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기획하기
여행 계획을 짜는 일은 설레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로한 일이다. 항공권을 검색하고, 숙소를 비교하고, 낯선 도시에서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즐거움보다 피곤함이 먼저 찾아온다. 하지만 요즘은 AI가 있다. AI는 이제 단순히 도움을 받는 도구를 넘어 나 대신 여행을 설계하고 함께 여행을 떠나고, 돌아와서는 기록까지 정리해주는 주체로 떠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AI가 함께하는 이른바 ‘AI 트래블’ 시대다.
여행의 시작은 늘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번엔 어디로 가면 좋을까?” 이때 유용한 것이 ‘취향 분석형 여행 추천 AI’다. ‘마인드트립(Mindtrip)’은 사용자의 여행 성향을 세밀하게 분석해 맞춤형 여행지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다. 인기 도시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 경험, 관심사, 음식 취향, 혼행 또는 단체 여행 여부까지 입력하면 사용자에게 어울릴 만한 도시와 그 이유를 정리해 제시한다. 추천 도시에 대한 구체적인 여행 이유와 추천 활동이 함께 제시돼, 막연했던 여행지가 구체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예컨대 디지털 디톡스를 원한다면 포르투갈의 알렌테주(Alentejo)처럼 자연 속에 파묻힌 마을을 추천하고, 예술 감성이 넘치는 도시를 원하면 멕시코의 오악사카(Oaxaca) 같은 감각적인 지역을 제안해주는 식이다. 이처럼 ‘여행의 출발점’을 잡아주는 기능은 의외로 많은 시간을 절약해준다.
일정이 정해졌다면 이제 실질적인 준비로 넘어가보자. ‘호퍼(Hopper)’는 AI 기반 항공권 및 숙소 가격 예측 도구로, 항공권 구매 시점에 대한 결정을 돕는다. “지금 구매하세요” 혹은 “조금 더 기다리세요”라는 알림은 단순한 예측이 아닌, 과거 수년간의 항공권 데이터를 분석해 도출한 통계적 판단에 기반한다. 특히 성수기나 변동이 잦은 노선에서 요긴하다. 숙소 예약 시기도 추천해주기 때문에 여행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뉴욕행 항공권이 갑자기 오를 시점이면 호퍼는 24시간 전에 푸시 알림을 통해 사전 구매를 유도한다. ‘비싸지기 직전의 타이밍’을 잡아주는 것이다.
여행 도중 급하게 항공 예약을 바꾸거나 발권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플라이트레이더24(Flightradar24)’와 ‘플라이티(Flighty)’를 추천한다. 두 서비스 모두 실시간 항공편 추적 기능을 제공하지만, 플라이트레이더24는 전 세계 항공편 위치를 시각화하는 데 강점이 있고, 플라이티는 지연이나 결항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해주는 스마트 알림 기능이 특징이다. 공항 도착 전 비행기가 몇 분 지연 중인지, 게이트 변경은 없는지를 미리 확인할 수 있어 여행 스트레스를 확연히 줄여준다.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여행 계획에 필요한 다음 단계는 구체적인 루트 설계다. ‘레일라(Layla)’는 대화형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여행의 감성과 분위기까지 고려한 일정표를 만들어준다. “현지 느낌이 나는 골목을 걷고 싶어” 같은 감성적인 요청도 이해하며, 사용자와의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실제 루트와 영상 콘텐츠까지 제공한다. 특히 영상 추천 기능 덕분에, 직접 가기 전 그 장소의 분위기를 영상으로 먼저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바르셀로나에서 안토니 타피에스 미술관을 거쳐 현지인만 아는 북 카페까지 이어지는 감성 루트를 짜주기도 한다. 그에 비해 ‘트립플래너(Trip Planner)’ AI는 조금 더 실용적인 접근을 한다. 일정표를 시간 단위로 구성하고, 구글맵과 연동해 장소 간 거리와 동선을 계산해주는 기능이 강점이다. 특히 여행 기간이 짧고 동선을 타이트하게 짜야 할 때 유용하다. 도쿄 2박 3일 여행에서 쓰키지 시장, 팀랩 플래닛, 이케부쿠로를 무리 없이 연결할 수 있도록 교통편까지 고려한 일정을 제안한다. 두 서비스 모두 일정을 짜주는 AI지만, 레일라는 감각적이고 영상 기반의 콘텐츠 중심, 트립플래너는 실제 지도와 시간 중심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보다 직관적인 사용을 원하는 여행자에겐 챗GPT 기반 여행 플래너 ‘롬어라운드(Roam Around)’도 추천할 만하다. 짧은 문장만 입력해도 여행 스타일에 맞는 일정이 자동 생성된다. “부산에서 힙한 분위기 2박 3일” 같은 문장을 입력하면 트렌디한 서점, 카페, 전시 공간을 연결한 일정을 생성해주고, 로컬 맛집이나 숨은 스폿도 함께 제안한다. “베를린에서 동시대 예술과 서브컬처를 함께 경험하고 싶다”고 입력하면 갤러리와 클럽, 카페, 거리 예술까지 포함한 유니크한 루트를 제안하는 식이다. 각자의 스타일에 따라 원하는 여행 방식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이 조합의 가장 큰 강점이다.
짐 싸기도 AI가 책임진다. ‘팩포인트(PackPoint)’는 여행지의 날씨, 일정, 여행 목적 등을 고려해 가져가야 할 짐 리스트를 자동으로 구성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예를 들어 비 오는 런던 5일 일정에는 우산, 방수 재킷, 여분의 양말이 포함된 리스트를 제시하고, 해변 휴양지에는 수영복, 선크림, 모래 방지 타월 등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독일 뮌헨의 겨울 출장”을 입력하면, 블레이저와 방풍 코트, 프레젠테이션용 USB까지 체크리스트에 추가된다. 단순한 리스트가 아니라 실제 사용자 상황에 맞춘 추천이라 더욱 실용적이다.
먹고 말하고 즐기기
해외여행에서 가장 큰 장벽 중 하나인 언어도 이제 AI가 돕는다. ‘구글 렌즈(Google Lens)’는 카메라로 비추는 순간 메뉴판, 표지판, 전단지 등을 실시간으로 번역해준다. 특히 글자가 많은 문서를 바로 해석해주는 기능은 현지에서 문서를 이해할 때 유용하다. 한국인 여행자에게 익숙한 ‘파파고(Papago)’는 특히 한국어와 동남아·일본어·중국어 간 번역에 강점을 보여준다. 챗GPT 기반의 번역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코파일럿(Microsoft Copilot)’은 단어 단위가 아닌, 대화의 맥락과 문화적 분위기까지 반영해 번역 결과를 제안한다. 다른 번역 툴이 문장을 입력하면 단순히 번역을 제시하는 것과 달리 이 두 개의 툴은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 이와 어울리는 문장을 추천한다. 예를 들어 “파리의 골동품 시장에서 물건값을 깎고 싶은데 어떻게 말하면 될까”라고 물어보면, “오래되고 분위기 좋은 골동품 시장이라면 ‘이건 오랫동안 가지고 계신 건가요?’라고 정중히 말을 건네보세요. 가격 여지를 자연스럽게 넓히는 효과가 있을 거예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여행을 좀 더 깊숙하게 즐기고 싶다면 ‘보이스맵(VoiceMap)’ ‘가이드긱(GuideGeek)’ ‘퀘스토(Questo)’를 사용해보자. 보이스맵은 대표적인 GPS 기반 오디오 투어 서비스다. 세계 각지의 도시와 관광 명소에서 사용자의 위치에 맞춰 자동으로 설명을 재생한다. 여행 가이드북 대신 이어폰 하나로 도심을 누빌 수 있는 셈이다. 가이드긱은 왓츠앱(WhatsApp)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AI 여행 어시스턴트다. 채팅처럼 실시간으로 답해주는 여행 서비스다. 예를 들어 “브루클린 브리지 근처에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을까?” 또는 “오늘 저녁 싱가포르에선 어떤 공연이 열려?”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 답을 주는 식이다. 결과는 구글맵과 연동된다. 계획 없이 떠나는 즉흥 여행자들에게 유용하다. 퀘스토는 훨씬 인터랙티브한 여행 경험을 제공하는 미션 기반 탐험 앱이다. 도시 속 퀘스트를 선택해 마치 보물찾기하듯 거리를 걷고 단서를 찾아가며 목적지에 도달한다. “로마의 고대 유적지를 따라 이어지는 퍼즐을 풀어보세요” 같은 시나리오가 주어지며, 각 장소마다 흥미로운 설명이 따라붙는다. 걷기 선호도, 관심 주제, 여행 시간에 따라 미션을 고를 수 있다.
추억 기록하기
여행 중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좀 더 특별하게 간직하고 싶다면 브이로그를 만들어주는 툴을 사용해보는 것도 좋겠다. ‘스티브 AI(Steve.AI)’는 문장과 사진만 있으면 자동으로 브이로그를 제작해주는데, 내레이션과 배경음악까지 자동 삽입된다. 영상 제작 경험이 없어도 손쉽게 여행기를 남길 수 있는 도구다. ‘인비디오AI(Invideo AI)’는 플랫폼별 영상 형식, 예컨대 인스타그램 릴, 유튜브 쇼츠, 틱톡 영상 등에 최적화된 포맷을 제공해 여행자의 채널 운영까지 돕는다. ‘포스트피티 AI 릴 메이커(Postfity AI Reel Maker)’는 팀 기반 협업 편집에 특화되어 친구들과 함께 여행한 내용을 각자의 폰에서 동시에 편집할 수 있게 해준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AI 트래블’은 끝나지 않는다. ‘스마트블(Smartvel)’은 여행 중의 기후, 이벤트, 방문 장소 등을 자동으로 정리해 하나의 여행 로그로 기록해준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날짜와 장소, 날씨, 당시에 기록해둔 짧은 코멘트를 다시 꺼내 볼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다. ‘쿠소AI(Quso.ai)’는 SNS 업로드용 콘텐츠에 최적화된 캡션, 해시태그를 분석해 추천하고 더 많은 반응을 얻기 위한 포맷이나 문장을 함께 제시해준다. 여행을 콘텐츠로 확장하려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툴이다.
이제 AI는 여행을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가 되었다. 감각적으로 진화한 이 여행 메이트는 개인의 취향과 감정, 스타일에 반응해 움직인다. 머지않은 미래엔 IoT와 VR이 결합된 동행 AI, 가상 여행 가이드, AI 기반 여행자 커뮤니티까지 확장될 전망이다. 이제 우리는 여행이 고플 때 AI에게 묻기만 하면 된다. “이번엔 어디로 가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