둘 라만 해양국립공원은 코타키나발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 코스로 꼽힌다. 제각각 아름다운 섬들을 구경하고, 스노클링을 비롯한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다양한 투어 상품이 운영된다. 한국에서 미리 투어 상품을 예약하거나 제셀톤포인트에서 섬 투어를 직접 신청해도 된다. 제셀톤포인트에서 해양공원에서 가장 큰 섬인 가야섬(Gaya Island)으로 향하는 보트에 올라탔다. 일행을 실은 보트가 맑은 바다를 시원하게 질주한다. 20분 정도 달리니, 이윽고 섬이 보인다. 가야섬 동쪽에는 고급스러운 리조트가 자리해 조용히 머무는 여행자들이 있고, 섬 남쪽으로는 수상가옥에 사는 현지인 마을이 이어진다. 가야섬 서쪽으로 사피섬과 마주한 작은 해변인 파당 포인트 비치(Padang point beach) 선착장에 여행자들을 태운 배가 오간다. 선착장 앞에 위치한 작지만 아름다운 해변은 물 색이 아름답고 파도가 잔잔해 스노클링, 패러세일링 등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즐기기에 좋다. 준비해간 스노클링 장비를 장착하고 투명한 물속을 유영한다. 물고기와 함께 헤엄치다 나와서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하얀 모래사장에 누워 망중한을 즐긴다.

PM 6:30 까왕 비치, 베링기스

아무리 아름다운 석양도 매일 보면 질리지 않을까? 필립은 말했다. “하루도 같은 빛을 보여주지 않아요. 오늘은 오늘의 석양이 있을 뿐이죠.” 마지막 날 밤은 필립이 아는 비장의 선셋 장소로 향했다. 마침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장소와도 가깝다고 했다. 시내에서 30분가량 차를 타고 가면 반딧불이 포인트로 유명한 베링기스에 다다른다. 트래픽으로 차가 거북이처럼 움직였다. 차창 너머로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는데 마음이 급해졌다. 작은 선착장에 도착해서 배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하면 강과 바다가 합쳐지는 곳을 지나 까왕 비치(Kawang Beach)에 이른다. 이곳이 바로 필립이 말한 선셋 명소. 바닷가에 발을 딛자마자 카메라를 들고 바다 위로 떨어지기 시작한 빛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넘어가는 해를 놓칠세라 전속력으로 달리는 모습에 문득 웃음이 나왔다. 어린 시절, 떠나가는 기차에 올라타기 위해 뛰던 속도와 맞먹었기 때문이다. 뜨거웠던 적도의 태양이 남긴 열기가 식을 무렵, 하늘과 바다가 타들어가는 붉은빛으로 물들어간다. 바닷속에 비친 반영 샷은 황홀함을 배가한다. 코타키나발루 시내에선 쉬이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순식간에 어둠으로 물든 바다를 보며 아름다운 순간은 항상 짧다는 진리를 되새긴다.
어둠이 시작되면 또 다른 쇼가 시작된다. 베링기스 강을 따라 어둠을 헤치며 나아가 도착한 맹그로브 숲. 인공 불빛이 하나도 없는 배를 타고 가이드가 손전등으로 신호를 보내면 별처럼 반짝이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언제인지도 기억할 수 없던 시절에 먼 친척이 사는 깊은 산골마을에서 한 번 본 반딧불이. “앗, 반딧불이다.” 반딧불이를 보자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처럼 감탄이 새어나왔다. “마리 마리~” 외치면 하나둘씩, 반짝이는 빛이 늘어난다. 손에 날아든 반딧불이를 보자 별을 잡은 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반딧불이 하나에 이럴 일인가?’ 반딧불이는 1급수의 물이 있는 청정 지역, 맹그로그 숲에서도 산소가 많은 곳에 서식한다. 까만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반딧불이를 보는 것도 즐겁지만 반딧불이를 존재하게 하는 환경 조건 자체가 이미 여행자에겐 선물이나 다름없다. 인공적인 불빛이 하나도 없는 까만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 깊은 어둠 속에서 긴 머리카락처럼 바람에 흔들리던 맹그로브 숲, 잔잔한 강물,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거리는 반딧불이. 사진에 다 담기지 않는 맑고 깊은 고요함이 오랫동안 가슴속에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