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립의 새로운 키워드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RYU JIN
  • PHOTOGRAPHY BY Jeon jaeho
  • Supported by Las Vegas Convention and Visitors Authority

스트립의 새로운 키워드

New Strip

라스베이거스는 한 번도 성장을 멈춘 적 없는, 그리고 멈출 생각도 없는 도시다. 그 동력을 만드는 스트립의 새로운 랜드마크와 공간, 소식을 모았다.
  • written by RYU JIN
  • PHOTOGRAPHY BY Jeon jaeho
  • Supported by Las Vegas Convention and Visitors Authority
2025년 03월 19일

Play

천진한 쾌락을 좇는 모험

라스베이거스에서 나이를, 체면을 잊고 놀았다. 평소라면 ‘이 나이에 이래도 되나?’ 하며 주춤했을 모습으로. 예전엔 “라스베이거스에서 놀았다”는 문장 뒤에 주로 이런 장면이 따라왔다. 스팽글로 짠 미니 원피스를 입고 루프톱 바에서 DJ 스티브 아오키의 음악을 들으며 춤추고 술 마시는 파티걸의 밤 말이다. 지금 스트립을 찾은 MZ들은(물론 중장년도) 전과 다른 방식으로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의 수도’를 즐긴다. 이를테면 벨크로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트램펄린에서 튀어올라 거대한 과녁에 몸 던지기, 혹은 팝콘을 입안에 던져 넣으며 구식 회전목마 타기, 디지털카메라와 센서가 스코어를 자동으로 기록해주는 다트장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게임 하기 등. 그런 놀이가 라스베이거스를 쿨하게 즐기는 새로운 방식이 된 건 그렇게 놀 데가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룩소르 호텔 2층에 들어선 어른을 위한 키즈 카페 ‘플레이 플레이그라운드(PLAY Playground)’, 베네시안 리조트 안 그랜드 캐널 숍스에 자리한 소셜 다트장 ‘플라이트 클럽(Flight Club)’, 맥주와 와인, 칵테일을 마시며 도끼 던지기 게임을 할 수 있는 에어리어 15(Area 15) 안 ‘듀얼링 액스(Dueling Axes)’엔 10대 시절로 돌아간 나이 많은 어른들이 낄낄대고 웃거나 주책맞게 환호하는 소리가 가득하다.

오메가 마트에서 비밀 통로를 찾고 싶다면 이 괴짜 정육점을 유심히 살펴볼 것.

나를 열두 살짜리 어린애로 만든 곳은 몰입형 엔터테인먼트 지구 에어리어 15에 자리한 ‘오메가 마트’다. 이 공간에 대한 소개글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 아트 그룹 ‘미아오 울프’가 마트처럼 꾸민 공간 안에서 공상과학과 펑크록 스피릿을 가미한 사이키델릭 아트 컬렉션을 선보이는 전시회.” 뭔 말인지 도통 이해가 안 된다고 생각한 (나도 그랬다) 당신을 위해 좀 더 쉽게 풀어보겠다. 오메가 마트는 이름 그대로 마트다. 안으로 들어서면 LA의 예쁜 유기농 마트 에레혼(Erewhon) 같은 인테리어가 눈을 끄는데 진열장 안 물건을 가만히 살펴보면 괴이한 것들이 뻔뻔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충 기억에 남는 물건은 다음과 같다. 온몸에 문신을 새긴 생닭, 비둘기 무스 맛 고양이 사료, 낙타의 버섯 수프, 견과류 없는 소금에 절인 땅콩, ‘누가 버터라고 말했나 방향제’…. 뭘 집어 들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다가 정육점 냉동고 문을 열면 수상하고 어두운 터널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안엔 AI에게 “우주에 있는 호그와트(영화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마법 학교 말이다) 좀 만들어줘”라고 요청하면 나올 법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걸 한 문장으로 다듬는 데 성공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썼다. “건축, 조각, 회화, 사진, 영상, 음악,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 다양한 영역의 예술과 기술로 꾸민 전시 공간이자 테마파크.” 이 재미없는 문구가 안타까워서 인터뷰를 위해 만난 오메가 마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켄트에게 이곳을 다시 정의해달라고 졸랐다. “몰입, 예술, 경험, 전시가 여길 가장 명확하게 표현하는 단어예요. 우리는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단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걸 상상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완벽한 몰입으로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죠.”

스윙어스 안에 들어선 골프장, 더 크레이지 골프클럽. 요즘 라스베이거스에서 유행하는 어른만 입장할 수 있는 놀이터다.

오메가 마트가 판타지 덕후의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면 ‘스윙어스(Swingers)’는 운동광의 승부욕을 자극한다. 만달레이 베이 리조트 안, 옛 라이트 나이트클럽 자리에 2024년 11월에 문 연 이곳은 골프장과 바, 클럽, 오락실이 한데 모인 새로운 개념의 놀이터. ‘더 크레이지 골프클럽’이란 부제(?)가 붙은 공간답게 주인공은 골프다. 이곳을 안내한 담당자에게 “저는 골프를 한 번도 안 쳐봤는데요”라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골프채 잡는 법조차 몰라도 리디아 고처럼 몰입해 즐길 수 있다. 영국 시골마을이 연상되는 아기자기한 풍경 속에 자리한 36홀 골프 코스엔 풍차, 물레방아, 회전목마 같은 장애물이 기상천외하게 놓여 있어 난도가 꽤 높다. 홀에 공이 좀처럼 들어가지 않아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땐 지체 없이 캐디를 불러 칵테일 한 잔을 주문하거나 팬시한 파라솔로 꾸민 라운지 바에서 열을 식힐 것. 라운드를 끝내고 체력이 남은 이들은 2층으로 향한다. 벨에포크풍으로 꾸민 사이키델릭 유원지 ‘카니발’엔 우리로 치면 지방 야시장에서 볼법한 구식 아케이드 게임들이 있다. 차가운 맥주 한 잔 들이켜며 친구들과 인형 뽑기, 농구 게임, 물총 쏘기 같은 것을 즐기다 보면 엔도르핀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기분마저 든다.

태양의 서커스가 선보이는 지상 최대의 워터 쇼, ‘오 쇼’는 최근 누적 공연 1만2000회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다.

천진한 쾌락을 좇아 헤맨 나의 항해는 지구에서 가장 큰 LED 스크린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돔 건축물 ‘스피어’와 그 돔의 거대한 파사드에서 펼쳐지는 미디어 아트 퍼포먼스를 가장 가까이에서 관망할 수 있는 대관람차 ‘하이 롤러(High Roller)’를 지나 ‘오 쇼’에서 닻을 내렸다. “태양의 서커스가 선보이는 지상 최대의 워터 쇼”, “라스베이거스를 상징하는 엔터테인먼트” 같은 수식어를 거느린 이 공연은 한국인 최초의 태양의 서커스 단원 홍연진의 말처럼 경이롭고 압도적이다.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극한의 몸짓, 성실함과 재능으로 만들고 두려움을 극복하며 다진 아름다운 퍼포먼스에 취해보세요.” 그 덕에 나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딴생각할 틈 없이 지금 눈앞에 펼쳐진 시간에 한껏 몰입하며 잡념 가득한 뇌를 씻었다.

Eat

스타의 ‘맛’

시저스 팰리스는 최근 식당 목록에 대폭 변화를 줬다. ‘브래서리 B 바이 바비 플레이’도 그중 한 곳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미식의 쾌락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스타의 이름은 확실한 이정표다. 화려한 성공을 거둔 셰프와 사업가들은 지금 스트립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다. 이탤리언 레스토랑 ‘아말피 바이 바비 플레이(Amalfi by Bobby Flay)’로 유명한 미국의 스타 셰프 바비 플레이는 최근 시저스 팰리스 안, 올드 홈스테드 공간에 ‘브래서리 B 바이 바비 플레이(Brasserie B by Bobby Flay)’를 열었다. 20여 년간 시저스 팰리스와 전략적이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온 그가 선보이는 클래식 프렌치 요리를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크리스털 샹들리에, 지팡이가 달린 의자, 빈티지 지하철역 타일 등으로 꾸민 세련된 공간이 시선에 든다. 샌드위치나 햄버거를 골라도 좋지만 덕 콩피, 도버 솔, 하리코 베르 샐러드 등 섬세한 프렌치 음식을 맛보길 권한다. 시저스 팰리스 안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낼 계획이라면 그다음 끼니는 ‘셀러브리티 푸드홀(Celebrity Food Hall)’에서 채워야 한다. 2024년 가을에 문을 연 이 푸드 코트는 모든 이를 선택 장애로 만드는 곳이다. 미슐랭 스타 셰프 릭 베일리스(Rick Bayless)의 ‘토르타조(Tortazo)’에선 베이컨, 아보카도를 듬뿍 넣은 쿠바 샌드위치가, 뉴욕에 한식 열풍을 일으킨 에스더 최(Esther Choi)가 운영하는 ‘목바(Mokbar)’에선 고추장 치킨이 배고픈 이들을 유혹한다.

1946년 스트립에 들어선 최초의 호텔 ‘플라밍고 라스베이거스’는 TV 쇼 스타들과 손을 잡았다. 이곳에서 당신이 찾아야 할 이름은 ‘밴더펌프’다. <베벌리힐스의 진짜 주부들> <밴더펌프 룰스> <밴더펌프 빌라>로 유명한 사업가이자 방송인 리사 밴더펌프는 2024년 12월 이곳에 자신의 애칭을 딴 레스토랑&바 ‘핑키스 바이 밴더펌프(Pinky’s by Vanderpump)’를 야심차게 선보였다. 이곳에선 금빛 새장 안에 내는 초록 마르가리타 ‘플립 더 버드’, 캐비아를 한 스푼 얹은 ‘펌프 앤 범프’, 분홍 솜사탕을 곁들이는 ‘대디 이슈’ 등 도발적이며 퇴폐적인 칵테일을 놓치지 말 것. 라스베이거스를 제2의 고향으로 부르는 고든 램지의 일곱 번째 식당이자 두 번째 햄버거집 ‘고든 램지 버거(Gordon Ramsay burgers)’는 플라밍고가 발표한 최신 뉴스다. 올해 1월에 문을 연 이 식당에선 플라밍고 지점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점 메뉴를 열두 개나 선보인다. 핑크색 브리오슈 번을 얹은 고든 프라이드 치킨 샌드위치와 와규 소고기 패티를 넣은 스테이크 디너 버거 사이에서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다. 거기에 트러플 감자튀김과 스트로베리 치즈 케이크 셰이크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 테이블을 가득 채운 고칼로리 물질을 보며 ‘이래도 되나?’ 잠시 죄책감이 들었지만 (고지혈, 고혈압) 걱정은 집으로 돌아가서 하기로 한다. 라스베이거스는 본능에 충실하려고 오는 도시니까.

Stay

라스베이거스의 진화를 경험하는 호텔

샴페인과 차, 커피와 쿠키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VIP 라운지.

2023년 12월 5일, 스트립 북쪽 끝에 자리한 거대한 건축물의 네온사인에 마침내 불이 들어왔을 때 라스베이거스는 한마음으로 환호했다. 이 문장은 미국 특유의 호들갑스러운 과장이 아니다. 당신이 나처럼 퐁텐블로 라스베이거스(이하 퐁텐블로)의 탄생 비화를 들었다면 여기 사는 사람처럼 기쁘게 박수를 쳤을 것이다. 퐁텐블로의 첫 출발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CEO 제프리 소퍼가 착공 소식을 발표한 후 네바다주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을 타이틀로 내세운 이 호텔은 16년 동안 ‘짓다 만 상태’로 존재했다. 월스트리트의 억만장자 칼 아이칸을 비롯해 부동산 투자 기업의 손에서 정처 없이 떠돌던 퐁텐블로의 열쇠는 2021년 다시 소퍼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2년 후 모두가 고대하던 마무리 단장을 마치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전처럼 웅장한 포르트코셰르(porte-cochère, 출입 공간)를 지나면 면적 약 1860㎡(약 560평)의 드넓은 로비가 모습을 드러낸다. 객실에 들어서면 자동 커튼이 열리고 지금 스트립을 찾은 관광객들이 가장 열광하는 랜드마크 ‘스피어’와 지구상에서 가장 화려한 인공 도시의 마천루, 그 뒤를 병풍처럼 두른 황야와 거친 카리스마를 내뿜는 레드록캐니언이 공연처럼 펼쳐진다. 퐁텐블로가 침 마르게 자랑하는 쟁쟁한 ‘스펙’을 알려주는 숫자들 -67층, 3644개의 객실, 37억 달러(한화 약 5조 3124억 6000만원)라는 천문학적 건축 비용, 1330개의 슬롯과 128개의 테이블 게임 시설을 갖춘 카지노, 5만1000㎡ 면적의 컨벤션 및 회의 공간, 36개의 레스토랑과 바 등- 도 대단하지만 나는 라스베이거스의 서사가 한눈에 펼쳐지는 이 ‘뷰’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남쪽 로비에선 스위스 출신의 예술가 우르스 피셔의 조각 를 만날 수 있다.

스트립 한가운데에 위치한 시저스 팰리스나 베네시안 리조트와 달리 퐁텐블로는 북쪽 초입에 자리해 중심가와 접근성이 다소 떨어진다. 투숙객이 남긴 리뷰 중엔 “그게 좀 아쉽다”는 평이 심심찮게 보이는데 나는 그 밑에 “그게 가장 좋았다”는 답글을 달고 싶다. 호텔 안에 필요한 게 다 있기 때문이다. 특히 퐁텐블로가 고심해서 큐레이션한 식당 목록은 스트립의 무수한 선택지 앞에서 괜찮은 곳을 검색하고 골라야 하는 피로감을 덜어준다. LA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는 에번 펑크의 로마식 이탤리언 레스토랑 ‘마더 울프(Mother Wolf)’를 비롯해 마사 이토와 케빈 김의 ‘이토(Ito)’, 앨런 야우의 딤섬집 ‘시나 클럽(Chyna Club)’, 마이애미·뉴욕·뉴멕시코를 휩쓴 화덕 요리 레스토랑 ‘큐(Kyu)’ 등이 미식가의 선택을 기다리는 장소다.
여독은 수영장과 스파에서 풀어보자. 1950년대 마이애미 비치와 프랑스의 리비에라를 재현한 ‘오아시스 풀 덱’에서 햇빛 샤워와 수영을 즐긴 후엔 ‘라피스 스파 앤 웰니스’에서 휴식을 취할 차례. 테라피스트와 함께 유럽의 전통 방식에 뿌리를 둔 ‘아우프구스 사우나 리추얼’로 근육에 밴 긴장을 푼 후 소금방, 허브방, 온탕과 냉탕 같은 공간을 오가다 보면 남은 일정을 전부 취소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이런 경험들이 바로 이 도시의 하스피탤리티 업계가 요즘 밀고 있는 라스베이거스식 웰니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