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로 기억하는 이탈리아의 맛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LEE JIHYE
  • PHOTOGRAPHY BY JEON JAEHO, kim chankyum

피자로 기억하는 이탈리아의 맛

A Taste of Italy

이탈리아 전통 피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미식가들 사이에서도 극찬 받는 폴베리 김찬겸 셰프. 그가 만드는 피자엔 이탈리아의 추억이 가득 담겨 있다.
  • written by LEE JIHYE
  • PHOTOGRAPHY BY JEON JAEHO, kim chankyum
2025년 05월 07일

망원동으로 이어지는 합정동의 2차선 도로. 멀리서도 눈에 띄는 노란 간판 앞엔 언제나 사람들이 서성인다. 피자 전문점 폴베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오픈런도, 웨이팅도 마다하지 않게 만드는 폴베리를 두고 여행작가 노중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라고 평가했다. 8년간 같은 자리를 지키는 폴베리의 김찬겸 셰프는 매일 아침 성실히 도(dough)를 반죽한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요리를 시작했어요. 30대 초반까지 아버지의 가업을 도우며 살았으니까요.” 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주길 바랐지만, 요리에 대한 갈망은 점점 커졌다. 가족과 일 사이의 균형은 점차 무너졌고, 결국 가업을 내려놓았다. 고민 끝에 찾아온 결심은 요리라는 전혀 새로운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두 살짜리 딸아이를 돌보던 아내가 ‘언젠가 사고 칠 것 같으니, 조금이라도 젊을 때 쳐라’라며 허락(!)해준 뒤 한국에서 진행하는 이탈리아 요리 수업을 등록했습니다. 그게 서른두 살, 2017년이었죠.”
3개월의 짧은 요리 수업 과정을 마친 김찬겸 셰프는 이탈리아 IFSE 요리 학교로 연계 수업을 떠났다. 토리노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2주 코스를 거친 후, 3개월짜리 본수업이 개설돼 홀로 남아 요리를 더 배웠다. 늦게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더 치열한 시간이었다. 그의 성실함이 통했는지 수석으로 졸업했고, 인근의 미슐랭 레스토랑 알레노테카(All’Enoteca)에서 일할 기회까지 주어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초부터 탄탄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파스타, 라사냐, 브라치올레, 피자 같은 이탈리아 전통 요리를 두루 익혔죠. 원재료의 풍미를 최대한 살리는 요리법이 잘 맞았어요. 어릴 적부터 레시피보단 재료에 관심이 많았던 저에게는 더더욱요.”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식을 대할 때마다 항상 ‘뭘로 만들었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졌다. 우연히 들른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채소 소믈리에’라는 단어에 마음을 빼앗긴 후 한국에서 자격증도 취득했다. 채소 소믈리에는 식재료의 기원과 계절, 궁합과 조리법까지 파고드는 전문가다.

피자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정
그의 요리 인생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곳은 북부 피에몬테주 알바(Alba)에 자리한 레스토랑 ‘구스토 마드레(Gusto Madre)’였다. 유학 시절 들렀던 이 작은 식당에서 그동안 알던 피자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든 피자를 마주했다.
“도를 따로 구워 요리한 재료를 올려 내는 방식이었어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화덕 피자와는 달랐죠.” 도 위에 재료를 올려 함께 굽는 투박한 남부식에 비해 북부 스타일의 피자는 섬세하고 정제된 맛을 지향했다. 그는 이 피자집에 매주 쉬는 날마다 찾아갔다. 매번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다른 메뉴를 시켰다. 도는 늘 달랐다. 프로슈토를 올릴 땐 짭조름하고 얇게, 리코타 치즈와 어울릴 땐 폭신하고 습기 많은 반죽이었다. 어느 날엔 얼굴을 익힌 직원들이 메뉴판에 없는 피자를 내주기도 했다.
이 경험은 김찬겸 셰프가 만드는 피자의 방향을 결정 지었다. 폴베리의 피자는 화덕을 사용하지만, 전통을 고수하진 않는다. 재료에 따라 발효 시간을 조절하거나 온도를 다르게 맞춘다. 원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되, 재료를 따로 올리는 북부 스타일을 적용했다. 사과 고르곤졸라 피자가 대표적이다.
“한국 사람들은 꿀 찍어 먹는 걸 좋아하지만, 이탈리아 친구들은 그게 싫다고 하더라고요. 꿀 없이 단맛을 내기 위해 고민하고 연구한 결과 사과청을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폴베리의 시그너처 메뉴죠. 계절마다 사과 품종이 달라지듯, 맛도 조금씩 변해요.”
요리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김찬겸 셰프는 몇 년 후 ‘나폴리 피자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탈리아를 다시 찾았다. 대회 참가 후기를 묻자 “빈손으로 왔다”며 웃으며 말하지만, 혀끝으로 맛본 수많은 피자는 오래도록 남았다.
“매년 열리는 큰 대회지만, 신청만 하면 참가할 수 있었어요. 상을 타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나간 건 아니에요. 피자를 업으로 삼고 있는 만큼 어떤 다양한 피자가 나올지 궁금해서였죠. 그래서 머무는 내내 나폴리 피자집만 갔어요. 가게마다 레시피와 맛이 다르니까 물리지도 않더라고요. 한국에서 일주일 내내 제육볶음을 먹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여행이 남긴 인생 레시피
삶에 중요한 부분인 달리기도 이탈리아에서 시작했다. 유학 시절, 동료들을 따라 아침마다 포도밭 인근을 달린 것이 계기였다. 마침 수확의 계절 가을이었다. 달큰하게 익은 포도 향이 시원한 바람과 섞여 코를 간지럽혔다. 이 기억이 좋아 한국에 돌아와서도 아내와 함께 꾸준히 달리기를 했다. 지금도 어딜 가든 아침 러닝을 빠뜨리지 않는다. 지난 3월, 가족과 함께 방문한 로마도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그 도시의 결이 보여요. 로마 마라톤을 뛸 때는 유적지를 그대로 통과하거든요. 검투사가 뛰던 콜로세움 앞을 달리면서, ‘과거의 시간이 지금 내 발 아래 있다’는 느낌이 들었죠.”
로마에서 맛본 다양한 음식도 영감이 됐다. 메뉴에 무엇을 더 넣을까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로마에서 맛본 수풀리(로마의 전통적인 거리 음식. 튀긴 라이스 볼로 아란치니와 비슷하다)가 인상에 남았다. 로마에 머무는 동안 눈에 보이는 수플리는 모두 맛봤다. 최근 리뉴얼된 폴베리의 메뉴에 수플리가 추가된 것도 이런 이유다.
“로마는 아이디어의 도시였어요. 피자를 비롯해 튀김, 디저트에 집중했죠. 직사각형 모양의 얇은 도가 특징인 로마식 피자, 브리오슈에 생크림을 넣은 ‘마리토초(maritozzo)’, 로마식 카푸치노까지 다 기억에 남아요. 맛보고 온 것을 적용해 폴베리만의 메뉴를 연구하고 있어요. 차례차례 손님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어요.”
그는 여전히 피자를 굽는다. 동시에 달리고, 걷고, 여행하고, 먹고, 바라본다. 식재료를 공부하고, 요리를 실험하며 공간을 다시 꾸린다. 세프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고, 폴베리의 요리도 계속 진화 중이다.

취나물 그리차 파스타

재료
취나물무침: 취나물 30g, 소금 한 꼬집, 페코리노 치즈 2g, 간장 10g, 들기름 10g, 레몬즙 조금(선택)
메체마니케 파스타 면 150g, 관찰레 80g, 곱게 간 페코리노 치즈 50g, 후추, 처빌,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1 취나물은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살짝 데쳐 바로 찬물에 담가 식힌 뒤 물기를 꽉 짠다.
2 취나물은 먹기 좋은 크기로 다진 뒤 소금과 페코리노 치즈, 간장, 들기름, 레몬즙을 넣고 잘 버무린다.
3 파스타 면을 삶는 동안 팬에 관찰레를 중불에 굽는다.
4 관찰레가 약 80% 익으면 관찰레에서 나온 기름은 그대로 두고 고기만 꺼낸다.
5 파스타 면이 다 익으면 면수를 조금 넣고 관찰레에서 나온 기름과 함께 만테카레(mantecare, 면에 남아 있는 전분을 이용해 소스가 잘 달라붙도록 만드는 과정)하면서 잘 버무린다.
6 면에 오일이 흡수되는 동안 갈아둔 페코리노 치즈를 넣고 계속 만테카레를 한다.
7 면이 오일과 치즈를 잘 머금으면 접시에 담고 처빌과 후추를 올려 마무리한다.

tip.
페코리노의 맛과 향이 강하기 때문에 나물은 간을 약하게 해도 좋다.

로마식 피자

재료
반죽: 밀가루 1kg, 물 750g, 생이스트 10g, 소금 30g,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45g

토핑: 프로슈토 또는 브레사올라 등의 염장 숙성햄, 방울토마토, 올리브, 케이퍼 열매, 파르미자노 레자노, 바질, 생모차렐라 또는 스트라차텔라 치즈

1 반죽기에 밀가루, 생이스트, 물 560g(약 70%)를 넣고 저속으로 4분간 반죽한다.
2 반죽이 하나로 뭉쳐지면 소금과 나머지 물의 1/3을 넣고 계속 반죽한다.
3 반죽이 매끈해지면 고속으로 바꾼 뒤 2/3 정도 남은 물을 서너 번에 걸쳐 조금씩 넣는다.
4 물을 다 넣고 나면 오일을 넣고 오일이 흡수될 때까지 반죽한다.
5 반죽이 완료되면 꺼낸 뒤 그대로 30분 정도 휴지시킨다.
6 반죽을 여러 개로 나눈 후 굴려 동그랗게 만들고 상온에서 발효한다.
7 발효가 완료되면 밀가루 위에 반죽을 뒤집어서 올리고 전체적으로 밀가루를 덧바르면서 손가락으로 오븐 팬 크기에 맞게 조심히 편다.
8 오븐 팬에 도를 올리고 토마토소스를 바른다. 방울토마토와 올리브를 누르듯이 올린 후 올리브 오일을 뿌리고 250℃에서 10~12분간 굽는다.
9 도가 다 익으면 그 위에 프로슈토와 케이퍼 열매, 바질, 파르미자노 레자노 등 나머지 토핑을 올린다.

tip.
취향에 따라 다른 토핑을 올려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