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트, 예술이 여행이 되는 순간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RYU JIN
  • PHOTOGRAPHY BY CHO SOOMIN
  • SUPPORTED BY LE VOYAGE A NANTES, DESTINATION RENNES, Atout France

낭트, 예술이 여행이 되는 순간

Nantes, Quand l’art devient Voyage

버려진 조선소는 폐자재로 생명을 불어넣은 기계 동물의 낙원이 되고, 바나나를 적재했던 창고는 갤러리, 극장, 클럽이 됐다. 예술로 재도약하며 살기 좋은 도시가 된 낭트에서 삶을 예술로 만드는 장면을 찾았다.
  • written by RYU JIN
  • PHOTOGRAPHY BY CHO SOOMIN
  • SUPPORTED BY LE VOYAGE A NANTES, DESTINATION RENNES, Atout France
2025년 07월 01일

la vie à Nantes

낭트식 삶

낭트 사람들은 혁신, 변화, 모험과 유머를 사랑하며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단 잘 사는 삶에 관심이 높다. 예술가, 마케터, 셰프에게 낭트에서 실현할 수 있는 예술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 물었다.

에보르 Evor | 시각예술가 Visual Artist

“저는 낭트에서 꽃과 풀, 나무 그리고 물질의 순환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 시각예술가이자 조경가입니다. 낭트의 공공 예술 프로젝트 ‘르 보야주 아 낭트(Le Voyage à Nantes)’의 작품 중 하나인 정글 앙테리외르(Jungle Intérieure)를 만들었죠. 제가 태어나고 자란 낭트는 과거엔 산업 침체로 인해 ‘잠자는 미녀(la belle endormie)’라고 불렸지만 지난 30년간 많은 노력과 변화로 매력적이고 살고 싶은 도시가 됐어요. 100여 개가 넘는 정원, 대서양에 면한 지리적 위치, 적극적인 친환경 정책으로 자연을 가까이에 두고 살 수 있는, 한마디로 삶의 질이 높은 지역이죠.
에너지를 얻고 싶을 때, 영감이 필요할 때 종종 ‘자르댕 엑스트라오디네르(Jardin Extraordinaire)’를 찾습니다. 녹음 안에서 온갖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걷다 보면 새로운 힘이 생기는 기분이에요. 전망 좋은 언덕에서 루아르강을 바라보며 석양을 감상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노을에 물든 저 강의 줄기 끝에 드넓은 대서양이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바다가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마다 자유와 해방감을 느껴요. 마치 여행이 나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죠.
낭트다운 분위기를 제대로 만나고 싶다면 제가 살고 있는 부페이 지구로 향해보세요. 중세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동네엔 15세기에 지어진 브르타뉴 공작 성(Château des Ducs de Bretagne)이 있습니다. 독립적이며 혁신과 모험을 사랑하는 브르타뉴 사람, 브레통(Breton)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장소죠. 일상 속에서 전통, 역사와 연결된 삶을 사는 낭트인들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베네딕트 페슈로 Benedicte Pechereau | 마케터 Marketer

“낭트는 창의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예요. 바닥에 그려진 초록 선을 따라 걷다 보면 당신도 이 말에 동의할 거예요. ‘그린 라인’으로 불리는 약 22km 길이의 이 선은 낭트의 역사적인 장소, 문화 공간, 미술관, 공공 예술로 안내하는 이정표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선을 따라 걷다 보면 늘 새로운 전시나 다채로운 설치미술을 발견할 수 있어요. ‘르 보야주 아 낭트’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조각가 시릴 페드로사(Cyril Pedrosa)의 <레바지옹(L’Évasion)> 시리즈인데요. 낭트 시내 곳곳에 설치한 4개의 분수로, 1번 분수에서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여성들이 4번으로 갈수록 분수에서 해방돼 자유를 얻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고 독려하는 낭트의 예술적 지향을 잘 보여주는 예시죠.
낭트는 ‘아르 드 비브르’를 실현하기에 완벽한 도시입니다. 저의 주말 일상을 예로 들어볼게요. 이른 아침, 탈랑삭 시장(Talensac Market)에서 제철 채소와 생선, 지역 특산 와인인 뮈스카데를 산 후 에드르 강가의 베르사유 부두에서 커피 한잔을 마셔요. 오후엔 초록 선을 따라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하며 매년 새롭게 전시하는 작품들을 감상합니다. 파사주 폼므레(Passage Pommeraye)에서 젊은 낭트 디자이너들의 부티크를 구경하기도 하고요. 삶을 예술로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다면 낭트에 꼭 와보세요!”

기욤 마코타 Guillaume Maccotta | 셰프 Chef

“제가 운영하는 프렌치 레스토랑 ‘라마코트(Lamaccotte)’는 단순히 미식만 추구하는 식당이 아니에요. 저는 이 공간이 낭트의 정체성과 긴밀히 연결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공간 한쪽에서 로컬 아티스트의 작품을 소개하고 지역의 갤러리와 협업해 전시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지역 도예가들이 빚은 테이블웨어에 음식을 담아내는 것, 근교의 농장에서 식재료를 공수하는 것, 낭트의 특산 와인인 뮈스카데를 선별해 소개하는 것도 모두 이 도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예술적 순간에 포함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게 영감을 주는 곳은 레 마신 드 릴(Les Machines de l’île, 기계섬)이에요. 그곳에 사는 아주 거대한 인공 코끼리 ‘르 그랑 엘레팡(Le Grand Éléphant)’이 제 상상력을 자극하거든요. 그 일대 크레아시옹(Création) 지구의 활기찬 에너지가 지금의 낭트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버려진 비스킷 공장을 문화 공간으로 개조한 르 리외 유니크(Le Lieu Unique)도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개인적으론 낭트 미술관(Musée d’Arts de Nantes)을 가장 좋아합니다. 햇살 좋은 날 아침 일찍 그곳을 찾으면 세계적인 명작을 고요하게 감상할 수 있어요. 전시관을 둘러본 후 그 안에 자리한 작은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것이 저만의 아르 드 비브르입니다.”

Destination Créative

창의를 돋우는 낭트의 공간들

낭트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문화 예술 공간이자 전시장이다. ‘그린 라인’이라는 도슨트와 함께 낭트라는 아트를 경험하는 법.

4층 건물 높이를 웃도는 거대한 코끼리, ‘르 그랑 엘레팡.

저 멀리 나무와 강철로 만든 코끼리가 육중한 자태를 드러낸다. ‘르 그랑 엘레팡’을 마침내 눈앞에서 마주한다. 높이 12m, 길이 21m, 무게 48톤을 자랑하는 이 조형물은 낭트의 새로운 마스코트. 기계를 생명체로 만드는 예술 집단 ‘라 마신(La Machine)’의 걸작으로 쇠퇴한 조선업의 도시에서 예술을 재생의 키워드로 삼고 진화하는 낭트의 지향을 보여주는 매개체다. 르 그랑 엘레팡이 특별한 건 공터에 우두커니 서 있는 조형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채만 한 네 다리를 움직이며 시속 1~3km/h로 기계섬을 배회한다. 그 놀랍고 웃기며 신기한 인공 코끼리의 자태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등에 짊어진 구조물에서 인간들이 빼꼼, 얼굴을 내민다. “사람도 태우나요?” 가이드 서번이 기다렸다는듯 유창하게 설명을 잇는다. “물론이죠. 50명까지 탈 수 있어요. 하이브리드 모터로 움직이거든요. 이 어트랙션은 낭트 출신 소설가 쥘 베른의 <스팀하우스>에 등장하는 ‘증기로 움직이는 기계 코끼리’에서 착안해 만든 작품입니다.”

쥘 베른을 빼놓고 낭트섬을 설명할 수 없다. 선박을 만들던 폐창고 안에 기계로 구현한 거미, 나무늘보, 애벌레, 새 등을 전시하는 기계 갤러리 라 갈레리 데 마신(La Galerie des Machines), 심해부터 해수면까지 해양 생태계에 서식하는 생명체를 독특한 형태로 구현한 해양 회전목마 르 카루젤 데 몽드 마랭(Le Carrousel des Mondes Marins) 모두 그의 작품 세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낭트를 소개하는 안내 책자에선 이 섬을 “쥘 베른의 상상력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꿈꾼 기계적 유토피아가 만난 결과”라는 거창한 표현으로 소개하지만 나는 이 공간에 대해 이렇게 쓰고 싶다. 예술에 심취한, 덕후 기질이 다분하고 골 때리는 위트까지 갖춘 천재 엔지니어들이 만든 놀이터. 당신도 거대 코끼리가 코로 뿜는 물벼락에 흠뻑 젖고(르 그랑 엘레팡이 치는 장난이다), 로데오 경기에 출전하는 소라도 된 양 몸통을 흔들어대는 물고기 마차(해양 회전목마 얘기다)에 골탕을 먹었다면 저 정의에 십분 동의할 것이다.

기름을 압착하는 공장에서 맥주를 빚고 파는 공간이 된 리틀 아틀란티크 브루어리(Little Atlantique Brewery).
구시가지 ‘부페이 지구’에서 만나는 고풍스러운 건축물, 쿠아파르(Coiffard) 서점과 파사주 폼므레.

쥘 베른으로 새 숨을 불어넣은 옛 조선소 창고와 그 일대를 지나 낭트섬 서쪽으로 향한다. 1950년경,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바나나를 하역했던 창고 지대 앙가르 아 바난(Hangar à Bananes)은 이제 낭트 사람들이 문화, 예술, 미식, 여가를 즐기기 위해 찾는 지구가 됐다. 도시를 관통하며 대서양으로 뻗어나가는 루아르강을 바라보며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이 길에선 낭트를 예술 도시로 만든 대형 프로젝트, 르 보야주 아 낭트의 하이라이트를 만날 수 있다. 도시의 슬로건이기도 한 르 보야주 아 낭트는 2012년, ‘일상 속에서 예술이 말을 거는 경험’을 취지로 시작된 축제. 도시 곳곳 130여 개의 명소와 공공 예술 작품을 초록색 선을 따라가며 만나는 여정을 의미한다. “<레 자노(Les Anneaux)>는 ‘빛의 고리’라는 뜻으로 예술가 다니엘 뷔랑(Daniel Buren)과 건축가 파트릭 부샹(Patrick Bouchain)이 함께 만든 작품입니다. 강변의 난간을 따라 늘어선 18개의 고리는 도시와 자연의 풍경을 분절해서 바라보는 액자 역할을 해요. 밤에는 빨강, 초록, 파랑 조명이 들어와 낭트의 특별한 야경을 완성하고요.” 큐레이터 못지않은 유창함으로 도시를 도슨트하는 서번의 설명을 BGM 삼아 발걸음을 재촉한다. 회화, 건축, 디자인, 설치미술부터 실험적인 미디어 아트까지 다루는 현대미술관 HAB 갤러리(HAB Galerie)를 비롯해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극장, 테아트르 100 농(Théâtre 100 Noms), 록·일렉트로닉·힙합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수용하는 공연장이자 클럽 르 페라이외르(Le Ferrailleur)가 바나나가 있던 자리를 채우고 있다.

르 보야주 아 낭트 프로젝트의 하나인 정글 앙테리외르.

프랑스 사람들에게 자르댕(jardin), 즉 정원은 자연을 넘어 예술의 한 장르다. 철저한 구상과 설계, 디자인을 거쳐 완성한 조경 사이에 당대의 예술가들이 헌사한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100여 개의 정원을 가진 낭트에선 자르댕 데 플랑트 드 낭트(Jardin des Plantes de Nantes, 이하 낭트 식물원)가 그런 역할을 한다. 7헥타르의 부지 위에 19세기에 지은 온실과 영국 스타일로 디자인한 연못, 폭포, 조형 정원을 갖춘 이 식물원 안엔 동화 작가이자 화가 클로드 퐁티(Claude Ponti), 회화·설치미술·비디오 등의 장르를 아우르는 파브리스 이베르(Fabrice Hyber) 등 저명한 예술가들의 이름과 작품이 꽃과 나무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역시 장 줄리앙(Jean Julien). 쥘 베른에 이어 낭트를 예술로 부흥시키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아티스트다. 낭트 식물원엔 그의 마스코트이자 분신인 동그랗고 큰 눈에 큰 키와 깡마른 몸을 가진 ‘종이 인간(Paper People)’이 산다. 나무에 매달린 ‘감시자(Le Guetteur)’, 녹색 선을 부여잡은 ‘미행자(Le Fileur)’ 같은 이름을 가진 우스꽝스러운 얼굴의 캐릭터 앞에서 몇 년 전 서울에서 열린 그의 전시 «종이 세상(Paper Society)»에서 본 메시지가 떠올랐다. “My work is about communicating the positive in things, making people smile, making them think, too, sometimes, I hope.(제 작업은 사물의 긍정적인 면을 전하고, 사람들을 미소 짓게 만들고, 때로는 사유하게 만드는 거예요. 적어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내겐 낭트가 그런 곳이다. 진중하고 심오한 가운데 유머와 위트를 잊지 않은 그린 라인 위의 공공 예술 작품들, ‘시크’로 표현되는 냉랭함을 가진 파리지앵과 달리 투박하지만 따뜻한 낭트 사람들 덕에 자주 웃었고, 종종 상념을 잊거나 생각에 젖었다. ‘삶의 예술’을 실현하는 인생이란 그런 거 아닐까? 좋은 생각을 따르고, 잘 웃는 것. “그게 바로 낭트 사람들의 삶이에요.” 마침내 이 도시의 진짜 보물을 찾아낸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서번이 차갑게 식힌 달콤한 뮈스카데를 권했다.

루아르강 서쪽의 버려진 창고 지대는 이제 낭트에서 가장 세련된 동네인 크레아시옹 지구가 됐다.

낭트라는 아트를 경험하고 싶다면

그린 라인 따라 무작정 걷기
낭트에선 구글맵이 딱히 필요 없다. 바닥 위에 새겨진 그린 라인만 따라 걸으면 이 도시에서 꼭 봐야 할 옛날 유적부터 올해 갓 생겨난 새로운 명소, 공공 예술 작품 등을 거의 빠짐없이 훑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 15세기에 세워진 브르타뉴 공작 성과 유럽에서 가장 유서 깊고 아름다운 아케이드로 꼽히며 수많은 예술가, 영화감독,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준 건축물 파사주 폼므레는 꼭 들러야 할 장소다. 약 22km에 걸쳐 펼쳐져 있으며 130여 개의 명소와 공공 예술 작품이 라인 위에 놓여 있다.

틈만 나면 정원 찾기
낭트는 모든 시민이 반경 300m 안에서 녹지를 누릴 수 있는 정원의 도시다. 낭트 식물원 외에도 매력적인 정원이 많다는 얘기. 쿠르 캉브론(Cours Cambronne)은 19세기 건축과 정원 디자인의 정석을 관람할 수 있는 곳. 르 보야주 아 낭트 프로젝트의 한 작품인 조각가 필리프 라메트(Philippe Ramette)의 작품 <엘로주 드 라 트랑스그레시옹 (Éloge de la Transgression)>도 볼만하지만, 낭트 사람들의 소탈하고 여유로운 일상을 엿보기 좋은 곳이다. 과거 채석장이었던 부지에 조성한 이국적인 열대 정원 ‘자르댕 엑스트라오디네르’는 문자 그대로 ‘비범한 정원’, ‘경이로운 정원’이라는 뜻으로 절벽, 폭포, 야자수와 양치식물이 만드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절벽에 설치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르 보야주 아 낭트의 대표작, 다다시 가와마타(Tadashi Kawamata)가 만든 새 둥지 모양의 전망대 ‘벨베데르 드 레르미타주(Belvédère de l’Hermitage)’를 만날 수 있다.

술로 낭트 맛보기
지역 특산 와인 뮈스카데(Muscadet)의 맛도 예술이다. 루아르강 하류, 낭트 근교에서 재배·생산되는 이 화이트 와인은 산미가 좋고 상쾌한 풍미가 특징. 애호가들 사이에선 레몬, 사과, 바다 내음을 품어 여름 제철 식재료로 만든 요리와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는다. 시내에서 자동차나 기차로 약 30~40분만 달려가면 클리송(Clisson), 발레(Vallet) 등 뮈스카데 와이너리를 품은 근교 도시에 쉽게 닿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