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부에노스아이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신기한 도시다. 1929년 대공황의 여파로, 경제적으로 취약했던 남유럽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대공황이라는 경제적 비극이 이 도시에 경제적 호황을 선사한 것이다. 이 점부터 아이로니컬한데, 이후 이 도시는 반짝 호황을 누리고선 줄곧 불황에 빠졌다. 그 탓에 이후에 도시가 개발되지 않았다. 이 또한 아이러니인데, 전 세계 200여 개 도시를 다녀본 내 경험상, 지구상에서 가장 1930년대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도시가 된 것이다. 그 덕에 2023년인 지금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면, 약 90여 년 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카페의 분위기가 괜찮다 싶으면, 메뉴판에 아무렇지 않게 쓰인 문구가 보인다. ‘Since 1897’, ‘Since 1901’ …. 이렇듯, 웬만한 카페는 100년이 넘었다. 가장 오래된 카페인 ‘토르토니(Tortoni)’는 1858년에 개업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1930년대에 지은 건 신축 건물로 느껴질 지경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은 아예 1930년대의 분위기를 도시의 정체성으로 삼고, 보존하는 듯하다. 거리에는 1930년대에 유행한 멜빵바지와 알 카포네 시절의 중절모를 쓰고 탱고를 추는 무희들이 보인다. 1935년에 발표된 탱고 곡 ‘포르 우나 카베사(Por Una Cabeza)’도 여전히 흘러나온다(영화 <여인의 향기> 삽입곡). 그렇기에 도시를 걷기만 해도, 아르헨티나의 영예로웠던 1930년대로 미끄러진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단, 100년 넘은 카페에서 오랜 시간 앉아 작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장기간 체류한다면, 코워킹 작업실을 임대하는 것도 괜찮다. 도시 중심부에 ‘We work’와 같은 코워킹 스페이스가 꽤 있다. 여기에서는 기행문 <40일간의 남미 일주>를 썼다(잘 안 팔려서, 또 한 번 소개해봤다).
아일랜드·딩글
딩글은 아일랜드 남서쪽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바다가 있고, 인근에 관광 명소 모허 절벽도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딩글의 고즈넉한 환경이다. 모허 절벽이 명소라 해봐야, 마을에서 차로 3시간이나 가야 하기에, 이 작은 항구 마을은 붐비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 여관방에는 종종 책상이 구비돼 있다.
그 덕에 빛이 들어오는 작은 방에 앉아 작업에 집중하다 보면 고흐가 된 듯한 기분에 젖을지도 모른다(나는 그랬다). 그 기분에 젖어, 내 첫 소설집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의 수정 작업을 했다. 밤이 되면 펍에 가서 기네스를 마셨고, 오전에는 커피와 베이컨이 나오는 조식으로 배를 채웠다. 만약 당신이 두어 달 정도 머무를 생각이라면, 인근의 코크와 골웨이로도 여행을 다녀오길 추천한다. 어느 펍에서나 볼 수 있는 근사한 공연이 작업에 지친 당신의 영혼을 위로해줄 것이다. 참고로, 딩글은 에이미 애덤스와 매슈 구드가 열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프로포즈 데이(Leap Year)>의 배경지다.
타이·빠이
빠이는 내게 애증의 마을이다. 치앙마이에서 차를 타고 3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이 산골 마을에는 세계 각국의 배낭여행자들로 넘쳐났다. 9년 전에 한 달, 7년 전에 두 달을 머물렀다. 9년 전에 갔을 때엔 여행자 대부분이 히피였다. 드레드헤어를 한 여행자들이 웃통을 벗어젖히고 카페에 누워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자유와 방종의 경계선이 흐릿한 곳이었다. 마치 산속에 위치한 작은 홍대 같았다. 한데, 7년 전에 다시 가보니 홍대 지역이 상업자본에 잠식돼 변했듯, 빠이도 꽤 변해 있었다. 해외자본이 유입돼 고급 리조트가 생겼고, 물가도 올랐고, 관광객들로 거리가 북적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빠이는 내게 심리적 도피처 같은 곳이다.
나는 7년 전, 차마 3성급 호텔이라 할 수 없는(아마 2.2성급 정도일 것이다) 한 숙소에서 주인장과 협의해 식탁과 의자까지 임대했다. 내 방 베란다에 그 식탁과 의자를 두고 아침마다 에세이 <꽈배기의 맛>과 <꽈배기의 멋>을 고쳐 썼다(역시 판매가 주춤해서!). 오후의 태양이 영혼까지 데우면, 수영장에 몸을 담가 열기를 식혔고, 함께 온 아내와 아기와 함께 현지 음식점에서 생선 요리와 카레를 먹었다.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서울에서 모든 게 너무 힘들 때면, 빠이에 가고 싶다고. 그곳에서 쉬며 일하며, 충전하고 싶다고. 장기 체류할 생각이라면, 숙소는 1주일 정도 예약하길 바란다. 현지에서 스쿠터를 장기 대여한 후에 직접 다니며 맘에 드는 숙소 주인과 방값을 흥정하는 게 낫다. 1~2월에도 따뜻하다. 나는 시원한 오전에 작업을 하고, 더운 오후에는 수영하고, 저녁에는 맥주를 마셨다. 인생의 한 챕터가 휘리릭 날아갔다.
다시 말하지만, 작업하기 가장 좋은 곳은 일상의 공간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일상은 안정은 물론, 지겨움도 준다. 그렇기에 효율성을 차치하고, 어딘가로 떠나서 작업하고 싶다면 위의 세 곳을 떠올려보시길. 포르투갈의 포르투,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독일의 베를린도 작업하며 지내기에 나쁘지 않았다. 그럼, 당신의 건투를 빈다.
디지털 노매드 비자 발급 국가는 어디?
유럽·포르투갈 워케이션 추천 여행지 1위이자, 디지털 노매드에게 사랑받는 나라 순위권에 늘 빠지지 않는 곳이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휴양 섬 마데이라에는 디지털 노매드를 위한 마을도 설립돼 있다.
중남미·콜롬비아 디지털 노매드 비자 발급 국가 중 증명해야 할 월 소득 조건이 가장 낮다. 매월 684달러 이상의 수익만 증명할 수 있으면 최대 2년까지 체류가 가능하다.
중동·두바이 아랍에미리트연합국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도시인 두바이. 정확한 비자 명칭은 ‘Work remotely from Dubai’이다. 월 소득 3500달러 증명서와 잔고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며 체류 기간은 1년이다.
아시아·타이완 비자 명칭은 ‘Gold Card’로, 취업 허가, 거주 비자, 재입국 허가, 외국인 거류 증명서를 합친 비자라 할 수 있다. 다른 국가의 디지털 노매드 비자와 가장 큰 차이점은 타이완에서의 취업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아프리카·바하마 푸른 자연으로 유명한 휴양지 바하마에도 디지털 노매드 비자가 있다. ‘BEATS(Bahamas Extended Access Travel Stay)’라고 불리며 소득 증명, 예방접종 등의 서류가 필요 없어 어느 나라보다 간편하게 비자 취득이 가능하다.
글을 쓴 최민석은 소설가다. 2010년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했으며 <40일간의 남미 일주>, <꽈배기의 맛> 등의 책을 썼다. 합정동 근처 집필실로 주 5일 출퇴근하는 전업 소설가로 사는 그는 집필실과 정반대에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부터 유럽, 미국 대륙, 아시아 등으로 수도 없이 여행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