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 1
오래된 아파트를 사랑하는 MZ들의 아지트
사이공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로컬을 만날 때마다 다짜고짜 물었다. “요즘 이 도시에서 핫한 동네가 어디니?” “로컬들만 아는 ‘힙’한 장소는 어디야?” 젊고 새로운 장면을 포착해야 하는데 온라인 어디에도 ‘이제 막 뜨기 시작한 동네’ ‘사이공의 브루클린’ 같은 검색어에 준하는 답이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 갖은 인맥을 수소문해 찾아낸 후 잘로(Zalo, 베트남의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앱)에서 대화를 나눈 젊은 로컬들, 길거리에서 만난 20대들이 내게 쥐어준 답은 1군. 사이공 중앙 우체국, 노트르담 대성당, 독립궁, 벤타인 시장 같은 명소가 운집한 관광 1번지다. 애초에 취재지 후보에 넣을 생각도 없었던 곳을 자꾸만 들이대는 사이공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내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건 나였다. 도시의 아이콘 중 하나인 벤타인 시장에서 고작 1.8km가량 떨어진 거리 위, 틱톡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차림새의 젠지들이 허름한 건물을 끊임없이 들락이는 것을 보며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삼합회 아지트 같은 그곳을 찾아가기 위해 손에 쥐고 있던 주소는 ‘14 똔텃담(14 Ton That Dam)’. 통역을 도와준 대학생에게 “카페, 바, 숍들이 들어서 있는 오래된 아파트먼트예요”라는 설명과 함께 받은 이정표다. 칠흑같이 어두운 입구 앞에서 들어가길 주저하자 배달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가 턱을 치켜든다. 그의 눈이 “믿기진 않겠지만 네가 찾는 데가 맞을 거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두려움을 뚫고, 벽을 더듬으며 계단을 올랐다. 용기를 낸 외국인 앞에 펼쳐진 놀라운 장면. 성수동 뺨치는 세련된 인테리어의 카페와 기발한 스피키지 바, 벽을 가득 채운 그래피티와 각기 다른 상호가 새겨진 십수 개의 간판, 그 안에서 술, 커피를 마시거나 노트북 작업을 하는 잘 차려입은 젊은 무리들.
사이공 곳곳엔 길게는 100여 년, 짧게는 50~60년 된 오래된 아파트에 젊은 예술가, 바리스타, 셰프, 디자이너들이 둥지를 튼 ‘아파트 카페’가 있다. 미디어에서 ‘젊고 현대적인 사이공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종종 묘사하는 이 독특한 복합문화공간의 상당수가 1군에 몰려 있으며, 그래서 사이공의 MZ들이 내게 주야장천 1군을 부르짖은 것이다. 관광객이 노트르담 대성당만큼이나 유명해진 응우옌 후에 거리 42번지(42 Nguyen Hue)의 ‘카페 아파트먼트’를 배회할 때 로컬, 정보 검색에 능한 외지인들은 좀 더 뒷골목에 자리한 아파트를 찾는다. 로컬 패션 브랜드가 몰린 쇼핑 센터 뉴 플레이 그라운드(New Play Ground)와 함께 자리한 26 리뚜쫑(26 Ly Tu Trong), 사이공 기차역을 개조한 9월 23일 공원(Cong Vien 23 Thang 9)에서 가까운 35 응우옌 반짱(35 Nguyen Van Trang) 등이 대표적인 예. 그 밖에 더 많은 아파트 카페들이 복잡한 미로 같은 1군 골목 곳곳에 숨어 있지만 베트남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그 까닭을 35 응우옌 반짱 2층에 자리한 문방구 점원에게 들었다. “유명해지면 건물이 시끌벅적해지고, 그럼 언제든 찾아와 조용히 쉴 수 없기 때문이에요. 특히 이런 아파트엔 상점뿐 아니라 이곳에서 오래 산 주민들의 집도 같이 있거든요. 서로의 프라이버시와 휴식을 위해 다들 쉬쉬하는 거죠. 나만 알고 싶어서요.”
2,3 뉴 플레이 그라운드엔 베트남에서 인기 많은 로컬 패션 브랜드 매장이 몰려 있다.
4 사이공의 번화가 동커이 거리에 자리한 아파트 카페 26 리뚜쫑.
5 아주 낡은 ‘겉’과 완전히 다른, 현대적인 ‘속’을 가진 카페 아파트들.
6 젊은이들이 점령한 도심 한복판의 따오단 공원.
- 1군에서 로컬 MZ처럼 놀기
길바닥에 앉아 스페셜티 커피 마시기
‘길바닥 커피’는 베트남의 고유한 카페 문화. 연유를 잔뜩 넣은 ‘카페 쓰어다’ 대신 스페셜티 커피 원두를 갈아 내린 드립 커피를 마셔보자. 오래된 구둣방의 쇼윈도 한쪽을 개조한 eck 사이공(eck Saigon), 오페라 하우스에 세 든 보스가우러스 커피 로스터스(Bosgaurus Coffee Roasters) 등을 추천한다.
공원에서 스트리트 푸드 즐기기
주말 낮, 독립궁 맞은편에 자리한 따오단 공원(Tao Dan Park)에 가면 현수막을 재활용해 만든 돗자리를 바닥에 깔고 길거리 간식, 버블티 등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공 젊은이들을 쉽게 만난다. 공원 주변에 포진한 노점상에서 음식을 사면 두 사람 정도 앉을 수 있는 작은 돗자리를 함께 제공하니 그 대열에 합류해볼 것.
Quan 2
쾌락주의자의 주말 놀이터
사이공강(Saigon River) 건너편에 자리한 2군의 정체성을 만든 건 이 지역에 모여 사는 2만여 명의 외국인 거주자들이다. 그들의 취향이 집결한 동네가 바로 2군에 자리한 타오디엔(Tao Dien). 낡은 옛 건물과 매끈한 초고층 빌딩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1군의 다듬어지지 않은 풍경과 달리 타오디엔 거리엔 노랑, 분홍, 연파랑, 연두 같은 고운 색 페인트를 쏟아부은 외벽과 온갖 세련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 간판으로 행인의 시선을 빼앗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쨍한 주황 타일로 꾸민 외벽, 노란 의자, 그 옆에 수문장처럼 선 야자수가 어우러진 외관이 아이돌 가수의 뮤직비디오 세트 같은 짠짠 누들(Chan Chan Noodle)은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미모를 자랑한다. ‘비건 누들 바’를 콘셉트로 내건 이 식당은 요즘 사이공 인플루언서들이 앞다퉈 찾는 명소다. 밀려드는 손님을 응대하느라 바쁜 홀 매니저를 붙잡고 그 까닭을 물었더니 돌아온 답. “베트남의 유명한 스타 셰프 후이 쩐(Huy Trần)과 영화배우 응오 타인 번(Ngô Thanh Vân)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이거든요. 예쁜 인테리어도 인기에 한몫하지만 무엇보다 음식이 맛있어서겠죠.” 해외엔 베로니카 응오(Veronica Ngo)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배우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 이> <올드 가드> 등의 영화로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슈퍼스타다. 채식주의자인 그가 셰프인 남편과 함께 레시피를 개발해 선보이는 음식들은 달걀, 우유, 꿀까지 제한하는 비건의 규칙을 철저히 따른다. 땅콩버터와 버섯으로 만든 XO 소스로 매콤한 맛을 낸 비빔당면, 토마토·시금치·고추 등을 먹음직스럽게 얹어내는 타이 누들 수프, 고추기름을 끼얹은 만두 등은 모르고 먹으면 채식인지 눈치채지 못할 만큼 감칠맛이 넘쳤다. 기대 없이 찾은 곳에서 만족스럽게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선다. 영국 매거진 <타임 아웃>이 올해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 38곳 중 하나로 꼽은 타오디엔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쑤언투이(Xuan Thuy)에서 쇼핑을 즐길 차례다. 베트남의 수준 높은 도자기를 현대적 디자인으로 해석한 포터리 브랜드 아마이 하우스(amaï house)를 비롯해 그 옆, 올해 10월에 갓 문을 연 라이프스타일 숍 다까오끄(Dakaoq), 남베트남에서 생산하는 카카오로 만드는 아티장 초콜릿 메종 마루(Maison Marou) 카페를 차례로 지나다 보면 양손 가득 쇼핑백을 쥔 자신과 만날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쇼핑할 여력이 남아 있다면 아름다운 중정을 가진 쇼핑 아케이드, 사이공 콘셉트(Saigon Concept)도 놓치지 말자. 아티장 치즈 전문점 캐슈(Kashew),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그레이드 비(Grade B), 근대 베트남의 앤티크 도기를 소개하는 송베(Song Be) 등을 비롯해 아트 스튜디오, 옷가게, 향수 전문점 등이 취향 좋은 맥시멀리스트의 신용카드를 유혹한다.
대부분의 가이드북에선 타오디엔에서의 일정을 랜드마크 81(Landmark 81) 75층에 자리한 루프톱 바 블랭크 라운지(Blank Lounge)에서 마무리하길 추천하지만 나는 마천루보다 지상에 머물고 싶었다. 강가에서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홍 카페(Hong Café)는 상점 대신 집이, 가로등 대신 나무가 쭉 늘어선 뒷골목 끝에 자리해 고즈넉한 운치가 있었다. 먹고 마시는 일과 쇼핑으로 폭주한 하루를 ‘커피 휴식’으로 끝내고 싶었지만 카페 바로 옆, 사이공 MZ에게 인기 높은 편집숍 오브조프(Objoff)의 유혹을 끝내 물리치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욕망에 사로잡힌 채로 하루를 마치게 되는 곳. 타오디엔은 그런 동네다.
2 팬시한 인테리어, 영문 포스터, 거리에 앉아 햇빛 샤워를 즐기는 외국인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곳이 타오디엔이다.
3 주말에 찾으면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는 인기 스폿들. 편집숍 오브조프와 다이닝 카페 아이 헤이트 먼데이.
4,5 현대적으로 레노베이션한 근현대 건축물들을 구경하며 산책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6 사이공의 MZ 인플루언서들이 즐겨 찾는 맛집 짠짠 누들.
- 2군에서 흥미로운 쇼핑을 하고 싶다면
커뮤니티 마켓 가기
매월 마지막 주 주말, 혹은 크리스마스나 핼러윈 같은 특별한 휴일에 문 여는 타오디엔 위켄드 바자르(Thao Dien Weekend Bazaar)는 로컬 창작자, 예술가, 소상공인들의 아이템을 만날 수 있는 커뮤니티 마켓이다. 인스타그램 계정(@thaodienbazaar)에 일정, 참여하는 브랜드, 마켓 테마 등 관련 소식이 꾸준히 올라오므로 찾기 전에 꼭 확인해볼 것.
베트남의 수준 높은 인테리어 엿보기
타오디엔의 쑤언투이 거리엔 문 연 지 10년이 넘는 가구 전문점부터 그릇, 패브릭, 소품 매장이 즐비하다. 여행자들이 기념품을 사기 위해 종종 들르는 세라믹 브랜드 아마이 하우스 외에도 예술적 오브제와 전통적 패브릭 아이템을 파는 린스 퍼니처(Linh’s Funiture), 사이공 사람들의 인테리어 취향을 엿볼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매장 어반 가든(Urban Garden) 등에 들러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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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좋은 애호가들의 동네
세기말 사이공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도시의 지형도를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5군에서 먹고, 3군에서 자고, 1군에서 파티를 즐긴다.” 사이공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동네’로 꼽는 3군은 모든 게 정신없이 뒤엉킨 1군의 혼란과 달갑지 않은 긴 숫자가 영수증 위에서 춤을 추는 2군의 살벌한 물가에 지친 이들을 포근하게 품는다. 낮은 인구 밀도(40,000명/km²), 도시에서 가장 넓은 녹지대를 보유한 동네, 시내 주요 지구로의 뛰어난 접근성 같은 팩트도 3군의 가치(집값)를 높이는 요소들.
3군을 가르는 뚜쓰엉 거리(Tu Xuong street), 쩐꾸옥타오 거리(Tran Quoc Thao street), 바후옌타인꽌 거리(Ba Huyen Thanh Quan street) 중 어디를 걸어도 이 동네의 정체성을 한눈에 발견할 수 있다. 고대 전통 건축,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유럽식 건축물부터 근대 건축까지 도시가 지나온 역사를 품은 ‘집’들이 연대기처럼 펼쳐진 풍경은 산책자의 눈과 발을 자주 붙든다. 1790년, 응우옌 아인(Nguyen Anh) 황제가 지은 궁전으로 사이공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으로 알려진 탄싸(Tan Xa)를 부러 찾아가는 것도 좋지만 거리에서 흔히 마주하는, 20세기 초 프랑스 식민지 시절 고무농장을 운영한 부호들이 소유했던 저택의 파사드를 기웃거리기만 해도 시간이 훌쩍 지난다. 안쪽 풍경을 살피고 싶다면 그런 집 한 채를 사서 옛 결을 살려 개조한 카페, 레스토랑을 찾아보자. 로컬 사이에서 아름다운 공간미를 추구하는 카페로 통하는 다바오 콘셉트(Dabao Concept)도 그중 한 곳. 고대 후에 시대의 저택을 재현한 코도(Codo) 지점의 고풍스러운 대문을 열고 안뜰로 들어서면 오래된 나무, 누군가 정성스럽게 빗질한 마당, 처마 아래와 문 안쪽 곳곳에 놓인 고가구들이 시선에 안긴다. 커피 맛도 꽤 준수하지만 고즈넉한 분위기를 완성하는 건 사이공 사람들의 조용한 몸짓과 목소리. 자신의 성향이 무엇이든, 혹은 어디에 있든 그곳의 분위기에 걸맞은 언행을 하는 것이 미덕인 베트남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공간미보다 맛과 질에 더 집중하는 커피 애호가에게도 3군은 행복한 선택지를 내어준다. 베트남에 스페셜티 커피 신이 갓 자리 잡기 시작할 때부터 ‘신’을 만든 개척자들의 공간이 3군에 꽤 몰려 있다. 베트남의 바리스타 대회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노련한 로스터 쩐 호아(Trần hoa)가 운영하는 허밍버드(Hummingbird), 다양한 노트를 가진 지역 원두를 소개하며 실험적 레시피의 커피 음료를 선보이는 96B, 콜드 브루를 전문으로 하는 노매드 콜드 브루 커피(Nomad Cold Brew Coffee), 열대 과일을 커피에 접목한 메뉴를 선보이는 라 비엣(La Viet) 등이 3군의 인구 밀도를 높이는 이름들이다.
2 커피 애호가들로 붐비는 허밍버드와 다바오 콘셉트.
3 예술, 문화, 미식 등을 한 장소에서 경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드 라 솔(De La Sol).
4,5 3군엔 베트남 스페셜티 커피 신을 주도하는 카페가 모여 있다. 허밍버드와 96B.
- 3군에서 미식 천국을 경험하고 싶다면
보반떤 거리에서 노포 즐기기
보반떤 거리(Vo Van Tan street)는 사이공 미식가들 사이에서도 맛의 열락으로 불리는 길이다. 미슐랭 별을 획득한 후 띠애우 홍팟(Hu Tieu Hong Phat)의 캄보디아 프놈펜 스타일 쌀국수, 넘버 96(No.96)의 베트남식 핫폿 등 로컬들이 즐겨 찾는 미식을 경험해보자.
달팽이 길에서 해산물 폭식하기
4군의 해산물 거리가 여행자들의 목적지라면 3군의 해산물 거리는 로컬이 즐겨 찾는 곳이다. 달팽이 거리로도 불리는 응우옌 트엉 히엔 거리(Nguyen Thuong Hien street)에 들어서면 진열대에 각양각색 조개를 늘어놓고 미식가를 유혹하는 맛집이 즐비하다. 숯불에 구운 새우·조개·오징어에 살얼음 낀 사이공 맥주를 곁들여 밤의 정취를 즐겨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