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이태호

대전 어궁동에 청년을 모아들인 주인공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어궁동’이라는 명칭은 정식 행정구역이 아니어서 로컬뿐만 아니라 여행자에게도 다소 낯설다. 어궁동은 충남대와 카이스트 사이 지역으로, 어은동과 궁동을 합친 이름이다. 이곳은 부흥과 쇠퇴의 역사를 동시에 지닌 동네다. 1973년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지정되면서 근처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교수와 연구자들이 외식을 하러 찾았다. 고급 한정식집과 술집이 생기며 한때는 차가 들어서기 어려울 정도로 번화한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주변 개발로 인해 점차 역할을 잃었고, 한동안 카이스트 학생들이 어은동에서 궁동으로 이동할 때 거쳐가는 동네로 쇠락했다.
지금은 카페나 공동체 공간, 창업 공간이 하나둘 생기며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쇠퇴한 동네의 가능성을 어디서 발견했나? 우선 지리적 조건이 뛰어났고 집값이 저렴해 청년들이 창업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공동체를 만들기에 적합한 분위기도 장점이었다. 처음에는 ‘벌집’이라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조성해 청년들을 모았다. 특별한 홍보 없이도 프리랜스 웹 디자이너, 축제 기획자, 청소년 교육 사업가, 프로그래머, 대학생 등 다양한 직업의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지역 잡지와 청년 잡지를 만들고, 축제와 콘퍼런스를 기획했다. 어궁동 거리에는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마련됐다. 마을 상인들도 먹거리 장터와 플리마켓 등에 함께 참여했다. 이러한 축제는 청년과 마을 주민 간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어궁동 발전의 동력이 됐다.
이제는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어궁동의 매력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곳에서 눈여겨볼 만한 공간은 어디일까? ‘세러데이커피’는 코워킹 스페이스 벌집 1층에 있는 커뮤니티 카페로, 커피에 진심인 곳이다. 2017년부터 자체 로스팅을 시작했는데 원두 맛이 뛰어나다. 로컬 창작자, 동네 서점, 지역 브랜드와 협업해 커뮤니티 공간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전의 굿즈나 로컬 블렌딩 원두를 사기에 좋다. 바리스타와 함께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마시는 세미나나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근처 제로 웨이스트 숍 ‘은영상점’에서는 다양한 친환경 제품을 비롯해 직접 만든 꿈돌이 굿즈를 살 수 있다. 천연 비누, 면 생리대, 천연 고체 치약 등을 만들어볼 수도 있고 자가 수리 주간이나 의류 잡화 교환소 같은 특별한 이벤트도 열린다. 최근 문을 연 ‘더 비블리오그라피’는 어궁동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간 중 하나다. 감각적으로 꾸민 독립서점으로, 철학·문학·사회정치학·예술 등 큐레이션한 서적을 판매한다. 빈 책장을 직접 큐레이션해 작은 서점주가 되는 색다른 체험도 가능하다. 대전에 있는 지역 창작자들의 수공예 작품도 전시·판매하고 있다.
‘노잼 도시’에서 ‘유잼 도시’로 변모하며 대전이 새로운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대전 출신으로서 이 도시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대전은 도시 속에서도 자연을 풍부하게 누릴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온천, 국가 보호 습지, 하천 등이 곳곳에 있어 다른 도시에 가면 오히려 답답함을 느낄 정도다. 무의식적으로 “대전이 살기 좋다”고 말하는 로컬들도 이런 자연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을 것이다. 물론 대전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 많고, 근대 건축물을 새롭게 활용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대전만의 매력이다.
Project
윙윙


몇 해 전부터 대전 어궁동에선 동네 축제, 해커톤, 취향 모임 등 재미있는 이벤트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그 중심에는 2017년 이태호 대표가 창업한 ‘윙윙’이 있다. 윙윙은 창업가와 지역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직주락(업무·주거·여가) 공간과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회사다. 2017년 대전도시공사가 진행한 100억원 규모의 도시 재생 사업에 참여해 주민과 행정기관, 전문가를 연결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동네 거점 시설을 직접 운영하기 위해 마을 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지속 가능한 지역 운영을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었다. 이후 윙윙은 청년 창업가들이 지역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코워킹 스페이스, 카페, 공유 공간 등을 조성했다. 처음엔 의심하던 지역 주민들도 점차 동네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지지하고 동참하게 됐다. 어궁동의 대표 축제인 ‘안녕, 축제’도 윙윙이 기획한 프로젝트다.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축제를 기획하고, 마을 상인들이 플리마켓과 장터를 여는 식이다. 동네가 활기를 띠자 재건축과 임대료 상승으로 기존 상인들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나기도 했다. 고민 끝에 윙윙은 ‘비스트리트(B.Street) 동네자산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장기 임대해 공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창업가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하는 전략이다. 윙윙은 단순한 창업 지원을 넘어 ‘함께 잘사는 공동체’에 집중한다. 지역 안에서 청년과 주민들이 어우러지고 도전할 수 있는 공간을 늘려 자연스럽게 로컬과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것이 목표다.
Art
대전의 예술 공간



대전은 흔히 과학·행정의 중심지로 알려졌지만, 20여 개의 굵직한 미술관이 자리한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현대미술과 공연 예술,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감상하기에 대전만큼 편리한 지방 도시도 드물다. 1930년 일제강점기 때부터 1990년대까지 대전세무서로 사용되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대전창작센터도 그중 하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분위기 속에서 지역 예술가들의 전시가 열리는 곳이다. 특히 예술가 레지던시로서 신진 예술가들에게 창작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최근까지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를 끝내고 3월 중순부터는 반 고흐의 예술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전시 «불멸의 화가 반 고흐»가 열릴 예정이다. 일제강점기 대표적 수탈 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을 리모델링한 ‘헤레디움’은 최근 오픈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유산으로 물려받은 토지’라는 의미의 헤레디움에선 주로 클래식 음악 공연과 현대미술 전시가 열린다. 얼마 전까지 열린 현대미술 거장 마르쿠스 뤼페르츠(Markus Lüpertz)의 개인전에 이어 오는 3월 15일부터 현대미술 특별전 두 번째 ‘헤레디움 시리즈’를 개최한다. 이 전시에서는 앤디 워홀과 장-미셸 오토니엘 등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대전 예술인들이 즐겨 찾던 옛 산호다방 건물을 리모델링한 ‘정영복 미술공간’도 주목할 만한 전시관이다. 대전 출신 원로 작가 정영복의 이름을 딴 공간으로, 구현주의 그라피티 작업 <빈티지룩>이 남아 있다.
Brand
정동문화사



대전에서 성심당을 이을 만한 베이커리 브랜드는? 대전역 바로 뒤편에서 시즌 1을 끝내고, 최근 철공소 거리에 새롭게 오픈한 구움 과자점 ‘정동문화사’를 꼽을 수 있다. 피낭시에, 카늘레, 에그타르트 등을 판매해 케이크와 빵을 다루는 성심당과는 다른 메뉴로 급부상하는 중이다. 새로 문을 연 정동문화사는 철공소 거리의 오래된 공장을 개조했는데, 배우 손석구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남선기공이었다. 오랫동안 방치됐던 이곳은 한때 카페 겸 공연장으로도 운영됐는데, 높은 층고 덕분에 악기와 목소리가 잘 어우러져 장기하, 윤마치 등 여러 뮤지션이 이곳에서 공연을 했다. 지금도 한가운데 자리한 피아노가 그 시간을 말해준다. 피낭시에 맛집으로 여행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정동문화사는 오픈 직후부터 SNS를 통해 알려지며 큰 인기를 얻는 중이다. 낮 12시부터 문을 열지만, 11시부터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기가 다반사다. 밖에서 대기 후 실내로 들어와도 최소 30분은 기다려야 구움 과자를 살 수 있고, 3시 전후가 되면 메뉴 대부분이 동난다. 하지만 한편엔 ‘성심당 빵 놓는 곳’이라는 친절한 팻말도 있어 손이 무거운 여행객도 부담 없이 대기할 수 있다. 테이크아웃 손님이 90%를 넘어 테이블 공간은 비교적 널널한 편이라 커피와 함께 갓 나온 구움 과자를 즐기고 싶다면 자리를 잡는 것도 좋은 방법. 인근 철공소 거리에는 뮤직 펍 ‘원동락공소’를 비롯해 젊은 창작자들의 작업실이 많으니 함께 둘러보는 것도 추천한다.
Community
눕시


대전 로컬들 사이에서 “대전에서 신나게 놀고 싶다면 눕시로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매일 독서, 영화, 러닝, 축구, 그러다 어느 날엔 열광적인 댄스 파티가 열리는 눕시는 20대를 군대에 몸담았던 정호석 대표가 전역 후 차린 공간. 경기도 김포 출신인 그가 3년 전, 연고도 없는 대전에 내려와 눕시를 연 것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행동하는 그의 타고난 성격 덕분이다. “군대에서 행사 기획을 주로 했는데, 제가 펼치고 싶은 것들을 군대 안에서 하는 것이 한정적이었어요. 사회로 나가 좀 더 활발한 일을 하고 싶었고, 마침 은사님께서 ‘대전에서 하면 도와주겠다’고 해서 내려왔어요. 당시 결혼을 준비 중이었는데, 와이프도 같이 대전에 살게 됐죠. 고민할 시간은 짧을수록 좋잖아요.” 정호석 대표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머리에 떠오르면 그 즉시 작당 모의와 행동에 돌입한다. 덕분에 눕시에선 매주 즐거운 이벤트가 끊이지 않고 열린다. 여자 축구 팀 ‘눕시 FC’, 토요일 아침 일찍 모여 한 주를 돌아보는 ‘이끼클럽’, 책으로 자기소개를 하는 ‘소설 디깅클럽’, 솔로 탈출을 위한 ‘눕시데이’ 등 비범한 아이템들이 그것. “3년간 대전에 살아보니 사람들이 대체로 수줍음이 많고 나서기를 꺼리는 성향이 있더라고요. 처음엔 저처럼 활발하게 모임을 이끌고 주도하는 사람을 낯설어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어느새 다음 아이템을 기다리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저는 그저 대전 사람들의 숨겨둔 ‘내적 흥’을 끓어올리는 역할을 할 뿐이죠.”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열리는 소셜 파티 눕시데이는 로컬이나 잠깐 머무는 여행객도 쉽게 왔다 가기 좋은 파티다. 눕시의 새로운 이벤트가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을 눈여겨보자.
Culture
문화를 주도하는 음악 감상소


대전에는 카페 겸 갤러리, 여기에 음악 감상소까지 겸하는 바가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바이닐042’와 ‘캡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복합문화공간 바이닐042는 고진성 디렉터가 ‘노잼 도시 대전’이라는 타이틀에 호기심을 느끼고 문을 연 공간이다. “이곳은 레코드 숍이자 카페, 바이자 힙합 공연장입니다. 일본 유학을 다녀온 뒤 서울에서 회사 생활을 하던 중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퇴사하게 됐어요. 창업이 꿈이었지만 서울에서는 자본이 부족해 지방을 찾게 됐죠. 그러다 아이러니하게도 ‘노잼 도시’라는 타이틀이 재미있어 대전으로 내려왔어요.” 대전의 지역번호를 딴 바이닐042는 라이브 공연, 전시, 플리마켓, 월간지 제작을 통해 지역 내 문화 예술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지역에서 활동 중인 뮤지션이 앨범을 발표하거나, 축구 팀인 대전하나시티즌과 협약해 시축을 하기도 한다. 여행객을 위해 인근 성심당에서 빵을 사 오는 손님들에겐 포크와 접시를 제공해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또 다른 복합문화공간 캡 프로젝트(CAP Project)는 커피, 문화, 예술의 합성어다. 서울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한 박성수 대표와 피아노 전공자인 박 대표의 사촌 동생이 의기투합해 만든 공간으로, 커피와 술을 마시며 편안하게 음악을 감상하는 분위기를 지향한다. “재즈를 비롯한 음악 공연이 정기적으로 펼쳐집니다. 처음엔 생소했는지 커피를 마시던 손님들이 재즈 공연이 시작되면 나가버리기도 했죠. 하지만 2년여 동안 자리를 지키니 많은 사람이 찾는 문화 공간이 됐어요.” 캡 프로젝트에선 지역 예술가들의 전시나 그림으로 마음을 치료하는 심리 상담 클래스 같은 특별한 이벤트도 열린다.


Street
소제동 관사촌 거리





대전역을 등지고 걸으면 마주하는 작은 동네, 소제동. 한때 철도 관사촌이었던 이곳이 최근 대전을 찾는 여행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 대전역에서 근무하는 일본인 철도 관료들을 위해 지은 관사가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하면서 감성적인 공간과 개성 있는 카페·식당이 속속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소제동은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남아 있는 철도 관사촌이다. 이곳 주택들은 일반 한옥과 다른 독특한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다. 석기와를 얹은 지붕, 살이 가로로 들어간 창문, 길쭉한 건물 형태 등이 특징이다. 소제동은 오랜 시간이 흐르며 낡고 방치되었으나, 몇 년 전부터 젊은 창작자와 상인들이 모이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익선동을 서울의 핫플로 바꾼 주역인 ‘익선다다트렌드랩’이 관사촌을 개조해 입점한 낯익은 카페와 밥집도 볼 수 있다. 덕분에 연간 여행객이 300명 정도에 그쳤던 소제동은 최근 들어 연간 60만 명이 찾는 대전 대표 명소로 거듭났다. 소제동에서만 평생을 산 대표가 운영하는 ‘대전버거’, 눈과 입을 즐겁게 하는 카레집 ‘미도리 카레’, 날이 좋을 땐 자연스레 야장이 열리는 ‘소제 점방’, 다양한 티 컬렉션을 선보이는 ‘소제예찬 1927’ 등 감각적인 밥집과 카페가 많다. 그중 대나무가 우거진 ‘풍류소제’는 관사촌 거리의 터줏대감 같은 곳이다. 이곳의 대나무 숲은 과거 집주인 할아버지가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마당에 볼거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직접 심은 것으로 소제동에서 손꼽히는 사진 명소다.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이곳에서 감성 가득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