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감각, 고성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LEE JIHYE
  • PHOTOGRAPHY BY jeon jaeho

새로운 감각, 고성

Seeing Goseong Anew

조금은 낯설고 고요했던 여행지 강원도 고성이 전환의 출발선에 서 있다. 여행과 창작, 일상과 기획이 교차하는 이 도시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 WRITTEN BY LEE JIHYE
  • PHOTOGRAPHY BY jeon jaeho
2025년 05월 07일

Creator

정미현

‘빛나르고’의 전신인 ‘쓰담속초’로 시작했다. 당시 속초에서 했던 플로깅이나 축제 기획이 고성까지 확장된 것인가? 맞다. 2021년 친구 둘을 포함해 세 명이 시작했다. 바닷가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활동이었다. 그걸 문화 콘텐츠로 풀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나는 문화 기획에, 동료들은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
1인 여행자를 위해 “자연도, 마음도 쓰다듬자”는 콘셉트로 속초 영랑호 ‘힐링 플로깅 코스’를 만들었다. 주민과 지방자치단체, 여행자들의 반응이 좋아 확장된 것이 빛나르고의 시작이었다. 초반에는 속초를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최근 고성에서도 많은 행사를 진행한다. 특히 1~2년 전부터 고성문화재단의 주도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다. 특별한 브랜드가 생기고 크리에이터들이 모여들자 자연스레 여행자들도 고성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성인이 된 후 고성에 정착했다. 타지 출신인 만큼 처음엔 여행자의 시선으로 고성을 마주했을 텐데, 기획자로 자리 잡은 지금 고성은 어떻게 변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행자로서는 여유롭고 기획자로서는 여백이 많다. 어떤 입장이든 매력적인 건 마찬가지다. 속초와 고성은 불과 몇십 분 거리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관광도시로 우리에게 익숙한 속초는 유동 인구가 많다. 그에 비해 고성은 훨씬 손이 덜 탄 자연을 여유롭게 느낄 수 있다. 몇 년 전까지 고성에는 청년이 적고, 문화 콘텐츠도 거의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 조용함이 기획자에겐 기회처럼 느껴졌다. 우리 같은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해변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 결과 최근 고성에는 속초에서 넘어온 브랜드가 많아졌고, 고성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곳도 생겼다. 예전엔 “고성에는 뭐가 없어”라는 말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래서 해볼 수 있는 게 많다”라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을 찾아 고성으로 온 여행자들이 “고성에 이런 게 있었어?” 하고 놀라는 것도 많이 봤다.
속초나 강릉으로 가는 여행자의 발걸음을 돌릴 만한 고성의 매력적인 여행지는 어디인가? 고성은 조용한 해변, 자연 그리고 마을이 살아 있다. 최북단에 있는 명파마을과 명파해수욕장은 고즈넉한 자연 그 자체다. 천진해변엔 감각적인 카페와 식당이 하나둘 늘어나는 추세다. 바다와 맞닿은 산기슭에 자리한 강원 북부 최대 규모의 누각 청간정도 추천한다. 청간천 하구와 기암절벽,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명당이다. 무엇보다 고성엔 여유로운 해수욕장이 많다. 올여름, 사람 많은 해수욕장이 싫을 때 고성의 해변은 완벽한 대안이 될 것이다.
5~6월 고성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행사가 있나? 5월 초에는 고성을 대표하는 축제인 ‘대문어 대첩’이 열린다. 빛나르고는 이 축제에서 놀이 공간 기획과 운영을 맡고 있다. 지역 아이들에게도 특별한 추억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획 중이다. 5월 말에는 공예 주간 프로젝트가 열린다. 송지호, 아야진해수욕장을 비롯해 다양한 지역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공예 전시와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친환경 공예 워크숍, 플리마켓에 참가해보는 것도 특별한 여행이 될 것이다.

Project

빛나르고

2022년 꾸려진 ‘빛나르고’는 고성을 찾는 여행자가 환경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돕는 사회적 기업이다. 지역에서 나온 문제를 지역의 감성을 담아 풀어내기 위해 플로깅에 재미를 입히고, 쓰레기를 화폐처럼 사용해 굿즈와 교환하는 ‘쓰레기 상점’을 열었다. 바다에서 주운 유리 조각으로 굿즈를 만드는 청년 모임도 운영했다. 2023년 여름 열린 ‘에코바캉스’는 빛나르고가 처음으로 축제 전체를 기획한 사례. 단순히 무대와 부스를 배치한 것이 아니라 축제장을 하나의 메시지로 만드는 데 집중하며 해변에서 주운 유목과 버려진 서프보드, 팔레트, 페인트를 조합해 포토 존을 만들었다. 해변에서 폭죽 탄피를 주워 오면 병뚜껑 키링을 직접 제작하거나 맨몸 운동 커뮤니티와 협업해 철봉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등 체험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빛나르고는 에코바캉스를 계기로 ‘환경’이라는 키워드를 ‘콘텐츠’로 확장했다. 이후 고성문화재단과 함께 문화도시 포럼을 기획했는데, 행사장을 모두 재활용 소재로 조성해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 여름엔 명파마을에서 개최된 아티스트 한 달살이 프로젝트 ‘아트케이션’도 빛나르고의 손에서 탄생한 프로젝트다. 마을을 꾸민 나무로 만든 이정표, 창고를 활용한 전시장, 팔레트를 이용한 포토 존 등은 그동안의 노하우가 담긴 아이디어. 가장 최근엔 동해안 지역 창업자와 로컬 브랜드를 소개하는 전시 «Light Light»를 열었다. 전시명은 ‘빛(light)’과 ‘가벼움(light)’의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 빛의 다섯 가지 성질에 창업가의 다섯 가지 정신을 연결했고, 전시는 실제 냉동창고의 어둠을 활용해 조명과 파이프만으로 구성됐다. 목재 가벽 없이 가공되지 않은 공간을 그대로 살린 전시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빛나르고는 이 전시를 통해 환경 중심에서 로컬 중심, 시각예술로까지 기획의 외연을 넓혔다.

Brand

동해형씨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항. 작은 항구 마을을 걷다 보면 바다를 정면으로 마주한 하얀색 건물을 만난다.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팬덤을 확보한 펫 푸드 브랜드 ‘동해형씨’의 본거지다. 동해형씨는 고성 바다에서 나는 자연산 수산물로 반려동물을 위한 수제 간식을 만든다. 서울에서 산업디자인과 브랜딩 업무를 해온 김은율 대표는 이베이코리아, 스타트업, 식품 기획 등을 거치며 브랜드화된 수산물의 가능성을 감지했다. 정육·채소 시장은 이미 온라인화되어 있었지만, 수산물은 유통 난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브랜드 없는 수산물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반려동물 시장은 점점 더 프리미엄을 원했고, 수산물 기반 간식은 미개척 영역이었다.” 그렇게 그는 고향 고성으로 왔다. 아버지가 하던 횟집의 간판을 내리고 동해형씨 스토어로 재단장했다. 동해형씨의 수산물 간식은 보통 수산물을 잡은 직후 보존을 위한 염장을 하는 과정을 뺐다. “말 그대로 사람이 먹는 횟감을 가져와 반려동물의 간식을 만든다.” 김 대표의 설명이다. 제품 개발은 수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이루어졌다. 동결건조도, 레토르트도 아닌 ‘원물 건조’라는 방식을 독자적으로 구축해 실온 보관이 가능한 반건조 형태를 개발했고, 이를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 출원까지 했다. 고성에서 잡은 대구, 연어, 송어, 방어 등을 원형 그대로 건조해 만든 이 간식은 겉으로 보기엔 마치 사람이 먹는 구이류처럼 생겼지만, 염분은 최대한 제거했다. 첨가물 없이 껍질도 그대로 살렸다. 간식과 카페 메뉴, 반려동물을 위한 기저귀 등이 마련돼 있어 반려동물과 함께 오는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다.

Art

예술적 감각의 공간들

테일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가진길 40-5

고성에는 바닷가 풍경만큼이나 인상적인 예술적 장면들이 있다. 흔히 알려진 대형 전시장이나 유명 관광지는 아니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미감을 발산하는 곳들이다. 그중 하나인 ‘테일’은 가진해변 근처에 자리한 한옥 카페다. 초록 지붕을 얹은 시골집 같은 외관과 달리 내부는 섬세한 감각이 느껴지는 소품으로 가득하다. 브루잉 커피를 정성껏 내리고, 피크닉 세트를 대여해주는 서비스도 운영한다. 무엇보다 이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곽용인 대표가 직접 빚은 도자기가 카페 곳곳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전시를 위한 공간이 아닌, 쓰임과 감상의 경계를 허물며 커피잔 하나, 찻잔 하나에도 곽 대표의 손길이 묻어 있다. 고성에 거점을 둔 조명 오브제 제작 스튜디오 ‘오로라댄스’도 주목할 만하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외부인을 거의 받지 않지만, 마치 공장 같기도 한 고성의 작업실에선 하루에도 수십 개의 아크릴 간판, 드림캐처 조명, 꽃다발 오브제가 탄생한다. 문구와 도안을 받아 맞춤 제작하는 이 작업은 손과 기계가 끊임없이 맞물리는 리듬 속에서 이루어진다. 오로라댄스를 이끄는 두 사람은 서울 이태원에서 기획과 창작을 해오던 이들이다. 한때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파티 기획을 하며 공간 운영을 했다. 하지만 반복되는 좌절과 소모 끝에 선택한 장소가 고성이었다. “택배만 되면 어디든 괜찮았다”라는 말처럼, 어느 순간 작업을 위해 꼭 도시가 필요하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고성으로 이주해 작은 창고를 얻고 중고 장비와 작업대, 아크릴 가공 기계를 들여놓으면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이 이뤄졌다. 현재 작업실 한편을 소규모 전시장으로 만들 구상을 하고 있다.

Taste

어부의 낮술

고성에서도 유난히 고요한 바다 마을 초도리 골목. 오래된 부동산이었던 작은 건물은 지금 막걸리와 전시를 선보이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곳을 연 사람은 전직 기획자이자 지금은 그림을 그리고 술을 빚는 예술가 엄경환 대표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속초로 진학하던 시절, 당연한 수순처럼 속초로 유학을 갔다. 대학에 진학한 이유도, 정치외교를 전공한 이유도 그저 ‘큰 곳으로 가야 한다’라는 압박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일하며 새벽 2시에 퇴근하는 게 일상이 되던 어느 날, ‘이렇게 살다간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뒀다. 반쪽짜리 인간이 된 것 같았다.” 그는 이 시절을 지나 퇴사하지 못한 직장인들에게 전하는 그림책 <반쪽 인간>을 출간했다. 이후 미술을 전공한 아내와 함께 서울에서 미술 입시 학원을 운영했지만, 예술을 향한 갈증을 해소하진 못했다. 고민 끝에 2021년 고향으로 내려와 그림을 그리고, 좋아하는 막걸리를 만들어 브랜드를 론칭하기에 이르렀다. ‘어부의 낮술’은 어부였던 아버지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다. “어부는 새벽 3시에 출항해 오전 11시면 항구로 돌아온다. 그들의 퇴근 시간은 늦은 오전. 일 끝내고 마시는 한잔이 남들 눈엔 낮술로 보였다는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 바다의 짠 기운을 덜어내기 위해 짠맛과 대척점에 있을 정도로 달콤한 맛을 구현했다.” 그의 공간은 아버지 사진과 함께 직접 쓰던 낚시 도구로 꾸며져 있다. 한쪽의 전시 공간은 5월부터 한 작품만 놓는 콘세트로 바꿀 예정. 동네 주민들로 하여금 예술을 좀 더 쉽고 가까이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지만, 달콤한 막걸리 ‘어부의 낮술’이 입소문을 타며 여행자들의 발걸음도 저절로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

Workcation

맹그로브 고성

토성면 교암리에 자리한 워크 앤 스테이(Work & Stay) 맹그로브 고성. 교암해변과 도보 3분 거리라는 입지적 장점 덕에 바다를 눈앞에 두고 일과 숙박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엠지알브이의 첫 워크앤스테이 지점이다. 키예노가 인테리어에 참여한 4층짜리 건물은 고요한 해안선과 잘 어울리도록 단순하면서도 입체감 있는 구조로 완성됐다. 전체적으로 미니멀한 외관이지만, 바다를 향해 나 있는 내부 라운지 공간과 층마다 놓인 발코니는 어떤 목적으로 이곳을 찾든 만족을 안겨준다. 공유 오피스 형태의 라운지 1층에는 오션 뷰 데스크, 6인 회의실, 화상회의 부스, 프라이빗 폰 부스, 커뮤니티 키친, 명상 공간 그리고 고성의 독립 서점 ‘북끝서점’의 큐레이션으로 채워진 서가가 마련됐다. 2층부터 4층까지는 전 객실이 오션 뷰인 숙박 공간이다. 1인실, 2인실, 4인실 모두 깔끔한 화이트 톤과 원목 가구로 구성됐다. 개인 공간과 공용 공간이 명확히 구분돼 혼자 또는 함께하는 장점을 모두 누릴 수 있다. “맹그로브는 고성을 여행지라기보다 ‘살아보는 곳’에 가까운 장소로 만들어준다. 소지호·능파대·아야진해수욕장이 가깝고, 인근에 맛집이나 카페 등 생활 시설도 풍부하다. 긴 여행, 장기 체류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일상이자 실험인 삶을 잠시 펼쳐볼 수 있을 것이다.” 곽승재 디렉터의 얘기다. 동네나 인근 해변을 돌아보기 좋은 자전거와 헬멧을 대여할 수 있고, 가까운 맛집이나 자연 속 산책 코스를 담은 고성 가이드맵도 제공한다.

Beach

천진해변

글라스하우스 강원 고성군 토성면 천진해변길 43
썬크림 강원 고성군 토성면 토성로 148-1
번투드웍스 강원 고성군 토성면 천진5길 12
패들 강원 고성군 토성면 토성로 140

천진해변은 요즘 고성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의 지점이다. 한적한 피서지로만 인식되던 이곳에 감각적인 공간이 잇따라 들어서며 고성을 찾는 여행자들의 목적지가 바뀌는 중. 그 중심엔 카페 ‘글라스 하우스’가 있다. 해변을 바로 마주한 건물이 바깥의 바다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로컬 브랜드들과 함께한 전시나 토크 프로그램, 음악이 있는 주말 행사까지, 글라스 하우스는 고성에서 가장 활발한 커뮤니티 허브 역할도 한다. 브런치와 팝업 스토어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번투드웍스’도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레스토랑과 팝업 공간이 중정을 기준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고, 캠핑장이 연상되는 인테리어가 여행 무드를 배가한다. 시그너처 메뉴는 육즙이 흘러넘치는 햄버거, 특제 소스를 넣은 샌드위치. 이 외에도 강원도 감자를 이용한 수프, 제철 채소를 넣은 브런치 등을 주기적으로 개발 중이다. 팝업 스토어에선 서핑 티셔츠와 액세서리를 판매하고, 세라믹 오브제 브랜드 등과 협업을 펼친다. ‘썬크림’은 고성의 여름을 시원한 젤라토로 옮겨놓은 가게다. 시그너처 메뉴는 메밀젤라또. 고성에서 재배한 메밀가루에 들깨를 볶아 올리고 들기름을 부어 고소한 풍미가 일품이다. 계절마다 딸기, 블루베리, 바질 등 지역 농산물을 적극적으로 레시피에 반영하고 있어 ‘로컬을 디저트화한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좀 더 한적한 풍경을 원한다면 천진해변 구석에 자리한 카페 ‘패들’로 향하자. 통창을 통해 탁 트인 천진해변을 조용히 감상할 수 있다. 별관에선 젊은 로컬 브랜드들이 공간을 빌려 자체 팝업을 열기도 한다. 5월까지는 빈티지 의류 팝업이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