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퀸즐랜드의 또다른 이름은 선샤인 스테이트(Sunshine State). 이름에 걸맞게 연평균 약 300일의 맑은 날을 자랑한다.
2,3 시 월드 마린 파크(Sea World Marine Park)에서 만난 해양 생물들.
4,5,6 호주의 마스코트는 커럼빈 야생동물 보호구역(Currumbin Wildlife Sanctuary)에서 만날 수 있다.
7,8 퀸즐랜드는 다양한 정책과 지원을 통해 야생 동물을 보호하고 동물권을 보장한다.
2 퀸즐랜더는 로컬에서 나거나 만든 지역 산물과 제품을 적극 지지한다.
3 이 지역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2 자유분방한 차림으로 서퍼스 파라다이스(Surfers Paradise)를 걷는 로컬.
3 하워드 스미스 와브즈의 펠론스 브루잉은 가족 단위 방문객도 즐길 수 있는 시설과 메뉴를 갖추고 있다.
브리즈번에서 가볼 만한 곳을 찾다가 자주 본 문구가 있다. ‘Sun Soaked’, 직역하면 ‘햇살에 젖은’이란 뜻이다. 따뜻한 볕 아래에서 여유로운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는 곳, 커피 한 모금 음미하며 주말의 햇빛을 만끽하기 좋은 곳… 일조량이 300일에 육박하는 곳에 사는 이 지역 사람들은 왜 극북 대륙 거주자처럼 일광에 집착하는 걸까? 실제로 내가 퀸즐랜드에서 가장 많이 본 장면도 해 아래 있는 사람들이었다. 거의 모든 로컬이 파라솔이 꽂힌 노천 테이블을 경쟁하듯 점거하고 있었다. 시내 곳곳에서 비키니 수영복이나 브라 톱만 입은 채 혹은 상의를 훌렁 벗어 던지고 누워 있는 이들을 보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여기가 도시 한복판이라는 걸 잊은 걸까?’
그래서 그런지 이곳 사람들은 마치 휴양지에서 긴 휴가를 즐기는 여행자 같다.(일상의 터전에서 말이다.) 매사 여유가 넘쳤고 자주 잘 웃었다. 게다가 빈틈 없이 완벽한 행색(십중팔구 예민하다)을 하고도 놀랍도록 순박했다. 로컬과 대화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행복해?” “네 삶에 만족해?”라고 추궁하듯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 중 조건부 긍정이나 부정은 하나도 없었다. 급기야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런 걸 검색했다 ‘일조량과 행복의 상관관계’. 오픈AI와 각종 리포트가 던져준 답을 요약하면 이렇다. “일조량이 충분할 경우 피부에서 비타민 D가 생성되며 이는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한다. 또 생체 리듬과 수면 패턴이 일정해진다. 야외 활동은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사회적 상호 작용의 기회를 높인다.” 이미 알고 있는 얘기나 늘어놓는 오픈AI를 꺼버리고 부족한 잠이나 채우려던 차, 간과하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퀸즐랜더는 일주일에 나흘만 일하거나 혹은 오후 3시(혹은 4시)에 퇴근한다. 바로 그거였다. “여기에선 대부분 자기가 원하는 근무 시간을 스스로 정해요. 계약된 근로 시간을 자율적으로 채우면 되는 거죠.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출근을 못한다고 말하거나 아이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퇴근한다고 보고할 때 어느 누구도 ‘왜?’라고 묻지 않아요. 이 나라 사람들에겐 개인적인 사정, 즉 프라이버시를 터치하지 않는 게 아주 중요하거든요.” 취재를 도와준 코디네이터 케빈이 “도대체 평일 오후 3시에 공원을 달리는 한량이 왜 이렇게 많냐”고 묻는(질투 나서 울부짖는) 내게 해준 답이다.
불이 다 꺼진 비행기 안에서 굳이 독서등을 켜고 태블릿PC의 메모장을 열었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를 제목으로 두고 떠오르는 대로 쓴 내용은 이렇다. “맑고 깨끗한 빛과 공기, 아침 6시에 하루를 시작해 해가 중천일 때 퇴근하는 하루, 가족과 동네 친구라는 끈끈한 공동체, 1시간 정도 거리에 포진한 대자연…” 써놓고 보니 퀸즐랜드에 머무는 동안 가장 빈번하게 보고 들은 말과 장면이다.
내가 몸으로 부딪혀 얻은 이 결론은 삶의 질, 행복지수 같은 것을 주제로 매년 순위를 매기고 발표하는 각종 기관과 미디어에서 내놓는 기준보단 편향적이다. 사회적 지원, 정책, 평등, 복지 같은 항목에서 뽑아낸 점수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 시간을 내 의지로 충분히 쓸 수 있는 환경과 문화’야말로 질 높은 삶을 만드는 핵심 요소 아닐까? 살기 좋은 도시나 행복지수가 높은 도시 목록 10위권 안에 브리즈번은 없지만 나는 이 도시에서 균형 잡힌 삶을 분명하게 목격했다. 대낮에 퇴근해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지천에 널린(심지어 목줄을 풀 수도 있는) 공원을 산책하는 회사원, 파도가 좋은 날 바다로 신나게 달려 나온 서퍼,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축구 교실에서 공을 차며 즐거워하는 아이, 강이 바라보이는 자리에 오래 앉아 낮술을 만끽하는 연인. 헬렌과 스콧 니어링(<조화로운 삶>을 썼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월든>의 저자다)처럼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급자족하는 거창하고 의미 깊은 인생만이 조화로운 삶은 아니다. 퀸즐랜드 사람들이 내게 그걸 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