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전에 이스탄불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 왜 페라 팰리스 호텔에 묵지 않았을까, 애거서 크리스티가 묵었다던 411호에 대한 얘기를 친구와 나눈 것도 같은데. 어쨌든 그 세계를 남겨둔 덕분에, 여행이 끝난 후 구글맵 위에 노란 별을 박을 수 있었다. 궁금한 호텔 목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밤하늘에 별이 많이 보이면 보일수록 황홀해지는 것처럼. 튀르키예 드라마 덕분에 그 호텔의 지분은 현재 내 마음속에서 더 불어난 상태다. 복잡한 머릿속을 ‘환기’하기 위해 자주 낯선 도시의 호텔로 떠난다. 가끔은 몸도 옮겨 놓지만 매번 그런 것은 아니다. 구글맵이나 몇몇 호텔 예약 사이트를 드나들면서 가상의 투숙객이 되는 것만으로도 환기는 충분하니까. 예정된 여 행이 있거나 없거나 관계없이 늘 호텔 정보를 읽는다. 침구를 보고 바닥재를 보고 조식을 보고 거기 묵은 사람들의 표현을 보면서 마음을 여기저기 다른 도시에 옮겨둔다. 마음은 늘 부지런한 바람둥이, 그에 비하면 몸은 언제나 ‘드디어’, ‘마침내’를 달고 뒤늦은 타이밍으로 낯선 거리에 닿는다. 분명 초행길인데도 눈에 들어오는 거의 모든 호텔 간판이 익숙하다는데 놀라면서. 호텔의 내부 구조와 가격대, 거기 머문 사람들의 기억 몇 줄을 읽었다는 이유로 도시의 밤을 장악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건 착각이다. 짐작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창밖의 풍경’이 그 안에 있을 테니까. 그건 누군가의 후기나 상세한 사진 같은 것으로 짐작할 수 없는 세계, 결국 내 몸이 그곳에 도달해야만 확인 가능한 영역에 있다. 방문을 열고 들어와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거기 무엇이 보이는가? 커튼을 걷으면, 블라인드를 올리면 거기 무엇이 있는가? 언젠가부터 내가 호텔 방 안의 풍경보다 방에서 밖을 바라볼 때 보이는 것들을 사진으로 남기 게 된 건 그쪽이 훨씬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낯선 창문은 그 자체로 액자 프레임이 된다.
모뉴먼트밸리의 더 뷰 호텔에 갈 때도 마음이 먼저였고 몸은 뒤늦게 따라가 발코니 앞에 서서 감탄했다. 낮에도 경이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밤이 되니 더했다. 우리 방은 1층이었는데 달빛이 깔리자 발코니 난간이 정말 허술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낮에는 분명 관객석에 앉아 있었는데 이제는 무대가 확장된 듯 경계가 없었다. 난간 너머에 있는 것들이 이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저 건물들이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지 않아?” 내 말에 L이 대답했다. “건물이 어딨어?” 앞쪽에 보이는 바위, 돌기둥들을 나는 자꾸 건물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경계가 자꾸 허물어지는, 그래서 특별했던 밤. 나는 상상했던 장면 속에 몸과 마음을 모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밤이 특별했던 건 단지 전망 때문만은 아니었다. L이 말했다. “아까 우리 앞에 가던 그 할머니들 있잖아. 우리 위층에 묵으시나 봐. 그 할머니들이 지금도 우리를 보고 있을걸?” “왜?” “너 오기 전에 내가 여기 앉아서 카메라를 확인하는데 바로 위층 테라스에서 나누는 대화가 너무 잘 들리는 거야. 그가 왼쪽으로 돌아섰어, 그가 오른쪽으로 걸어가네, 그가 카메라를 켰어. 중계를 하시던데? 완전 스타가 된 기분이었어.” 나는 슬쩍 위쪽을 쳐다보려 했고 그 바람에 뒷목에서 오도독, 소리가 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와아, 거의 뭐 무너지는 소린데.” 그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 나는 목을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더 기울였다. 양쪽 모두 오도독 오도독 소리가 났고, 우리 둘 다 웃음이 터져버렸다. 위에서 할머니 한 분이 “그들이 웃고 있어”라고 말했을까? 낯선 호텔에서 이런 순간을 줍는다는 건 마치 기억에 작은 주머니를 하나 달아두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이야기 포켓이라고 부를 만한, 중요한 장식.
이렇게 포켓이 달린 방들은 대부분 내 소설 속으로도 들어온다. 포켓을 만드는 것은 사실 전망도 청결도 조식도 교통의 요지도 아니고 에피소드의 생성 여부가 전부다. 그렇기에 다시 가고 싶지 않은 호텔에 대해 두고두고 생각하는 일도 많다. 그럭저럭 괜찮았던 호텔이나 압도적이었던 전망을 가진 호텔은 가끔 목록 속에서 누락되기도 하지만,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포켓으로 달린 호텔은 잊히지 않는다. 이를테면 창문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만들었던 대만의 호텔. 타이베이역 앞에서 잠만 잘 용도의 저렴한, 그러나 깨끗한 호텔을 구하려고 했을 때 친구가 해준 조언은 이거였다. “창문 있는 방으로 해, 꼭. 근데 있어도 못 열지도 몰라.” 정말 창문이 옵션인 호텔이 꽤 있었고, 나는 창문 이 있는 방을 골랐고, 그 방의 창문은 침대 길이보다도 길었지만, 열 수가 없었다. 바로 옆 건물의 창이 1m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엔 정말 살아 있는 누군가가 건너올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결국 담배 냄새가 너무 지독한 방에서 창문을 꼭 닫고 자야 했는데 침대에 누우니 바로크식 천장화가 또 한 겹의 무거운 이불 역할을 했다. 압도적 부조화 속에서 포켓이 생겨났다. 사이판의 어느 호텔도 잊히지 않는다. 단 몇 시 간을 머물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는데 균형을 잃어버린 낡은 침대가 있었다. 두 사람이든 세 사람이든 각자의 위치에서 누우면 결국 가운데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고, 습도가 너무 높아 마치 바다 위에 누운 듯했다. 수건은 아주 얇고 작은 것 한 장뿐이었고 방문도 허술했다. 어찌나 인상적이었던지 그날 밤에 나는 바로 그 방이 등장하는 꿈을 꿨다. 거기서 자다가 갱단에 휘말리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포켓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사이판 호텔의 침대를 바다에 비유한다면 목포 어느 호텔의 침대는 빙하라고 할 수도 있다. 방이 완전히 냉골이었는데, 보일러를 최대한으로 올려놓고 덜덜 떨면서 실내 온도가 올라가길 기다렸지만 아침이 될 때까지도 온도는 그대로였다. 이미 밤은 지나간 뒤였고, 프런트에 전화하기도 귀찮았던 우리는 덜덜 떨면서 깨어났다. 마음이 먼저 둘러봤던 방에 내 몸을 옮겨두었을 때 모두가 화들짝 놀라고 실망한 경험, 끝내 수수께끼로 남은 경험에 대해 나열하자면 끝 도 없는데 실은 이게 가장 강력한 기억의 접착제다. 다시 그곳에 내 몸을 들여놓고 싶은 마음 은 조금도 없지만, 내 마음은 자꾸만 그곳으로 돌아가 천장이며 바닥이며 보이지 않는 허공까지 관찰하는 것이다. 마치 두고 온 것이 있다는 듯이.
#윤고은에게 영감과 휴식을 모두 준 호텔 리스트
힐튼 몰리노 스터키 베니스
1950년대까지 제분소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호텔. 그 때문인지 머무는 내내, 이 웅장한 호텔 안에서 시작된 말들이 가벼운 밀가루처럼 소리 없이 퍼지는 장면을 자주 떠올렸다.
더 뷰 호텔(모뉴먼트밸리)
나바호족이 운영하는 호텔. 해 질 무렵이 되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데, 해가 지는 방향으로 미어캣처럼 서서 모두 같은 색으로 물들어간다.
스칸딕 그랜드 헬싱키
중정을 좋아하던 우리는 이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중정에 갇혀버렸다. 중정으로 이어지는 문이 잠시 열렸을 때 걸어나갔던 것인데 카드키가 없이는 그 중정을 탈출할 수가 없는 구조였다. 마침 내리기 시작한 눈이 그 상황을 내게 잊을 수 없는 것으로 고정시켰다. 이 호텔에서는 특히 문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은데, 문이 많기도 하고 죄다 묵직하기도 하지만 진짜 입구, 진짜 대문은 여닫이 자동문으로 벌컥벌컥 알아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