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럭셔리, 란다 기라바루
몰디브에 간다고 했을 때 열 명 중 열 명은 “부럽다”는 반응이었다. 누군가 몰디브에 간다고 했을 때 나 역시 그랬으니까. 이 마법 같은 지명은 모든 이들이 꿈꾸는 목적지니 말이다. 말레 공항에서 나와 후끈한 열기를 느낄 새도 없이 푸른 바다가 눈을 어지럽혔다. “우와!” 하는 내 탄성에 몰디브를 여러 번 오간 일행이 말했다. “말레 바다색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운지에서 프리 드링크와 푸드를 모두 맛볼 시간도 없이 수상비행장으로 향한다. 포시즌스 리조트 몰디브 앳 란다 기라바루(Four Seasons Resort Maldives at Landaa Giraavaru, 이하 란다 기라바루)로 가는 여정은 터미널의 모든 수상비행기를 통틀어 단연 눈에 띄는 플라잉 박스피시(Flying Boxfish)에 올라타면서부터 시작된다. 란다 기라바루가 투숙객만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한 10인승 프리미엄 수상비행기다. 얼핏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같기도, 풍뎅이 같기도 한 노란 바탕의 점박이 무늬는 사실 몰디브 해역에 사는 노란색 물고기 박스피시에서 영감을 얻었다.
아래로 투명한 바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마다 모양을 달리한 리조트를 상공에서 바라보니 그제야 몰디브에 온 것이 실감 났다. 30분의 비행 후 드디어 목적지가 보였다. 란다 기라바루는 일상과 전혀 다른 날을 꿈꾸며 몰디브의 럭셔리 리조트를 한 번이라도 찾아본 이들이라면 알 법한 이름이다. 동시에 리조트가 사실상 여행의 전부가 되는 몰디브를 처음 찾는 (나 같은) 여행자에겐 몰디브 리조트의 기준치를 한없이 올려주는 장소다. 가로수 길이 펼쳐진 로비로 가는 길은 지상낙원으로 입성하는 듯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까마귀만 한 박쥐들이 날아다닌다. 문득 눈을 감으면 새소리가 귓가에 파고든다. 우거진 신록 사이로 바닷바람이 유영하는 길을 지나 로비에 앉아 코코넛 워터를 들이켜며 생각한다. 이토록 완벽한 입도(入島)가 또 있을까.
란다 기라바루에는 16개 타입의 객실 103개가 있다. 프리미어 오션 프런트 방갈로 위드 풀, 비치 빌라 위드 풀, 패밀리 워터 빌라 위드 풀, 스리 베드룸 워터 스위트, 스리 베드룸 란다 에스테이트 등 다양한 구조의 객실로 선택의 폭을 넓혔다. 모두 야자나무로 지붕을 만들고 산호초 벽돌을 사용해 벽을 세우는 몰디비안 초가집 스타일이다. 독립적 형태로 저마다 구불구불한 오솔길과 수풀에 둘러싸인 채 멀찍이 떨어져 있다. 터키옥으로 장식된 문을 열고 몰디브 전통 산호초 벽을 지나 비치 빌라로 들어갔다. 12m의 개인 전용 수영장과 야외에 마련된 거실 겸 다이닝 파빌리온을 지나 객실로 들어서면 ‘럭셔리’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른다. 일행과의 동선이 완벽히 나눠질 법한 넓은 크기에 복층보다 더 높은 천장, 화이트와 블루로 톤을 맞춘 벽과 금빛 조명으로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두 개로 나뉜 옷장과 커다란 욕조를 지나면 비즈니스 호텔 객실만 한 방이 나타난다. 개별 문이 달려 있어 혼자 자는 걸 좋아하는 투숙객이라면 독립된 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크기다. 두 명이 옮기기도 힘든 묵직한 소파에서 졸다가 해 질 무렵 은은한 조명을 따라 객실에서 바다로 난 길을 걸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해변이 운치를 자아낸다.
“럭셔리한 휴식은 란다 기라바루를 관통하는 철학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에요. 지속가능한 하스피탤러티의 요소를 촘촘하게 채워 넣었거든요. 내일부터 이 리조트에서 누리는 많은 것에서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첫날 저녁 호들갑 떨고 있는 내게 건넨 세일즈 & 마케팅 매니저 마커스(Markus)의 호언장담이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됐을 땐, 고작 하룻밤이 지나 있었다.
새소리에 잠을 깬 후 자전거를 타고 아침을 먹으러 가는 길. 울타리 밖을 자유롭게 노니는 닭과 마주쳐 지나가는데 채소를 가득 담은 바구니를 옆구리에 낀 직원이 눈인사를 건넨다. “아, 거긴 난초 정원이에요. 바로 옆엔 닭을 방목해 키우죠.” 세일즈 & 마케팅 리더 아야(Ayya)는 궁금해하는 나를 정원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이곳엔 난초 8천여 개와 100여 종의 허브가 자라요. 살충제, 항생제, 유전자변형농작물 같은 건 아예 없어요. 리조트와 객실 내부를 꾸미는 오키드 꽃도 이곳에서 키우죠. 신선한 바질, 레몬그라스, 민트, 나비콩 같은 허브는 곧바로 식탁에 오릅니다.”
아야의 이야기처럼 란다 기라바루의 지속가능성은 레스토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리조트 안에는 모두 4개의 레스토랑과 1개의 바가 있다. 아침 뷔페와 점심, 저녁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카페 란다(Cafe Landaa), 중동 음식을 선보이는 알 바라캇(Al Barakat), 정통 이탈리아 음식 전문 블루(Blu), 그날 잡은 신선한 생선을 맛볼 수 있는 푸에고 그릴(Fuego Grill) 그리고 코코넛과 럼을 숙성해 칵테일을 만드는 시 바(Sea Bar). 모든 레스토랑과 바에서 사용하는 생선과 해산물의 90%는 현지에서 조달한다. 또 이곳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는 3개월간 자연 발효시켜 다시 정원으로 돌려보낸다. 미식에도 소홀함이 없다. 알 바라캇에서 후무스를 숟가락으로 퍼 먹고, 양고기 구이의 풍미에 새롭게 눈떴다. 총괄 셰프 위르겐 쿨리(Jurgen Kulli)에게 엄지를 척 올린 건 이튿날 저녁, 푸에고 그릴에서 이름 모를 생선을 먹은 뒤의 일이다.
비치 근처에 자리한 마린 디스커버리 센터는 포시즌스가 란다 기라바루에서 실현 중인 자연 보호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 전시관에서 몰디브에 사는 생물다양성에 놀란 것도 잠시, 외부의 재활 센터에서 쉬고 있는 거북을 발견했다. 그물에 걸려 지느러미가 없거나 등껍질에 상처를 입은 거북들이 수조 속에서 쉬고 있다. 이들은 치료와 재활을 거쳐 대부분 바다로 돌려보내진다. 몰디브 포시즌스 리조트가 지난 10년여간 구조한 바다거북만 해도 무려 300마리 이상에 달한다. 내가 란다 기라바루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만타 온 콜(Manta On Call)’이다. 리조트가 유네스코 세계생물권보전지역인 바 아톨(Baa Atoll)의 일부이자 만타(쥐가오리)의 주요 서식지에 자리한 덕분에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다. 만타가 나타나면 직원들이 무전으로 알려주는데, 참가자는 그 즉시 스피드보트를 타고 나가 바다에 뛰어들어 만타를 볼 수 있다. 리조트 어디에서든 무전을 받을 수 있으므로, 수영복을 입고 입수 장비를 챙겨두는 건 필수다. 다행히 내가 만타 온 콜을 하는 날엔 무전이 왔다. 부리나케 뛰어든 바다에선 크기를 가늠하기도 힘든 거대한 만타들이 조용히 스쳐갔고, 나는 바닷속이라는 것도 잊은 채 입을 떡 벌렸다.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본 몇 번의 새벽이 지났다. 경이로운 자연의 환대와 따뜻한 평온이 깃든 섬. 포시즌스 리조트 몰디브 앳 란다 기라바루는 이 섬을 무대로 지속가능한 휴식을 실현하고 있었다.
액티비티와 휴식의 조화, 쿠다후라
란다 기라바루를 떠나 포시즌스 리조트 몰디브 앳 쿠다후라(Four Seasons Resort Maldives at Kuda Huraa, 이하 쿠다후라)로 짐을 옮겼다. 사실 이 여정의 순서에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몇 있었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아담하고 안락한 분위기의 쿠다후라를 먼저 찾은 뒤 더 큰 규모의 란다 기라바루로 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리조트가 너무 좋아서 쿠다후라에서 실망하면 어떡해?” 같은 걱정의 말들은 쿠다후라에 내린 순간부터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말레에서 스피드보트를 타고 20여 분을 달리자 선연한 옥색빛의 바다가 펼쳐진다. 아침까지 보던 란다 기라바루의 경치와는 다른 전경이다. 버기를 잡아타고 선셋 워터 빌라에 들어섰다. 달라진 건 경치만이 아니었다. 바다색을 닮은 옥색 벽지에 대나무로 짠 가구와 조명이 야자나무 지붕과 색을 맞췄다. 여기에 짙은 코럴 핑크의 드링크 바와 주황색 패턴의 쿠션이 포인트를 더한다. 란다 기라바루에 비한다면 작은 객실이지만 층고가 높고 수영장으로 나갈 수 있는 통유리창 덕분에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모던하면서도 아늑함을 원하는 투숙객의 입맛에는 더 맞는 객실이다. 도착과 동시에 금세 하늘이 변하더니, 곧 검은 먹구름이 비를 뿌렸다. 소파에 누워 밖을 한참 바라본다. 수면이 빗줄기를 따라 반짝이면서 또 한 번 낯선 풍경을 선사한다. 잔잔한 란다 기라바루와는 다른 높이의 파도가 친다. 사실 비가 오지 않아도 쿠다후라는 몰디브의 여느 리조트보다 파도가 높다.
“세계적인 수준의 서핑 선수들이 매년 찾아오는 목적지가 바로 쿠다후라입니다. 포시즌스 몰디브는 12년째 ‘포시즌스 몰디브 서핑 챔피언 트로피’를 주최해요. 쿠다후라 인근에 있는 유명한 서핑 포인트 술탄(Sultans)에서 열리죠. 술탄의 파도는 높고 길어 서핑을 하기에 최적이죠. 올해는 8월 29일부터 8일간 열리는데, 총 2만5천 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어요. 직원들도 올해의 우승자가 누가 될지 궁금해해요. 저는 사상 최초의 여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카리사 무어(Carissa Moore)와 도쿄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오웬 라이트(Owen Wright)의 각축전을 예상해요.” 쿠다후라 홍보 담당자 샤이마(Shaima)가 서핑 얘기에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쿠다후라의 파도를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다면 초보자를 위한 서핑 클래스에 참여하는 게 어때요?”
쿠다후라에는 무려 10여 종류의 액티비티가 있다. 이는 다른 리조트에 비해서도 많은 숫자다. 객실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리조트가 제공하는 온갖 서비스를 누릴 수도 있지만, 쿠다후라는 야외 액티비티나 체험을 원하는 (나 같은!) 투숙객에게도 소홀함이 없다. 샤이마의 말을 따라 원데이 서핑 클래스에 참가하거나 스탠드업 패들보드, 제트스키도 타고 싶었지만 고민 끝에 스노클링과 돌핀 크루즈를 선택했다. 스노클링을 위해 인근 해역의 수중 환경, 주의해야 할 점을 교육받은 뒤 바다로 들어갔다. 조금 전까지 영상으로 보던 형형색색 물고기들이 코앞에서 유영하고 있다. 바닷속을 헤엄친 지 5분이 지나지 않아 바다거북과 이글레이도 마주쳤다. 열대어 무리와 함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심해를 지나기도 한다.
리조트로 돌아와 다시 교육을 받고 돌핀 크루즈에 몸을 실었다. 돌고래가 있을 만한 적당한 파도를 찾아나서는 길. 뱃머리에서 파도를 살피는 노련한 선장 뒤에 자리를 잡았다. 가족과 여행 온 스리랑카 아이, 나이 지긋한 스페인 노부부 등 모든 사람의 눈빛이 기대로 빛났다. 여러 리조트에서 온 배가 모여들고 엔진이 꺼지자 돌고래를 부르는 박수 소리가 시작됐다. 언제 다가왔는지도 모르는 돌고래 무리가 서로 경쟁하듯 배 사이를 헤엄치며 수면 위로 뛰어오른다. “오 마이 갓”을 외치는 아이들의 환호, 갈채인지 더 많은 돌고래를 부르는 건지 알 수 없는(혹은 둘 다인) 박수 소리가 바다 위에 울려 퍼졌다.
워터 액티비티를 체험하지 않는 날에는 객실과 이어진 바다에 수시로 뛰어들었다.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을 보다가 바닷속으로 들어가 물고기들과 유영하는 데 채 1분이 걸리지 않는다. 허리까지 오는 높이의 바다에서 두세 발짝만 나가면 하얀 산호초들이 감싸고 있다. 쿠다후라는 부러진 산호초 조각을 리조트 주변에 모아 다시 자라날 수 있도록 관리한다. 포시즌스가 몰디브에서 실천하는 지속가능성의 대표 프로그램 ‘리프스케이퍼(Reefscapers)’다. 이들의 목표는 주변 해역에 약 3천500개의 산호 프레임을 배치해 기존의 산호초를 보호하고 새로운 산호초를 만드는 것. 투숙객은 언제든 리프스케이퍼에 동참해 일손을 더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산호가 자라는 과정을 수시로 공개하는 것도 리프스케이퍼의 특징이다.
액티비티로 지친 몸을 회복하기 위해 도니(Dhoni)를 타고 아일랜드 스파로 향했다. 플라잉 박스피시가 란다 기라바루를 상징한다면, 쿠다후라의 상징은 이 귀여운 몰디브 전통 나무 배다. 2~3분이면 닿는 가까운 거리지만, 아일랜드 스파는 몰디브에서 유일하게 단독 섬에 자리했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베드에 누워 테라피스트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다 보니, 긴장된 몸의 피로가 금세 사라진다. 마사지를 받는 동안엔 투명한 유리 바닥 밑으로 바닷속을 오가는 수중 생물을 감상할 수 있다. 부지런한 여행자에겐 쿠다후라의 선라이즈 요가도 좋은 선택이 된다. 오전 7시면 수영장 옆 덱에 모여 “옴~”을 읊조리며 기운을 모은다. 평화라는 의미의 ‘샨티’를 되새기며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육체와 영혼이 가벼워진 것을 알아챈다. 1시간 정도의 요가가 끝나면 푸른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는 황홀한 풍경을 눈에 새길 수 있다.
쿠다후라를 이루는 또 하나의 핵심 요소는 미식이다. 금요일 밤마다 카페 후라(Cafe Huraa)에서 열리는 해산물 뷔페 피셔맨스 피스트(Fisherman’s Feast)에서 통통한 랍스터를 뜯으며 포시즌스 몰디브 마케팅 총괄 디렉터 줄리아나(Juliana)에게 물었다. “몰디브 포시즌스를 통틀어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은 어디죠?” 줄리아나는 “하나만 꼽는 게 너무 잔인”하다고 말하면서도 크게 고민하진 않는 듯했다. “바라바루(Baraabaru)예요.”
인도인 셰프 키샨 싱(Kishan Singh)의 지휘 아래 정통 인도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바라바루는 2022년 이 선정한 ‘몰디브 최고의 테이블’ 10곳 중 하나다. 납작한 빵 파라타(Paratha)에 소고기와 코코넛을 구워 올린 와규 비프 체티나드(Wagyu Beef Chettinad)를 맛본 다음에는, 양파와 향신료를 넣고 오랫동안 졸인 바라바루 시그너처 라안(Baraabaru Signature Raan)을 게 눈 감추듯 먹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일 아침 열릴 쿠킹 클래스 참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마지막 날엔 보아바로 향했다. 보아바는 포시즌스가 몰디브에서 구현하려는 하스피탤러티의 정점을 목격할 수 있는 프라이빗 아일랜드다. 7개의 침실과 스파, 비치 하우스, 다이빙 센터가 있는 이곳엔 최대 22명의 투숙객이 머물 수 있다. 포시즌스 몰디브 리조트에 머무는 동안 강렬하게 각인된 단어는 ‘가족’이었다. 몰디브 포시즌스를 허니무너의 성지로만 설명하는 것은 한참 부족했다. 아이들과 샤크 피딩을 하는 미국인 가족, 3대가 함께 휴가 온 스리랑카 가족, 심지어 아버지와 유로 결승전을 볼 겸 포시즌스를 찾은 영국인도 만났다. 그동안 생각했던 몰디브의 이미지가 한꺼번에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그를 닮은 하늘이 만나는 희미한 수평선. 몇 번의 어둠이 깔리고 헤아리기 싫었던 날들이 쏜살같이 지난다. 마지막 밤, 쏟아지는 별을 보다 문득 “보름달이 뜨는 시기에 오면 더 아름답다”던 샤이마의 말이 생각났다. 모두가 동경하는 곳에서 보낸 비현실적인 그 시간을 더듬으며, 보름달이 뜨는 날 이곳에 있을 나를 벌써 동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