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핑계 삼아 심쿵서클을 방문한 건 이번이 두 번째. 벽면에 가득한 테이프와 CD, LP를 각종 빈티지 플레이어로 감상할 수 있는 이곳은 디자인 에이전시 더스(thus)의 사무실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재택근무 시기, 선행 UX 디자인에 주력하던 전성환 대표는 빈 사무실을 자신의 수집품으로 채우고 타인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청음 서비스 공간 ‘심쿵서클’이다. 전 대표는 이 공간을 브랜딩할 때부터 이름 짓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짐작하겠지만, 심쿵은 ‘(빈티지 스피커가) 심장을 쿵쿵 울린다’는 뜻에서 가져왔다. 서클, 즉 원형은 그의 수집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빈티지 플레이어부터 시계, 올드카, 카메라까지 그가 수집해온 기물은 모두 동그라미라는 하나의 형태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심쿵서클에서는 워크맨, 카세트, CD 플레이어, 턴테이블 등 원하는 아날로그 기기로 음악을 듣거나 직접 카세트테이프를 제작할 수 있다.
첫 번째 인터뷰는 심쿵서클 오픈 6개월 차에 이뤄졌다. 아날로그를 다루는 만큼 종이 매체 인터뷰에만 응한다는 전 대표의 말에는 고집스러운 진정성이 묻어났다. 촬영을 위해 슬그머니 애플워치를 벗어두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중요한 날엔 아끼는 시계를 차는데, 오늘은 미처 챙기지 못했네요.” 아쉬워하며 웃는 그의 미소에서도 수집에 대한 애정이 읽혔다. 지난 인터뷰가 심쿵서클이라는 공간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그의 수집 역사를 본격적으로 톺아보기로 했다. 1년 만에 마주한 전 대표는 지난번 아쉬워했던 회중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었다.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띤 채로 말이다.


“저도 되게 오랜만에 꺼내보네요.” 전 대표가 1979년 시계 브랜드 IWC 샤프하우젠에서 네덜란드 독립전쟁 400주년 기념으로 생산한 500개 중 아홉 번째 시계를 책상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는다. 그의 수집 역사는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수집품은 파텍 필립, 티파니 등 하이엔드 브랜드에 공급하던 터숀앤코(Touchon & Co)의 무브먼트로, 손목시계를 커스텀하고자 구입했다. 이 열망은 컬렉팅을 뛰어넘어 시계 부품을 직접 깎아 만드는 정밀 밀링 머신을 들여놓는 데까지 이른다. “실제 워치메이커들이 사용하는 정밀 선반 기계인 쇼블랭(Schaublin) SV70은 사연이 깊어요. 스페인에서 평생 시계를 만들다 은퇴한 할아버지의 장비를 손자가 이베이에 올렸고, 그의 아버지가 정성스레 포장해 제게 보냈죠.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누군가 사용하던 제품을 소유한다는 건 묘한 일이에요. 그 사람의 시간과 이야기가 제게 고스란히 옮겨온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올드카로 이어진 그의 수집 열정은 BMW Z3 한 대를 남긴 채 빈티지 플레이어에서 머물러 있다.
최근 완성한 컬렉션은 오디오의 황금기를 관통한다. 카세트덱의 전설로 불리는 나카미치(Nakamichi)의 드래곤, 빼어난 녹음 성능을 자랑하는 ZX-9와 ZX-7을 갖췄다. 레복스(Revox) B215-S, 파이오니어(Pioneer)의 CT-A1까지 더해진 덱 라인업은 아날로그의 정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중심에는 1974년 출시된 데논(Denon)의 턴테이블 DP-3700F가 있다. “지금 일본에서 배송 중인 산수이(Sansui) AU-D11II와 럭스만(Luxman) L-570 등의 앰프가 인터뷰 전에 도착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요.” 아날로그 기기에 대한 전 대표의 애정은 수집에서 멈추지 않는다. 직접 수리하고 점검도 한다. “1년 동안 수리 공부를 했어요. 카세트덱부터 디지털 녹음기까지 열심히 갈고 닦았죠.” 심쿵서클에서는 그렇게 수리한 플레이어를 판매도 하는데, 어디까지나 빈티지 기기에 입문하려는 이들을 위해서다. 어디서 어떤 제품을 구매해야 하는지, 적당한 가격인지, 사운드가 제대로 나오는 건지 파악하기 어려운 입문자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수집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다. “디자인을 더 잘하고 싶어서 수집을 시작했어요. 수집품을 사용하거나 수리하고 있으면 제품 너머 작업자들의 모습이 그려져요. 당시 엔지니어와 디자이너의 고민과 철학을 느낄 수 있죠.” 곡선과 곡률의 정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사용한 방법 등을 분석하고 있으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법을 찾는 기분이라고. 그가 정의하는 좋은 디자이너의 본질은 선한 마음이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디자인에는 사용자를 위한 마음,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이 있어요. 그게 바로 장인정신이 아닐까 싶어요.”
전성환 대표는 2024년 여름, 심쿵서클을 열고 매번 공간의 가치를 재확인한다. 가보지 못한 시대의 아날로그를 동경하는 MZ세대부터 지나간 시절의 향수를 느끼고 싶은 중장년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이곳에 모여든다. “솔직히 아무도 안 올 줄 알았어요.”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도 자랑스럽게 데논 턴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한다. “단골손님이 소장한 LP를 마음껏 들을 수 있도록 들인 거예요.”
어렵게 수집한 기기들이지만 이 모든 것을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굳이 묻지 않은 건, 그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아서다. 전성환 대표를 ‘심쿵’하게 했던 원형의 기물들처럼 결국 수집이라는 행위도 동그란 원을 그리며 사람과 시간을 잇는 과정임을 이 공간이 증명하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