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치유를 선사하는 건축 - 헤이트래블 - hey!Travel

도심 속 치유를 선사하는 건축

Green Architecture Highlights

지속 가능한 건축의 개념이 발전하고 있다. 단순히 녹지를 조성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종 다양성과 포용성, 커뮤니티의 확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한 차원 앞서는 싱가포르의 건축을 찾았다.
  • written by lee JIHYE
  • PHOTOGRAPHY BY Jeon jaeho
  • Supported by Singapore Tourism Board
2024년 09월 02일

CapitaSpring

캐피타스프링

2021년 싱가포르 다운타운 코어에 캐피타스프링이 들어섰을 때, 사람들은 “조경이 도시에서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고 입을 모았다. 높이 280m, 연면적 9만 3천m2의 빌딩에 무려 8만여 개의 식물이 들어섰으니 말이다. 심지어 조경 면적이 부지 면적의 140%를 넘겼다는 사실은 직접 보지 않고는 쉽게 믿을 수 없는 숫자다. 덴마크 설계사무소 빅(BIG) 스튜디오와 이탈리아 설계사무소 카를로 라티(Carlo Ratti Associati)가 공동 설계한 이 건물은 순식간에 싱가포르의 ‘녹색’을 상징하는 마천루로 떠올랐다. 건물은 외부 디자인부터 독특하다. 저층부는 골조만 남은 것처럼 외벽이 뻥 뚫려 있고 빈 공간엔 열대우림이 빽빽하게 들어서 마치 유리 커튼 사이로 나무가 자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17층부터 20층까지는 캐피타스프링의 가장 핵심적인 공간인 ‘그린 오아시스’다. 높이 35m가 넘는 이곳은 무성한 녹지와 나무가 둘러싸고 있다. 꼭대기 층인 51층에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스카이 가든 전망대가 있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 야경 포인트로 떠오르는 중이다.

Pan Pacific Orchard, Singapore

팬 퍼시픽 오차드, 싱가포르

과거 육두구 농장이나 후추 농장, 과수원으로 가득했던 오차드 로드는 오늘날 싱가포르 최고의 쇼핑 명소로 거듭났다. 고급 쇼핑몰, 세계적인 바와 레스토랑, 5성급 호텔이 늘어선 이곳에 지난해, 팬 퍼시픽 오차드 싱가포르 호텔이 오픈했다. 콘크리트 벽과 조경이 사각형으로 이어진 외관은 마치 젠가가 연상된다. 젠가가 하나씩 빠진 듯한 빈 공간은 식물로 감싼 기둥 4개가 받치고 있는데, 바로 호텔을 상징하는 4개의 테라스다. 숲속 파빌리온에서 영감받은 로비 겸 포레스트 테라스, 에메랄드 라군과 모래사장으로 꾸민 비치 테라스, 푸른 잔디밭이 깔린 가든 테라스, 탁 트인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클라우드 테라스다. 테라스를 비롯해 호텔 전체에는 100여 종의 식물이 있는데, 이는 부지 면적의 200% 이상을 차지하는 수치. 높은 녹지 비율과 더불어 물 수요를 줄이는 시스템 등으로 싱가포르의 가장 높은 환경 인증인 그린 마크 플래티넘을 획득했다.

Enabling Village

이네이블링 빌리지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나 인클루시브 디자인(inclusive design)은 누구나 접근 가능하다는 의미의 건축 용어다. 이 개념은 50여 년간 점점 세분화됐는데, ‘장애인에게 장벽이 없는 건축’을 뜻하는 배리어프리 디자인(barrier-free design)도 그 중 하나다. 이네이블링 빌리지는 싱가포르에서 배리어프리 디자인 건축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역사와 다양성이 풍부한 지역 부킷 메라(Bukit Merah)의 심장부에 자리한 이네이블링 빌리지에는 장애인 중심의 주거시설과 사무실, 도서관, 카페, 공원, 커뮤니티 시설 등이 있다. 공원이 아닌 공동체 공간으로서는 보기 드문 친환경적 건물이다. 싱가포르 조경전문회사인 샐러드 드레싱(Salad Dressing)은 전체 부지의 절반을 140종의 열대식물로 덮었다. 실제로 쉽게 보기 힘든 싱가포르 원산 오르토시폰 아리스타투스(Orthosiphon aristatus)나 화려한 꽃이 피는 에리트리나 푸스카(Erythrina fusca) 같은 식물도 이곳에선 쉽게 발견할 수 있다.

The Hive

더 하이브

건축 애호가가 아니라도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외관의 더 하이브는 싱가포르의 특이한 건물을 꼽을 때마다 상위를 차지한다. 난양기술대학교의 러닝 허브인 이곳은 2015년 캠퍼스를 재정비하며 세워졌다. 런던에 거점을 둔 헤더윅 스튜디오(Heatherwick Studio)가 기존의 지루하고 평범한 대학교 건물에서 벗어나 러닝 허브와 어울리는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탈바꿈했다. 외관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웅장한데 덕분에 ‘딤섬 바구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중정으로 들어오면 거대한 벌집 사이를 걷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입체적인 공간이 나타난다. 이곳에 도서관, 강의실, 휴게시설, 카페들이 널찍하게 자리 잡았다. 건물 전체에 재활용 골재를 사용하고 싱가포르 최초로 색소 콘크리트를 적용하며 그린 마크 플래티넘을 획득했다. 싱가포르 시내와 다소 떨어져 있는 만큼, 독특한 계곡 모양의 건물에 잔디밭이 깔린 예술·디자인·미디어 학부 건물도 놓치지 말고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Kampung Admiralty

캄퐁 애드미럴티

2017년 지어진 캄퐁 애드미럴티는 싱가포르의 노령 인구를 위한 유니버셜 디자인의 시니어 버전이다. 싱가포르 최초로 공공시설과 서비스를 하나의 지붕 아래 모아 주목받았다. 캄퐁은 말레이시아어로 ‘마을’을 뜻한다. 싱가포르의 급속한 도시 개발에서 밀려난 시니어를 위해 아파트, 의료센터, 광장이 모인 마을을 만든 것. 환경적·사회적 지속가능성이 도시 개발과 이어진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11층 규모의 내·외부에는 58종의 나무 730그루, 66종의 관목 8만 그루 이상의 열대우림이 공존한다. 주민들은 녹지로 둘러싸인 커뮤니티 파크에서 운동하거나 개인 농장을 가꿀 수 있다. 이곳은 매년 100만 갤런 이상의 수돗물을 보존해 수력 에너지로 사용한다. 지난 2018년 싱가포르 총리의 국경일 연설 장소로 선택받으며 싱가포르가 추구하는 ‘포용력 있는 지속가능성’을 입증하는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2층에는 40여 개의 싱가포르 스트리트 푸드 콘셉트의 ‘호커 센터’가 자리해 관광객이 방문하기에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