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 Bank
도심 속 휴양지, 사우스 뱅크
2 아버는 사우스 뱅크의 상징적인 구조물이다. 해가 강렬한 도시에서 산책자의 그늘이 되어준다.
3 공원 안엔 아이를 동반한 가족을 위한 시설과 프로그램이 많다.
드디어 스트리츠 비치(Streets Beach)다. 브리즈번행이 결정됐을 때 이곳이 가장 궁금했다. 몇 발자국 거리에 카페와 아이스크림 가게, 다이닝과 펍이 즐비한 먹자 골목이 있고 눈앞엔 물비늘 반짝이는 강과 윤슬처럼 빛나는 고층 빌딩이 도열한 풍경이 펼쳐지는 곳. 조감도처럼 비현실적 풍광은 과장이 아니었다. 야자수, 밀키 블루빛 라군, 물놀이를 즐기다 아이스크림 트럭 앞에서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을 보자마자 짐과 옷을 벗어 던졌다. 서울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무더운 날마다 이런 장소를 얼마나 꿈꿨는지. 굳이 휴가를 낸 후 돈과 시간과 체력을 펑펑 소비해야 닿을 수 있는 호사를 브리즈번에선 지극히 평범한 일상으로, 원한다면 매일 누릴 수 있다. 모튼 베이(Moreton Bay)의 루스 해협에서 공수한 부드러운 모래가 뜨겁게 느껴질 때쯤 시원한 보트풀에 발을 담갔다. 바로 옆 아쿠아비티라는 이름을 가진, 제법 큰 풀 위에 튜브를 띄우고 코앞의 강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한다. 비치 타월과 읽을 책 한 권 챙겨 온 이들의 평화로운 일상 앞에서 치미는 부러움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길을 재촉했다.
이후의 여정은 “나 브리즈번에 살고 싶어”의 연속이었다. 리버 키(River Quay)와 피크닉 아일랜드 그린(Picnic Island Greens)엔 친구, 연인, 반려견과 소풍을 즐기는 로컬들이 있다. 부겐빌레아 꽃 넝쿨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산책로 아버(The Arbour)와 도마뱀, 새, 물고기가 서식하는 산책로 레인 포레스트 워크(Rainforest Walk)를 지나면 이 도시의 랜드마크인 대관람차 휠 오브 브리즈번(Wheel of Brisbane)과 브리즈번 사인(Brisbane Sign)이 나타난다. 관광객이 두 명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 로컬은 ‘컬처럴 센터’로 통하는 뮤지엄 지구로 직진한다. 퀸즐랜드 퍼포밍 아트센터(Queensland Performing Arts Centre)를 지나자마자 시작되는 뮤지엄 산책길의 거리는 약 500m, 직진하면 느린 걸음으로 10분 거리지만 이곳을 제대로 누리려면 하루도 부족하다. QAGOMA로 통칭되는 퀸즐랜드 아트 갤러리(Queensland Art Gallery)와 갤러리 오브 모던 아트(Gallery of Modern Art)는 2만여 점의 컬렉션을 보유한 미술관. 그 사이에 위치한 퀸즐랜드 뮤지엄 사이언스 센터(Queensland Museum and Sciencentre)는 영겁의 세월 전 이 땅에 살았던 공룡의 흔적을 비롯해 고대 생물의 화석 등을 소장한 자연사 박물관이다. 무려 공짜로 누릴 수 있는 컬처럴 센터의 곳곳을 시시콜콜 참견하듯 구경하다가 퀸즐랜드 주립도서관(The State Library of Queensland)에 안착했다. 낯선 도시에서 잠시라도 사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땐 도서관을 찾는다. 잘 가꿔진 화단과 무성한 나무들, 강변 산책자와 브리즈번강이 한눈에 담기는 통창을 가진 라운지에 앉아 인증 사진을 찍는 대신 이 도시의 원룸 월세를 검색했다. 근사한 뷰를 가진 도서관에서 책 읽고 글 쓰다 미술관에 들른 후 공원에서 잠시 소풍을, 그러다 더워지면 스트리츠 비치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일상이라니. 이런 데서 살아볼 궁리를 하지 않기란 식욕을 참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2 QAGOMA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전시가 많다.
사우스 뱅크에서 로컬처럼 휴일을 보내고 싶다면
- 다이닝 탐험
스트리츠 비치로 진입하는 입구에 서면 허공에 내걸린 ‘EAT SOUTH BANK’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사우스 뱅크 공원(South Bank Parklands) 일대는 브리즈번 로컬 사이에서 미식 지구로 통하는 곳이다. 리틀 스탠리 스트리트(Little Stanley St.)와 그레이 스트리트(Grey St.)엔 캐주얼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이 즐비하다. 강을 바라보며 브런치를 즐기기엔 아버 뷰 카페가 제격.
- 도시 텃밭 즐기기
공원 안에 자리한 에피큐리어스 가든(Epicurious Garden)은 브리즈번의 공공 텃밭이다. 갓 수확한 채소와 허브, 과일을 사거나 화·수·목요일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 운영하는 하비스트 카트(Harvest Cart)에서 무료 시식, 원예와 재배 노하우를 배워볼 수 있다.
주소 Formal Gardens, Clem Jones Promenade near South Bank
- 음악 들으며 소풍
매주 일요일 리버 키 앞에선 감미로운 라이브 음악이 들려온다. 피크닉을 즐기며 브리즈번 로컬 뮤지션들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선데이 소셜 온 더 그린(Sunday Social On The Green)’ 얘기다. 인근의 레스토랑 리버 키 피시(River Quay Fish)와 더 제티(The Jetty)에서 소풍객을 위한 피크닉 키트를 미리 예약해두면 금상첨화.
Fortitude Valley
쾌락주의자의 놀이터, 포티튜드 밸리
몇 년 전 브리즈번에 왔을 때, 누군가 내게 이 도시의 첫인상을 물었다. “제법 큰 도시인데도 어딘가 조금 촌스러워.” 그때 했던 이 대답을 오늘, 제임스 스트리트(James St.) 위에서 철회한다. 시드니, 멜버른에 이어 항상 세 번째로 꼽혔던 브리즈번은 지난 몇 년간 확실히 전과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로컬들에게 ‘더 밸리(The Valley)’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포티튜드 밸리는 종종 ‘허름’과 ‘세련’이라는 양극이 혼재하는 동네로 묘사되는데, 그 ‘세련’을 맡은 곳이 바로 제임스 스트리트다.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블랙 & 화이트 컬러의 건축물,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신제품을 큐레이션하는 패션 부티크 숍과 파인다이닝, 이솝, 포터리반, 웨스트 엘름 같은 뷰티·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매장이 이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풍경. 영화 <바비>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옷차림으로 노랑 파라솔을 늘어놓은 카페 앞을 지나는 여자, 몸에 붙는 슈트를 입고 바버숍에서 막 나온 행색으로 노천 바에 앉아 샴페인을 마시는 남자, 수영복에 가까운 운동복으로 군살 하나 없는 태를 자랑하는 젊은이들을 관찰하다 보면 뉴욕의 어퍼 이스트나 소호가 슬그머니 떠오른다.
브리즈번으로 이주한 유럽인들의 초기 정착지였던 더 밸리에서 브런즈윅 스트리트(Brunswick St.)는 ‘허름’ ‘투박’ ‘낡음’ 같은 수식어를 담당한다. 동시에 창의적인 문화·예술과 화려한 나이트라이프가 있는 거리이기도 하다. 포티튜드 뮤직홀(The Fortitude Music Hall), 블랙 베어 로지(Black Bear Lodge), 릭스 바(Ric’s Bar) 등의 공연장과 라이브 바가 호주 최초의 ‘유흥 지구’로 꼽히는 포티튜드 밸리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맛집이 즐비한 차이나타운과 독립 브랜드, 작은 식당, 창작 스튜디오 등이 몰린 베이커리 레인(Bakery Lane)까지 둘러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해 곧장 하워드 스미스 와브즈(HSW)로 향한다. 도시의 랜드마크인 스토리 브리지 아래에 자리한 이곳엔 13곳의 카페, 바, 브루어리, 레스토랑, 호텔 등이 모여 있다. 기능을 잃은 옛 부둣가를 도시의 놀이터로 재생시킨 설립자 아담 플라스카스(Adam Flaskas)는 HSW의 정체성을 이렇게 정의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놀고, 즐기고, 탐닉하며 삶을 마음껏 누립니다.”
일요일 오후, 그 취지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쾌락주의자들이 HSW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해가 져야 취재를 끝낸다는 원칙을 깨고 그 행렬에 동참하기로 한다. 펠론스 브루잉(Felons Brewing)의 신선한 맥주를 받아 들고 스토리 브리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인생을 탐닉하는 데 낮술만 한 것이 있을까? 워킹 홀리데이 신청 가능 연령이 (한참) 지난 내가 브리즈번에 와서 살 확률은 매우 낮지만 이 도시에서 삶(에 대한 책임감)을 너무 꽉 쥐고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 하나는 제대로 배워 간다.
2 하워드 스미스 와브즈엔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식당이 많다. 로컬 브루어리 & 펍 펠론스의 노천 테이블.
3 펠론스는 브리즈번이라는 도시의 개척사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 이야기를 상징하는 작품.
포티튜드 밸리에서 쾌락주의자처럼 놀고 싶다면
-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쇼핑
제임스 스트리트엔 브리즈번의 맥시멀리스트들이 사랑하는 로컬 브랜드의 매장이 모여 있다. 브리즈번의 트렌디한 스타일이 궁금하다면 패션 디자이너 게일 소론다(Gail Sorronda)와 주얼리 디자이너 나타샤 슈바이처(Natasha Schweitzer)의 매장에 들러보자. 사만다 오길비(Samantha Ogilvie)는 예술적인 큐레이션으로 유명한 편집숍이다. 먹을거리를 사고 싶다면 동네 주민들이 사랑하는 델리 ‘제임스 스트리트 마켓’으로 향할 것.
- 음악에 취하기
브리즈번 토박이에게 더 밸리는 음악을 즐기러 가는 동네. 포티튜드 뮤직홀을 비롯해 티볼리(The Tivoli), 주(The Zoo) 등의 공연장에선 로컬 뮤지션은 물론 글로벌 아티스트의 공연이 수시로 열린다. 음악 페스티벌 ‘빅 사운드(Big Sound)’가 열리는 9월엔 더 밸리의 흥이 최고조에 달한다.
- 낮술의 기쁨 누리기
마이크로 브루어리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브리즈번에서 단 한 곳의 양조장을 가야 한다면 단연 펠론스 브루잉이다. 갈색 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브리즈번 강과 스토리 브리지가 어우러진 ‘뷰’, 수상 경력을 가진 양조사들이 섬세하게 빚는 크래프트 맥주와 제철, 로컬 식재료로 만든 피자, 피시 & 칩스의 조합을 놓치지 말 것.
Felons Brewing Co.
주소 5 Boundary Street,
Brisbane City QLD
문의 felonsbrewingco.com.au
West End
예술과 커뮤니티, 미식의 기지, 웨스트 엔드
2 로컬의 사랑방, 웨스트 엔드 커피 하우스.
3 애버리지니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오픈 하우스 웨스트 엔드.
낡은 채로 자리를 지키는 옛 목조 건물, 그 안에 들어선 아로마테라피 오일 상점과 허름하지만 맛집인 게 틀림없어 보이는 다국적 식당들, 빈 벽을 채운 그라피티가 어우러진 장면을 가진 웨스트 엔드에 들어서자마자 직감했다. ‘여긴 진짜 로컬 구역이구나.’ 관광객은 찾아보기 힘든 순도 100%의 동네(Neighbourhood). 브리즈번 사람,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이며 유행이나 체면보단 자기 취향과 선호를 삶의 기준으로 삼는 이들이 찾는 곳 말이다. 슬리퍼와 반바지 차림, 굽슬굽슬한 머리가 등을 온통 뒤덮은 한 남자가 기타를 연주하며 거리를 걷는 모습을 봤을 때 예상은 확신이 됐다. 포토그래퍼가 그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자 길 한복판에서 노래까지 뽑아낸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가 갓 뜨기 시작했을 때 취재한 적이 있는데 꼭 이런 분위기였다. 히피와 힙의 중간쯤, 날것의 감성과 세련된 문화가 뒤섞인 풍경.
실제로 브리즈번의 뜨는, 혹은 멋진(Cool) 동네를 꼽는 기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웨스트 엔드엔 이런 소개 문구들이 따라붙는다. ‘자유분방하며 거친 개성이 넘치는 곳’, ‘다문화에서 파생된 미식의 성지’, ‘독립 브랜드와 빈티지 상점, 파머스 마켓에서 쇼핑하고 싶을 때 찾아야 할 동네’, ‘도시의 편리한 인프라와 작은 동네의 끈끈한 공동체 문화를 모두 원하는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 높은 주거지’. 가장 중요한 건 이 수식이다. ‘지갑이 가벼울 때 놀러 올 곳’.
웨스트 엔드 지구를 십자로 가르는 벌처 스트리트(Vulture St.)와 바운더리 스트리트(Boundary St.)를 걷다 보면 이 소개말들의 실체를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벌처 스트리트에서 로컬 창작자와 애버리지니 아트&디자인을 큐레이션하는 오픈 하우스의 대표 미아 고딩이 ‘동네 사랑방’이라고 귀띔해준 ‘웨스트 엔드 커피 하우스(West End Coffee House)’엔 다정한 정취가 넘친다. 지역 제철 식재료로 만든 호주식 브런치뿐 아니라 타이식 오믈렛, 차이니스 덤플링 등 아시안 스타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배를 채운 후엔 걸을 차례. 사거리에서 연결되는 바운더리 스트리트엔 그리스, 베트남, 중국, 스위스, 이탈리아 식당과 델리, 빈티지 패션숍과 독립서점, 마이크로 브루어리와 크고 작은 펍, 바, 카페 등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반나절은 충분히 구경할 만하다. 더 커먼 웨스트 빌리지(The Common West Village)는 아이스크림 공장을 개조한 복합 공간으로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근사한 건축물이다. 이곳에서 잠시 길을 멈추고 그늘이 드리워진 중정에 앉아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궁금증을 곱씹어본다. ‘왜 내가 사는 도시에선 이곳 사람들처럼 한창 사무실에 있어야 할 평일 대낮에 노천 테이블에 앉아 칵테일을 마셔도 되는 문화가 불가능할까?’ 퀸즐랜드에서 품은 의문과 질투가 이곳, 웨스트 엔드에서 정점을 찍었다.
2 바운더리 스트리트에 자리한 복합 공간, 더 커먼 웨스트 빌리지.
3 웨스트 엔드에서 탄생한 로컬 커피 브랜드, 블랙스타의 샌드위치와 콜드 브루 커피.
4 벌처 스트리트에서 만난 로컬 뮤지션.
웨스트 엔드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고 싶다면
- 커피 탐험
로컬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과 자부심이 특히 높은 웨스트 엔드에선 커피가 꽤 중요한 경험이다. 브리즈번의 스페셜티 커피 신을 만든 선구자 중 하나인 블랙스타(Blackstar)도 2006년, 웨스트 엔드 뒷골목에서 탄생했다. 질 높은 원두로 내린 정통 롱블랙은 물론 아찔할 만큼 진한 콜드 브루가 인기. 장인의 페이스트리를 맛볼 수 있는 론리스(Lonelys)와 세븐틴 마일 록스의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블랙밀크(Black Milk)도 동네 사람들이 아끼는 공간이다.
Blackstar Original Store
주소 44 Thomas St., West End QLD
문의 blackstarcoffee.com.au
- 주말 시장 둘러보기
시장은 로컬에 닿는 지름길. 매주 토요일, 데이비스 파크(Davies Park)에서 열리는 웨스트 엔드 마켓은 브리즈번에서도 특히 물건 좋기로 소문난 파머스 마켓이다. 지역의 제철 유기농 농산물, 꽃, 수공예품, 빈티지 소품 등을 파는 150여 개의 부스가 강변을 가득 메운다.
West End Markets
주소 Davies Park – Montague Road & Jane Street, West End, QLD
문의 www.westendmarket.com.au
- 로컬 아티스트와 만나기
그리스와 베트남 등 다문화 동네로 유명한 웨스트 엔드의 또 다른 ‘원주민’은 예술가들. 오픈 하우스 웨스트 엔드(Open House West End)는 로컬 창작자의 작업을 만날 수 있는 갤러리이자 커뮤니티 공간, 상점이다. 특히 애버리지니 예술 작품과 공예품, 소품 큐레이션이 훌륭하다.
주소 73 Vulture St, West End QLD
문의 www.openhouseweste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