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그리너리 미식 탐험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lee JIHYE
  • PHOTOGRAPHY BY Jeon jaeho
  • Supported by Singapore Tourism Board

싱가포르 그리너리 미식 탐험

Nature Meets Flavor in Singapore

‘친환경’은 싱가포르 미식 신에서도 주된 화두다. 농장을 만들어 식재료를 공수하는 파인다이닝부터 온난화를 막아주는 식물을 사용하는 바, 가열하지 않는 음식을 연구하는 로컬 레스토랑까지. 지구를 위하는 미식 공간 여섯 곳을 찾았다.
  • written by lee JI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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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pported by Singapore Tourism Board
2024년 09월 02일

1-Arden

원-아든

최근 몇 년간 싱가포르 고층 빌딩 곳곳에 자리한 정원은 단순한 휴식 공간에서 벗어나 팜투테이블의 실험실로 발전해왔다. 파인다이닝도 이런 추세에 동참해왔는데 그 최전선에 있는 레스토랑이 바로 원-아든이다. 캐피타스프링 51층에 자리한 원-아든은 루프톱 바, 카아라, 오우미 그리고 농장인 푸드 포레스트가 합쳐진 체험형 미식 공간. 푸드 포레스트는 지상 280m에 있는, 싱가포르에서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 농장이다. 1만㎡의 농장에선 매달 80kg의 식재료가 재배된다. 농장보다는 잘 가꿔진 정원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이곳은 각 구역을 테마로 나눠 관리한다. 약용식물이 있는 ‘트로피컬 웰니스 가든’, 로컬 식재료가 심어진 ‘싱가포르 헤리티지 가든’, 일본식 레스토랑 오우미의 식재료를 담당하는 ‘일본식 가든’ 같은 곳들이다. 총 160여 종의 과일, 채소, 허브, 꽃을 정원 전체에 심었다. 대부분 식재료로 사용하지만, 흙을 관리하기 위해 심은 것도 있다. 블랙 페이스 제너럴이라는식물인데 토양에 산소를 공급하는 데 도움된다. 더 많은 것이 궁금하다면 수석 농부와 함께하는 가든 투어를 신청하는 것도 추천한다. 식물들이 눈에 익숙해질 때쯤 식탁으로 돌아오면 농장에서 갓 따온 재료로 만든 향긋한 시그너처 샐러드와 돼지고기 등심찜, 상큼한 푸아그라, 칵테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The Living Cafe

더 리빙 카페

“싱가포르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은 무척이나 쉽다”라는 말에 찾아간 더 리빙 카페. 그 말의 주인공이자 더 리빙 카페의 주인인 영국인 댄 파리스(Dan Paris)는 세계를 여행하다 싱가포르에 정착해 이 레스토랑을 열었다. 2011년 리빙 웰니스 센터의 일부로 시작한 더 리빙 카페는 ‘생식’이라는 명확한 콘셉트와 ‘노 파이어 노 히트’를 모토로 음식을 가열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45℃ 이하의 온도로 24시간 이상 조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모든 메뉴에 글루텐, 방부제, 첨가물, 백설탕, 인공 착색료가 없고 붉은 육류 대신 유기농 닭가슴살과 연어를 사용한다. 조리하고 남은 커피 가루나 과일 껍질은 쓰레기 매립지 대신 농장의 퇴비로 재사용한다. 1층의 레스토랑 한편에는 페스토, 건강식품, 차 등이 진열돼 있다. 주방에서 직접 만든 비건 염소 치즈나 바질 페스토 등이 인기지만, 눈을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김치. 댄의 아내가 개발한 김치는 상큼하고 가벼운 맛을 지녀 샐러드처럼 어느 음식에나 조화롭게 어울린다. 더 리빙 카페가 유명해진 데에는 디저트도 한몫했다. 역시 조리하지 않고 오랜 시간 저어서 굳히는 방식이다. 쿠키, 치즈케이크, 초콜릿 브라우니 같은 메뉴가 모든 식탁에 하나씩 올라가 있다. 2층의 스튜디오에선 요가, 트라우마 극복 워크숍, 임산부를 위한 멘탈 케어 등의 프로그램이 열린다. ‘건강한 음식과 정신’을 모두 챙기는 더 리빙 카페를 눈과 혀끝으로 느낀 시간이 지나자 댄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Hub & Spoke Cafe

허브 & 스포크 카페

창이공항 도착부터 공항 트레인을 타고 공항 밖으로 나갈 때까지, 수없이 마주친 이정표가 ‘HUB & SPOKE’였다. ‘대체 허브 & 스포크가 뭘까?’ 하는 호기심에 발걸음이 향할 수밖에 없었다. 허브 & 스포크 카페는 붉은나무 관목과 흰 백합, 멕시코 페튜니아, 오렌지 재스민 등 2천700개 이상의 식물이 심겨진 산책로 끝에 다다르자 그제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을 단순히 커피나 음료를 파는 카페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싱가포르 전통 음식부터 유럽식 브런치를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 비행기 시간이 애매한 여행객을 위한 저렴한 샤워 부스, 잘 닦인 자전거 도로에 있는 주차장 겸 셀프 정비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 헬스장이 모인 공간이기 때문. 무엇보다 60만여 개의 식물을 관리하는 창이공항이 설계한 만큼, 식물이 물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자동 관개 시스템을 설치하거나 때마다 원예 애호가를 위한 퇴비화 워크숍을 여는 등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고민한다. 높은 천장의 통유리를 통해 잘 관리된 조경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나비나 잠자리가 날아다니는 풍경도 눈에 들어올 것. 싱가포르에 도착하자마자 혹은 떠나기 전, 조경과 미식을 동시에 경험 하고 싶다면 이만한 곳이 없다.

Open Farm Community

오픈 팜 커뮤니티

싱가포르의 미식 트렌드 중 하나가 된 팜투테이블을 설명하려면, 2015년 문을 연 오픈 팜 커뮤니티를 빼놓을 수 없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단순한 레스토랑에서 나아가 음식과 더 가까워지고 식재료가 어떻게 재배되는지, 그 결과 우리 접시에 무엇이 올라오는지 알리는 커뮤니티 역할을 하는 곳. 930㎡의 농장에서 허브나 채소, 과일 등 150여 종의 식재료를 직접 키운다. 이는 레스토랑 식재료의 약 50%를 차지하는 수치. 20%는 싱가포르 내 연계된 농장에서, 나머지는 수입한다. 인근 농장 킨 얀 아그로테크(Kin Yan Agrotech)에서 가져온 유기농 버섯과 직접 재배한 아스파라거스를 넣은 버섯 요리, 헤이 데리스(Hay Dairies) 농장에서 가져온 염소젖으로 만든 리코타 치즈에 갓 딴 토마토를 섞은 샐러드는 지속가능한 식탁을 만들기 위한 오픈 팜 커뮤니티의 철학을 보여주는 대표 메뉴. 미쉐린은 2024년 이곳을 <미쉐린 가이드> 싱가포르 목록에 올렸다. 모든 테이블에 히비스커스나 고수, 레몬그라스 같은 향신료를 담은 컵을 제공해 기호에 따라 요리에 더해 먹도록 배려했다. 매주 금요일에는 총괄 농부와 함께 팜 투어를 열고 칵테일을 마시는 이벤트도 진행한다. 놀이터, 탁구대, 잔디 볼링 등 놀거리가 다양해 아이들과 함께 오는 가족 방문객이 많은 편이다.

Analogue

아날로그

“싱가포르에서 친환경의 최전선에 있는 바는 어디일까?”로 시작한 물음은 아날로그를 둘러보고 나서야 풀리기 시작했다. 싱가포르 최초로 모든 메뉴를 식물성으로 만드는 바 아날로그는 좀 더 고차원적인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곳이다. 1천600kg의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형이상학적인 테이블은 아날로그의 상징과도 같다.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높낮이를 다르게 설계했다. 사이드와 외부 공간의 테이블 역시 균류의 일종인 균사체라는 자체 성장 재료로 만들었다. 대부분의 칵테일은 상쾌하고 가볍지만, 수장 비제이 무달리아르(Vijay Mudaliar)와 메인 바텐더 니콜라스 레옹(Nicolas Leong)의 의도만큼은 진지하고 무겁다. 메뉴는 주로 ‘미래의 재료’를 탐구하고 개발하는 데서 시작한다. 지구온난화를 막아주는 다육식물 계열로 칵테일 베이스를 만들고, 설탕 대신 자일리톨, 초콜릿 대신 캐럽을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그너처 메뉴인 페이크 에스프레소는 커피 대신 치커리를 이용해 맛을 구현했다. 모든 메뉴는 목테일로 변경 가능한데, 단순히 알코올만 빼는 것이 아니라 자체 풍미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도록 조금씩 다르게 만든다. 칵테일을 만들고 남은 재료는 주방에서 디저트나 가니시로 사용한다.

The Summerhouse

더 서머하우스

라이프스타일 다이닝 브랜드 원 로체스터 그룹(One Rochester Group)은 싱가포르의 지속가능한 다이닝 문화를 주도하는 기업이다. 이를테면 로컬 칵테일 전문점 ‘1918헤리티지’나 반려동물 친화적인 플로럴 카페 ‘와일드시드’ 같은 곳이 그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원 로체스터 그룹은 지난해까지 싱가포르 보타닉 가든 속에 있던 레스토랑 ‘보타니코’를 방치된 공군기지로 옮겨왔다. 그렇게 탄생한 공간이 더 서머하우스다. 식민지풍 방갈로를 그대로 살린 건축, 트로피컬 풍경의 정원 겸 농장, 그 사이에 자리 잡은 투명한 돔 테이블 등 아기자기하면서도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이 젊은 싱가포리언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는 중. 4천㎡의 면적에 다이닝룸, 카페, 바, 꽃집, 커피 로스팅 공간까지 야무지게 채워져 있다. 농장에서 재배하는 식재료는 모든 메뉴에 등장한다. 특히 차가운 면에 버섯, 달걀, 배, 해초를 올리고 농장에서 갓 딴 애플민트로 마무리한 콜드 누들은 한국의 면 요리에서 영감받은 인기 메뉴. 인근 해역에서 잡은 신선한 생선과 붉은 양배추, 아보카도, 망고를 넣은 피시 타코나 참치 다타키를 올린 샐러드도 팜투테이블의 대미를 장식한다. 돔 형태의 프라이빗 테이블은 프러포즈 장소로, 야외 정원은 결혼식장으로, 2층의 넓은 홀은 피로연장으로 사용돼 결혼을 앞둔 커플들이 눈여겨보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