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에 응축된 거대한 자연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parc jinmyoung
  • PHOTOGRAPHY BY bong jaeseok

한 뼘에 응축된 거대한 자연

The Gentle Power of Small Greenery

긴 세월, 거대한 자연을 품은 한 뼘의 화분. 분재라는 작은 세계가 건네는 위로는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 그 깊은 울림을 마주할 수 있는 분재 스튜디오 다섯 곳을 소개한다.
  • written by parc jinmyoung
  • PHOTOGRAPHY BY bong jaeseok
2026년 03월 09일

아틀리에 애채

‘나무에 새로 돋은 가지’라는 뜻의 순우리말에서 이름을 딴 아틀리에 애채는 공간 디자이너 출신의 채혜린 대표가 이끄는 스튜디오이자 갤러리다. 어릴 때부터 정원을 가꾸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채 대표에게 나무를 돌보는 일은 당연한 일상이었다. 계절마다 변하는 나무의 모습과 손길을 건넨 만큼 강해지는 생명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자연스레 식물에 애정이 생겼다. “공간 디자인을 전공하며 생긴 안목과 맞닿으면서 나무를 하나의 작은 풍경이자 시간을 담은 예술 작품으로 여겨왔어요.” 그녀의 이러한 철학 아래 탄생한 아틀리에 애채는 한국의 전통 기술을 잇는 동시에 저마다 개성이 살아 있는 분재를 제안한다. 좁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자 정원을 품은 아틀리에 애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안팎의 모든 식물이 주인공인 듯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 공간은 전시, 주거, 일상 등 분재가 있는 환경을 새롭게 설계한다는 애채의 방향성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곳에서는 국내 작가의 공예품과 그림 등 한국적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도 함께 만날 수 있다. 기획 전시나 원데이 클래스 등 다양한 행사를 열어 분재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확장될 가능성을 탐색할 예정이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105길 53, 2층
인스타그램 aechae_atelier

서간

“분재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것을 추천해요. 분재와 마주한다는 건 이 나무가 지나온 역사를 톺아보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서울 필운동 한옥에 들어선 분재 스튜디오 서간의 유상경 대표에게 분재 감상법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약 2년 전 이곳에 둥지를 튼 서간은 유 대표의 작업실이자 클래스 공간 그리고 갤러리로 기능하는 스튜디오다. ‘ㄷ’자형 한옥과 그 틈을 채운 정원이 소박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공간 곳곳에 놓인 분재는 이곳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서간(書簡)은 ‘소식을 알리는 편지’라는 뜻의 한자어로, 유 대표가 직장 생활을 하던 당시 집에 있는 식물들이 문득 자신의 안부를 묻는 존재처럼 느껴져 지은 이름이다. 나무를 깊이 이해하고 싶어 분재를 시작한 덕분인지, 유 대표의 분재는 이 작은 생명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됐는지, 그 태초의 순간을 떠오르게 한다. “나무의 형태는 특정한 경치나 풍경을 담고 있어요. 그게 바로 분재죠. 각각 지니고 있는 특성과 느낌을 강화하는 것이 분재의 핵심이에요.” 한옥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며 개조한 내부에서는 국내 작가들의 공예품도 만날 수 있다. 선이 가늘고 여백의 미가 살아 있는 한국 전통 분재를 추구하는 서간의 작업물과 결을 같이한다는 것이 유 대표의 설명. 현재 서간은 예약제로 운영 중이지만, 앞으로 팝업과 전시 등을 통해 이곳만의 매력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1길 15
인스타그램 seogan.kr

분재가

분재에서 화분과 묘목 중 더 중요한 건 무엇일까? ‘동이 분(盆)’과 ‘심을 재(栽)’라는 한자어에서 알 수 있듯,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우문과도 같다. 서울 합정동 망원정 아래 고즈넉한 골목, 그 끝에 자리한 분재가에서는 아내 유희조가 구운 분에 남편 이재규가 심은 작은 생명을 만날 수 있다. 2019년 당시 제주에 살던 두 사람은 도예와 원예라는 세계에 각각 빠져들었다. “어느 날 저희 집 마당에 있는 단풍나무를 집 안으로 들이고 싶은 거예요. 그렇게 분재와의 인연이 시작됐죠.” 이재규 대표가 처음 분재를 시작했던 때를 회상했다. 3년 전 상경한 이들은 합정동에 자리 잡으며 각자의 예술이 만나는 접점이자 하나의 연결된 세계를 이루는 곳, 분재가를 오픈했다. 이 대표가 작업할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은 3년 후 가지의 위치다. 가지 하나를 덜어낼 때조차 3년 뒤의 밀도감을 치밀하게 설계하는 것. 그렇게 3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분재는 하나의 작품으로 거듭난다. 유희조 대표가 이끄는 도자 클래스 또한 분재가가 제안하는 다채로운 즐거움 중 하나다. 뒷마당 텃밭의 나뭇잎과 풀을 흙 위에 새겨 자연의 결을 간직한 액세서리를 만드는 등 예술에 자연을 더하는 수업을 기획한다. 부부의 시선은 이제 너른 밭 위에 세워질 새로운 공간을 향해 있다. 자급자족하는 삶을 일구며 더 많은 이가 자연의 생동감을 오롯이 향유하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8길 42
인스타그램 bunjaega.seoul

Bloom Blue

한 뼘만 한 분재부터 커다란 나무까지 개인의 성향에 맞는 다양한 식물을 다루는 식물 작업실. 음악을 하던 박현규 대표는 당시 작업실을 꾸미기 위해 나무를 들였고,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고자 물꽂이를 시도했다. 어느 날, 그 나무가 뿌리를 내리더니 기어코 새순을 틔워냈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 급급해하던 박 대표에게 묵묵히 제 시간을 채우며 때를 기다리는 식물의 이러한 모습은 큰 위안으로 다가왔다. 나무를 살린 경험은 그가 이곳을 오픈하게 된 가장 큰 계기였다. 박현규 대표는 현대인의 단상을 분재로 표현하곤 한다. 예를 들면, 계절마다 다른 색을 띠는 산앵두나무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백색의 유약분에 심었다. 나무 아래 주변을 푸른 이끼로 덮은 것은 초록 들판을 떠올리며 찰나의 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관조하길 의도했다. 이처럼 박 대표의 작업물은 더 이상 분재가 어른들의 전유물이나 정형화된 취미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공간에서 사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임을 증명한다. 올 상반기에는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것부터 흙에 심겨지는 과정까지 소개하며 개인의 취향에 맞는 분재를 큐레이팅하는 클래스를 오픈할 예정이다.
주소 서울시 중구 퇴계로36가길 83
인스타그램 bloomblue.wrks

레이아웃플랜트

서울 인왕산 수성동계곡으로 향하는 서촌의 골목길. 한적하고도 소란스러운 풍경을 비집고 나무들의 소우주가 펼쳐진다. 오랜 세월을 가늠케 하는 정갈한 서까래와 모던하고 세련된 스틸이 조화를 이루는 레이아웃플랜트는 조대성 대표가 정성스레 가꾼 분재를 판매하는 공간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그 누구라도 느티나무부터 매화나무까지 익숙한 이름이 적힌 팻말을 보며 반가운 미소를 짓게 될 것. 조 대표는 매주 월~목요일엔 경기 양주에 자리한 분재원에서 나무를 돌보고 금~일요일엔 이곳에서 분재 입문자들의 다정한 안내자가 되어준다. 일요일 저녁엔 다시 분재를 분재원으로 가져가 돌보는 일상을 산 지도 벌써 3년째. 분재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그는 자연의 생명력이라고 답했다. “분재를 하던 이가 세상을 떠나면 누군가가 그의 분재를 돌보게 되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나무는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기나긴 삶을 살게 돼요. 인간의 삶은 찰나란 생각에 이 작은 나무 앞에서 늘 겸손해져요.” 어떤 이들은 레이아웃플랜트를 식물 병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분재의 상태가 심상치 않을 때면 언제든 믿고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세심한 관리 팁까지 얻을 수 있으니 분재에 입문한 초보자라면 이곳에서 첫걸음을 떼보는 것도 좋겠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옥인길 44
인스타그램 layout.pl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