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가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직면한다. 입사한 지 한 달째 되는 날, 모든 것이 서툴고 낯설기만 한 신입 사원인 내게 홍콩 출장 기회가 찾아왔다. 그렇게 홍콩은 내 생애 첫 해외 출장지라는 특별한 설렘으로 다가왔다.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도착한 홍콩의 첫인상은 상상과 조금 달랐다. 호텔로 향하는 버스 차창 밖 풍경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도시 개발 현장이었다. 거친 공사판과 작은 창문이 촘촘하게 박힌 고층 건물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묘한 생동감이 숨쉬고 있었다. 영화 <화양연화>에서 보았던 빨강과 초록의 강렬한 대비가 낡은 간판과 도로 위를 달리는 장난감 같은 차들 사이에서 선명하게 살아 있었다. 척박한 지형 위에 세워진 현대적인 빌딩과 빈티지한 옛 골목이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 홍콩은 그 자체로 압축된 삶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땅 위의 생명들
번잡한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홍콩의 또 다른 얼굴이 숨어 있다. 센트럴역에서 MTR로 단 세 정거장, 10분 남짓한 거리를 이동했을 뿐인데 빌딩 숲은 사라지고 탁 트인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복잡한 도시를 지나 도착한 곳은 바로 홍콩섬 남동쪽 웡척항에 위치한 ‘오션파크’다. 1977년에 조성된 이 유서 깊은 테마파크는 사람과 자연이 연결되는 거대한 공존의 장이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오션파크의 마스코트들이 반겨주는 어린이들의 천국, ‘휘스커스 하버’로 먼저 발길을 옮겼다. 아프리카 사바나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따뜻한 흙빛으로 꾸민 ‘리틀 미어캣 & 자이언트 토터스 어드벤처’에서 미어캣을 만났다. 예약제 프로그램을 통해 약 40분간 사육사의 지도 아래 그들과 교감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올망졸망한 미어캣들은 생각보다 날렵하고 예민해서, 취재진은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앉아 그들을 지켜봐야 했다. 반짝이는 장신구나 소지품을 훔쳐갈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들으며, 이곳이 인간이 아닌 그들을 위한 온전한 삶터임을 실감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미어캣의 끈끈한 공동체 문화다. 철저한 모계사회인 그들은 번갈아 보초를 서고 공동 육아를 실천한다. 가장 높은 바위에서 망을 보는 우두머리 암컷의 작지만 꼿꼿한 뒷모습에서 의젓함이 느껴졌다. 발아래로 미어캣 전용 터널을 바라보며 걸어가다 보면 다시 한번 이곳의 주인은 미어캣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일정으로 이번 출장에서 가장 기대했던 판다를 만나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홍콩의 상징인 판다가 있는 ‘자이언트 판다 어드벤처’로 향했다. 도톰한 배를 내밀고 앉아 대나무를 씹거나 친구들과 장난치는 판다는 영락없이 어린아이 같았다. 칼로리가 낮은 대나무를 주식으로 삼기에 에너지를 아끼려 먹고, 쉬고, 잠자기를 반복하는 단순한 리듬의 생활을 하는 판다. 서두르지 않고 얼음 바위 위에서 열을 식히는 판다의 여유로움은 바쁜 일상에 치여 살던 내게 ‘자기만의 속도를 지키는 법’을 알려주는 듯했다. 홍콩이 판다를 예우하는 방식은 특별하다. 홍콩의 오랜 인기 스타인 ‘잉잉’과 ‘레레’는 물론, 새롭게 태어난 쌍둥이 남매 ‘자자’와 ‘더더’까지. 이들의 모든 생애는 홍콩이 함께 써 내려온 거대한 성장 일기라 할 수 있다. 판다가 태어나면 건강 상태와 혈통을 담은 공식적인 출생 보고서가 작성되는데, 이는 단순한 서류를 넘어 국가 간에 오가는 생명 보호의 약속과도 같다. 주먹만 한 새끼 시절의 몸무게부터 매일의 작은 습관 하나까지 정성스레 기록한 이 자료들은 판다를 ‘지켜내야 할 소중한 미래’로 대하는 홍콩의 진심 어린 애정을 보여준다.

신비로운 바다 세계
오션파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 중 하나가 바로 아쿠아리움이다. ‘그랜드 아쿠아리움’은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명성답게 입구부터 깎아지른 듯한 수직 절벽이 펼쳐지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지름 5.5m에 달하는 거대한 수중 돔을 통과하자 13m 넓이의 대형 아크릴 창 너머로 200종 이상의 해양 생물이 빚어내는 경이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화려한 산호초 사이를 가로지르는 상어와 유리창 전체를 가리며 느리게 유영하는 가오리는 보는 이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대중적인 종에만 치중하지 않고 다양한 생물들의 개별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수족관을 나와 해발 205m 상공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가파른 절벽을 따라 약 8분간 올라가면 남랑산(브릭 힐) 정상에 다다른다. 흔히 홍콩을 화려한 빌딩 숲의 도시로 기억하지만, 사실 홍콩은 전체 면적의 70% 이상 산지로 이루어진 험준한 지형의 도시다. 고도가 높아지자 발아래로 남중국해의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고, 산세를 따라 층층이 쌓아 올린 도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척박하고 높은 지형을 극복하며 일구어낸 이 입체적인 풍경이야말로 홍콩이 가진 강인한 생명력이 아닐까.
케이블카에서 내려 북극과 남극을 테마로 한 ‘폴라 어드벤처’에 도착했다. 기후 변화로 위기에 처한 극지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태양광 발전 시스템과 친환경 설계를 도입한 이곳은, 동물들에게 최적의 온도인 8℃를 유지한다. 이글루 속처럼 냉기가 도는 ‘사우스 폴 스펙태큘러’에 들어서자 제각각의 매력을 지닌 펭귄들이 우리를 반겼다. 하얀 눈썹이 선명한 젠투펭귄부터 노란 장식 깃을 뽐내는 남부바위뛰기펭귄, 그리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킹펭귄까지. 특히 시선을 끈 건 펭귄들의 치열한 자갈 쟁탈전이었다. 알이 젖지 않게 요새를 쌓으려 옆집 돌을 슬쩍 훔쳐 오는 필사적이고 영리한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성껏 쌓은 돌무더기 위에서 온기를 나누며 알을 품는 펭귄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펭귄들의 터전을 나와 언덕길을 조금 걷다 보면, 탁 트인 바다사자의 공간 ‘퍼시픽 피어’가 등장한다. 지느러미를 맞부딪치며 박수를 치거나 우렁찬 울음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바다사자들의 모습에는 생동감이 넘쳤다. 드넓은 물속을 힘차게 유영하다가도 어느새 바위 위로 올라와 햇살을 즐기는 자연스러운 일상. 인위적인 연출 없이 저마다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오션파크가 지향하는 생태적 존중이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스릴과 다정한 동심
동물들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해발 200m 남랑산 정상 구역에 자리한 ‘더 서밋’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화려한 조명과 강렬한 음악이 어우러져 신나는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는 카니발 테마 구역, ‘스릴 마운틴’이 자리하고 있다. 험준한 산세와 맞닿은 이곳은 지형적 특성을 극대화한 다섯 가지 어트랙션으로 차원이 다른 스릴을 제공한다.
그중 첫 번째 어트랙션은 홍콩에서 가장 빠른 롤러코스터, ‘헤어 레이저’. 이름 그대로 머리카락이 쭈뼛 설 만큼 아찔한 속도감(88km)을 선사한다. 발판 없이 공중에 뜬 채 4G의 중력 가속도로 돌진하는데, 고산지대에서 다시 낙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려움이 배가됐다. 끝자리에 앉으면 허공으로 튕겨 나갈 것 같은 두려움에 결국 중간 자리를 택했지만, 덕분에 남중국해의 푸른 바다를 조금 더 여유롭게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헤어 레이저에서 내려 곧바로 공중 높이 솟아 있는 ‘더 플래시’로 향했다. 한국의 자이로스윙과 비슷한데, 360도 회전한다는 점이 다르다. 기구가 완전히 뒤집히는 순간 바다가 머리 위로 쏟아질 듯 다가와 마치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지리적 환경에 따라 스릴을 구현하는 방식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스릴 넘치는 어트랙션을 즐긴 뒤 찾은 ‘산리오 캐릭터즈 어드벤처’는 그동안 쌓인 긴장감을 기분 좋게 풀어주었다. 더 서밋의 파티 하우스가 Y2K 감성과 음악 게임으로 향수를 자극한다면, 저지대 ‘워터프런트’의 ‘언더시 드림 어드벤처’는 해양 탐험가로 변신한 캐릭터들과 함께 환상적인 해저 세계로 안내한다. 아찔한 스릴과 아기자기한 캐릭터 공간이 공존해 어른들도 자연스럽게 동심에 빠져들게 된다. 어트랙션을 충분히 만끽한 뒤 아쿠아 시티 호수에서 펼쳐지는 분수 쇼를 보며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공간이 빚어낸 만찬
오션파크는 다채로운 다이닝 공간을 갖추고 있다. 펭귄 서식지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턱시도 레스토랑’은 푸른 조명과 이글루 형태로 극지방의 신비로움을 더한 캐주얼 다이닝이다. 유리창 너머로 70여 마리의 펭귄이 활기차게 유영하는 모습을 보며 식사할 수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인기가 많다. 펭귄과 눈을 맞추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생경한 설렘이 가득했다. 차가운 공간과 대조를 이루는 따뜻한 수프와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 그리고 빙하의 질감을 살린 시그너처 디저트는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조금 더 격식 있는 분위기를 원한다면 수족관 파인다이닝 ‘넵튠 레스토랑’이 제격이다. 중국 요리의 거장 인다강 마스터가 재해석한 정통 광둥 요리를 만날 수 있으며, 홍콩 유일의 아쿠아리움 레스토랑답게 해양 생물이 유영하는 거대 수조를 배경으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대표 메뉴인 ‘거지닭’은 단단히 구워진 진흙 껍질을 전용 망치로 직접 깨뜨리는 퍼포먼스로 시작하는데, 망치로 껍질을 깨는 행위는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연잎으로 감싸 3시간 동안 익힌 삼황계가 모습을 드러내면, 직원이 가위로 연잎과 고기를 먹기 좋게 해체해 준다. 마지막에 곁들이는 황금빛 가루의 시각적인 요소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만찬은 이번 출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미식 체험이었다.
홍콩 로컬 정취를 즐기며 식사하고 싶다면 ‘올드 홍콩’을 추천한다. 1950~1970년대 홍콩의 거리를 재현한 이 공간에서는 빈티지 트램과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옛 홍콩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미쉐린 가이드>가 선택한 ‘마미 팬케이크’의 겉바속촉 에그 와플과 ‘윙 라이 위엔’의 고소한 탄탄면, 그리고 홍콩 대표 브랜드 ‘깜차’의 진한 밀크티는 홍콩 로컬 음식의 정수를 자랑한다. 낡은 거리의 레트로 카니발 게임과 소박하지만 든든한 길거리 음식은 홍콩의 또 다른 매력을 깊이 각인시킨다.


도심 속 안식처
이번 여정에 쉼표를 찍어준 곳은 바로 ‘홍콩 오션파크 메리어트 호텔’이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천장까지 시원하게 뻗은 16m 높이의 원통형 수족관. 푸른 물결 속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사라지는 듯했다.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연결성’이다. 오션파크역과 가까워 이동하기 편리하고, 테마파크로 바로 이어지는 전용 통로가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지다. 또한 친환경 건축 인증(BEAM Plus)을 받은 호텔답게 로비와 복도 곳곳에 배치한 수직 정원과 천연 나무 소재 및 목재 패턴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커다란 통창으로 쏟아지는 햇빛, 오션파크의 울창한 숲을 마주하고 있으면 이곳이 인구밀도 높은 홍콩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된다. 특히 열대식물에 둘러싸인 야외 라군 풀은 빌딩 숲 사이에서 발견한 비밀스러운 연못처럼 이국적이다. 미식의 즐거움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올데이 다이닝 레스토랑 ‘마리나 키친’에서는 갓 쪄낸 딤섬과 정갈한 아시아식 메뉴, 세련된 서양식 메뉴를 조화롭게 선보인다. 신선한 식재료의 풍미는 물론, 효율적인 동선 덕분에 붐비는 시간대에도 여유로운 식사가 가능하다. 시각적인 즐거움으로 시작해 미각적인 만족으로 끝맺는, 숙박 이상의 영감을 채워주는 안식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