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가의 땅, 옐로나이프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ING&PHOTOGRAPHY BY YEO HAYEON
  • SUPPORTED BY Destination Canada, Northwest Territories Tourism, Indigenous Tourism Association of Canada

탐험가의 땅, 옐로나이프

The Northern Wilderness of Yellowknife

캐나다 북부 노스웨스트 준주의 주도인 옐로나이프는 오로라의 성지이자, 선주민 문화와 북극 탐험가 정신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도시다. 탐험가처럼 종횡무진한 옐로나이프의 낮과 밤.
  • WRITING&PHOTOGRAPHY BY YEO HAYEON
  • SUPPORTED BY Destination Canada, Northwest Territories Tourism, Indigenous Tourism Association of Canada
2025년 11월 11일

“가본 데 중 어디가 가장 좋았어?” 다음으로 많이 듣는 질문은 “그럼 정말 꼭 가고 싶은 곳이 어디야?”다. 여행 잡지를 만들며 웬만한 곳은 다 가봤다. 그래도 정말 딱 하나 여행 기자로서 버킷리스트를 꼽으라고 한다면 ‘오로라’를 보는 것이었다. 빌 브라이슨은 <발칙한 유럽산책>에서 노르웨이 최북단 함메르페스트까지 갔다가 보름 만에 오로라를 만났다. 그가 오로라를 찾아가는 여정을 읽다 보면 오로라와 상관없는 지역에 사는 인간이 오로라를 영접한다는 것은 일생 한 번 이룰까 말까 하는 엄청난 행운이란 사실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오로라 성지라는 곳에 가도 비가 와서, 구름이 껴서 등등 보지 못할 확률도 낮지 않다. 나는 빌 브라이슨처럼 시간이 많지 않았다. 큰맘 먹고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실현하러 갔는데 오로라를 보지 못하고 온다면 낭패다. 될 수 있으면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곳으로 가야 했다.
캐나다 북부 노스웨스트 준주의 주도이자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Great Slave Lake) 북쪽에 위치한 옐로나이프(Yellowknife)는 캐나다에서도 극지방에 가까운 곳으로 끝없는 광야와 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오로라로 여행객을 불러들인다. 옐로나이프는 오로라 오벌 바로 아래 위치한다. 1년 내내 오로라가 쉽게 형성되는 최적의 환경을 지닌 북위 60~70도 지역을 오로라 오벌이라고 하는데, 옐로나이프는 북위 약 62도에 위치해 연중 약 240일간 오로라가 출현한다. 따라서 4박 체류할 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이 98%다.
에드먼튼 공항에서 탄 비행기는 2시간 후 옐로나이프 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의 박제된 북극곰을 보니 북극권에 접근한 것이 실감났다. 옐로나이프, 일명 ‘노란 칼’은 ‘노스웨스트 준주의 선주민인 데네족이 만들고 거래했던 구리로 만든 도구’에서 온 이름이다.
옐로나이프는 1930년대 금광 발견으로 설립된 도시다. 초기에는 금광 개발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나 이후 천연자원 채굴과 관광업을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 옐로나이프는 인디지너스(선주민) 문화와 북극 탐험가 정신이 어우러진 독특한 도시다.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와 오로라, 박물관에서 만난 수공예품, 전통 음식 등 옐로나이프를 이루는 모든 것에 선주민의 문화와 영혼이 서려 있다.

오로라 여행지로 옐로나이프가 좋은 건 가을에도 오로라 관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Yoounsang

오로라를 찾아서
“2025년은 약 11년 주기로 반복되는 태양 활동 극대기라고 해요. 극대기 대략 2년 전부터 태양 활동이 활발해지고 오로라 볼 확률도 높아지죠.” 캐나다관광청 한국사무소 권나영 실장의 이야기를 들으니 기대감이 더 커졌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깐 호텔에서 쉰 후 두툼한 외투로 갈아입고 호텔을 나섰다. 오늘부터 4일 동안, 밤 9시에 투어를 시작해서 새벽 2시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시차 적응(재스퍼에서 열린 고미디어 행사에 참석차 4일 전에 캐나다에 도착했다)에 실패해서 수일째 수면 부족에 시달렸지만 오로라를 보러 갈 생각을 하니 정신이 오히려 또렷해졌다.
일교차가 크긴 했지만 밤 9시 기온이 약 5℃. 한국의 늦가을에서 초겨울 날씨였다. 새벽에 기온이 더 떨어질 것을 생각해서 모자와 목도리, 안에 껴입을 경량 패딩도 하나 챙겼다. 오로라 여행지로 옐로나이프가 좋은 점은 봄, 가을에도 오로라 관측이 가능하다는 것. 영하 20℃를 육박하는 추위 때문에 카메라가 작동이 안 되어서, 손이 얼어서, 기타 등등 오로라를 감상하는 데 장애가 되는 이유가 없어지니 얼마나 편리한가. 가을이 또 좋은 건, 오로라가 뜨기를 기다리며 다양한 액티비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을을 맞이하여 여름 동안 잠시 쉬어가던 오로라 투어 업체와 로지가 다시 문을 연다.
첫날 오로라 뷰잉은 B. 데네 어드벤처(B. Dene Adventures)와 함께 했다. ‘B. 데네 어드벤처’는 옐로나이프 선주민 공동체인 딘 퍼스트네이션에 소속된 보비 드라이기스(Bobby Drygeese)가 운영하는 오로라 투어 업체다. 선주민(데네)이 운영하는 이 투어는 단순히 오로라만 보는 게 아니라, 선주민의 역사와 전설을 들으며 그들의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투어 버스를 타고 30여 분 달려가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 기슭에 위치한 그의 캠프에 도착했다. 따뜻한 오두막 안에는 중국, 일본, 미국, 영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데네는 수천 년 전부터 노스웨스트 준주 일대,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 주변에 정착해 살아온 선주민이다. ‘데네(Dene)’는 그들의 언어로 ‘사람들’이란 뜻으로, 옐로나이프 전체 인구 중 약 10~15%를 차지하고 있다. 디타(Dettah) 출신인 보비는 조부모, 부모 대대로 지역사회를 이끄는 역할을 해왔다. “할머니는 103세까지 사셨는데 데네의 전통, 역사 이야기를 공유해주었어요. 저는 그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고, 이 땅을 존중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가족들과 친구, 함께 일하는 것이 가장 보람됩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함께 사냥과 낚시를 했고, 우리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손님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함께 이 투어를 운영하고 있죠.” B. 데네 어드벤처는 2009년부터 시작됐다. 보비는 2011년 윌리엄 왕세자와 케이트 왕세자비가 옐로나이프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만나기도 했다.
오로라를 기다리는 사이에 보비가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에서 잡은 흰살생선을 직접 회 뜨는 것을 보여주었다. 구운 생선 요리와 갓 구운 전통 빵 배넉(Bannock)으로 배를 채운 후 선주민 전통악기인 북을 함께 연주했다. ‘둥둥둥’ 북소리와 함께 선주민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밤 12시 즈음 오로라를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불을 밝힌 티피(전통 천막) 위 까만 하늘에서 별빛이 머리 위로 쏟아질 것처럼 반짝였다. 맑은 하늘을 보니, 예감이 좋다. 이윽고 초록빛과 보랏빛이 서서히 하늘을 물들였다. 캠프 밖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흩어진 사람들의 감탄이 쏟아진다. 화려하게 춤을 추진 않았지만 가문비나무 위로 신비로운 초록빛이 일렁였다. 생애 처음 본 오로라는 조용하지만 강렬했다. 더 멋진 오로라를 보기 전까지는 생애 최고의 북극광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아늑하고 따뜻한 트레이시의 오두막. ©Yoounsang

오로라 사냥꾼
다음 날은 ‘노스 스타 어드벤처(North Star Adventures)’ 에서 운영하는 오로라 헌팅 투어에 참여했다. 저녁 8시 30분. 버스에 오르자 조 버펄로 차일드가 버스에 탄 사람들의 국적에 맞게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는 물론 영어, 스페인어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옐로나이프에서 조만큼 오로라에 대해 흥분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는 이곳에서 20년간 ‘노스 스타 어드벤처스’를 운영해왔는데, 이 역시 선주민이 운영하는 회사다.
“사람들은 저에게 묻죠. 매일 오로라를 보는데 질리지 않나요? 아니요. 어떻게 질리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오로라는 항상 우리 곁에 있었어요. 오로라는 나와 선주민의 문화, 조부모님 사이를 연결해주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조는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그에게 오로라가 빠르게 춤추는 것은 최근에 떠난 누군가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반대편에서 누군가 메시지를 보내고 있어요. 나는 괜찮아. 더 이상 슬퍼할 필요가 없어. 오로라는 아이들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막아주었어요.” 오로라는 선주민들이 땅과 자연, 모든 야생 동물을 존중하도록 배운 것처럼 그들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3월, 4월, 8월 중순, 9월이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최적기죠. 한 달 중에서는 보름달이 뜨는 시기를 피하세요. 보름달이 뜨기 7일 전, 7일 후가 오로라를 관측하기 가장 좋아요.” 조와 함께 하는 오로라 헌팅 투어는 구름, 기상 조건 등을 고려해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최적의 지점을 찾아 이동한다.
“오로라 뷰잉, 캐빈, 돔 등 여러 형태가 있는데 20년 전 헌팅 투어는 우리 회사가 유일했어요.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에서 낚시와 사냥하는 법을 배웠죠. 할아버지는 배를 타려면 날씨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때 배운 것이 지금 오로라를 찾는 데 도움이 되죠. 공학을 전공한 것도 도움이 돼요. 흐린 밤이면 도로에서 5km 정도 벗어나 하늘을 살피고, 직감이 ‘서쪽으로 가자’고 하면 45km를 더 이동해 맑은 하늘을 찾아갑니다. 같은 날 한 장소에 머물던 사람들은 구름 때문에 아무것도 못 봤다고 하더군요. 그들은 한 곳에 머물며 30분마다 밖을 내다봤지만 우리는 240km를 이동해서 오로라를 찾았어요. 그렇게 우리는 세계 최초의 오로라 헌팅 투어 회사가 됐습니다. 왜 헌팅이라고 부르게 됐냐면, 할아버지가 사냥을 할 때 저를 데리고 다니셨기 때문에 ‘chasing’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지만 ‘hunting’이란 단어를 쓰고 싶었어요.”
차를 타고 40여 분 달려 첫 번째 포인트에 다다랐다. 인공적인 불빛이 전혀 없는 지점에 이르자 휴대폰도 잘 터지지 않았다. 차 밖에 나와 15분 정도 기다리니, 작은 리본처럼 연녹색 선이 나타났다. 순식간에 리본의 색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하늘 위엔 실크를 펼친 듯한 초록 광선이 퍼졌다. 10여 분이 지나자 초록빛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리고 점점 더 빠르게 휘감으며 하늘을 헤집었다. “오늘 오로라는 굉장합니다. 지금이 최대 활동 시간이에요. 3초 동안 젖먹던 힘을 다해 휴대폰이 흔들리지 않게 꼭 붙잡으세요.” 조의 안내대로 모두 휴대폰을 하늘 높이 쳐든다. 조는 훌륭한 사진사이기도 하다. 오로라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순간을 사진으로 멋지게 기록해준다. 녹색 띠가 소용돌이치며 하늘을 가득 채웠다. 횃불처럼 타올랐다가 로켓 궤적처럼 포물선을 그렸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차로 새벽 2시까지 오로라를 쫓아 달렸다. 포인트마다 오로라는 다른 모습을 띠었다. 우주에서 벌이는 화려한 쇼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음식과 술, 이야기가 있는 오두막
오로라를 만나는 방법은 다양하다. 크게는 오로라 뷰잉과 오로라 헌팅. 뷰잉은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 머물며 보는 것, 헌팅은 오로라를 찾아다니며 보는 것. 뷰잉에서는 사이트의 위치가 중요하다. 보통은 오로라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뷰잉 사이트가 만들어지는데, 빌리지나 돔, 혹은 캐빈 등의 형태를 띠고 있다. ‘노스 오브 60 오로라 어드벤처’는 개방감 있게 설계된 투명한 돔을 갖추고 있어 실내에서도 오로라를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아늑한 소파와 라운지체어, 테이블이 놓인 내부에서 따뜻한 음료와 스낵을 즐기며 오로라를 기다릴 수 있어 편리하다. 아쉽게도 셋째 날엔 구름에 가려져 오로라를 눈으로 볼 수 없었다.
마지막 날 밤엔 트레이시 테리엔(Tracy Therrien)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노스웨스트 준주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트레이시는 메티스(선주민과의 혼혈 민족)로 ‘버킷리스트 투어(Bucketlist Tour)’를 운영하며 옐로나이프를 방문한 여행객들을 안내해왔다. 오두막에 가기 전, 옐로나이프 시티 투어를 가이드하며 트레이시는 자신의 집에 초대하는 것처럼 살갑게 사람들의 취향을 물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술은요?” “와인, 맥주 중 뭘 좋아하나요?” 도시의 불빛과 멀어질수록 기대감은 커졌다. 차로 20여 분 달리자 수풀 사이에 자리 잡은 오두막에 도착했다. 알록달록한 그릇과 집기로 장식된 내부는 마치 사람이 살고 있는 집처럼 온기가 가득했다. 모피 코트를 입어보면서 사진을 찍을 수도 있고, 삼각대도 대여해준다. 트레이시가 직접 만들어준 클램차우더 수프와 배넉을 먹으며 몸을 녹였다. 치즈, 스낵과 함께 와인을 마시며 오로라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자정 무렵, 오두막 앞 넓은 덱으로 나갔다. 밖은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고요했다. 은은하게 하늘 저편에서 초록빛이 퍼졌다. 보랏빛, 붉은빛도 섞여 있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둘째 날 본 것처럼 색이 강렬하진 않지만 움직임은 더 컸다. 가느다란 리본처럼 천천히 펼쳐지던 빛은 어느 순간 거대한 녹색 커튼을 만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발밑 덱의 삐걱거림과 가벼운 숨소리만이 가득한 공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순간, 세상에는 오로지 오로라와 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의 선착장. 몇몇 회사가 보트를 타고 호수를 둘러보는 보트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옐로나이프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
울창한 숲과 거대한 호수에 둘러싸인 옐로나이프는 거칠고도 고요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간의 흔적이 공존한다. 높은 빌딩과 낮은 건물이 뒤섞인 다운타운은 소도시 특유의 빈티지한 감성이 가득하다. 관공서와 쇼핑센터, 뮤지엄 등이 모여 있는데, 건물 곳곳에 선주민 문화를 담은 알록달록한 그림과 문양이 그려져 있어 토속적인 분위기가 묻어난다.
도심 중심부에 위치한 ‘프린스 오브 웨일스 노던 헤리티지 센터(Prince of Wales Northern Heritage Centre)’는 노스웨스트 준주의 문화와 역사를 아우르는 박물관이자 아카이브로 옐로나이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되는 곳이다. 노스웨스트 준주 전역의 문화유산과 자연사, 고고학 유물 등 7만5000개의 오브제와 35만여 장의 사진 및 희귀 도서를 소장하고 있다. 금광 시대부터 데네족의 문화, 채굴 역사 등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조 버펄로 차일드는 데네족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며 박물관을 안내했다.
“약 5만 년 전 빙하기 때 베링 육로를 통해 이동해온 데네족은 일부는 남쪽 애리조나, 뉴멕시코까지 내려갔어요. 이곳에 어린 시절 리틀 버펄로강에서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것과 같은 텐트가 있어요. 가문비나무 잎을 바닥에 깔아서 텐트를 만들었죠. 이 배는 데네족의 전통 배로 무스 가죽으로 만들었어요. 배 하나 만드는 데 2~4주가 소요되고 여덟 마리의 무스가 필요했죠. 데네족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모두 배를 만들 수 있었어요.” 박물관은 데네족의 의식주는 물론 무스, 카리부, 북극곰, 고래 등 북부 캐나다의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옐로나이프의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와 산은 데네족의 생명의 원천입니다. 이 땅이 우리의 슈퍼마켓이고 약국이고 교회이자 학교죠.” 선주민은 유럽인이 들어오면서 전염병과 식민화, 그리고 기숙학교 제도로 위기를 겪었다. “19~20세기 초, 선주민 아이들을 가족과 문화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시행한 기숙학교 제도로 인한 세대 간의 트라우마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하지만 최근 젊은 세대가 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와 문화 복원과 치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조의 데네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현재에 대한 이야기는 옐로나이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북부 캐나다의 생생한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또 하나 있다. ‘네이처스 북부 야생돔물 갤러리(Nature’s North Wildlife Gallery)’는 단순히 동물을 박제해 전시하는 갤러리가 아닌 노스웨스트 준주에 사는 야생동물의 삶을 리얼하게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렉 로버트슨(Greg Robertson)과 딘 로버트슨(Dean Robertson) 두 형제는 고등학생 때부터 박제를 시작했고, 1997년 국제박제대회에서 수상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곳에 전시된 동물은 로드킬당했거나 자연사한것, 혹은 토착 사냥꾼이 식량이나 생활용으로 사냥한 동물의 가죽이나 모피를 구입한 것이다. 부모들이 새끼를 보호하는 모습, 북극곰이 얼음 구멍을 통해 사냥하는 모습 등 자연 상태에서 순간 포착된 것처럼 구성되어 더욱 생생하다. 각종 곰과 나사(NASA)가 발견한 세계에서 가장 큰 비버 중 한 마리, 약 900kg의 들소도 만나볼 수 있다.

에 나와 유명해진 버펄로 에어웨이즈의 빈티지 항공기.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 보트 투어를 하면 다양한 하우스 보트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개척자의 도시
북부 캐나다의 극한 자연환경은 ‘하늘 위의 개척자’들을 탄생시켰다. ‘부시 파일럿’은 교통 인프라가 거의 없던 시절 작은 비행기로 사람, 물자, 우편 등을 운송했던 조종사를 뜻한다. 옐로나이프라는 도시가 생기기 전, 부시 파일럿은 모험을 찾아 광활한 황무지로 향했다. 올드타운 ‘더록(The Rock)’에 위치한 부시 파일럿 기념비는 1920~1930년대 비행 개척에 중요한 인물들이자, 거친 지형 때문에 물자를 실어 나르다 목숨을 잃은 조종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올드타운에 높이 솟아 있는 암반지대인 더록은 과거에는 마을의 물탱크가 설치돼 있던 곳으로 현재는 올드타운과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 백 베이, 옐로나이프 베이 등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항공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버펄로 에어웨이즈(Buffalo Airways)’ 투어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다. 1970년, 조 맥브라이언에 의해 설립된 버퍼로 에어웨이즈는 북극권 인근의 험준한 기후와 외진 지형에서 오래된 비행기를 운용하며 화물, 산불 진화 등의 임무를 수행해 명성을 쌓은 항공사다.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직후 제작된 복엽 또는 피스톤, 터보프롭 엔진 항공기를 이용해 화물과 승객을 운송한 레트로 항공사로 팬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시리즈 에 나와 유명해졌다. 조 맥브라이언을 비롯해 실제 직원들이 등장해 캐나다 북부 지역의 항공산업을 리얼하게 보여주었다. 항공사 투어를 하면 ‘덕(Duck)’이라 불리는, 물과 육상 모두에서 이착륙 가능한 소방용 비행기 CL-215를 비롯해 C-46, DC-4 등 다양한 레트로 항공기를 둘러볼 수 있어 흥미롭다. 공짜지만 예약 필수.
다운타운에서 언덕을 내려와 동쪽으로 20여 분 정도 걸어가면 올드타운에 이른다.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 연안에 자리 잡은 올드타운은 1930년대 금광 붐이 일기 시작한 시기에 형성된 동네다. 거대한 호수를 끼고 오래된 목조주택과 부티크 하우스, 수상가옥이 뒤섞여 극도시 특유의 자유로우면서도 빈티지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갤러리나 예술가들의 스튜디오, 기념품 가게, 수상비행기가 오르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글라스 워크숍(Glass Workshops)’은 올드타운에 위치한 환경 예술 공방으로 버려진 유리병을 새로운 예술품으로 되살리는 곳이다. 1991년에 문을 연 글라스 워크숍은 처음에는 단순한 재활용 사업으로 출발했지만 점점 여행객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체험형 예술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다. 오너인 매튜 그로고노는 기존의 재활용(리사이클)을 확장한 4R 운동(Rethink, Reduce, Reuse, Recycle: 다시 생각하고, 줄이고, 재사용하고, 재활용하라)을 주장한다. 이는 쓰레기를 줄이는 것을 넘어 사람들의 의식과 소비 습관을 바꾸는 것으로 이어진다. “저는 경제적으로도 지속 가능하면서 환경적으로 유익한 예술 활동이 가능함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곳에서는 버려진 병을 절단해 화병, 컵, 램프 등을 만드는 체험을 해볼 수 있다. 그의 안내대로 스텐실로 자신이 고른 디자인을 붙인 뒤 모래 분사기를 이용해 표면에 무늬를 새겼다. 기계 장비 대부분은 매튜가 직접 만든 것이다. 낡은 세탁기의 모터, 진공청소기 부품, 러닝머신 모터 등을 사용해 유리 절단기와 연마기를 제작했다. 모래 분사기의 물 순환 장치는 커피 메이커의 내부 시스템을 응용해서 만든 덕분에 물 사용량의 50%가 줄었다. “이건 ‘북부의 즉흥적 발명 정신(Northern Ingenuity)’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어요. 한정된 자원 속에서도 창의력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죠.” 매튜와 함께한 유리공예 체험으로 곰과 순록이 뛰노는 무늬가 들어간 세상에 하나뿐인 유리컵을 갖게 된 것뿐 아니라 ‘삶의 순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올드타운의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에서는 보트 투어도 가능하다. 글라스 워크숍에서 나와 ‘선독 어드벤처(Sundog Adventures)’와 함께하는 보트 투어에 참여했다. 나무로 된 부둣가로 가 소형 보트에 올라탔다. 보트가 천천히 속도를 높여 호수로 나아가자 눈앞에 울울창창한 자작나무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는 깊이가 614m로 북미에서 가장 깊은 호수다. 호수 아래쪽을 향해 눈을 돌리니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멍이 지구 밑으로 뚫려 있는 듯한 느낌이다. 곧이어 깊고 푸른 호수 위에 둥둥 떠 있는 형형색색의 집들이 나타났다. 옐로나이프의 하우스 보트 마을이다. 여름엔 카약으로 오가고, 한겨울엔 꽁꽁 언 호수 위를 걸어 다닌다. 하우스 보트 중엔 사우나도 있고, 주차장도 있다. 올드타운에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싶다면 ‘불럭 비스트로(Bullock’s Bistro)’에서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 인근에서 잡은 생선으로 만든 요리를 맛보는 게 좋다. 피시앤칩스, 팬프라이, 오픈그릴드 등 다양한 스타일로 조리된 메뉴 중 고를 수 있다. ‘NWT 브루잉 컴퍼니(NWT Brewing Company/The Woodyard Brewhouse & Eatery)’에서는 북부 캐나다의 맑은 물로 만든 로컬 비어를 맛볼 수 있다.

옐로나이프에서 야생을 만나는 법
북부 캐나다에서 야생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느끼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캐머런 폭포 트레일(Cameron Falls Trail)’은 옐로나이프에서 동쪽으로 45~50km 떨어져 차를 타고 1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다. 오전에 출발하면 점심 시간 전까지 가벼운 트레킹을 즐길 수 있어 현지인에게도, 여행객에게도 인기 있는 코스다. ‘마이 블랙야드 투어(My Blackyard Tours)’의 스테이시가 우리를 안내했다. “곰이 나타날 수 있으니, 먹을 거 가져온 분이라면 조심하세요. 냄새를 맡고 달려들 수도 있으니까요.” 가방을 살펴본 후, 트레킹을 시작했다. 노란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자작나무와 검푸른 가문비나무, 이끼 낀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가을산의 빛이 부드럽게 번졌다. 울긋불긋 화려한 단풍으로 물든 것이 아닌 북부 캐나다의 거친 느낌이 혼재되어 더 자연스러웠다. “캐머런 폭포와 강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예요. 고등학교 시절엔 카누를 들고 캐머런 폭포를 지나 히든 레이크까지 가곤 했죠.” 스테이시의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 집 앞에도 이런 하이킹 코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문비나무의 청량한 향, 젖은 흙의 스모키한 향이 코를 자극했다. 완만한 흙길, 나무 덱과 바위, 다리를 건너면 캐머런강의 잔잔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길을 지나 드디어 캐머런 폭포에 이르렀다. 거센 하얀 물줄기가 검은 편마암 절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는 장관이었다. 길지는 않지만 오르막, 내리막, 흙길, 덱, 바위까지 다양한 코스를 걷다가 마침내 만난 폭포는 전채 요리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음식을 먹다가 메인 요리를 먹고 나서 클라이맥스에 치달은 것 같은 감동을 선사했다. 이 짧은 하이킹 코스는 캐나다 북부의 순수한 자연을 압축해서 체험할 수 있는 코스로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