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정원
세계의 정원이 된 다랑이논, 섬이정원
고동산과 장등산이 에워싼, 남해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국적인 풍경의 정원이 있다. 다랑이논의 오래된 돌담과 연못, 산울타리에 다양한 꽃과 나무, 억새로 연출한 유럽식 정원, 섬이정원이다. 담과 문을 두어 독립적이지만 서로 연결되기도 하는 궁궐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본래 있던 다랑이논의 높낮이를 이용해 9개의 정원을 조성했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녔지만 자유롭게 들고 나는 9개의 방 같은 정원. 하늘연못정원, 돌담정원, 모네정원, 덤벙정원, 메도우가든, 선큰가든 등 이름도 어여쁜 정원들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이 중 가장 인기 있는 정원은 하늘연못정원. 기다란 사각 연못에 구름이 한가득 담겨, 인스타그램 성지이기도 하다. 하늘이 파랗고 구름이 적당한 날에는 인생 숏을 기대해도 좋을 듯. 하지만 좀 더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반영 숏은 나뭇잎이 하늘을 빼곡히 덮은 모네정원에서 만날 수 있다.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특히 가을엔 보랏빛 세이지가 크림색 억새와 어울려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주소 경남 남해군 남면 남면로 1534-110
홈페이지 seomigarden.com
고사리와 바다가 있는 언덕, 별해로
멀리 삼천포대교가 보이고, 건너편으로 창선면의 아기자기한 집들이 한눈에 잡히는 곳, 창선도의 끝자락 흥선로를 달리다 보면 짙푸른 숲 안에서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만나게 된다. 고사리 별(虌), 바다 해(海), 길 로(路) 자의 별해로, 고사리와 바다가 있는 길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분쯤 올랐을까, 숨이 가쁘게 차오르고 땀이 송글송글 맺힐 때쯤 눈앞으로 창선면의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산 쪽을 보는 순간, 이곳이 한국이 맞나 싶은 멍한 기분에 빠져든다. 부드럽게 이어진 언덕 사이로 드문드문 심어진 나무, 붓으로 쓱 그려놓은 듯한 오솔길이 흡사 스위스에서 만난 그림 같은 마을, 그린델발트를 보는 듯하다. 양들이 뛰어놀고 피크닉 온 사람들이 낮잠을 즐기면 딱이겠다 싶은 이 언덕의 주인공은 바로 고사리. 고사리 채취가 한창인 봄이 되면 가파른 산비탈과 호젓한 숲길, 드넓은 구릉과 작은 오솔길까지 발길 닿는 모든 곳에 사분음표 같은 고사리가 넘쳐난다. 이곳에서 무려 우리나라 고사리의 40%가 생산된다.
별해로에서 가장 풍경이 좋은 전망대에 오르면 파도와 고사리 길을 형상화한 작은 쉼터, 별해랑이 나온다. 바다를 향해 의자와 테이블이 놓인 별해랑에 앉아 눈을 감으면 이마를 툭 치며 넘는 바람 속에서 초록색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별해로는 남해바래길 4코스(남파랑길 37코스)의 한 구간이기도 하다. 적량해비치마을에서 가인, 식포, 동대만 간이역으로 이어지는 15km 길이의 길로, 완주하려면 6시간가량 소요된다. 이 중 하이라이트는 역시 고사리밭이 있는 창선면 가인리 일대. 단, 고사리밭이 밀집된 식포~세심사 구간은 고사리 채취 기간(3~6월)에 갈 경우 반드시 해설사 동행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한다.
주소 경남 남해군 창선면 흥선로 544
#남해의 변신
도자기와 디저트가 있는 풍경, 돌창고프로젝트
남해의 자연석을 큐브형으로 다듬어 층층이 쌓아 올린 건물. 1920년대에는 일제가 쌀을 수탈해 저장하던 창고였다. 해방 후 양곡과 비료를 저장하는 창고로 사용되다 어느 순간 쓸쓸히 버려진 이곳이 새롭게 주목받은 건 2016년 <아피통 이야기> 설치미술 전시가 열리면서였다. 남해 사람들의 이야기와 공동체에 대한 기억이 담겨 있는 옛 돌창고의 화려한 변신. 과거 대정돌창고는 돌창고 프로젝트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고, 도자기 공방과 갤러리, 카페가 들어서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100년을 버텨온 돌창고의 외관은 유지한 채 용도에 맞춰 내부를 리모델링한 돌창고프로젝트는 입구의 아치형 철문부터 독특하다. 안으로 들어서면 어둑하지만 아늑하고 차분한 분위기. 1층은 도자기 작가의 공방이자 갤러리로, 작은 중정의 계단을 따라 이어지는 2층은 미숫가루와 돌소금커피, 유기농말차라떼와 덩어리쑥떡 등을 파는 카페로 꾸며졌다. 아슬아슬한 계단을 따라 조금 더 오르면 대정리의 논과 밭이 시원스레 보이고, 돌창고프로젝트에서 손수 가꾸는 정원이 파노라마 뷰로 펼쳐진다. 공방에서 만든 컵과 메모꽂이 등을 판매한다.
주소 경남 남해군 서면 스포츠로 487
인스타그램 @dolchanggo_project
옛 냉동창고의 유쾌한 변신, 스페이스 미조
아침마다 수산물 경매가 열리는, 남해에서 가장 분주한 미조항에 가면 레고 블록 같은 흰색 건물을 만날 수 있다. 23년 동안 냉동창고였던 이곳에서 피아노 연주가 펼쳐지고 작가들의 전시가 열리기 시작한 건 2022년, 복합문화공간인 스페이스 미조가 들어서면서였다. 해양생태계의 변화로 어획량이 급감하는 미조항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창조산업 기지인 셈. 아티스트, 문화 기획자와 협업해 음악 프로그램, 쿠킹 클래스, 전시 연계 체험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과거 냉동창고였던 만큼 층고가 높고 내부의 공간도 시원시원한 게 특징. 씨푸드프라이콘과 크리처에이드 등 남해의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파는 1층 카페를 지나 2층에 오르면 남해 멸치로 만든 액젓과 남해를 모티브로 한 굿즈 등을 판매한다. 3층에 있는 ‘와프’는 스페이스 미조의 전시 공간. 2층 높이 한 면을 통유리로 마감하고 그 앞에 무심히 놓아둔 그랜드피아노가 시선을 압도한다. 계단식으로 마련된 관중석에 앉아 창밖을 보면 미조항을 들고 나는 어선들이 마치 움직이는 작품처럼 한 화면에 걸린다. 쨍쨍한 한낮의 풍광도 좋지만, 해 질 녘의 스페이스 미조는 살짝 슬픔이 느껴질 정도로 황홀하다.
주소 경남 남해군 미조면 미조로 254
인스타그램 @space.mijo
#남해의 문장
글 쓰고 파도 타는 남해의 책방 주인
친구 집 거실 같은 소녀의 책방
대나무 발 그물들이 거대한 핀셋처럼 놓인 지족해협, 죽방렴 멸치로 유명한 지족 구거리를 걷다 보면 귀여운 입간판의 책방을 만난다. 1970년대 수동 타자기와 싸리비, 고양이와 코닥 필름, 책 모양의 배지 컬렉션과 책장 곳곳에 붙은 책 소개의 말들. 원고지가 그려진 칠판엔 책 속의 문장들이 또박또박 적혀 있고, 미닫이문 안쪽으론 발랑 누워 책 속에 얼굴을 파묻고 싶은 침대가 놓여 있다. 책을 사랑하는 소녀의 사심 가득한 공간. 박수진은 어쩌다 이곳에 책방을 내게 되었을까?
“퇴사 후 제주에서 몇 주, 몽골에서 한 달, 속초에서 여섯 달을 보냈어요. 그러다 남해에 왔는데, 여행 후에도 계속 남해가 머릿속에 남았어요. 한번 살아보자 하고 내려왔는데, 내가 좋아하는 책방을 하면 더욱 좋겠다 싶었죠.”
2018년 3월, 봄꽃보다 하늘하늘했던 스물일곱 살의 일이다. 책방 주인이긴 하지만 종일 책방을 지키는 건 아니다. ‘아마도책방’은 책방 주인이 되고 싶은 이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다. 인스타그램으로 신청하면 오후 1시부터 6시 사이에 일일 책방 주인이 될 수 있다.
“사실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어요. 공간을 이용하는 비용을 포함해 일정 금액을 내고 책방지기를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책방지기에 대한 로망을 가진 분이 꽤 많더라고요. 즐거운 경험이었다며 고맙다는 말씀도 해주시고요. 책방지기는 1명이 기준이지만, 최대 6명까지 대관도 가능해서 아마도책방에서 워크숍을 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사이 박수진은 아마도책방을 내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남해에서 뭐 해 먹고사냐 하시면 아마도 책방이겠지요>와 소소하고 아름다운 남해 사진을 담은 등 4권의 책을 냈다. 워크숍을 통해 출판을 배워가며 만든 독립 출판한 결과물이다.
서핑에 빠져 남해에 붙들리다
하지만 남해 군민으로 6년쯤 살다 보니 매일 보는 하늘과 바다에 자주 지루함이 느껴졌다. 여전히 없는 게 많고, 더없이 조용하기만 한 남해의 한적함은 오롯이 혼자 견뎌야 하는 외로움으로 돌아왔다. 남해에서 5년이나 책방으로 버텼으면 할 만큼 했다 싶었고, 책방의 임대차계약도 1년쯤 남은 상황이었다. 어차피 남해를 떠날 거라면 조금이라도 후회를 남기지 말자고 생각하니 남해에서 아직 해보지 못한 서핑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서핑을 배운 날이 생생히 떠올라요. 지난 해 5월 초 송정솔바람해수욕장에서 저 혼자 강습을 받았는데, 몇 차례 도전 끝에 가까스로 일어나는 데 성공했어요. 하늘을 나는 새가 된 것 같았어요.”
서핑의 맛을 알게 된 그날 이후 박수진의 삶엔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우선순위가 바뀌었다고 할까, 엄청 바쁜 날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서핑부터 하고 출근할 정도다. 파도가 차트보다 잔잔하거나 반대로 너무 커서 못 들어갈 때도 있지만, 파도를 기다리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시간도 좋아하게 됐다.
그렇게 남해를 떠나려던 순간 서핑에 빠져든 그녀는 남해에 좀 더 남기로 했고, 오랫동안 꿈꿨던 북페어, <남쪽바다책잔치>를 선보였다. 남해를 포함해 경남, 전남, 서울, 인천에서 18개 서점이 참여하고 북 토크와 공연은 물론 ‘찰랑찰랑 낭독회’, ‘두모 사생대회’, ‘두모 백일장’ 등 부대 행사도 풍성하게 마련했다.
“제가 2년 전에 이런 말을 했더라고요. 일단 책방을 10년 하고, 사람들을 모아서 페어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고요. 그런데 요즘 정말 제가 말했던 게 다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방 주인이자 고양이 네 마리의 엄마, 작가이자 서퍼이기도 한 그녀의 남해살이 시즌 2가 시작된 것이다.
주소 경남 남해군 삼동면 동부대로1876번길 19
인스타그램 @amado_books
#남해의 맛
남해 식재료에 대한 바른 생각, 앵강마켓
남해에서도 손꼽히게 아름다운 앵강만 부근, 남면에 가면 유독 눈에 띄는 한 집이 있다. 맑게 닦인 유리창과 나무로 마감한 단정한 외관, 길게 늘어진 포렴을 걷고 안으로 들어서면 격자무늬 나무 창과 다다미 마루, 빈티지 목제 가구 등 흡사 일본 교토의 어느 가게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일본식 소품점인가 싶지만, 남해의 명품 특산물을 파는 로컬푸드 숍. 카페도 함께 운영하는 앵강마켓이다. 따스한 느낌의 이 이색적인 공간이 큰 인기를 얻은 건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제품들 덕분. 남해의 대표 특산물인 죽방렴 멸치를 소분해 예쁜 패키지에 담아 판 것이 시작이었다. 생산량이 워낙 적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죽방렴 ‘금’멸치를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으니 반응은 폭발적. 남해 여행 후 집으로 가져갈 선물로도 훌륭했다. 그에 더해 앵강마켓에선 미역, 다시다, 톳 등의 해조류와 호지차, 보리커피, 발효차 등도 판매한다. 앵강마켓에서 음료를 마시고 싶다면 창밖으로 정원이 바라다보이는 다다미 마루를 선점할 것. 산딸기나 블루베리 등 계절 과일을 올린 양갱에 따스한 보리커피를 곁들이면 남해 여행이 2배는 더 행복해진다.
주소 경남 남해군 남면 남서대로 772
인스타그램 @ain_river
잘 차린 한 솥, 힙한식
요즘 남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식당. 이름처럼 힙한 힙한식이다. 초전삼거리 회전교차로를 지나다 보면 반듯한 흰색 건물 앞에 늘 많은 사람이 줄 서 있어서 저절로 시선이 멈추게 된다. 오전 11시에 문을 열지만 10시 전에 가야 겨우 대기 11번을 면할 정도. 단 10개뿐인 테이블을 웨이팅 없이 차지하려면, 눈뜨자마자 달려가 예약 버튼을 누르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힙한식의 시그니처 메뉴인 전복솥밥을 먹어보면 단 1초 만에 알 수 있다. 전복 내장과 특제 오일을 넣어 지은 밥에 찐 전복과 새우, 버섯, 각종 해조류를 올렸는데, 살살 비벼 한 입 먹으면 고소하고 담백한 바다의 맛이 계속해서 뒷맛을 당긴다. 달큼한 쪽파에 오징어와 새우 살, 청양고추를 넣어 튀김처럼 바삭하게 구워낸 바삭해물파전도 탱글하고 고소하다. 솥밥에 곁들여 나오는 표고버섯미역국은 물론 마늘장아찌와 열무김치, 오징어젓갈 등 반찬 하나하나도 만족스럽다.
주소 경남 남해군 미조면 동부대로 2
인스타그램 @hip_hansik
남해 유자가 도넛을 만났을 때, 옐로우츄도넛
초전삼거리에서 도보 6분, 힙한식을 찾은 여행자라면 이 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2개의 네모 상자를 맞붙여놓은 듯한 건물에 노랗고 파란 색의 강렬한 페인팅, 미국 LA에서 봤던 인앤아웃 로고가 연상되는 입간판도 인상적이다. 이곳의 정체는 옐로우츄도넛. 오직 유자도넛 하나만 파는 도넛 전문점이다. 색색의 동물 의자와 로고가 커다랗게 그려진 카펫, 노란색 벽이 세워진 포토 존 등 인테리어도 발랄하다. 하지만 남해에서 생산된 유자만 사용하고, 프랑스 구르메버터를 넣어 손으로 일일이 반죽하는 등 도넛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진지하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유자도넛을 한 입 베어물면 상큼한 유자크림이 한가득. 폭신해 보이는 빵은 졸깃한 느낌이 강해 착착 입에 감긴다. 6개들이 한 상자로 포장만 가능하다.
주소 경남 남해군 미조면 남해대로 237-1 1층
인스타그램 @yellowchew_donut
#남해의 취향
소가 처음 만난 술이라는 우주
성실히 일만 하던 소가 축사를 탈출해 술이라는 우주를 만났다.
7급 공무원 노동감독관에서 전통주 보틀 숍의 주인장으로, 소심과 성실의 아이콘에서 주체적 해방의 길로,
남해살이 5년 차 이준민의 소우주를 살짝 들여다봤다.
작게 결정하고 뭐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소똥 냄새 풀풀 나는 밭 사이로 난데없이 등장하는 집 한채. 남해읍 평현로 173번길, 은행나무 사거리를 지나면 병아리색 작은 문의 이층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탈탈탈 경운기 소리 요란한 이 시골에 꽤나 근사한 나무 집이라니,놀랍게도 이곳은 남해 유일의 전통주 보틀 숍, 이준민의‘ 소우주’다.
“1988년까지 마을회관으로 쓰인 건물인데, 작은 가게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음에 들었어요. 막연히 바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무리해서 구매했죠. 우리 부부가 손수 리모델링해서 한편을 거주 공간으로 꾸미고, 전통주 보틀숍과 독채 민박(남쪽집)도 운영하고 있어요.”
문틀이며 테라스, 우체통까지 어디 하나 부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 없는 이 집에서 이준민은 1층 보틀 숍을,아내 권진영은 2층 민박집을 담당하고 있다.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주방과 정원 4명의 작은 테이블,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색색의 전통주. 그의 소우주에 들어서면 아늑하고 소담한 분위기에 저절로 마음이 따스해진다.“5년 전 남해에서 살 집을 찾을 때 제가 막걸리 빚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럼 전통주를 팔아보자는 아내의 의견을받아들였죠. 처음엔 달랑 4종을 팔다 차츰 술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서 지금은 70종 가량 갖췄어요. 소우주를 찾는 분들과 함께 술을 빚고, 전통주 베이스의 칵테일도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 조주기능사 자격증과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도 땄죠. 그렇게 상황에 맞춰서 작게 작게 정한 것들이 쌓인 것 같아요.
축사를 박차고 나온 소의 해방 일지
그런데 인구 4만 명의 작은 군 남해에서 전통주 보틀 숍이 과연 장사가 될까? 매우 현실적인 의구심이 들지만 이준민 은 오히려 더 그래서 취향 존중 선택지가 필요하다고 말한 다. 남해처럼 멋진 여행지에 향긋한 술이 빠진다면 그 여 행은 얼마나 건조할까.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 거기에 동참할 수 있는 취향 저격 전통주 한 병쯤 남해에서 거뜬 히 살 수 있었음 싶었다. 그렇게 햇수로 5년, 그의 소우주 에선 전통주 시음회와 막걸리 빚기 클래스, 술 빚는 동아 리 모임 등이 열렸고, 그의 짠하고도 진지한 창업기를 다 룬 1인 출판 책 <소우주 비긴즈>도 발간됐다. ‘무난’이라는 단어를 형상화하면 아마 자신이 될 거 라는, 가장 보통의 1985년생 소띠 남자. 그가 7급 공무원 의 안전한 울타리를 박차고 나와 남해 촌 동네에서 “No Work Yes Alcohol!”을 외친 건, 영혼을 갈아넣어도 보람은 커녕 점점 소멸해가는 자신을 더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 었다. “몇 년 후에나 받을 공무원연금을 위해 불지옥 같은 현실을 더는 참을 수 없었어요. ‘뭐가 됐든 재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해보자’는 생각에 남해에 내려왔죠. 소우주도 그 런 생각으로 시작해서 애초에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었 어요. 한 달에 9시간 문을 여는데 손님이 없을 땐 글을 쓰 거나 공부를 하는 식이라 저에겐 작업실에 가깝죠.” 똑같은 수익 30만 원이라도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면 ‘이거밖에 못 버나’ 싶지만, 취미 생활이라고 생각하면 ‘어, 놀고 있는데 돈이 들어오네?’란 기분이 든단다. 소가 처음 만난 술이라는 우주, ‘소우주’에서 그는 오늘도 온전히 자 신에게 집중하며 즐거운 해방 일지를 쓰고 있다.
주소 경남 남해군 남해읍 평현로 173번길 44-20
인스타그램 @sowoozoo_namh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