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큘럼



삼청동에 자리 잡은 커리큘럼은 테마에 맞춰 큐레이션을 바꾸는 형태의 팝업 서점이다. 런던과 서울에 근거지를 둔 출판사 포에츠 앤 펑크스(Poets and Punks)가 2024년 11월 문을 연 직후부터 감도 높은 텍스트를 찾는 이들의 위시리스트에 오르는 중. 커리큘럼은 매년 세 번에 걸쳐 주제가 다른 팝업 서점을 여는데, 오는 6월까지는 소녀를 테마로 한 ‘The Manner of Girl’을 이어갈 예정이다. 내부엔 소녀의 태도, 방식, 관점으로 고른 100여 종류의 책이 구비됐다. 눈여겨봐야 할 책은 이번 주제를 기획하는 데 중요한 인물이었던 전혜린 작가의 에세이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초판본, 영국 작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공녀 세라>,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의 소녀 시절이 담긴 1990년 여름호 등. 이 외에도 다양한 절판본, 희귀본도 만날 수 있어 흥미롭다. 커리큘럼은 책뿐만 아니라 오디오 시스템, 식물 등도 주제와 어울리도록 큐레이션했다. 레트로 오디오 숍 ‘레몬 서울’에서 큐레이션한 디지털카메라, 워크맨, 오디오 시스템, CD 플레이어, TV 같은 가젯도 눈을 즐겁게 한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135 1층 영업시간 11:00~17:00, 월 휴무 인스타그램 curriculum.official
포셋 연희

연희동에 자리한 포셋 연희는 엽서(postcard), 종이(paper), 포스터(poster)를 조합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엽서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쇄물을 큐레이션하는 작은 서점이자 텍스트와 이미지가 교차하는 곳이다. 이곳에선 3200여 장의 엽서가 줄 맞춰 진열돼 마치 엽서 전시회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국내외 아티스트의 작업부터 감각적인 디자인 엽서, 자체 제작한 엽서까지 다양한 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포셋 연희에서 엽서를 사는 것은 단순한 쇼핑이 아니다. 문장 몇 줄에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는 도구를 고르는 셈이다. 덕분에 색감과 문구, 종이의 질감 하나하나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엽서를 고른 후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창가 테이블도 마련돼 있다. 가격이 대부분 1000~5000원으로 저렴한 편인 데다 문구 덕후라면 지갑을 열게 되는 연필, 마스킹 테이프, 자석, 스티커 등 감각적인 물건이 가득하다. 벽면에 자리한 작은 사물함은 ‘기록 보관함’이라고 부르는데, 엽서를 보관하거나 누군가와 편지를 교환하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증가로 18 3층 305호 영업시간 12:00~20:00, 월 휴무 인스타그램 poset.official
그래픽

한남동의 조용한 골목을 걷다 보면 독특한 외관의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겹겹이 쌓인 종이의 질감을 형상화한 그래픽이다. 어릴 적 만화방에서 시간을 보내던 기억을 현대적으로 트렌디하게 재해석한 이곳은 텍스트와 이미지가 결합된 만화를 어른의 시선으로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다. 주로 일본, 미국, 프랑스, 벨기에에서 출간된 4000여 권의 만화책과 그래픽 노블, 아트 북이 층별로 진열돼 있다. 구하기 힘든 절판 도서와 희귀본도 만날 수 있다. 1층에서는 건축·디자인·미술 서적과 마블·DC 코믹스, 성인 도서, 2층은 스포츠·자연·음식·철학, 3층은 사진·패션·음악 관련 도서가 진열돼 있다. 그래픽의 가장 큰 매력은 시간 제한 없이 책 열람이 가능하다는 것. 입장료 1만5000원을 지불하면 영업시간 내내 자유롭게 머물 수 있고, 오후 7시 이후 입장 시에는 1만원으로 할인된다. 3층 라운지에서 커피, 탄산음료, 주스를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것도 반갑다. 대기 손님도 1층에서 자유롭게 책을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최근엔 자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디지털 플랫폼과 오프라인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새로운 형태로 발전 중이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39길 33 영업시간 화~금 13:00~23:00, 토·일 11:00~23:00, 월 휴무 인스타그램 graphic.fan
PDF SEOUL



아트 북을 기반으로 다채롭고 감각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멀티숍 PDF 서울. 텍스트만으로는 부족하고 시각적 자극까지 원하는 MZ들의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다. 미국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후 편집 디자이너, 광고 회사 아트 디렉터,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해온 이승현 대표의 세련된 취향이 응축돼 있다. PDF라는 이름 역시 사진(Photo), 디자인(Design), 패션(Fashion)의 머리글자로, 공간의 정체성을 함축한다. 시작은 그가 오랜 시간 개인적으로 수집해온 방대한 아트 북에서 비롯되었다. 2년 전 오픈 당시, 이승현 대표가 모아온 300여 권의 책이 공간을 채웠고, 대부분 1년 만에 완판됐다. 지금은 대표의 취향이 한껏 반영된 새로운 아트 북들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데, 디자이너와 크리에이터들이 감각을 날카롭게 벼리기 위해 주로 찾는다. PDF 서울이 자리한 곳은 원래 패션 매장이었던 곳으로, 높은 층고와 길게 뻗은 직사각형 구조가 특징이다. 오픈 이후 기존의 스테인리스스틸 벽면과 통유리창을 그대로 살려 공간의 본질을 유지해왔지만, 최근에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스틸 벽면에 큼직한 스피커 두 대를 설치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3월부터는 패션 브랜드 랄프 로렌과 협업해 사운즈 한남에서도 만날 수 있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녹사평대로32길 16 영업시간 화~목 13:00~19:00, 금~일 12:30~19:30, 월 휴무 인스타그램 pdf_seoul
음주가의 책방


음주가의 책방은 이름 그대로 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아늑한 서재이자 은신처다. 서울대입구역 근처, 왁자지껄한 샤로수길을 지나 조금만 더 걸으면 ‘이곳에 정말 책방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용한 지하 공간이 나타난다. 3년 전, 방송 작가로 활동하던 신유미 대표가 퇴근 후 조용히 책을 읽으며 술 한잔 할 곳이 필요해 직접 꾸렸다. 스피키지바(speakeasy bar) 콘셉트를 위해 일부러 지하 1층에 자리를 잡았다. 내부로 들어서면 아늑한 어둠과 감각적인 조명이 맞아준다. 책과 술이 공존하는 이곳은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장한다. 낮은 조도의 조명 아래, 테이블마다 독립적인 스탠드 조명이 놓여 있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독서에 몰입할 수 있다. 자리 배치도 특별하다. 어느 방향에서든 다른 손님과 눈을 마주칠 일이 없도록 배려했다. 여기에 ‘2인 이하만 입장 가능, 실내에서는 침묵 유지’라는 룰이 더해져 온전히 자신과 책 그리고 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서재에는 인문·경영·소설·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도서가 비치되어 있고, 한쪽에는 ‘무엇이든 물어보는 Q&A’ 노트가 놓여 있다. 익명의 손님들이 철학적인 고민을 남기고, 또 다른 누군가가 진심 어린 답변을 이어가는 공간.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술잔도, 시간도 비워지고 있을 것이다.
주소 서울시 관악구 관악로12길 3-14 지하 1층 영업시간 화~토 17:00~23:00, 일 17:00~24:00, 월 휴무m인스타그램 winenbook
다다랩

망원동에서 2020년부터 한자리를 지켜온 다다랩은 ‘문장 블렌딩’이라는 특별한 콘셉트로 손님의 문장을 음료로 만들어주는 카페 겸 바. 메뉴판이자 작업 지시서인 메모지에 원하는 문장을 적고 음료 종류를 선택하면, 이를 바탕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음료가 서빙된다. 작성하는 문장에는 제약이 없다. 일기, 책의 한 구절, 노래 가사, 편지, 하다못해 낙서도 괜찮다. 차나 칵테일, 커피 등 음료 종류를 선택하고 원하는 재료나 색, 도수, 맛, 취향을 써서 주인장에게 주면 주문이 완료된다. 바텐더가 문장을 해석하고 음료로 만드는 과정은 보통 15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기다림은 필수.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이들을 위해 콜드브루나 하우스 와인, 오미자차 같은 메뉴도 있지만, 일부러 다다랩을 찾은 손님들은 대부분 기다림을 택한다. 다다랩은 지하에 자리하지만 층고가 꽤 높은 편이라 답답하지 않고 복층 구조로 1층은 바, 2층은 다락방처럼 꾸며 아늑한 느낌마저 준다. 대부분 버려진 가구나 소품을 구해 와 업사이클링해 꾸몄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15길 17 지하 영업시간 화 18:00~02:00, 수~일 14:00-02:00, 월 휴무 인스타그램 cafedadalab
널담은공간


커다란 통창이 경복궁 건춘문을 향해 있는 건물. 1년 후 원하는 날짜에 편지를 배달해주는 편지 카페 널담은공간이다. ‘소중한 사람을 향한 마음을 담는 공간’이라는 의미의 이곳은 진해수 대표가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힘들었던 군 시절, 하는 일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할머니의 편지에서 위안을 얻은 데서 모티프를 얻었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카드와 봉투, 실링 왁스가 든 엽서 세트를 구입 후 소중한 사람, 혹은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 직접 실링 왁스를 녹인 후 찍어 편지를 밀봉한 뒤 365개의 날짜가 적힌 우편함 중 원하는 날짜의 함에 편지를 넣어두면 이듬해 그날 배달된다. 엽서를 쓰는 연도가 2024년이라면 2025년 중 언제 받을지 선택하는 식이다. 카페의 모든 디저트가 비건식이라는 점도 특징 중 하나. 널담은공간은 비건 식품을 연구하고 생산하는 자체 연구실과 공장도 있어 비건유, 비건 버터 등 디저트에 들어가는 재료를 모두 직접 생산한다. 위치와 메뉴,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덕분에 반 이상이 외국인 고객이다. 5000원짜리 엽서 세트에 1000원을 추가로 내면 해외 발송도 가능해 부담 없기 때문. 텍스트의 힘과 기다림이 주는 묘미를 느끼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자.
주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24 영업시간 10:00~21:30 인스타그램 nuldam_sp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