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는 내게 두 개의 이름을 가진 장소다. 갈 때는 호찌민시(Ho Chi Minh City, 이하 호찌민)에 갔고 올 때는 사이공(Saigon)에서 돌아왔다. 사이공은 1945년 이 도시가 베트남 독립 전쟁의 영웅 호찌민(Hồ Chí Minh)의 이름으로 불리기 전의 이름이다. 이곳에서 만난 베트남 사람들은 80년째 불려오는 이름을 두고 사이공이란 단어를 썼다. 그저 이전 지역명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내게 힌트를 준 건 사이공에 사는 어느 칼럼니스트의 글. “베트남 북부 사람들만 사이공을 호찌민이라고 부른다.” 더 찾아본 자료엔 이런 부연이 있다. “남쪽의 사이공 사람들은 베트남 통일 후 북쪽에서 일방적으로 공표한 그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사는 사람이 실제로 쓰는 말에 무게를 싣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 역시 이 도시의 (중요한) 일면이니까.
하버드대학교 성장연구소가 2022년에 발표한 리포트에 따르면 베트남은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나라’다. 사이공은 베트남에서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도시. 검색창에 ‘베트남’ ‘호찌민’ ‘성장’을 입력하면 ‘호찌민 산업 생산 5.3% 상승, 3년 내 최고 성장률’ ‘동남아 스타트업 성장의 맹주국’ 같은 헤드라인이 줄지어 뜬다. 인구 1억 명, 중위 연령 32세라는 지표는 이 나라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근거다. 연간 약 6~7%에 달하는 경제성장률은 젊은 인구, 즉 MZ세대 중산층의 증가로 연결된다. 경제 지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2030년을 베트남의 정점으로 예상하고 있다.
(베트남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해서 관심이 딱히 없었던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건 ‘전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라는 수식이었다.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언제부터인가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 있다”는 말이 자연스러운, 격변의 시대를 지나는 베트남에서 이 나라에서 가장 바쁜 도시 사이공의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노이에선 우리가 베트남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의 전형이 종종 보이지만 사이공을 해시태그로 하는 최근 사진들엔 베를린, 서울, 브루클린의 어디라고 해도 속을 만한 장면이 더 자주 눈에 띈다. 예상을 깨는 결과 앞에서 사이공에 ‘진짜로’ 가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 순간이 첫 시작점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예상을 송두리째 뒤엎는’ 것이 사이공의 정체성이라는 걸 일찌감치 눈치챘다면 여정이 조금 쉬웠을 것이다. 도착한 첫날부터 사이공은 이 도시를 빠른 속도로 파악해야 하는 나를 끊임없이 농락했다. 사이공 MZ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는 삼합회가 우르르 튀어나올 것 같은 허름한 아파트다. 그 안엔 럭셔리 패션 부티크, 미니멀한 디자인을 내세우는 도예 공방, 간판을 내걸지 않는 스피키지 바가 세련된 그래피티와 함께 뒤섞여 있다. 따오단 공원에서 낡은 돗자리를 깔고 버블티를 마시며 땡볕과 매연을 흡입하는 앳된 얼굴에게 “아, 저 고등학생들은 용돈이 부족해서 비싼 카페에 못 가는 거구나”라고 말하자 명품 시계와 맞춤 양복으로 치장한 스물일곱 살의 호텔 마케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사이공 사람들은 값비싼 일식 오마카세 정식을 먹은 후 공원 바닥에 앉아 후식으로 길거리 음식과 버블티를 즐깁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집 앞에 돗자리를 깔고 사람, 풍경 등을 구경하거나 가족, 친구랑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런 걸 좋아하거든요.” 섞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이공에선 천연덕스럽게 붙어 있다. 럭셔리 패션 부티크 앞에 닭이 돌아다니고 노팅힐의 저택 같은 브런치 레스토랑 앞을 아오자이 차림의 노인이 유유히 걷는 풍경, 무뚝뚝하고 거칠 것 같은 택시기사의 입에서 튀어나온 상냥한 목소리와 친절한 인사…. 팬데믹 이후 가속 페달을 밟은 것처럼 내달리는 사이공의 지금은 외지인에겐 ‘카오스’ 그 자체다. 그 혼돈 안에서 만난 사이공의 젊은 친구들이 이런 얘길 꺼내는 내게 던진 말. “사이공은 아주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때는 ‘얘가 나를 약 올리나?’ 부아가 났지만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도시의 장면은 쇼츠 영상처럼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사이공 사람들은 그 속도가 만든 현상을 따라가려고 애쓰는 대신 자기 걸음으로 천천히 둘러본다. 그 간극에서 탄생한 즐겁고 발칙한 혼란, 옛날 것과 지금의 것 사이에서 강단 있게 균형을 지키는 사이공 사람들. 그런 장면들을 마음껏 만나고 겪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