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우의 삶이 된 도시, 산세바스티안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RYu Jin
  • PHOTOGRAPHY BY JEON JAEHO, JANG JUNWOO

장준우의 삶이 된 도시, 산세바스티안

San Sebastian: Where Food is Life

셰프이자 푸드 라이터 장준우에게 ‘먹는 일’은 곧 앞에 앉은 사람과의 대화, 시간을 나누는 행위다. 스페인은 그 생각을 일깨워줬고, 산세바스티안은 확신을 더해줬다.
  • WRITTEN BY RYu Jin
  • PHOTOGRAPHY BY JEON JAEHO, JANG JUNWOO
2024년 09월 03일

장준우의 이력은 다음과 같다. 기자 출신, 세 권의 책을 낸 푸드 라이터, 타파스 바와 그로서리를 겸하는 ‘어라우즈’의 오너 셰프. 각 맞춰 정리한 팬트리처럼 매끄럽고 명확한 그의 이력을 훑어보다가 이 대목에서 눈이 멈췄다.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스페인 타파스 바를 연 남자.’
몇 주 전 한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그는 자신의 사연을 이렇게 썼다.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난 후 견문을 넓히고자 밟은 스페인 땅에서 나지막이 이렇게 외쳤다. ‘아, 스페인으로 유학 올걸….’” 힘들게 오른 산이 올랐어야 할 고지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지만, 후회를 후회로 두지 않고 원하는 일과 좋아하는 걸 자신의 현재로 만든 사람. 그 지점부터 장준우의 이야기가 정말로 궁금해졌다. 메모장에 써 내려간 열몇 개의 질문을 지운 후 딱 한 문장만 들고 ‘남산타운6상가’에 자리한 어라우즈의 문을 열었다. 내가 듣고 싶은 얘기는 이거였다.
“왜 스페인이에요?”
옆 가게에서 산 커피를 건네며 첫 대면의 어색함을 무마하는 잡담을 주고받다 대뜸 물었다. “떠났다 돌아오니 파스타집이 너무 많아졌더라고요.” 첫 대답은 싱거웠지만 그 이후에 나눈 대화는 감칠맛이 넘쳤다. 장장 두 시간 동안 그와 스페인 얘기, 스페인에서 먹은 얘기만 했기 때문이다.

파스타 대신 타파스

“술을 좋아해요. 음식의 맛은 술과 함께할 때 배가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술에 곁들이기 좋은 음식, 그러니까 안주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스페인에서 경험한 타파스가 그런 면에서 완벽했죠. 술을 부르는 음식이니까. 여느 타파스 바처럼 골목에 숨어 있는 편안한 분위기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가 ‘술을 부른다’고 말한 타파스는 쉽게 말해 한 입 거리 음식이다. 시에스타로 질펀하게 낮잠을 즐긴 스패니시들이 저녁 시간까지 허기를 참지 못하고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작은 접시 위의 화려한 끼니들.
“스페인 요리는 이탈리아나 프랑스 음식에 비해 직관적이에요. 기교는 덜어내고 재료의 본성에 집중하죠. 한마디로 좋은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잘 살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어요. 타파스를 특히 좋아하는 건 만드는데 드는 공에 비해 맛이 훌륭하고, 자유분방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하몽, 초리조, 안초비, 올리브, 치즈부터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토마토, 달걀, 마늘 같은 식재료를 자유롭게 조합해 무궁무진하게 창작할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고요.”
오로지 맛 때문에 장준우가 파스타를 뒤로하고 타파스로 돌아선 건 물론 아니다. 타파스를 파는 곳, ‘바’가 품은 역사, 정체성, 바이브가 결정적으로 그의 마음을 빼앗았다. “스페인에서 타파스 바는 술집, 카페, 식당을 합친 형태입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누구나 언제든지 이곳을 찾아 마실 것을 청하고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죠. 아마 스페인 사람들이 집과 일터를 제외하고 가장 자주, 오랜 시간 머무는 곳일 거예요.” 그가 말하는 ‘누구나’엔 동네 사람뿐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 낯선 사람, 처음 보는 사람도 포함된다. “누구와도 말을 섞을 수 있고 모두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바이브가 정말 좋았어요.” 어떤 재료도 품는 타파스, 누가 언제 와도 원하는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타파스 바. 장준우가 타파스로 경험한 스페인은 환대와 포용이다.

산세바스티안이 알려준 진짜 미식

스페인 얘기로 책과 다수의 칼럼을 남긴 그가 콕 짚어준 ‘최애’는 산세바스티안. 왜 거기냐고 묻기도 전에 일타 강사처럼 신속ㆍ정확하게 까닭을 브리핑해준다. 첫째로 꼽은 건 초원, 평야가 많은 스페인 남부에 비해 변화무쌍한 북부의 자연환경이다. “단순한 지형만큼 식재료도 단조로운 남부와 달리 피레네산맥, 대서양에 면한 북부엔 먹을거리가 풍경만큼 다채롭습니다. 질 좋은 고기, 치즈를 비롯한 유제품뿐 아니라 어종이 풍부해 해산물의 가짓수가 훨씬 많거든요.”
흔한 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식재료의 에덴에 오래 전부터 뿌리내려 살고 있는 바스크인들은 산세바스티안의 미식 수준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존재. “바스크 사람들은 먹는 것에 진심인 수준을 넘어 삶이 음식 그 자체인 사람들이에요.” 장준우의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은 산세바스티안에서 빛나는 미쉐린의 별이 입증한다. 이 도시엔 지금도 ‘면적ㆍ인구 대비 미쉐린 레스토랑이 가장 많은 도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고 있다.
‘초코(Txoko)’는 산세바스티안 사람들의 먹는 열정을 입증하는 또 다른 근거다. 바스크어로 ‘모서리’ ‘작고 아늑한 구석’을 뜻하는데, 요즘 말로 표현하면 ‘미식회’, ‘프라이빗 요리 클럽’쯤 된다. 이 독특한 문화가 탄생한 곳이 바로 산세바스티안이다. “초코는 입맛과 뜻이 맞는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모임을 만들고 회비를 걷어 주방 딸린 공간을 얻은 후 전통 요리나 새로운 요리를 연구하고 만들어서 함께 즐기는 모임을 뜻합니다. 산세바스티안에 초코가 처음 등장한 건 19세기 말쯤이라고 해요. 지금도 무수한 초코들이 도시 곳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요.”

질 높고 다채로운 식재료라는 타고난 조건, 먹는 일에 상상 이상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오랜 시간 갈고닦은 미식 문화가 어우러진 도시에서 보낸 시간은 장준우의 지금이 됐다. 그의 공간 어라우즈가 바로 서울식 ‘초코’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오래된 골목 안 옛 건물에 들어선 식당이 이 도시로 치면 아파트와 상가 아닐까요? 저는 이곳이 동네 사람, 단골의 공간으로 자리 잡아서 참 좋아요. 또 누가 와도 단골처럼 어우러질 수 있고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삼 독특하기 짝이 없는 어라우즈의 공간 구성을 천천히 살폈다. 한쪽 벽에 길게 낸 전면 개방형 주방과 그 앞에 나란히 병렬로 배치한 긴 식탁. 요리하다 언제든지 고개를 돌려 찾아온 이들과 말을 섞는 셰프의 모습이, 앞ㆍ옆에 앉은 모르는 사람과 자기도 모르게 얘기를 나누는 손님들의 도란도란한 시간이 절로 그려졌다.
“스페인의 식당, 특히 타파스 바나 핀초스 바에 가보면 사실 굉장히 정신없어요.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대화, 새로운 음식을 주문하는 목소리들이 섞여 아주 시끌시끌하죠. 언뜻 무질서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도 정연함이 있어요. 그 분위기, 음식과 술이라는 매개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사람들, 저는 그게 진짜 음식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장준우에게 맛은 재료와 기교의 산물이 아니다.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접시만 바라보며 저작질에 집중하는 대신 먹음직한 음식과 술을 곁들여 누군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 그런 시간을 쌓아 관계를 만들고 이어나가는 것이 음식의 가치라고 믿는다.


먹물 감자 토르티야

Tortilla de patatas negra

재료
큰 감자 2개, 달걀 6개, 오징어 먹물 1스푼,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 200ml, 슬라이스 또는 잘게 썬 초리조 소시지 5~6조각, 소금·후춧가루 약간
1 감자는 껍질을 벗긴 후 5mm~1cm 두께로 썬다.
2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중불에서 가열한 후 ①을 넣고 볶는다.
3 소금을 한두 꼬집 뿌린 후 감자가 노릇해지면 뚜껑을 덮고 5~8분간 더 익힌다.
4 볼에 달걀을 풀고 초리조 썬 것, 오징어 먹물, 소금 한두 꼬집, 후춧가루 적당량을 넣고 잘 저어준다.
5 감자가 숟가락으로 부드럽게 잘리면 ④에 붓는다.
6 달걀 혼합물을 잘 저어주고 잔열에 조금 더 익도록 10분 정도 둔다.
7 작은 원형 코팅 팬에 기름을 두르고 약불로 달궈지면 ⑥을 넘치지 않을 정도로 붓는다.
8 오믈렛 경계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며 갈색 거품이 일 때까지 한 면을 익힌다.
9 작은 실리콘 주걱을 경계와 팬 사이에 넣어 한 바퀴 돌려 공간을 만든다.
10 팬보다 조금 더 큰 접시를 팬 위에 덮고 뒤집은 후 다시 팬에 넣어 다른 면을 같은 방법으로 익힌다.
tip.
취향에 따라 초리조 대신 생선 살(대구 등), 햄, 채소 등을 넣어도 맛있다.

홍합 에스카베체

Mejillones en escabeche

재료

홍합 2kg, 마늘 6쪽,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 250ml, 피멘톤 스위트(스페인 훈제 파프리카 가루) 1스푼, 월계수잎 1장, 통후추 5~6알, 화이트 와인 식초 100ml
1 넓은 팬에 물 약간과 가볍게 으깬 마늘, 홍합을 넣고 삶는다. 너무 푹 익히지 않는 것이 팁. 홍합 살을 발라 통에 보관한다.
2 홍합 육수는 100ml 정도 따로 남겨둔다.
3 작은 팬에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 월계수잎, 통후추, 통마늘을 넣고 중약불에서 뭉근히 익힌다.
4 마늘이 노릇해지면 피멘톤 가루를 넣고 잘 저어준다. 이때 기름이 너무 뜨겁게 달궈지지 않도록 약불을 유지한다.
5 식초와 홍합 육수를 넣고 한소끔 끓인 후 불을 끈다.
6 발라둔 홍합에 ⑤를 부은 후 6시간 이상 냉장고에서 매리네이트한 후 꺼내 먹는다. 기호에 따라 올리브, 피클, 루콜라 등을 곁들여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