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는 점점 더 시끄러워지고 사람들은 온갖 방식으로 소음을 발산한다. 주의를 계속해서 뺏는 디지털 세계는 그 소음을 굉음으로 가중시킨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앤 소피 플루리는 “현대인들이 점점 더 침묵의 상태와 멀어지고 있다”고 우려하며 고요 속에 머무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혼란에 끊임없이 반응하는 삶에 갇히게 될 거라고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 문제를 유발하는 환경 요인 중 소음 공해가 공기 오염에 이어 두 번째로 유해하다고 짚었다. 실제로 많은 연구 결과가 도시에 사는 이들이 매일 85데시벨 이상의 소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85’는 지하철, 믹서기 소리에 육박하는 소음으로 청각 손상,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 증가, 수면 장애, 심혈관계 질환 위험 증가 등을 직접적으로 야기하는 수치다.
압도적인 소음과 디지털 과부하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를 자각하기 시작한 현대인들은 이제 ‘고요’에 눈을 돌리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사이에선 음악, 팟캐스트를 듣거나 통화하기, 쇼츠 시청 같은 활동을 하지 않는 상태로 걷는 행위에 ‘사일런트 워킹(Silent Walking)’이라는 해시태그를 걸고 틱톡에 올리며 자신의 행위를 인증하는 것이 유행이다. 뉴욕에서 시작된 사일런트북클럽(Silent Book Club)은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책만 읽는 모임. 집중력을 잃은 독서가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으로 전 세계 50여 개국에 1000개 이상의 지부를 두며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여행은 들을 필요도, 말할 필요도 없는 상태를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다. <컨데나스트 트래블러>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의 미디어를 비롯해 마케팅 리서치 기관들이 지난해부터 앞다퉈 ‘콰이어트케이션(Quietcation)’을 트렌드로 꼽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당신이 침묵을 유지하고 소음의 방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휴가를 결심했다면 목적지로 떠오르는 곳은 어디인가?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무인도, 국립공원, 숲속 산장 같은 고립무원일 것이다. 대자연이라고 해서 저소음이 보장된 건 아니다. 미국의 국립공원 관리국은 고속도로와 인근 도시의 확장 등으로 국립공원에 청각 소음 공해가 급증하고 있으며 30년마다 수치가 2배로 증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음향 생태학자이자 비영리 단체 콰이어트 파크스 인터내셔널(Quiet Parks International, 이하 QPI)의 공동 설립자인 고든 햄튼은 이정표를 찾는 이들을 위해 인공 소음이 적고 자연의 소리가 공기를 채우는 환경을 ‘고요한 자연(natural quitet)’으로 명명하고 엄격한 심사 기준을 통과한 장소들을 소개하고 있다. 대만 타이베이 북쪽의 양명산 국립공원, 나미비아 빈트후크의 자연보호구역 등이 QPI의 인증을 받은 이름들이다. 자연의 소리가 공명을 울리는 장소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콰이어트케이션, 즉 조용한 휴가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미국의 명상 전문가이자 책 <조용한 시간의 힘>을 쓴 저스틴 존은 우리의 몸과 정신 건강에 해악을 끼치는 소음의 종류를 먼저 인지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소음을 세 가지 종류로 분류하는데, 첫째는 자동차 경적, TV 소리, 알람과 같은 외부 소음, 둘째는 마음속 걱정, 불안과 자기 비판 등을 의미하는 내면 소음, 마지막으로 사회가 주입하는 기준, 기대, 과잉 정보 등을 가리키는 문화적 소음이 있다. 그의 정의는 우리의 조용한 휴가가 데시벨 수치가 낮은 곳에 머무는 경험 이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침묵과 고요는 단순히 소음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저스틴 존은 “가장 깊은 침묵은 우리를 집중시키고, 치유하고, 가르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하며 내면적, 외면적 소음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귀띔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콰이어트케이션을 떠나야 하는 이유다.

언플러그드 Unplugged
언플러그드는 런던, 맨체스터, 웨일스 등 영국 주요 도시에서 1~2시간 이내 거리에 위치한 오프그리드 로그 캐빈(off-grid log cabin). 접근성이 좋아 디지털-프리 상태에 힘 들이지않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이름에 걸맞게 전기, 수도, 가스가 없다. 대신 태양광, 통나무 난로, 빗물 저장 및 정화 시스템을 통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친환경 설계를 갖췄다. 숙박객은 잠금 장치가 있는 박스에 휴대폰을 넣어 보관하는 것이 의무다. 즉석 필름카메라, 보드 게임, 책 등 아날로그 세계의 물건으로 시간을 보내다보면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웹사이트 unplugged.rest

멜리아 세렝게티 로지 Meliá Serengeti Lodge
인간이 아닌 생명체가 더 많은 곳을 찾는 것도 콰이어트케이션의 한 방법이다. 면적 약 1만4763km², 서울의 24배 크기에 달하는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 한가운데에 자리한 멜리아 세렝게티 로지에선 동물의 구경거리가 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지프를 타고 초원의 동물들을 찾아 나서는 게임 드라이브, 필드 가이드와 야생의 섬세한 소리를 들으며 산책하는 워킹 사파리, 대초원의 한가운데에서 정적이 주는 힐링을 경험할 수 있는 부시 피크닉 등의 프로그램이 고립과 고요를 좇는 여행자를 만족시킨다.
웹사이트 www.melia.com

잉카테라 레세르바 아마소니카 Inkaterra Reserva Amazónica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곳으로 숨어들고 싶은 이에겐 아마존의 쉼터, 잉카테라 레세르바 아마소니카가 있다. 이곳은 마추픽추가 있는 페루 쿠스코에서 국내선으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한 푸에르토말도나도에 도착한 후 다시 배를 타고 45분 동안 아마존강 위를 달려야 닿는 긴 여정이 필요한 은둔처다. 휴대폰 신호를 일부러 끊어버린 도시 근교의 디지털 디톡스 숙소와 달리 진짜로 외져서 휴대폰이 잘 안 터진다. 방에도 전화가 없어 버틀러의 아침 노크를 알람 삼아 일어나야 하고, 정글을 누비는 것 말곤 할 일, 놀거리도 없다. 디지털 세계와의 몰입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스펙터클한 열대우림에서 완전한 집중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는 곳.
웹사이트 Inkaterra.com

글레이셔 국립공원 Glacier National Park
미국 몬태나주에 위치한 글레이셔 국립공원은 미국국립공원관리국(National Park Service, NPS)에서 내추럴 사운드스케이프(natural soundscape)를 엄격히 관리하는 공원으로 꼽힌다. 이를 위해 소음을 유발하는 항공기의 운항을 축소·제한하고 캠핑장 내에선 야간 정숙 시간(quiet hours)을 운영하며 일부 캠핑장에선 발전기 사용까지 금지시키고 있다. 로키산맥의 북부 구간에 자리한 글레이셔의 소리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다면 밤의 모험을 놓치지 말자. ‘인터내셔널 다크 스카이 플레이스(International Dark Sky Places)’로 지정된 공원답게 제대로 된 별 관찰을 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 glaciernps

빅 벤드 국립공원 Big Bend National Park
‘텍사스가 미국에 준 선물’로 불리는 빅 벤드 국립공원은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엘 파소와 약 525km나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인공 소음, 인공 조명 청정 지대다. 덕분에 은하수와 혜성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캄캄한 밤하늘과 마주할 수 있다. 멕시코 국경에 면한 리오그란데강 위에서 카약을 즐기거나 사막, 산, 숲, 강이 공존하는 야생의 생태계를 관찰하는 ‘와일드 라이프 뷰잉’이 방문객 사이에서 인기 높은 액티비티.
인스타그램 bigbendnps

할레아칼라 국립공원 Haleakalā National Park
하와이 제도의 마우이섬에 자리한 할레아칼라 국립공원에 대해 NPS는 다음과 같은 수식어로 소개한다. ‘지구상에 남은 가장 조용한 장소 중 하나’. 실제로 NPS에서 측정한 할레아칼라 분화구 내의 소음 수준은 약 10데시벨 수준으로,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에 준한다. 자신의 숨소리, 심장 뛰는 소리가 바람 소리, 새소리, 먼 곳에서 울려오는 작은 돌멩이 굴러가는 소리보다 크게 들리는 정적 속에서 사운드스케이프를 즐기는 하이킹을 즐겨볼 것.
인스타그램 haleakalan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