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를 위한 도시, 이탈리아 마라넬로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KIM JONGHUN

페라리를 위한 도시, 이탈리아 마라넬로

The City of Ferrari

페라리는 마라넬로에서 첫 번째 차를 세상에 선보였다. 1947년 일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페라리의 역사는 마라넬로에서 이어진다. 이탈리아 작은 도시가 시간의 축적이라는 은혜를 입어 페라리의 성지가 됐다.
  • written by KIM JONGHUN
2024년 05월 31일

(메인컷) 자그마한 마라넬로 중심가에 랜드마크로 기능하는 거대한 페라리 박물관.

마라넬로(Maranello)는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다. 그나마 큰 도시인 볼로냐에서 서쪽으로 47km 떨어져 있다. 이탈리아를 여행한다면 쉽게 접근하기 힘든 위치란 뜻이다. 위쪽으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베로나가 있다. 왼쪽으로는 항구도시 제노바가, 그 위로는 패션의 도시 밀라노가 여행객을 기다린다. 굵직한 도시 사이에 있는 작디작은 도시니 쉽게 눈에 띌 리 없다. 하지만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얘기는 백팔십도 달라진다.
페라리가 종교라면, 이탈리아 마라넬로는 성지다. 페라리라는 브랜드가 태동한 곳인 까닭이다. 이야기는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레이싱 드라이버인 엔초 페라리는 자동차 회사를 설립한다. 알파로메오 소속 선수로 활동하다 소속사와 관계가 나빠져 독립한 이후였다. 레이싱에 참가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자동차를 만들어 팔기로 했다. 뼛속까지 레이서인 엔초 페라리가 만든 자동차인 만큼 그의 성향과 닮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페라리의 첫 번째 자동차 125S가 세상으로 나왔다. 페라리의 요람인 마라넬로 공장도, 실린더 하나당 배기량을 이름으로 붙이는 페라리의 작명법도 그때 시작됐다. 전설의 태동이었다.

보통 성지는 당시의 영광을 기리는 경우가 많다. 그때 그랬으니 지금도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마라넬로는 조금 다르다. 1947년 이후 지금까지 페라리의 역사가 숨 쉬고 있다. 이제 페라리는 슈퍼 스포츠카 브랜드의 대명사가 됐다. 마라넬로 역시 페라리가 시작된 마을에서 페라리의 붉은색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됐다. 마라넬로에는 페라리의 예전 본사가 있었고, 페라리 공장이 규모를 키워 그대로 있다. 공장 건너편에는 페라리 박물관인 뮤제오 페라리 마라넬로(Museo Ferrari Maranello)도 있다. 심지어 마라넬로 한복판에는 페라리 서킷인 피오라노 서킷까지 있다. 한 브랜드의 공장부터 박물관, 서킷까지 존재하는 도시라니. 도시라기보다 마을에 가까운 크기를 생각하면 영향력은 더욱 묵직하다. 말 그대로 페라리의 성지다.
페라리 창립 70주년 때 마라넬로에 방문한 적이 있다. 페라리 70주년 기념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볼로냐 인근 리조트에서 모여 마라넬로로 넘어갔다. 가는 길 내내 시골 풍경이 이어졌다. 낮은 평야 사이로 농가 몇 채가 케이크 토핑처럼 놓여 있을 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자동차 브랜드의 생일 축하 장소로는 상당히 고즈넉하달까. 붉게 물든 노을이나 나른한 감상에 빠질 만한 장소였다. 그런 곳에서 붉은색 페라리의 V12 엔진이 포효했다니.
마라넬로 시내에 들어오니 나른한 감상은 묘한 흥분으로 바뀌었다. 초고가 자동차 브랜드의 화려함은 여전히 찾아볼 수 없었지만 페라리를 상징하는 붉은색이 시내 곳곳에 등장하면서 설레기 시작했다. 빛바랜 파스텔톤 집과 건물 사이에서 붉은색은 확연히 눈에 띄었다.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도 발그레했다. 그들이 입고 있는 붉은색 페라리 티셔츠가 그 이유를 설명했다. 페라리의 고향에 다다랐다는 설렘. 페라리 성지의 증표였다. 페라리의 붉은색이 도시 전체를 코르사주처럼 장식했다. 교차로 건너 페라리 기념품 가게도 붉은색, 페라리를 잠깐 탈 수 있는 이벤트 가게의 간판도 붉은색이었다. 마을 곳곳에 주차돼 있는 페라리도 붉은색 일색. 페라리 공장의 전면 건물도 붉은색이니 어련할까. 페라리의 붉은색은 마라넬로를 상징하는 색 같았다. 사실 마라넬로의 상징 색은 노란색이다. 페라리 엠블럼의 바탕을 차지하는 그 노란색. 마라넬로의 상징 색으로 엠블럼을 만든 페라리가 이제 도시를 붉은색으로 물들였다.

“도시 자체가 페라리의 붉은색을 코르사주처럼 장식했다. 교차로 건너 페라리 기념품 가게도 붉은색,
페라리를 잠깐 탈 수 있는 이벤트 가게의 간판도 붉은색이었다.”

70주년 행사 때 피오라노 서킷에서 페라리 경연 대회인 콩쿠르 델레강스가 펼쳐졌다. 클래식 페라리를 전시하고 누가 더 잘 보존했는지 뽐내는 대회였다. 1950년식 166MM(페라리 첫 차인 125S 후속 모델)이 반짝이는 자태를 뽐냈다. 매번 경매 최고가를 갱신하는 250 시리즈가 열 맞춰 도열했다. 엔초 페라리의 마지막 손길이 닿은 F40은 여전히 강렬했다. 모두 실제 차주가 갈고 닦으며 보존해온 결과물이었다. 피오라노 서킷은 그 순간 페라리를 대하는 사람들의 애정으로 가득했다.
페라리 박물관도 애정이 묻어나긴 마찬가지였다. 콩쿠르 델레강스처럼 개인의 노력은 아니지만, 페라리의 결정적 순간을 기념하는 공간이었다. 70주년 기념식을 보러 갔으니 생일잔치에서 사진첩을 들춰보는 기분으로 돌아봤다. 돌 사진처럼 페라리의 시작인 125S가 포문을 열었다. 그 이후로 길 따라 페라리의 역사적 모델들이 이어졌다. 사진첩 마지막은 자동차 경주였다. 그동안 획득한 자동차 경주 우승컵들이 커다란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끝과 끝을 보려면 고개를 돌려야 할 정도의 규모였다. 페라리의 본령은 자동차 경주였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페라리의 역사는 자동차 경주에서 시작해 지금도 진행 중이다. 페라리 박물관은 그 사실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피오라노 서킷에서 열린 콩쿠르 델레강스와는 또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콩쿠르 델레강스는 개개인의 기록으로서, 경주 관련 전시는 페라리의 기록으로서 페라리라는 브랜드의 역사성을 드러냈다. 그걸 보고 나니 페라리가 다시 보였다. 초호화 자동차가 아닌 역사적 유물처럼 다가왔다.
사실 마라넬로를 방문하고 계속 이질적인 기분이 들었다. 화려함의 정점인 슈퍼 스포츠카 브랜드와 마라넬로라는 소박한 장소가 어울리지 않아서. 하지만 역사적 유물로 페라리를 바라보자 둘이 더없이 잘 어울렸다. 소량에 수작업으로 주문 생산하던 고급 스포츠카의 역사성을 드러낸달까. 지금은 세계적 명성을 쌓은 브랜드의 소박한 고향. 많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의 시작도 이러했다. 마라넬로는 그 정체성을 담고 있다. 그래서 페라리의 진정한 매력과 더 어울린다.

글을 쓴 김종훈은 남성지 <아레나 옴므 플러스>에서 피처 디렉터로 일하며 자동차를 담당했다. 이후 탈것의 매력에 빠져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그 둘에 관련한 이야기를 쓰는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