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하고 모던하게, 빈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ing & PhotoGraphy by JOANNE JEONGWON SIN

클래식하고 모던하게, 빈

Inside Wien’s Art Circuit

합스부르크 가문이 600년 동안 쌓아 올린 고전주의 토대 위에 20세기 유럽 디자인 사조에 영향을 끼친 빈 분리파가 이룬 빈 모더니즘은 지금의 빈을 만들었다. 여유와 낭만이 넘치는 오스트리아 수도에서 보낸 48시간.
  • writing & PhotoGraphy by JOANNE JEONGWON SIN
2025년 09월 01일
어퍼 벨베데레에서 내려다본 전망. 로어 벨베데레와 빈 시내가 펼쳐진다.
벨베데레는 오스트리아 국민 화가인 클림트의 컬렉션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몇 년 전, 아주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로 생애 첫 빈행을 감행했다. 베니스 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타 사이에 며칠이 비는데, 베니스에 더 머물자니 파렴치한 숙박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카셀에 행사 시작 전 며칠 머물자니 그 생경한 이름 앞에 계속 주저했다.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빈의 숙박 옵션은 베니스보다 다양했고, 카셀보다 볼거리가 훨씬 풍성해 보였다. 빈은 마침 올해 개봉 30주년을 맞이한 청춘 로맨스 영화의 대명사 <비포 선라이즈>의 배경이기도 하다. 두 주인공이 충동적으로 빈에 내려 도시에서 하룻밤 안에 할 수 있는 모든 로맨틱한 행적을 봤기 때문인지 빈에 가자면 응당 낭만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 때문에 빈행을 더 뒤로 미룰 수도 없었다.

클래식과 낭만
현실적이든 충동적이든 낭만적이든, 그 모든 감상적인 이유를 떠나 빈은 익히 알려져 있듯 클래식 문화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목적지다. 600년 이상 이곳을 통치한 합스부르크 가문은 올드타운과 도시 중심부에 거대한 예술 컬렉션을 완성했다.
바로크 양식의 벨베데레 궁전(Schloss Belvedere)은 사보이 유진(Eugene of Savoy) 왕자의 여름 궁전이었다. 도시 한가운데에 웬 여름 별장인가 싶지만, 상궁인 어퍼 벨베데레(Upper Belvedere)가 경사진 언덕에 위치하고 하궁인 로어 벨베데레(Lower Belvedere)로 향하는 길에는 베르사유에서 영감을 받은 정원과 분수가 있어 맑은 날이면 탁 트인 시야 아래 도시 전경과 정원의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이탈리아어인 벨베데레의 뜻 그대로 ‘아름다운 전망’이 펼쳐진다. 현대에 들어 관광 목적으로 만들어진 높은 타워에서 바라보는 전망과는 다르게 세상을 지배했던 통치자의 특권을 잠시나마 누릴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컬렉션은 단연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빈에서 나고 생을 마감한 오스트리아 국보급 화가의 초기·중기·후기 작품까지 고루 감상할 수 있다. ‘키스’ 앞에 몰려든 인파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나는 ‘모나리자’의 그것과 흡사하다.
다음 방문할 뮤지엄은 벨베데레를 둘러본 뒤 정해도 좋다. 유럽 미술사의 고대부터 바로크까지 총망라한 교과서 같은 현장을 원한다면 유럽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KHM)으로, 드로잉과 판화를 중심으로 고전과 현대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면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이었던 알베르티나 뮤지엄(Albertina Museum)으로, 클림트의 제자로 빈 모더니즘을 계승하며 표현주의 화가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에곤 실레를 깊이 만나고 싶다면 레오폴트 뮤지엄(Leopold Museum)으로 향한다.

슈베르트가 태어난 곳이자 모차르트가 생을 마감한 빈은 음악의 도시이기도 하다. 1842년 설립된 빈 필하모닉은 세계 3대 필하모닉 중 하나이며, 이들의 공연은 홈 그라운드는 물론 유럽 어디서 공연하든 꽤 비싼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매번 빠르게 매진되곤 한다. 전 세계인 모두가 공평하게 1년에 한 번 이 필하모닉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날이 있는데, 바로 매년 1월 1일 진행되는 빈 신년음악회이며 그 공연장이 빈 음악협회인 무지크페라인 빈(Musikverein Wien)이다. 낮 시간에는 미술관, 궁전, 공원을 거닐고 밤에는 무지크페라인 빈을 비롯해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본거지인 콘체르트하우스(Konzerthaus), 150년 넘는 역사를 지닌 빈 오페라하우스를 기웃거리며 클래식 문화를 탐닉하는 경험은 빈이기에 가능하다.
지성이 모이는 곳에는 교류를 이어가고 담론을 펼칠 장소가 필요한 법. 그 살롱 기능을 하는 장소가 파리는 카페였고, 빈은 커피하우스였다. 카페 센트랄(Café Central), 카페 란트만(Café Landtmann), 카페 스페를(Café Sperl), 카페 슈바르첸베르크(Café Schwarzenberg)는 모두 근 150년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메뉴를 같은 방식으로 서빙하며 빈의 상징이 되었다. 에스프레소를 털어 마시는 옆 나라 이탈리아와 다르게 빈에서는 커피를 주문하면 잘 관리한 은식기에 물 한 잔과 함께 커피를 낸다. 느긋하게 마시라는 뜻이다. 괜히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올랐을까. 손님들은 대리석 테이블 위에 책이나 신문을 펼쳐둔 채 보타이를 맨 웨이터가 서빙한 커피를 음미한다. 카셀로 향하는 기차 시간이 한 시간도 남지 않았지만 굳이 커피하우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인슈페너를 본고장에서 꼭 마셔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페너는 마부들이 추운 겨울날 마시던 커피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크림을 뚜껑처럼 덮은 것에서 유래했다. 21세기 현대인은 더 이상 같은 이유로 아인슈페너를 찾지는 않지만 또 하나의 빈 클래식 메뉴 초콜릿 케이크인 자허토르테까지 한입에 밀어 넣고 나자 꼭 알맞게 적당한 질감과 당도에 세로토닌이 다시 폭발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클림트, 베토벤, 아인슈페너처럼 빈에서만 일상처럼 향유할 수 있는 클래식이야말로 이 도시가 선사하는 특별한 낭만일 테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빈 모더니즘
두 번째 빈행은 그다음 해에 성사됐다. 빈 디자인 위크 참석이 목적이었는데, 덕분에 빈의 현재를 좀 더 깊이 살펴볼 수 있었다. 도시에 대한 인상은 여전히 비슷하게 다가왔다. 전통과 현대가 각자의 질서 안에서 공존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유럽 주요 도시의 공통점이라면, 빈의 도시환경은 그중에서도 유독 단정했고, 여유가 넘쳤다. 낮에는 최신식 트램이 수백 년 된 건물 사이를 매끄럽게 오갔고, 밤이 되면 별다른 이름도 없이 ‘카페’ 또는 ‘바’라고 한 단어만 씌어 있는 투박한 간판 아래 수십 명의 사람이 자리 잡고 앉아 대화를 나눴다. 청결보다 소리에 민감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거슬리는 소음을 들은 기억도 없다. 빈 디자인 위크 디렉터 가브리엘 롤란트(Gabriel Roland)를 통해 그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빈은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시장을 선출한 도시입니다. 도시 인프라가 시민을 위해 최선의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이해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죠. 서유럽 국가와 비교했을 때 물가는 비교적 저렴하지만 삶의 질은 높고 그 안에는 정치 및 디자인과 관련된 특정한 사회적 의제가 존재합니다. 빈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은 특정 상황에 개입해 그것을 평가하고 다른 관점을 찾아내는 전략가이자 컨설턴트로 기능해요.”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이들은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n)과 오토 콜로만 바그너(Otto Koloman Wagner), 아돌프 로오스(Adolf Loos). 빈의 근대 말부터 현대를 잇는 근간이었던 빈 모더니즘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이들로 모두 건축가이자 철학가였다. 어차피 빈 현대 디자인을 둘러볼 수 있는 응용예술박물관(Museum of Applied Arts, MAK)이나 레오폴트 뮤지엄에 가면 가구부터 작은 집기까지 온통 이 이름들로 도배되어 있어 잊기도 어렵다. 요제프 호프만은 합스부르크 가문이 닦아놓은 고전주의 위에 전통 체계에 반기를 들고 결성된 빈 분리파(Wiener Secession)의 주요 인물이었고, 디자이너이자 화가인 콜로만 모저(Koloman Moser)와 빈 공방(Wiener Werkstätte)을 설립하기도 했다. 금속, 가죽, 가구, 그래픽아트 전반에 걸쳐 실용적이면서도 독특하고 아름다운 비율의 제품을 출시했는데, 한때 약 100명의 직원이 일했을 정도로 번성했던 공방은 재정 위기로 1932년 문을 닫았다.
앞서 언급한 두 뮤지엄은 거칠게 말해 이때 만들어진 작품으로 큐레이션한 공간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장식은 범죄다”라는 말을 남긴 아돌프 로오스의 철학은 당시 빈뿐 아니라 바우하우스, 브루탈리즘, 미니멀리즘에 이어 현대 산업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직간접적 영향을 끼쳤다. 주변 고전주의 양식 건물에 항변하는 듯한 그의 대표작 로오스하우스(Looshaus)는 빈 모더니즘의 기능주의를 표방하는 아이콘인데, 건물 앞에서 문득 내 몸에 걸친 것들이 과하게 장식적이거나 사치스럽지는 않은지 자기 검열에 빠지고 말았다. 여전히 그런 에너지를 지닌 건물이었다.

“장식은 범죄다”라고 말한 아돌프 로오스의 로오스하우스.
빈에서 만남의 장소로 알려진 뮤지엄쿼티어.

흥미롭게도 빈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는 대학은 빈 응용예술대학교 한 곳이며, 전공은 산업디자인, 그래픽디자인, 사회적 디자인으로 나뉜다. 그에 비해 건축학을 가르치는 학교는 세 곳이다. 가브리엘 롤란트는 도시가 직면한 과제에 대처하기 위해 디자인 교육이 계속 발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학교가 더 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스트리아, 빈을 대표하는 스타 디자이너가 있었던가? 떠오르는 이름이 없지만 빈은 이 점이 딱히 아쉬워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빈에 온 김에 마그넷 외에 특별한 기념품을 사고 싶다면 올드타운에 위치한 로브마이어(J. & L. Lobmeyr)로 가면 된다. 1823년 크리스털 비즈니스를 시작해 6대째 가족 사업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유리공예 브랜드로 황실에 샹들리에, 크리스털 등 유리 제품을 납품하면서 성장했고, 빈 공방과 협업하며 모더니즘 디자인 컬렉션을 구축했다. 디자인 애호가 사이에서 빈이 화제로 오를 때면 로브마이어도 항상 뒤따라 언급되곤 한다.
사흘 치 짐으로 꽉 찬 백팩, 이와 극심한 대조를 이루는 고급스럽게 포장된 로브마이어 와인 잔 하나를 곁에 두고 로컬들의 만남의 장소라는 뮤지엄쿼티어(MuseumsQuartier) 안 벤치에 앉았다. 드문드문 보이는 커플들을 바라보며 또 무의식중에 <비포 선라이즈>식 로맨스를 떠올리고 말았다.
개봉한지 벌써 30년이나 지났지만 영화에 등장했던 카페 스페를, 알베르티나 뮤지엄, 대관람차가 있는 프라터, 게다가 레코드 가게 알트앤네우(Alt & Neu)까지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클래식이 낭만인 도시의 장점은 그 풍경이 오래 유지된다는 데 있다. 그것도 수백 년씩. 그러니 조급해하지 않고, 로맨스는 세 번째 방문으로 미뤄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