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the Locals
레시트 심셰크 Reşit Şimşek(아티스트)
“튀르키예 남부 도시 타르수스(Tarsus)는 고대 로마 시절, 마크루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만난 곳으로 유명해요. 그곳에서 태어나 11년 전에 이스탄불에 왔어요. 저는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입니다. 예술가에게, 그리고 창의적인 자극이 필요한 이들에게 이스탄불은 질문과 답을 함께 건네는 도시예요. 저 역시 이스탄불의 역사, 환경, 그리고 사람들에게 영감을 받으며 작품을 그리고 만들고 찍고 있습니다. 새로운 이스탄불을 목격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제 막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동네나 장소를 추천할 수도 있지만, 저는 다른 답을 주고 싶어요. 먼저 질문을 가진 사람이 무엇을 새롭다고 여기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최신만이 새로움은 아니니까요. 역사와 오래된 건축이 낯선 사람에겐 파티흐(Fatih) 지구와 톱카피(Topkapi) 지구가 신선할 거고, 낡은 옛 물건을 사랑하는 사람에겐 발라트와 추쿠르주마(Çukurcuma)가 새로운 경험이 되겠죠. 이스탄불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면 저는 부르가자다(Burgazada)를 추천해요. 도시를 실루엣으로 관망할 수 있는 이 섬은 많은 튀르키예 예술가들의 뮤즈가 된 동네이기도 하죠. 베욜루(Beyoğlu)의 지항기르 모스크(Cihangir mosque) 정원에선 이스탄불의 중요한 포인트를 한눈에 담을 수 있고요. 저는 그곳을 배회할 때마다 자주 낯선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기도 해요. 이스탄불은 저에게 거부할 수 없는 문(portal)입니다. 당신에게도 그러라 믿어요. 이스탄불에 머물며 이 도시에 대한 자기만의 정의를 갖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져보세요. 거리를 걷거나, 우연히 들어간 레스토랑의 테이블 위에서, 혹은 시미트(튀르키예식 참깨빵) 진열장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답이 나타날 거예요.”
육셀 쿠쿨 Yuksel Kukul(카페 ‘벨벳’ 오너, 이벤트 디자이너)
“세 살 때 수단에서 가족과 함께 이스탄불로 이주했어요. 그보다 더 전에 증조할머니께서는 여기로 와서 커피 메이커로 오래 일하셨죠. 튀르키예가 오스만 제국이었던 시절에요. 제가 운영하는 카페 ‘벨벳(Velvet)’은 할머니의 유산과 도시의 옛 시절을 품은 공간이에요. 이곳에서 쓰는 찻잔, 가구, 차, 커피, 디저트 등에 그런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스탄불엔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동네가 많고, 저는 그것이 이 도시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벨벳이 자리한 발라트 지구도 그중 하나죠. 예전에 이곳엔 그리스, 이탈리아 등 다양한 나라의 커뮤니티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 동네의 상징이기도 한 앤티크 상점가에선 전 세계의 앤티크가 뒤섞인 풍경을 만날 수 있죠. 많은 사람들이 이 섞임(mixture)을 이스탄불의 정체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문화권뿐 아니라 시간도, 세대도, 이 도시에선 변화무쌍하게 뒤엉켜 있죠. 그래서 이스탄불은 여행자뿐 아니라 사는 사람에게도 탐험의 즐거움을 주는 도시예요. 당신도 우리처럼 이 도시에서 예상치 못한 새로움을 발견해보세요.”
우우르 교즈쥬 Uğur Gözcü(바리스타)
“저는 20대 때 바리스타가 됐고 ‘커피 디파트먼트(Coffee Department)’에선 10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이스탄불에 스페셜티 커피 문화가 들어서기 시작한 건 2010년쯤이에요. 약 15년이 지난 지금 이 도시는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커피 시장으로 꼽히고 있죠. 그 저변엔 역사 깊은 커피 문화와 커피 애호가들이 있습니다. 특히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는 이들이 만든 커피 커뮤니티가 이스탄불만의 커피 문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이 도시를 배회하다 보면 초저녁에 문을 닫는 유럽의 카페들과 달리 새벽까지 불을 밝힌 카페를 종종 만날 수 있는데요. 술집 대신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내고, 커피와 함께 식사를 즐기기 때문이죠. 스페셜티 커피는 이제 젊은 세대뿐 아니라 구세대에게도 인기가 높습니다. 대부분의 카페에서 튀르크 카흐베시, 차이티뿐 아니라 요즘 미식 취향을 반영한 전통 디저트, 빵 등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스탄불에서 커피 한잔을 마신다는 건 튀르키예의 전통과 최신, 과거와 지금을 함께 경험하는 일입니다.”
Neighborhood
서쪽, 젊은 동네들
발라트로 들어서는 거리 초입, 자주색 헤링본 재킷을 멋스럽게 차려입은 남자가 발라트 메르케즈 셰케르지시(Balat Merkez Şekercisi)라고 쓰인 가게 앞에서 사탕을 건넨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오래된 캔디숍이에요. 1879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죠.” 우리를 미지의 이스탄불로 이끌어줄 가이드, 사키스의 설명을 들으며 달콤한 환영을 입안에 넣고 기분 좋게 길을 나섰다. 이곳에선 몇 걸음 떼지 않아도 누구나 ‘괜스레 설레는’ 기분으로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 속 세트장 같은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꼭 놀이공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채색된 그 건물들은 짧게는 50년, 길게는 200여 년 전에 지어진, 텅 빈 채로 오래 방치된 집들이었다. 1985년 유네스코가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제국 시절의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동네에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영예를 안긴 후 2000년대부터 낙후한 빈민가를 복원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며 발라트는 옛 시절의 영광과 생기를 되찾았다. 관광객이 사진발 좋은 옛 건축물 앞을 눈과 카메라로 훑으며 빠르게 지나칠 때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골목 안쪽에 숨은 매력적인 카페와 식당, 바와 상점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스탄불 스페셜티 커피 신의 1세대 중 한 곳인 커피 디파트먼트는 동네의 정다운 시간을 엿볼 수 있는 아지트. 삼삼오오 둘러앉아 커피점을 보거나 주말 계획을 나누는 세련된 행색의 로컬 안에 자연스럽게 섞이기 좋은 공간이다. “볕 좋은 여름이면 이 지구 일대는 노천 테이블과 햇빛을 즐기는 이스탄불 사람들이 즐비합니다. 옛날부터 자리를 지킨 오래된 가게들도 많지만 새로운 레스토랑과 카페가 속속 들어서고 있거든요.” 사키스가 말한 그 분위기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젊은 인파로 붐비는 보디나(Vodina) 거리로 향할 것. 포노 발라트(Forno Balat)는 2015년부터 보디나 거리의 인기를 이끈 터줏대감이다. 밀라노의 깜찍한 피자가게 같은 안쪽 공간에 들어서면 온갖 신선한 채소와 치즈, 갓 구운 빵과 올리브가 탐스럽게 놓인 메제(mezze, 튀르키예 사람들의 반찬 혹은 전채 요리) 뷔페가 눈에 띈다. 돌화덕에서 갓 구워내는 피데(pide, 납작한 빵 위에 다양한 토핑을 올려 화덕에 구운 음식) 한 판을 시켜 브런치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연인, 주말을 맞아 외식을 나온 가족들 틈에서 평화로운 식사를 즐겼다.
오후의 행선지는 카라쾨이(Karaköy). 유럽 지구로 통하는 이스탄불 서쪽에서 주말이면 인구 밀도가 치솟는 지역으로 손꼽히는 동네다. 13세기 제노바 공화국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던 이 지구는 유대인, 그리스인, 러시아인 커뮤니티까지 품으며 유럽에서 가장 큰 항구로 급부상했다. 19세기에 무역 산업이 쇠퇴하면서 옛 부호와 거상이 세운 거대 창고와 상점은 지역 상인들이 차지했다. 그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전통 음식점과 빵집, 골동품 가게와 시장이 카라쾨이의 옛 모습을 여전히 지키는 가운데 현대적인 갤러리와 부티크, 화려한 네온사인과 포스터로 행락객의 발길을 끄는 바와 레스토랑, 카페들이 미로 같은 거리를 사이좋게 공유한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기념사진을 남기는, 알록달록한 우산들이 하늘을 수놓은 호자 타흐신(Hoca Tahsin) 거리 아래 노천 카페와 바클라바(baklava, 견과류로 만든 튀르키예 디저트) 맛집 귈뤼올루(Güllüoğlu)의 유혹을 뿌리치고 바람에 실려오는 비릿한 짠내를 따라 부두로 걸어나갔다. 19세기 오스만 제국 시절의 은행 건물을 개조한 복합문화공간 살트 갈라타(SALT Galata) 안을 한 바퀴 돈 후 밖으로 나오니 이스탄불 현대미술관(Istanbul Museum of Modern Art)이 걸음을 붙든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물빛을 그대로 품는 아름다운 파사드를 가진 이 건축물은 렌초 피아노의 역작으로도 유명하다. 그날 미술관 안까지 들어가 시간을 보낼 계획은 없었지만 일행과 함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로비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붉은 실을 엮어 만든 거대한 설치작품으로 이름을 알린 설치미술가 치하루 쇼타와 튀르키예 사진계의 거장(이라고 소개된) 이제트 케리바르의 전시를 지나 올라퍼 엘리아슨의 개인전이 한창 열리는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빛과 물, 공기와 색 같은 자연 요소로 만든 그의 시적인 작품들을 제치고 내 마음을 훔친 건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을 즐기는 이스탄불 사람들이었다. 이를테면 명품 브랜드의 로고가 선명한 스카프를 히잡으로 두른 채 SNS에 올릴 쇼츠와 기념사진을 ‘예술적으로’ 남기는 일에 열중하는 여대생들. 그 얼굴 뒤로 아른거리는 비잔틴 제국의 유산, 갈라타 타워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스탄불의 ‘모던’이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보수와 전통 위에서 자기만의 ‘현대’를 쌓아가는 이스탄불 사람들 말이다.
동쪽에서 만나는 로컬의 일상
“모다(Moda)는 튀르키예어로 ‘패션, 유행, 스타일’ 등을 뜻해요. 19세기 말 이스탄불에 거주하던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상류층들이 이 지역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맨션을 지어 살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집과 생활양식, 패션 등이 모다를 중심으로 유행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전해지죠.”
모다 선착장(Moda Iskelesi)의 부두 끝에 등대처럼 선 20세기 초 신고전주의 건축물 앞에서 사키스가 바다를 등지고 유창하게 설명을 잇는다. 이스탄불의 부촌으로 불리는 모다의 일요일 아침은 휴양지처럼 느긋하고 평화롭다. 길에서 만난 산책자 열 중 일곱은 온갖 멋을 다 부린 반려견과 함께였고 바다에선 일찌감치 하루를 시작한 조정 클럽 회원들이 활기차게 노를 젓고 있었다. 과거 유럽인의 사교 클럽으로 쓰였던 이 건축물은 이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공공도서관이 됐다. 1층의 카페에서 커피를 사 들고 2층의 도서관으로 올라가면 창밖으로 마르마라해(Marmara Sea)의 수평선을 한 품에 안을 수 있는 책상과 고소한 새 책 냄새가 진동하는 책장, 그걸 다 공짜로 누리는 이스탄불 사람을 만난다. 그 옆에 앉아 ‘바다 멍’을 즐기고 싶은 욕망을 가까스로 누르고 다시 길을 나섰다. 동네 분위기를 단숨에 파악할 수 있는 모다 대로(Moda Cd.)의 풍경을 눈과 카메라에 서둘러 담아야 했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카페가 즐비한 이 길에서 동네 사람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공간은 크로노트롭(Kronotrop). 튀르키예 전역에 지점을 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로 모다 지점엔 바와 이터리, 로스터리가 함께 있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족, 강아지, 친구, 연인과 함께 찾는 이들로 북적인다. 커피 향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크로노트롭의 노천 테이블에 눌러앉았다. 갓 구운 애플파이와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오고 가는 동네 사람들과 온갖 눈인사, 잡담을 나누며 로컬이라도 된 양 호사스러운 (짧은) 휴식을 즐겼다. 모다가 속한 카디쾨이(Kadıköy) 지구는 튀르키예의 명동 같은 지역. 주말이면 밥과 차, 영화, 공연, 쇼핑을 즐기기 위해 쏟아져 나온 이스탄불 사람들로 붐비는 번화가란 뜻이다. 그 안을 비집고 들어선 카디쾨이 바자르에서 장미 오일, 꿀, 말린 과일, 견과, 올리브 절임 따위를 잔뜩 산 후 서둘러 차에 올랐다. 이스탄불을 떠나기 전, 꼭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쿠즈군죽(Kuzguncuk)은 ‘이스탄불 MZ들이 사랑하는 동네’를 애타게 찾아 헤매던 내게 튀르키예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건넨 이름이다. “이곳은 1970년대, 이스탄불의 동과 서를 잇는 다리가 건설되기 전까진 하루에 단 한 대만 운항하는 배로 겨우 닿을 수 있던 외진 지역이었습니다.” 금요일 저녁 6시의 충무로역만큼이나 인파가 넘치는 이자디예 대로(İcadiye Cd)에서 사키스가 말하는 ‘쿠즈군죽의 옛 시절’은 현실감이 떨어졌다. 온갖 아름다운 건물과 세련된 인테리어로 꾸민 카페, 베이커리, 다이닝, 갤러리, 상점이 즐비한 이 거리에서 나는 이스탄불에 품었던 선입견을 완전히 거뒀다. 고백하건대 모다와 쿠즈군죽에 닿기 전까진 이 도시를 ‘언뜻 세련되고 말쑥하며 멋스러워 보이지만 약간의 예스러움과 순박함이(달리 말하면 촌티가) 남아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아르메니아 출신의 건축가 니코고스 & 카라펫 발리얀 형제가 설계한 19세기 바로크 & 로코코 양식의 건축물 안에 들어선 나일 키탑에비 & 카페(Nail Kitabevi & Café), 프레디 머큐리를 쏙 빼닮은 주인이 직접 선곡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바이닐 숍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 같은 공간을 배회하다가 전날 만난 카페 벨벳의 오너, 육셀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이스탄불은 사는 사람에게도 낯선 도시예요. 그래서 새로운 동네에 갈 때마다 몰랐던 걸 발견하고 찾아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죠.” 이스탄불은 그런 곳이다. 정의하는 순간 진의에서 멀어지는, 자주 예측을 벗어나며 예상치 못한 순간에 놀라운 장면을 보여주는 도시.
또 다른 젊은 지구
베벡 Bebek
유럽 지구의 보스포루스 해협에 면한 베벡은 이스탄불에서 손꼽히는 부촌이다. 1904년에 문 연 아몬드 & 피스타치오 디저트 전문점 메슈후르 베벡 바뎀 에즈메시(Meşhur Bebek Badem Ezmesi)와 튀르키예식 해변 카페 베벡 카흐베(Bebek Kahve), 바다 전망을 갖춰 세계 3대 스타벅스로 손꼽히는 ‘스타벅스 베벡’ 등이 인기.
니샨타쉬 Nişantaşı
뉴욕 사람은 니샨타쉬를 ‘5번가’, 서울 사람은 ‘청담동’에 종종 빗댄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매장을 비롯해 패션과 유행에 관심 높은 로컬들이 즐겨 찾는 편집숍 베이멘(Beymen) 등을 만날 수 있는 동네다. 쇼핑을 마친 후엔 아브디 이펙치 거리(Abdi İpekçi Street)에서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스페셜티 커피숍이나 모던 튀르키예 퀴진을 선보이는 파인다이닝을 찾아볼 것.
베식타슈 Beşiktaş
3개의 대학교가 모여 있는 지구로 이스탄불 20대들이 ‘바 호핑’과 ‘펍 크롤링’을 하고 싶을 때 찾는 동네다. 낮에는 카페 블랙 아울(Black Owl)과 베티(Betty)가, 밤에는 칵테일과 음악, 춤을 즐길 수 있는 조커 넘버19(Joker No.19), 전 세계의 맥주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마실 수 있는 유나이티드 펍(United Pub)이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