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히메의 식탁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LEE JIHYE
  • PHOTOGRAPHY BY SEO SEHYUN
  • SUPPORTED BY EHIME PREFECTURE(@go_ehime)
  • Coordinator PARK SUNGHEE(@yukihime_park)

에히메의 식탁

Ehime: A Land of Flavor

여행의 목적이 ‘맛’을 향할 때, 에히메는 그 답을 가장 구체적이고 집요한 방식으로 보여줬다.
바다와 대지, 그곳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에히메의 식탁을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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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05일
우와지마의 노나카 어묵집 인근, 귀여운 식료품점 앞을 지나가는 김기남 셰프.
우와지마의 작은 거리에서 마주친 한적한 풍경.
앞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도야 시장의 신선한 해산물. 아침 경매를 통해 들여온다.
오즈의 ‘로바타 아부라야’에서는 화로에 구운 음식을 기다란 나무판에 얹어 손님에게 내어준다.
오즈에서 우연히 들른 일식 레스토랑 ‘하즈키’. 정겨운 로컬 분위기 속에서 기대 이상으로 수준 높은 튀김 요리를 맛봤다.

최근 1년 동안 일본 에히메를 세 번 다녀왔다. 일본 최고 온천이라 불리는 도고 온천이 궁금했던 첫 방문에서 수십 종의 감귤이 선사하는 다채로운 맛에 빠져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소도시 마쓰야마를 중심으로 한 두 번째 여행에서는 도미밥의 감칠맛에 놀랐다. 다도를 예술로 승화시킨 장인을 만나러 간 세 번째 여행에서는 일본 차의 깊이와 로컬 가정식의 소박한 밥상에 빠졌다. 이쯤 되니 에히메의 음식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뜻밖에 마주한 미식 경험들이 우연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네 번째 여행을 계획했다. 이번에는 철저히, 에히메의 미식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사전 조사를 통해 에히메가 생각 이상으로 풍요로운 식재료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세토내해와 우와해, 두 바다가 맞닿은 에히메의 해안선은 1700km에 이르고, 그 사이로 390여 개의 섬이 흩어져 있다. 리아스식해안이 만들어낸 굴곡지고 잔잔한 바다는 일본 최고의 양식 환경을 제공한다. 전국 참돔의 57%, 방어의 15%, 넙치의 15%가 이곳에서 자란다. ‘바다 전체가 양식장’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내륙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풍요가 이어진다. 온난한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 덕분에 이요칸·온주미캉·벳피 등 40여 종의 감귤이 자라며, 이는 일본 전체 생산량의 1위인 20%를 차지한다. 바다는 신선하고 다채로운 어류를, 대지는 달콤한 과일을 키워내고 있었다. 에히메의 맛은 술로도 연결된다. 지역 쌀 마쓰야마미이(松山三井)와 시즈쿠히메(しずく媛)는 뛰어난 향과 질감으로 사케의 재료가 된다. 감귤을 이용한 맥주, 니혼슈, 와인까지 등장하며 새로운 양조 문화가 꽃피고 있었다.
미식가도, 그렇다고 대식가도 아닌 내가 에히메의 식탁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선 지원군이 필요했다. ‘시미베’의 이진곤, ‘타쿠미 곤’의 김기남. 두 셰프는 에히메의 바다와 흙 그리고 그 위에서 이어지는 요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우리는 레스토랑과 양조장, 시장과 농원을 오가며 이 땅의 맛을 이루는 사람과 장소를 만났다. 마쓰야마의 작은 프렌치 다이닝에서는 지역의 농가에서 직접 가져온 재료로 만든 코스 요리를 맛봤고, 야와타하마의 오래된 사케 양조장에서는 100년 넘게 이어온 장인의 손길을 느꼈다. 세토내해 항구에서는 방금 잡아 올린 생선을 손질해 구웠고, 바다 건너 고고시마섬의 브루어리에서는 귤껍질로 만든 IPA를 마셨다. 포도밭을 일구는 사람, 버려진 귤밭을 와이너리로 바꾼 사람, 감귤 껍질이 섞인 도미 사료를 만든 사람까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에히메의 풍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도야 시장에서 통통하고 기름진 고등어를 손질한 김기남 셰프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손맛을 기억했고, 오래된 작은 민가를 개조해 술을 빚는 이들을 보며 이진곤 셰프는 이주를 선택한 그들의 과감한 도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우리가 체험한 에히메의 식탁은 계절마다 달라지는 향과 손끝에서 시작되는 철학,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을 통해 더욱 풍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