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서의 낙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RYU JIN
  • PHOTOGRAPHY BY CHO SooMIN

별서의 낙

The Serenity of a Second Home

벚나무 숲을 병풍처럼 두른 네모반듯한 땅에 열 평 남짓한 오두막을 짓고 별서(別墅)로 삼아 사는 삶. 그걸 누리는 사람에겐 어떤 기쁨이 있을까? 공예와 예술, 건축이라는 장 안에서 좋은 것을 찾아 연결하는 기획자이자 작가, 정성갑에게 묻고 들었다.
  • written by RYU JIN
  • PHOTOGRAPHY BY CHO SooMIN
2025년 09월 01일

일상의 흔적이 다분한, 미처 해결하지 못한 매일의 숙제들이 쌓인 집에 시시때때로 피로감을 느낀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 꼭 필요한 것으로만 채운, 남이 말끔하게 치운 공간에 머물며 꽉 찬 머리를 비우곤 했다. 좋은 경치를 보며 별로인 마음과 잡념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면서 여행 대신 다른 것이 탐나기 시작했다. 돈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도시에서 얻은 집 말고,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되고 좋아하는 걸로만 채운 집. 그런 공간을 우리나라에선 별서, 별택이라고 부른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선 “살림하는 집 외에 경치 좋은 곳에 따로 지어놓고 때때로 묵으면서 쉬는 집”으로 풀이하며 “조선의 명망 높은 선비들이 별서를 지어놓고 술 마시며 시를 짓거나, 따르는 이들을 모아 아는 것을 가르치거나 벗과 교류했었다”고 알려준다. 호화를 최고의 덕으로 삼았던 신라 시대의 돈 많고 출신 좋은 자들은 심지어 사계절마다 달리 머무는 별장 생활을 즐겼다. 푸른 들녘을 누리는 봄집, 시원한 계곡가에 지은 여름집, 단풍을 눈에 담는 가을집, 고요하고 아늑한 겨울집을 가리켜 사절유택(四節遊宅)이라 불렀다는 글을 보며 ‘아, 역시 세컨드 홈은 많이 가진 자의 전유물이구나’ 생각 했다.
홍천이나 강릉에 나온 허름한 시골집 매물을 기웃대다가 “서울에서 본가를 갖는 일도 요원한데 별가는 무슨…” 하고 고개를 떨궜던 나의 체념을 희망으로 바꿔준 이는 양평에 오두막이라고 부르는 열 평 남짓한 집을 지은 정성갑 선배다. 내가 선배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그는 매거진 업계에서 20년 가까이 피처 에디터로 일했으며 지금은 ‘클립’이라는 작은 갤러리를 운영하는 기획자이자 모더레이터. 책 <집을 쫓는 모험>과 <건축가가 지은 집>을 쓰고 토크 프로그램 ‘건축가의 집’을 진행하며 공간의 효용과 아름다움을 삶으로 탐구하던 그의 별택 생활기가 SNS에 올라올 때마다 마음이 일렁였다. 작지만 규모 있는,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그 단아한 오막이라면 나도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마침내 이 취재를 빌미로 그 집에 발을 들일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수박이 많이 나는 양평 끝자락, 청운면에 원래 있던 나무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든 오두막에서 그와 마주 앉아 그간 묵힌 호기심, 질문들을 와르르 쏟아냈다.

Q 이런 집을 꿈꾼 계기, 결심에 영감을 준 경험이 있어요?
‘해외에서 살아볼 기회가 있다면 어디로 갈까?’ 했을 때 항상 핀란드를 떠올렸어요. 국토 면적 대비 호수가 가장 많은 나라. 취재로 핀란드를 찾은 적이 있는데, 호숫가를 따라 늘어선 오두막들이 참 예쁘더라고요. 더 놀라운 건 거의 전 국민이 호숫가의 오두막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 여름마다 긴 휴가를 내고 오두막살이를 즐긴다는 얘기였죠.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게도 이런 공간이 있다면 삶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겠구나.’

Q 그걸 현실로 만든 순간이 언제예요?
회사에서 나와 독립하니 꿈꿀 시간이 생기더라고요. ‘이참에 오두막 한번 알아볼까?’ 해서 아내와 함께 터를 찾아 나섰죠. 네이버에 ‘100평 땅’을 검색해서 후보를 추렸고 마지막으로 본 게 여기예요. 집 뒤의 저 숲이 국유림이라 주변이 크게 번화할 염려가 없고 네모반듯한 땅도 마음에 들었어요. 마을이 조용한 것도 좋았고요.

Q 건축가와 함께 지었다는 것도 새로워요. 저처럼 주머니가 평범한 사람에겐 그게 다소 거창하거든요.
에세이와 대하소설이 각각 다른 ‘쓰는 즐거움’이 있듯 건축도 마찬가지예요. 건축가 입장에선 작은 집을 설계하는 것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죠. 한정된 공간을 촘촘하게, 밀도 있게 짜는 맛. 이런 집을 짓는 일이 큰 집 설계의 디딤돌이 되어주기도 하고요. 마침 일하며 만난 서승모 건축가와 뜻이 맞아 그에게 설계를 의뢰했어요.

Q 설계에 어떤 의견을 더했나요?
처음부터 확실하게 생각한 게 하나 있어요. 지붕만 있는 반야외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밖을 좋아하는데 지붕이 없으면 너무 가혹하니까. 적당한 볕과 그늘 중 원하는 데에 의자를 두고 그 아래에서 비 구경, 눈 구경 하며 커피 마시고 고구마 까먹고 그러는 걸 아주 좋아하거든요. 한옥살이 하며 그런 낙을 경험했기 때문에 건축가에게 사방으로 처마를 길게 드리워달라고 했죠.

Q 집보다 마당이 훨씬 넓은 것도 독특해요. 텃밭을 둔 것도 아닌데.
이 부지 면적이 270평 정도예요. 집 규모도 당연히 고민했지요. 크게 짓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욕심을 내는 만큼 마당이, 자연이 들어설 공간이 작아지니까. 그래서 바닥 면적은 열두 평, 주거 공간은 딱 여덟 평으로 짰어요. 작고 단순하게 짓는 대신 옹색한 집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어요. 서승모 소장이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좋은 소재를 쓰는 거예요. 욕조, 수전, 바닥 등등 어느 하나 대충 고르지 않았죠. 그래야 내가 이 공간에 머물 때 편안함을 느끼고 애정을 가질 수가 있거든요.

Q 그렇게 손에 넣은 꿈을 어떻게 누렸나요?
처음엔 정말 매일 보고 싶고, 애틋하고,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고 그랬죠. 일요일 밤에 서울로 돌아가야 편한데 달, 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월요일 새벽에 나오기도 하고요. 그것도 발이 안 떨어져서 신작로에 차 세워놓고 집 사진 한 번 더 찍고, “다음 주에 또 올게. 잘 있어” 작별 인사도 하고.(웃음)

Q 연애담 같네요. 오두막이 준 추억 중에 도드라지게 떠오르는 장면은요?
주변의 나무들이 다 벚나무거든요. 꽃이 만개할 때면 밤에도 조명을 밝힌 듯 집이 환하게 빛나요. 창 다 열어두고 접시 위에 음식 곱게 놔서 와인 한잔 곁들이던 그 순간. 또 폭우, 폭설이 내릴 때도 너무 좋아요. 대차게 내리는 장대비 소리를 들을 때, 밤새 소복소복 내린 눈이 하얗게 뒤덮은 마당을 볼 때 어지러운 마음이 다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거든요. 밖은 황량하고 거친데 나는 바삭하고, 따뜻하고, 안락한 공간에서 보호받는 기분도 좋고요. 장마 때는 라면, 눈 올 땐 꼭 만둣국을 끓여 그 행복을 누려요. 새록새록 다 떠오르네요.

Q 이 별가가 가족의 삶에 끼친 영향도 있겠죠?
아이들은 와이파이가 잘 안 되니까 안 오고, 주로 내가 여길 누려요. 중년이 되면 아내도, 아이들도 남편이, 아빠가 어디에 가면 다 좋아하거든요.(웃음) 복작복작 부딪히다가 잠시 떨어져 지내는 게 관계에 좋은 영향을 끼치죠. 그 분리된 시간 동안 체력과 정신, 다정함을 되찾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좋아요.

Q 오두막살이 4년 차의 요즘 일과는 어떤가요?
호들갑스러웠던 처음과 달리 지금은 아주 간소해요. 예전처럼 장을 양껏 봐서 바리바리 싸 들고 오지 않죠.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 몇 가지만 딱 챙겨요. 오늘은 모시떡, 열무김치 한 봉지, 바나나 우유하고 맛동산, 달걀 두 알 정도 챙겨 왔어요. 냉장고에 싸 온 것을 잘 정리해 넣은 후엔 신문을 펼쳐요. 서울에선 차분히 앉아 신문 읽을 겨를도 없잖아요. 보통 문화·예술 분야의 좋아하는 면만 찢어서 가져와 천천히 두세 번씩 읽곤 해요. 오늘은 취재팀이 다 가고 나면 신문 읽다가, 책 읽다가, 휴대폰 좀 보다가 욕조에 물 받아 반신욕도 즐기고, 달걀 부쳐 열무비빔밥 해 먹을 거예요.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 저녁이 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겠죠.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해 뜰 무렵인데요. 여름엔 새벽 4시 언저리에 동이 트니 그쯤 캠핑 의자 가지고 나가 선선한 공기 마시며 일출을 지켜봐요. 그때 아, 호사를 누리는구나 하죠. 그다음엔 커피 마시고, 마을 한 바퀴 산책하고, 낮잠도 자고 그렇게 시간 보내다가 느릿느릿 서울 갈 채비를 할 것 같아요.

Q 이 집이 끼친 변화가 있다면요?
변화라기보다는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같아요. 내가 시골 출신이거든요. 요즘엔 그 사실이 참 감사해요.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에 놓였을 때 편안함을 느끼잖아요. 내가 만약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면 자연에 오두막을 마련했다고 한들 이만큼 좋았을까?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자기 마음에 ‘그것’이 없다면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말하는 ‘그것’을 누려도 행복하지 않다고. 자연을 깊이 누린 시절을 가진 덕에 여기에 머물면 나 자신과 연결되는 기분이에요.

Q 오두막의 ‘다음’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지금은 한창 일을 할 때라 서울에서 보내는 시간이 월등히 많지만 나이 들면 자연스럽게 오두막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겠죠. 그럼 지금은 가져다 놓지 않은 커피포트, 안락한 소파, 침대 같은 것도 필요할 거고요. 2층집보다는 바닥 면적이 지금보다 조금 더 넓은 1층짜리 집에 내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작품, 가구, 집기, 조명 같은 것을 채운 아틀리에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미술, 공예, 음악, 문학으로 꽉 찬 집. 그걸 오래오래 누리는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문화력으로 충만한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