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우아라스 안데스의 품에 안기다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KANG MISEUNG
  • Photography by GAILLARD HERVE
  • illustration by FRIDEA

페루, 우아라스 안데스의 품에 안기다

Huaraz and Beyond, Experiencing the Real Peru

차디찬 안데스산맥의 수혜로 전 세계 여행자의 열정을 들끓게 하는 페루의 우아라스.
그 대자연 앞에 속절없이 반성 섞인 소원을 빌었다.
자연을 업신여긴 지난날을 졸업하겠노라고.
  • Written by KANG MISEUNG
  • Photography by GAILLARD HERVE
  • illustration by FRIDEA
2023년 11월 26일

야반도주하듯 리마에서 떠나 우아라스에 도착했다. 수도인 리마로부터 북쪽으로 약 403km, 버스로 8시간 남짓 걸린 이동이었다. 하차와 동시에 호객꾼이 달라붙었다. 햇볕을 고스란히 머금은 피부의 삐쩍 마른 키다리 사내였다. 중남미에서 호객꾼의 존재란 적이라기보다 정보원이자 가이드에 가깝다. 심지어 그는 이 동트지 않은 새벽에 깬, 직업 정신이 투철한 인물이 아닌가. 이미 우리가 점찍은 숙소까지 친히 인솔하며 투어 상품을 능숙하게 끼워팔기하려고 했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우아라스를 베이스캠프로, 자차가 있지 않은 이상 먼 거리의 행선지를 소화해낼 재간은 없었으니까.

우아라스 일대는 트레커에게만큼은 마추픽추보다 우대받는 자연계의 금수저다. 페루 북서부 남태평양에 가까운 앙카시의 주도인 우아라스를 중심으로 ‘남쪽의 스위스’, ‘트레커의 성지’ 등 온갖 멋진 메달을 다 거머쥐고 있다. 이유는 안데스산맥의 수혜 덕이다. 산맥의 큰 줄기인 코르디예라 블랑카(Cordillera Blanca, 하얀 대산맥)와 코르디예라 네그라(Cordillera Negra, 검은 대산맥)가 동서로 가로지르는 위치에 놓여 있다. 코노코차 호수에서 발원한 산타강은 두 산맥 사이를 흘러 우아라스를 비롯한 여러 마을을 관통하며 태평양에 가까운 강 하구로 줄기차게 뻗어나간다. 이곳을 아울러 산타 밸리, 현지에선 카예혼데우아일라스란 명명으로, 그야말로 산 좋고 물 좋은 고산지대로 뻐기고 있다.

우아라스에 짐을 풀었다. 카예혼데우아일라스의 중심부에 있어 여러 마을 중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가야 할 여행의 전략적 요충지로 제격이었다. 이곳 역시 안데스산맥을 지붕이자 병풍으로 삼는 터, 리마와 같은 도심의 기운은 찾기 어려웠다. 아직 정리되지 않고 언제 정리할지 알 길 없는 벽돌 건물과 트레커 중심의 상업 시설이 속세와 가장 가까운 흔적일 뿐이다. 유튜브 시청보다 전통음악에 맞춘 춤에 사로잡힌 청년들이 축제를 빙자해 거리를 쓸고 지나갔다. 어디를 보나 여러 각의 설산이 시야에 걸리는 해발 3050m의 깊은 산속. 그러나 먹고 자고 노는 최소한의 삶은 보장됐다. 아니 한계가 있는 오지이기에 더없이 값진 편의가 매일 매 순간 영절스럽게 묻어났다. 삐끼와의 은밀한 데일리 투어 가격 협상 후 투어는 곧 시작됐다.

영상의 기온이 뚝, 호수로 떨어졌다

투어는 크게 우아라스로부터 북서쪽과 남동쪽, 3가지 루트로 짜였다. 지도를 평면으로 볼 때, 편의상 상, 중, 하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날은 상부인 북서쪽, 인근 마을과 호수를 섭렵하는 한나절 코스다. 소박한 평화가 잠재한 마을 카루아스와 카라스를 훑은 뒤 굽이굽이 비포장 오르막길을 탔다. 변변하지 않은 창문 사이로 들어온 먼지가 버스 안을 질식시키는 사이, 창밖에선 산악 전문 사이클리스트가 누런 안개 속에서 영화처럼 사라졌다. 이내 히말라야 등반의 예습 대상지로 활용되는 우아스카란산 근처에 근접했다. 저게 페루에서 가장 높은 해발 6768m의 산인가. 외투를 찾을 만큼 영하의 한기가 느껴지면서 풍경은 더욱 야생적으로 돌변했다. 터키석 물빛과 크기에 압도당한 이곳, 라구나스데양가누코, 양가누코 호수였다.

양가누코 호수는 우아스카란과 우안도이 설산이 흘린 눈물이 만들어낸 천연 빙하호다. 여자 호수로 알려진 치낭코차 호수와 그로부터 1km 떨어진 남자 호수인 오르콩코차 호수를 통칭한다. 이곳에 로미오와 줄리엣급 전설이 숨어 있었다. 두 설산은 라이벌 부족장의 아들과 딸이 서로 사랑하다 들켜 쫓겨난뒤 그 슬픔이 굳어 만들어진 거라 했다. 호반을 끼고 엿가락처럼 휜 케뉴아 나무를 피해가며 트레일을 30여 분 걸었다. 11층 빌딩의 높이와 맞먹는 저 수면 아래로 이어진 영원한 사랑에 마음이 잘박잘박 적셔진 채.

간질간질한 마음을 안고 닿은 다음 행선지는 비운의 묘지다. 지난 1970년 융가이에서 일어난 헤비급 재난을 기리는 기념관인 캄포산토데융가이였다. 기록은 당시 리히터 규모 7.9 강도라 했다. 우아스카란산의 산사태로 바위와 진흙, 얼음의 연합군이 지금 이곳으로 돌진했다. 최대 시속 1000km에 맞먹는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당시 마을에 살던 2만여 명 중 92명의 생존자만 남긴 채 마을은 형태조차 사라졌다. 현재 융가이 시내는 이로부터 떨어져 있는데 당시 융가이라 가늠할 만한 원위치가 바로 캄포산토데융가이다.

빛바랜 돔 형태의 문을 지나자, 우아스카란산이 그림처럼 걸려 있었다. 과거의 자연이 성낸 자리에, 현재의 자연은 약동하고 있었다. 당시 희생된 버스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교회, 5m 높이의 바위 등 그날의 처참한 증거 곁으로, 무성한 꽃과 나무가 생명을 불어넣는 희생자의 터가 있었다. 양팔을 길게 뻗은 예수상 아래로 계단식 원형을 따라 빼곡히 이름과 나이가 새겨져 있다. 예수는 다시 있을지도 모를 횡포를 잠재우듯 정확히 우아스카란산을 지켜보는 자리에 있다. 입구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여기는 바람 따라 바람, 기쁨 따라 기쁨이 있는 신성한 곳이리라.”

말하자면 “Let it flow(흐르는 대로 두기)”. 어느덧 석양을 품은 산이 인생의 진리를 읊조리고 있었다.

조금은 아찔하게 선사시대로 가는 시간

앙카시주는 산 부자인 만큼 호수도 많다. 옥빛 오아시스의 인증 사진으로 인플루언서에게 입소문난 라고 69, 전문 등반가에게 어울리는 추룹호수 등 손에 꼽히는 호수만 해도 대여섯 개다. 그 어느 하나 같지 않고, 예쁘다. 호수의 얼굴도, 성격도, 품새도 다르다는 걸 우아라스는 가르쳐준다.

구름이 빠르게 지나가는 자리의 우아스카란산. 캄포산토데융가이에선 일전의 적을 동지로 삼고 있다. 오늘도 무사히.

남동쪽으로 간 둘째 날의 첫 코스도 라구나데케로코차, 케로코차 호수였다. 아스팔트 길로 뻗어 설산을 왼쪽과 오른쪽에 번갈아 두며 구불구불, 마음은 길쭉길쭉 늘어났다. 길은 대초원의 수평적인 무한함과 설산의 수직적인 고양감이 변주했다. 하얀색과 초록색의 대비는 언제나 만점. 초록 카펫을 뚫고 설산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눈을 깜빡이는 시간조차 아까워졌다. 그사이 기습적으로 다가온 케로코차 호수는 남성성이 짙은 잘생긴 호수였다. 신비한 자연에 이야기를 넣기 좋아하던 선인은, 이곳 호수 절벽의 푹 꺼진 지형을 페루의 지도 모양과 같다고도 했다. 실제는 ‘그럴 수도 있겠네’ 정도의 동감이었다. 무엇보다 설산의 기개는 충만했다. 뾰족한 어깨를 들고, 나와 세상을 감정하듯 바라봤다.

가이드는 서둘러 착석하라 명했다. 경고 조였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차빈데우완타르 유적지로 향하는 터였다. 가이드의 명은 호수와 유적지를 잇는 미명의 산길에 있는 투넬데카우이스 때문이었다. 해발 4516m에 공중 부양한 터널이다. 이 길을 1000번도 넘게 건넜을 기사는 하늘로 고공 행진을 한 뒤 터널을 갓 지나 예수상과 마주하자마자 서슴없이 고공 낙하했다. “아멘”이 절로 나오는 길이었다. 산등성이에 겨우, 얇은 선을 제멋대로 그린 듯 타이어 아래는 낭떠러지, 창문 옆은 산비탈이었다. 서서히 구릉을 무규칙으로 채운 다랑이논의 한가운데, 불시착한 듯한 마을이 보였다. 차빈이다.

설산이 흘린 눈물은 호수가 되고, 호수는 기어이 설산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양가누코 호수의 반짝이는 서정.

이 마을에 자리한 차빈데우완타르는 잉카문명 이전, 선사시대의 유적지다. 기원전 1200년 경 건설되기 시작해 900년쯤 세워졌다고 알려진다. 차빈의 종교와 정치를 주관하여 신성시된 곳으로, 산 능선 아래 3개의 광장을 두고 여러 신전이 에두른 흔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현대인은 상상력을 총동원해야 하는 실정이다. 눈을 씻고 봐도 그저 풀때기와 돌멩이 천지였다. 그나마 동굴 신전 내의 란손(El Lanzón)은 동물과 인간을 융합해 신을 상징화한 돌조각이 명징했다. 저지대와 고지대의 경작물을 모두 얻게끔 이곳에 자리 잡은 것부터 우기에 대비한 배수 시스템, 빛과 통풍을 고려한 기발한 신전 설계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아래 여러 고고학자의 학구열을 여전히 높이고 있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오직 버스의 ‘쌍 라이트’에만 의지해 우아라스로 복귀하는 밤길은 참 오늘다웠다. 먼 과거로부터 현재로, 눈에 붕대를 감고 달려가고 있었다.

푸야의 열정과 빙하의 냉정 사이

매일 계속된 강행군에서 가장 남동쪽으로 향하는 셋째 날은 제법 여유로웠다. 숙소에서 한 캐나다 커플이 쏟아내는 파스토루리산에 관한 무용담(!)을 들으며 오전을 소비했다. 오늘 행선지의 예습이었다.

이미 늦게 만난 가이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코카 잎(고산병 방지용)을 권하는 카페에 들러 시간을 오래 끌었다. 기다림에 지친 채로, 이 일대를 아우르는 우아스카란국립공원으로 진입하자 돌연 초여름 날씨가 됐다. ‘푸른 사막’이란 단어가 퍽 어울렸다. 산 위에 성게처럼 따닥따닥 붙은 식물은 언뜻 선인장 같았으나 사실 파인애플과였다. 안데스 고산지대에만 허락된 이 거대 식물의 이름은 푸야 라이몬디(Puya Raimondii). 7~15m에 달하는 이 키다리 식물은 100년 가까운 세월 속에서 딱 한 번 꽃을 피우고 장렬히 생을 마감한다. 기사는 이내 구름을 몰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곳으로 툴툴 올라갔다. 고령 식물이 사라지고 잿빛 설산이 이어질 때쯤, 창문엔 뿌옇게 김이 서렸다. 초여름은 고약한 겨울로 성급히 치환되고 있었다.

“자, 올라가 보시죠. 천천히.”

왜 카페에서 시간을 끌었는지 알 것 같았다. 말하자면 채찍에 대비한 당근이었다. 투어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땅이 몸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발이 닿은 곳은 해발 4800m, 차가 접근할 수 있는 최고 지점이었다. 심장은 터져 나올 듯 뛰고, 다리 사이로 휘이잉 들어온 바람이 앞머리를 치고 올라왔다. 걸음걸이도 요상했다. 걸음을 떼는데, 다음 걸음을 까먹게 했다. 이 길의 정상, 눈 덮인 파스토루리산으로 가기 위한 방법으로 말타기도 있었다. 탈 걸 그랬나. 걸을수록 목적지는 점점 멀어지고, 늘 이미 늦어버린 것 같은 아득함이 있었다. 해발 5240m까지 약 2km의 오르막, 영하 2℃에 맞서는 강풍. 이런 정량적 숫자보다 편도 50여 분이 걸릴 수 있다는 가이드의 정성적 숫자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파스토루리는 권곡 빙하다. 암벽 같은 결이 살아 있으면서 폭신한 눈의 따뜻함이 느껴졌다. 멀리선 백설기처럼 보들보들해 보이던 빙하는 의외로 날이 서 있고, 잿빛 호수 위로 시체처럼 둥둥 떠다니며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눈 이불을 덮은 검고 붉은 암벽과 빙하는 거울 같은 호수에 자기 모습을 투영했다. 360° 파노라마로 스스로 몸을 돌렸다. 정상을 탈환한 듯 어질어질한 환희가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그때쯤 누군가 괴성을 질렀다.

“이야~ 야아아아아~ 호오~~~~”.

안다. 굳이 쳐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얼굴엔 나와 같은 이야기가 쓰여 있을 테니까. 인간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사, 별거 없다. 그저 지금, 바로 이 순간이 전부다.


South Pachpic Ocean

1.Carhuaz 2.Caraz 3.Lagunas de Lianganuco 4.Campo Santo Yungay 5.Laguna Querococha 6.Tunel de Kahuish 7.Caavin de Huantar 8.Puya Raimondi 9.Nevado Pastoruri

  • Plan Your Adventure
  1. 가는 방법 페루 수도인 리마에서 대부분 오후 10시 이후에 출발하는 밤 버스를 타는 게 경제적이다. 우아라스 터미널은 시내에서 좀 떨어져 있어, 버스가 없는 새벽녘엔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게 좋다.
  2. 추천 코스 역사에 큰 관심이 없고 우아라스에서의 여행 시간이 부족하다면, 양가누코 호수와 캄포산토데융가이가 결합된 첫째 날과 푸야 라이몬디와 파스토루리산에 들르는 셋째 날의 데일리 투어만큼은 경험해볼 것.
  3. 머물 곳 부티크 호텔이 흔하지도 않지만, 무엇보다 전 세계 트레커의 이야기가 모이는 호스텔 타입이 좋다. 이런 공용 주방이나 파티오가 있는 숙소는 1박당 5만 원 내외로 머물 수 있다.
  4. 먹을 곳 전 세계에서 여행자가 모이는 만큼 인터내셔널 푸드는 물론 남미에서 이름 난 페루 로컬 푸드를 골고루 맛볼 수 있다. 특히 안데스 지역에서 생산되는 콩으로 만든 세비체와 강추위를 견디게 할 고기 요리인 파타스카, 푸체로 등을 추천한다.
  5. 액티비티 여기는 짧게는 2박 3일부터 있는, 무한정 트레킹 맛집이다. 전문 트레킹 코스나 개인 투어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시내의 여러 에이전시에 들러 정보를 수집한 후 가격을 보고 결정해도 된다.
  6. 축제 흥이 많은 산악지대로, 놀랍게도 매월 축제가 있다. 대표적으로 매년 2~3월경 열리는 카르나발 우아라시노와 5월에 열리는 피에스타 데 마요는 마스크를 쓴 남녀노소가 거리를 춤과 음악으로 물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