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 커뮤니티에서 불리는 내 닉네임은 ‘냉탕 21도 선호’다. ‘냉탕 21도 선호’라니! 사우나 라이프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한겨울에 19℃의 냉탕에 풍덩 뛰어들게 될 줄은 몰랐다. ‘사우나-냉탕-휴식’의 사우나 루틴으로 극락의 쾌감, 일명 ‘토토노우’를 경험하게 되면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경직된 근육이 말랑말랑해지는 치유의 감각보다 냉탕에서 몸속 뜨거운 열기를 식힐 때 느껴지는 회복의 감각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는 사우나를 생각하면 따듯한 온기보다는 청량하고 개운한 기분이 먼저 떠오를 정도다.
내가 이렇게 극적인 변화를 갖게 된 것은 오픈 채팅방 ‘먼데이사우나’ 덕분이다. 스레드에서 ‘사우나’ 키워드의 콘텐츠를 보다가 우연히 흘러 들어간 사우나 커뮤니티 채팅방이었다. 먼데이사우나 채팅방에 입성했을 때 내 아이디는 ‘물 온도 27도 선호’였다. 나는 그저 욕탕 목욕과 세신을 좋아하는 1인이었다. 인사말로 “노천탕을 좋아합니다”라고 ‘나’를 소개했더니 이게 웬일! 오픈 채팅방에 있던 사우나 고수들은 세이지우드 홍천 사우나의 노천탕 사진을 올려주는가 하면 파주 네이처 스파, 신사동 스파레이, 오라카이 청계산 호텔 사우나 등 노천탕이 있는 시내 사우나 정보를 쏟아냈다. 이뿐 아니었다. 숙박객에게만 문을 열어주는 호텔 사우나와 달리, 숙박하지 않아도 입욕할 수 있는 설해원 온천사우나부터 사우나 고수들이 인정하는 속초 척산온천 휴양림, 게르마늄 온천으로 유명한 인제 필례 게르마늄 온천, 아는 사우너만 아는 강릉 탑스텐 호텔의 금진온천, 3000명이 동시에 목욕할 수 있다는 전국 최대 규모의 부산 허심청,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내 위치한 센텀 스파랜드, 제주의 천연 온천인 아라고나이트 고온천과 탄산물로 유명한 산방산 탄산온천, 제주 바다 뷰가 아름다운 해미안녹차해수사우나, 핀란드 사우나를 즐길 수 있는 에가톳 등 물 좋은 사우나 추천을 통해 전국 사우나 지도가 후딱 완성되었다. 아니, 우리나라에 이렇게 사우나가 많았습니까?!
먼데이사우나 채팅방에는 해외 사우나 정보도 쏠쏠했다. 사우나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도쿄 사우나 시부야사우너스 탐방기는 물론이고, 사우나슐랭에서 매년 상위권을 차지하는 사우나도쿄, 토토파의 후기도 먼데이사우나 오픈 채팅방에서 들을 수 있었다. 한 사우너는 이탈리아 여행 중에 만난 아름다운 사우나 돌로미티 QC 테르메를, 여행사를 운영하신다는 사우너는 일본의 동굴 사우나인 이나즈미 언더워터 케이브(Inazumi Underwater Caves)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핀에어 객실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핀란드 사우나 도장 깨기를 하는 사우나 크리에이터 ‘사우나심(@saunasim)’은 핀란드의 사우나 문화를 정기적으로 전수해주었다. 아, 세상은 넓고 사우나는 많구나. 당장 가봐야 할 사우나가 너무 많았다.
그때부터 나의 사우나 라이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우나 고수들의 추천을 받아 처음 방문한 곳은 스파레이였다. “신사동에 노천탕이 있는 사우나가 있다”는 말에 스파레이로 달려갔다. 어렸을 때부터 뜨거운 찜질방이나 온탕에서 오래 견디지 못했던 나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노천탕을 좋아했는데, 다만 도심 속에서는 노천탕이 있는 사우나를 찾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데, 집 근처에 노천탕을 즐길 수 있는 사우나가 있다고? 먼데이사우나의 추천을 받아 찾아간 스파레이는 내가 찾던 궁극의 사우나였다.(처음 갔을 때만 해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3층 노천탕에서 40분이 넘도록 입욕을 즐겼다. 물에 푹 담근 몸은 뜨거웠지만 목 위로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니 오랜 탕 목욕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몸이 한껏 달궈졌을 즈음 탕에서 나와 가운을 입고 야외 선베드에 누우니 행복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게 그 토토노우인가?’ 지하 2층에는 29℃의 해수탕이 있었다. 바닷물로 만든 적정한 온도의 탕에 몸을 담그니 몸 구석구석에 시원한 감각이 스며들면서 마음까지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습식 사우나와 해수탕을 두세 번 오가면서 또 한 번 토토노우 비슷한 감각을 경험했다.
그러던 중 먼데이사우나의 첫 정모에 참여하게 됐다. 사우나에 진심인 사람들과 함께 사우나 루틴을 즐겨보고 싶은 마음으로 반차를 내고 정모 장소인 영종도의 블루오션웰니스스파로 달려갔다. 사실 가장 궁금했던 건 ‘사우나 고수들은 15~17℃ 냉탕에 어떻게 들어갈까?’였다.
먼데이사우나 정모의 여성 모임은 사우나 크리에이터 ‘고독한 사우너’의 리드로 진행됐다. 블루오션웰니스스파의 핀란드 사우나 10분과 외기욕 10분을 3세트 반복하면서 정모에 모인 우리는 사우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우나도 장비빨! 고독한 사우너가 준비한 사우나 툴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동물 모양의 사우나 모자는 뜨거운 불가마에서 머리카락과 피부가 상하는 것을 방지해주고, 카시오 사우나 시계는 12분으로 세팅할 수 있어 모래시계 기능을 했다. 물 속에서도 메모가 되는 메모장도 있었다. 아, 신기하다! 하지만 그런 것에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그 질문을 해야 했다. “고독한 사우너 님은 원래 냉탕에 잘 들어갔어요?” “냉탕에서 얼마나 있어야 해요?” 이에 대한 담백한 대답. “저도 너무 차가운 물에는 오래 못 있어요. 30초 담그고 나와요”라고. “사우나에서 나와 처음 냉탕에 들어갈 땐 차갑게 느껴지지만, 두 번째부터는 시원하게 느껴질 거예요”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먼데이사우나 정모 후 달라진 게 있다면 노천탕에 몰입하던 내가 ‘건식 사우나 10분-냉탕 3분-휴식 10분’의 사우나 루틴에 도전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냉탕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처음 사우나 루틴을 도전한 장소는 파주 네이처 스파였는데, 그곳의 냉탕 온도가 20~21℃였다. ‘그래, 고독한 사우너 말대로 30초만이라도 들어가보자’는 마음으로 입수! 신기한 것은 냉탕에서 30초를 견디는 것과 3분을 견디는 것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20℃의 냉탕은 29℃의 탕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시원하고 청량했다. 머릿속을 시원하게 씻어내주는 느낌! 냉탕에서 나온 후에는 탕 내 선베드에 누워 내기욕을 즐겼다. 그리고 느껴지는 토토노우! 아, 이것이 진정한 토토노우로구나! 몸의 리셋 스위치를 누른 느낌이랄까. 그날 나는 사우나 커뮤니티 아이디를 ‘냉탕 21도 선호’로 바꿨다.
사우나 루틴을 즐기게 되면서 나는 선베드가 토토노우를 느끼는 데 필수 조건 중 하나라는 사우나 고수들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수질 좋고, 건식 사우나와 노천탕 등이 두루두루 잘 갖춰진 오라카이 청계산 호텔 사우나에서 토토노우를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90℃의 건식 사우나, 20℃의 냉탕까지는 좋았는데, 이곳에는 선베드도 없고 쉴 수 있는 의자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우나실과 냉탕을 오가는 사이사이 탕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사우나 루틴에서 휴식의 단계가 빠지니, 이것은 힐링이 아니라 노동이 되었다. 사우나-냉탕, 사우나-냉탕, 노천탕을 오가다가 휴식 공간을 찾지 못해 피로해진 나와 엄마는 ‘집에 가자’고 서둘러 짐을 쌌다.
사우나를 좋아하게 되면서 보다 많은 국내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설해원 온천사우나에 갔다가 도루묵구이를 먹어야겠다, 사천 출장이 있으니까 아난티 남해에 가서 사우나를 즐겨볼까, 울진 덕구온천에 갔다가 옆에 있는 백암온천에도 들러보자 등 벌써 세워둔 여행 계획만 해도 여러 건이다. 일본 소도시 여행 못지않게 판타스틱한 국내 여행이 될 것 같아 마음이 두근두근하다.

사우나력 높여줄 드라마 & 책
드라마 <사도 2021>
‘사우나의 길’이라는 비장한 의미의 제목. 사우나 만화 <사도>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사우나를 사랑하는 사우너 3인의 이야기를 따스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2019년 첫 시즌 인기에 힘입어 2021년 TV도쿄에서 새롭게 방영됐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왜 사우나를 좋아할까?> 가토 야스타카 지음
일본의 사우나학회 대표이사이자 의학 교수인 가토 야스타카가 쓴 책으로 사우나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설명했다. ‘냉수욕탕의 온도는 16~17℃가 최적’, ‘사우나실을 나오는 시간은 평상시 맥박의 2배가 될 때’, ‘냉수욕탕을 나오는 기준은 기도가 시원해졌을 때’ 등 올바른 사우나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목욕탕 도감> 엔야 호나미 지음
일본 MZ들이 사랑하는 사우나로 일본에 사우나 열풍을 일으킨 사우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코스기유’의 지배인 엔야 호나미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책이다. 초보 사우너부터 사우너 고수들이 가면 좋을 사우나 24곳을 추천해준다. 엔야 호나미가 추천한 사우나 24곳을 ‘도장깨기’ 하고 싶은 욕망을 부추기는 책으로, 그가 그린 목욕탕 일러스트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글을 쓴 박훈희는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먹고 놀고 쉬는 것은 더 좋아한다.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 등 카테고리를 가리지 않고 유스 트렌드(youth trend)에 관심이 많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마이너하고 힙한 문화를 주류 문화로 바꾸는 데 일가견이 있다. 현재 신생 항공사에서 브랜드 전략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