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BP ALLIANCE
Creator
영도에 붙은 새 별명이 있다. ‘영 아일랜드(Young Island)’. 조선업의 쇠퇴로 빈 공장, 빈 창고, 빈집이 무성했던 항구 도시는 이제 한 달 최고 방문자 수가 163만 명(2023년 7월, 한국관광데이터랩)에 육박하는 부산의 요지가 됐다. 알티비피 얼라이언스(이하 RTBP)는 영도에 불고 있는 이 활기의 첫 바람을 일으킨 일원이자 로컬 문화 기업이다. ‘Return to Busan Port’의 머리글 자를 붙여 만든 회사명은 동시에 이 동맹의 수장, 김철우 대표의 사명이기도 하다. 새로운 흥성기를 맞이한 영도를 탐색하기 전 그를 만나 ‘왜 지금 영도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했다.
Q RTBP를 “도시 재생, 공간 기획, 문화 콘텐츠 기획, 기술개발 혁신, 인큐베이팅 등의 사업 영역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왜 영도에서 이 일을 벌이고 있는가?
도시가 만들어지면 가장 먼저 항구와 제반 시설, 공간이 생겨난다.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는 건 가장 먼저 낡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노후화된 도시 앞엔 선택지가 있다. 재개발과 재생. 영도의 그 서사가 모두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Q 예를 들면 어떤 콘텐츠가 있을까?
부산항을 품은 영도는 일본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집결한 곳이다. 개항, 피란 등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만든 특성이다. 영도에는 각기 다른 주거, 음식, 복식, 놀이문화 등이 충돌하며 스파크를 일으키다가 아주 색다르게 진화한 흔적이 많다. 우리가 흔히 변종, 혼종, 이색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문화. 일본에서 즐겨 먹는 스지를 한국식 된장찌개에 넣어 끓인 ‘스지 된장 전골’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Q ‘혼종’이라는 단어가 와닿는다. 영도의 매력을 또 다른 키워드로 표현한다면?
영도는 조선시대 어느 시점까지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 목장지, 군사기지였던 곳에 항구가 열리고 개발이 시작되며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살기 시작한 사람들이 이 지역을 주거지로 만든 역사가 있다. 이런 환경에서 튀어나온 부조화, ‘언밸런스’도 내가 좋아하는 영도의 정체성 중 하나다. 악조건 속에서 ‘다음’을 만든 도시는 창의적일 수밖에 없다. 나의 관점으로 발견한 영도의 매력을 최대한 꺼내보자, 생각한 결과들이 바로 RTBP가 하고 있는 일이다.
Q 지금 영도라는 브랜드의 키워드로 만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커뮤니티 문화. 영도에 계속해서 어떤 ‘신(Scene)’이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도록 기반을 창출하는 것이 RTBP의 화두다. 영도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여가를 즐기며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할 수 있으려면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Q 그 ‘신’을 만들기 위해 RTBP가 해온 실험, 앞으로 할 일이 궁금하다.
쉽게 말해 우리는 ‘판’을 만든다. 부둣가 창고에서 미디어 아트 전시회, 콘서트를 열고 산복도로에 있는 마을의 경사로와 빈집을 극장으로 만들어 영화제를 개최하는 등 영도라는 공간이 어떻게 콘텐츠가 될 수 있는지 보여왔다. 살아 있는 도시라는 건 결국 다양한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곳 아닐까? 영도의 이야기를 발굴해 이 도시를 먹고사는 활동 이상의 일상, 흥미로운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끄티 프로젝트
Project
‘로컬’이라는 수식어는 이제 여행의 질을 높이는 정보 이상의 역할을 한다. “여행할 만한 곳 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살 만한 곳일까?”라는 화두로 확장되고 있다. RTBP가 기획하고 만든 ‘끄티 프로젝트’는 영도 도시 재생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실험이다. 폐창고를 매입해 다양한 콘텐츠를 채워 넣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출발한 이곳은 이제 직주락(職住樂, Work ·Live ·Play)의 베이스캠프로 영역을 넓혔다. 2023년 6월 문을 연 ‘끄티 봉래’는 ‘지역 의 정체성을 담은 라이프스타일 센터’라는 문구로 공간성을 설명한다. 지금은 근대 유산이 된 대한도기의 옛 공장 부지에 들어선 이곳엔 일터와 놀이터가 함께 있다. RTBP의 사무실이 들어선 7층을 제외하면 모든 공간을 방문자에게 활짝 열었다. 워케이션을 위한 공유 오피스 ‘더 휴일’, 부산의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 와일드 웨이브가 운영하는 펍 앤 다이 닝 ‘사우어 영도’, 편집숍 ‘바스큘’과 카페 ‘림림’, 로컬 브랜드와 창작자를 지원하는 인큐베이팅 스튜디오 등이 지하 1층, 지상 8층 규모의 건물을 꽉 채운다. 프로젝트의 또 다른 공간인 ‘끄티 봉산’에선 영도의 로컬 커뮤니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봉래동의 가파른 산복도로 초입에 자리한 이 공간은 봉산마을의 리셉션 센터 역할로 출발했다. 원주민과 새 주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브런치 카페 ‘오픈’, 영도의 자연과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아이템을 만날 수 있는 ‘도다리 비주얼 랩’을 비롯해 RTBP와 동맹을 맺은 로컬 창작자의 스튜디오, 거주 공간 등이 들어서 있다.
주소 부산시 영도구 대교로46번길 46 (끄티 봉래) / 부산시 영도구 하나길 788 (끄티 봉산)
피아크
Complex
2021년 5월, 연면적 1만m²에 육박하는 조선소 부지 위에 복합문화공간으로 문을 연 ‘피아크( P.ARK, Platform of Ark for Creators)’는 지난 2년 동안 진화를 거듭했다. 카페와 베이커리, 디자인 숍과 뮤지엄 등으로 안을 채우고도 유휴 공간이 눈에 띄었던 초창기와 달리 연간 70만여 명이 방문하는 지금은 대도시의 복합몰이 갖는 기능과 역할로 영도의 인구밀도를 높인다. 거대 크루즈를 본떠 만든 피아크 안엔 하루를 온전하게 보낼 수 있는 콘텐츠가 가득하다. 데이비드 호크니, 에바 알머슨 등의 대형 전시를 연달아 선보이는 뮤지엄을 지나 3층에 오르면 팝업 스토어, 전시, 콘서트, 축제 등이 열리는 2,700m²규모의 ‘크리에이티브 가든’이 나타난다. 4층에 자리한 ‘피아크 카페 & 베이커리’에선 감만부두의 크레인과 선박, 오륙도와 부산항, 부산항대교를 파노라마로 품는 통창 앞 전망, ‘로스팅 랩’과 ‘베이커리 팩토리’에서 갓 볶고 구운 커피와 빵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이 외에도 로컬 플라워 스튜디오 ‘가일레 가든’과 로컬 맛집 ‘미주스’를 비롯해 부산 태생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카모메 키친’, 신기 산업의 ‘미피 굿즈’ 등이 공간에 활기를 더한다. 바로 옆, 제일기업의 선박수리 공장 안에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미디어 아트 뮤지엄 아르떼가 개관하면 피아크에 머물며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주소 부산시 영도구 해양로195번길 180
웹사이트 p-ark .kr
무명일기
Brand
무명일기(無名日記)는 의식주 콘텐츠를 제공하는 로컬 브랜드이자 문화공간이다. 1959년에 지어진 창고를 개조한 이곳에서 김미연 대표는 지역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은 공연, 전시, 커뮤니티 모임 등을 만들거나 지원한다. 동시에 공간 한쪽에선 무명일기의 정체성을 담아 디자인한 라이프스타일 제품도 선보이고 있다. 기중기와 바지선, 선박이 키네틱 아트 작품처럼 아름답게 담기는 전망 좋은 창도 매력적인 장면이지만 이곳의 이름을 더 널리 알린 존재는 따로 있다. “영도 소반은 이 섬의 독특한 환경, 자연, 역사를 표현하는 미식 콘텐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됐어요.” 그렇게 탄생한 도시락엔 고구마 시배지인 영도의 조내기고구마로 만든 크로켓, 제주에서 건너와 영도에 정착한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로 만든 샐러드, 피란민의 애환과 깡깡이 아지매의 이야기를 표현한 주먹밥 등이 들어간다. 무명일기가 탄생한 지 5주년이 되는 올해, 김미연 대표는 영도 소반을 복합 예술 콘텐츠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영도의 식재료, 조리법을 미디어 아트, 퍼포먼스 같은 콘텐츠로 만들어 스크린과 무대 위에서 펼치는 ‘영도 소반 다이닝’을 선보일 계획이에요.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영도를 경험하면 좋겠어요.”
주소 부산시 영도구 봉래나루로 178
웹사이트 www.instagram.com/cotton.diary
아레아식스
Platform
1953년 영도에서 탄생한 삼진어묵은 국내에서 리브랜딩에 성공한 대표적 로컬 기업으로 꼽힌다. 장인정신과 트렌드라는 두 목표를 모두 성취한 삼진어묵은 이제 부산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로컬 브랜드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프로젝트로 영도의 재부흥에 일조한다. 봉래시장 옆 삼진어묵 본진 바로 옆, 2021년에 문을 연 ‘아레아식스(AREA6)’는 ‘로컬을 밝히는 아티장 골목’이라는 콘셉트로 문을 연 로컬 컬처 플랫폼이다. 여섯 채의 주택을 중정을 두고 연결해 작은 마을처럼 꾸민 이곳은 처음엔 오랜 역사를 가진 지역 브랜드, 부산의 젊은 창작자들이 만든 소규모 브랜드가 모인 복합 공간의 성격이 강했다. 2022년 삼진어묵의 크리에이티브 그룹 ‘어메이징 스튜디오’가 결성되면서 아레아식스는 단순한 공간 임대가 아닌 로컬과 더 깊이 상생하는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아레아식스에서 리브랜딩된 지역 브랜드의 새 얼굴이 궁금하다면 가장 먼저 송월타올로 향할 것. 캐릭터 ‘타올쿤’과 함께 부산의 낮과 밤, 바다와 도시, 랜드마크 등을 컬러와 아이콘으로 표현한 ‘부산 에디션’을 비롯해 부산의 셀렉트 숍 ‘발란사’와 협업한 수건 등 소장 욕구를 부르는 다양한 아이템을 선보인다. 역시 부산 태생인 ‘조광 페인트’, 창의적인 패턴과 컬러의 마스킹 테이프를 만드는 ‘롤드 페인트’의 협업 공간인 ‘ㅊㅂㅊㅂ’ 프로젝트 매장에선 부산의 색과 무늬를 담은 커스텀 페인트와 마스킹 테이프를 이용해 드로잉, 업사이클링 체험을 할 수 있다. 쇼핑과 놀이를 마쳤다면 그로서리 스토어 ‘롤로와 영도’로 향할 차례. 액셀러레이터 기업 크립톤이 ‘살고 싶은 영도를 만들어가는 로컬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터’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만든 공간으로 단순한 상점을 넘어 ‘개더링’ ‘플로깅’과 같은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주소 부산시 영도구 태종로105번길 37- 3
웹사이트 blog.naver.com /area6yeongdo
봉래동 커피특화거리
Street
영도는 ‘커피의 섬’으로도 불린다. 2022년, 부산의 커피 신을 대표하는 브랜드 모모스가 봉래나루로에 위치한 1,820m² 면적의 창고를 개조해 ‘모모스 로스터리 & 커피바’를 연 후 이 수식어의 지위는 더 견고해졌다. “부산에 살면서 영도로 건너간 적이 한 번도 없는 부산 사람이 꽤 많다”는 얘기가 돌 정도로 외진 동네에 카페 나들이를 위해 건너오는 유동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자 부산시가 이 기회를 빠르게 포착했다. 영도구 봉래동 물양장 인근, 부산대교 아래부터 대선조선까지 600m 거리에 ‘커피특화거리’를 조성한 것. 지역 매체에선 8억 5천만 원의 시예산이 ‘커피 마시며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창고를 매입해 커피복합 거점공간 ‘블루포트 2021’을 조성하는 데 쓰였으며 2023년 말에 단장이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말한다. 커피 스트리트가 된 봉래나루로에서 커피 그 자체에 집중하고 싶다면 당연히 모모스 로스터리 & 커피바로 향해야 한다. 2019년 전주연 공동대표가 한국인 최초로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인기가 급상승한 이곳은 이현기 공동대표가 2007년에 문을 열고, 2010년부터 스페셜티 커피 신을 국내에 소개한 부산 커피 신의 터줏대감이다. 원두 로스팅 과정을 볼 수 있는 로스팅랩과 그 앞에서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들의 모습을 한 편의 공연처럼 감상하며 모모스가 추구하는 ‘완벽한 커피 한 잔’을 음미해보자.
봉산마을
Town
여행자 혹은 이주자가 급속도로 변화가 일어나는 재생 도시에서 원주민과 어우러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봉산마을은 원주민과 그들이 가진 자원,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방문자의 발길을 이끈다. 경기 침체로 마을에 거주하던 조선소 직원들이 떠나며 급격히 쇠퇴하고 빈집이 급증했던 이 마을이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 건 2019년부터다. 마을 주 민들은 RTBP를 비롯해 영도의 다양한 도시 재생 프로젝트, 기획자들과 적극적으로 손을 잡으며 빈집을 채웠다. ‘빈집 줄게 살러 올래’ 프로젝트는 이 마을에 갤러리, 공방, 작업실 등의 새 공간과 함께 젊은 창작자와 창업자들을 데려왔다. 2022년 12월에 문을 연 ‘베리 베리굿봉산센터’는 지금 봉산마을의 정체성인 ‘커뮤니티 리조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게스트 하우스로 쓰는 ‘하버 하우스’에 체크인한 후 아래 골목에 자리한 ‘카페힐’ 로 가면 마을 주민들이 직접 키운 블루베리로 만든 음료를 맛볼 수 있다. 마을관리협동조합에서 제공하는 지도 한 장을 들고 구옥을 개조한 흥미로운 공간들을 탐색해볼 것. 와인 & 칵테일 바 ‘청마가옥’, 셀프사진관 ‘영옥사’, 도자기를 만들어볼 수 있는 ‘우리동네공작소 목금토’ 등을 누비며 마치 이 동네에 사는 사람처럼 색색으로 칠해진 산복도로를 천천히 산책하는 즐거움, 영도 앞바다를 감상하는 여유를 즐겨보자.
주소 부산시 영도구 오동꽃길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