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섬

페누아, 모리시게 마사히로
Fenua(フェヌア), Masahiro Morishige(森重正浩)
마쓰야마 공항에서 내리 2시간을 내달리자, 오시마(大島)섬의 한적한 해안가가 펼쳐졌다. 우리를 태운 차는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바다와 마주한 건물 앞에서 멈췄다. 정교하게 이어진 회색빛 돌담과 통유리창, 아담하지만 존재감 있는 옥상 테라스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곳은 프렌치 기반의 창작 코스 요리를 선보이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페누아. 오너 셰프 모리시게 마사히로가 유리창 안에서 분주히 손을 놀리며 눈인사를 건넸다. 이른 새벽 이동으로 피곤할 법했지만, 이진곤·김기남 두 셰프의 얼굴엔 오히려 달뜬 표정이 가득했다.
젊은 시절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지에서 요리를 배운 모리시게 셰프는 리옹 인근, 알프스를 낀 작은 마을 안시(Annecy)의 한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작은 식당이었지만, 로컬 식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곳이었습니다. 어느 날 수셰프가 ‘마사, 고향에 가서도 현지 재료를 이용한 레스토랑을 해’라고 한 말이 마음에 콕 박혔죠. 귀국 후 도쿄에서 26년간 레스토랑을 하면서도 언젠가 그런 레스토랑을 열 거라고 믿었어요. 장소만 약 10년을 찾아다녔죠.” 오노마치, 인노시마, 오미시마 등 시코쿠 해안을 끊임없이 오가며 레스토랑 부지를 찾아다니던 모리시게 셰프는 어느 겨울밤, 이시즈치산에서 야간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보이는 이곳을 지나며 안시의 향수를 느꼈다. 알프스 산자락도 매년 겨울밤이면 스키 타는 사람들로 반짝였기 때문이다. 큰 파도 없이 항상 잔잔한 앞바다 역시 호수를 끼고 있던 안시를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꿈꾸던 레스토랑이 들어설 장소가 드디어 정해졌다.
“바다와 산이 보이는 위치도 좋지만, 무엇보다 건물이 너무 아름다워요.” 두 셰프의 입 모은 칭찬에 모리시게 셰프는 재료를 다듬으며 대답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마 겐고 건축가의 작품입니다. 전혀 인연이 없었지만, 그가 제 레스토랑을 설계해주길 바랐어요.” 그는 구마 겐고에게 간절히 연락을 시도했다. 프로필, 레스토랑 구성 등을 담아 러브 레터를 쓰는 마음으로 직접 손편지를 써서 보냈다. 어느 날 인근 오카야마 대학에 심포지엄이 있어 오게 됐으니 시간이 맞으면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모든 걸 제쳐두고 가 그를 대면했고, 건축가는 셰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구마 겐고에게 요청한 건 딱 세 가지였어요. 각 객실이 개별 룸일 것, 주방은 스테이지처럼 오픈할 것, 그리고 전망대였죠.” 셰프의 요청과 지역성을 강조하는 구마 겐고의 건축 철학이 만나 지금의 페누아 건물이 완성됐다. 건축에 사용한 주요 재료는 오시마섬이 속한 이마바리시(今治市) 안에서 공수했다. 약 100톤의 돌을 인근 오시마산에서 구해 왔고, 지역 전통 지붕에 쓰는 기왓장으로 내부를 꾸몄다. 전망대로 오르는 나무 계단은 근처 바닷가에서 선박 수리 등을 할 때 사용하던 나무 발판을 재활용한 것이다.




로컬 미식의 프레젠테이터
디저트까지 총 여덟 번 디시가 바뀌는 화려한 코스 요리가 시작되자 김기남·이진곤 셰프의 눈이 더 반짝거렸다. 인근 바다에서 잡은 오징어와 직접 농사지은 버섯으로 만든 리소토, 생햄과 자두를 올린 핑거 푸드, 밭에서 수확한 호박에 리큐어가 들어간 차가운 수프, 직접 사냥한 멧돼지고기 수프로 만든 쿠스쿠스가 담긴 애피타이저 세트를 시작으로 모리시게 셰프가 미식을 통해 전하려는 이야기가 식탁 위로 선명하게 펼쳐졌다.
“바다의 감칠맛이 자연스러워요. 버섯의 흙내가 오징어의 단맛을 살려주는 느낌이에요.” 이진곤 셰프의 표현에 모리시게 셰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농사지은 버섯이에요. 이 지역 토양이 단단해 향이 깊습니다.” 김기남 셰프가 말을 얹었다. “자두의 산도가 입맛을 환기하네요. 호박 수프는 리큐어의 여운이 길게 남고요.”
레몬을 반으로 자른 뒤, 이 지역에서만 잡히는 커다란 조개인 세토가이(瀬戸貝)를 올린 요리를 맛본 이진곤 셰프가 입을 열었다. “식감이 무척 특이합니다. 육류처럼 단단한데, 레몬 향이 질감을 부드럽게 풀어줘요.”
페누아는 런치와 디너에 각각 한 팀만 받는다. 한 명이든 여섯 명이든 마찬가지다. 모리시게 셰프는 모든 재료를 인근 5km 반경에서 공수한다. 그는 코스마다 재료를 설명하며 농부, 어부, 포수들의 이름과 이야기를 풀어냈다. 옆집 아주머니 고노(河野) 씨가 키운 아스파라거스, 친한 농부 후지이(藤井) 씨의 포도잎, 어부인 마쓰다(松田) 부자가 손낚시로 잡은 삼치, 이웃 할아버지 후지모토(藤本) 씨가 재배한 샤인머스캣까지. 오시마의 정겨운 풍경과 사람이 요리에 그대로 이어진다.
“저희도 산지에서 직접 재료를 공수하지만, 이렇게까지 디테일하진 않아요. ‘통영에서 온 굴’이나 ‘제주도 앞바다의 붉바리’, ‘지리산 고지의 콩’ 등 정도죠. 모리시게 셰프처럼 생산자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 같아요.” 김기남 셰프가 놀라워하며 말했다.
식전 먹었던 빵은 레스토랑 앞의 해수를 떠 와서 직접 만든 소금과 그 바다의 무늬오징어 먹물을 넣어 만들었다는 모리시게 셰프의 설명을 들었을 때쯤, 두 셰프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코스가 진행될수록 기대에서 놀라움, 경의로 이어지는 표정의 변화를 생생히 목격했다.
“페누아는 지역의 산업과 식재료,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입니다. 그리고 셰프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로컬 미식 경험을 소개하는 프레젠테이터입니다. 이것이 제가 오랫동안 꿈꿔왔고 앞으로 지켜야 할 역할이죠.”
페누아
주소 3338 Miyakubocho Tomoura, Imabari, Ehime
웹사이트 fenua-shimanami.com
런치 12:00~14:00 (¥16,500)
디너 18:00~20:00 (¥13,200)
바다가 주는 미각

마리오&라파엘라, 후쿠오카 준
Mario & Raffaella(マリオ&ラファエラ), Jun Fukuoka(福岡淳)
“한국 셰프들과 마쓰야마 바다에서 낚시할 수 있는 기회라니, 얼마나 설렜는지 잠도 설쳤어요.” 후쿠오카 준 셰프의 활기찬 인사를 받으며 우리는 미쓰야마항에 정박한 마루요시호에 승선했다.
에히메현은 명실상부한 ‘도미(鯛)’의 고장이다. 세토내해를 마주하고 있어 온화한 해류와 복잡한 해저 지형이 도미가 서식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을 만든다. 일본에서도 에히메의 도미는 명품으로 칠 만큼 유명하다. 현 내 어획량만 해마다 2만 톤을 웃도는데, 이는 일본 전국 생산량의 절반 정도. 고급 어종인 데 반해 봄철 산란기부터 가을까지는 해안 가까이에서도 손쉽게 낚을 수 있다. 오늘 세 명의 셰프가 향하는 바다 역시 도미가 넘실대는 곳이다. “쉬는 날엔 종종 친구들과 낚시를 하러 와요. 15분 정도만 가면 도미 포인트가 나올 겁니다.” 낯선 루어낚시를 배우고 있는 두 셰프를 향해 후쿠오카 준 셰프의 설명이 더해진다. 포인트에 다다르자 잔잔한 바다가 펼쳐졌다. 후쿠오카 준 셰프가 뱃머리에서 던진 미끼가 반원을 그리며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근처 수심이 15m 정도예요. 물살이 느리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바로 와요.” 두 셰프가 릴의 감각을 익히고 있을 때, 후쿠오카 준 셰프의 낚싯대에 입질이 왔다. 낚싯대 끝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이내 수면이 갈라졌다. “도미예요!” 후쿠오카 준 셰프의 외침과 함께 붉은빛의 도미가 햇살에 반사되며 올라왔다. 입질이 잠잠해지자 노련한 선장이 금세 항로를 바꾸며 말했다. “세토내해는 수심이 깊지 않아요. 포인트 간 거리가 짧아 금방 옮길 수 있죠.” 배는 5분도 채 안 되어 다시 멈췄고, 셰프들은 성실하게 낚싯대를 내렸다. 이번엔 쥐치가 몇 마리 걸려 올라왔다. 3시간 남짓. 도미 세 마리와 쥐치 세 마리가 바구니를 채웠다. 오늘 한 끼로 충분한 수확이다.



생선을 다루는 철학
배에서 내려 차를 타고 20분 정도 달리자 시내에 다다랐다. 후쿠오카 준 셰프의 마리오&라파엘라는 마쓰야마 중심부에 자리한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펄떡대는 생선이 담긴 아이스박스를 들고 세 사람은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이진곤 셰프가 비늘을 벗기고, 김기남 셰프는 날을 세워 손질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후쿠오카 준 셰프가 감탄했다. “생선 다루는 손길이 섬세하고 정확해요.”
도미는 얇게 썰려 오일과 레몬즙으로 버무린 카르파초가 됐다. 투명한 살점 위로 레몬의 산미가 은은하게 번졌다. 이진곤 셰프가 한 입 머금으며 말했다. “살이 정말 탱탱하네요. 도미의 단맛이 오일 향을 뚫고 나오는 것 같아요.” 후쿠오카 준 셰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을은 도미에 지방이 가장 많은 시기입니다. 이 맛을 위해 낚시를 하죠.” 이어 쥐치 다다키가 나왔다. 뜨거운 물을 부어 겉만 살짝 익힌 흰살에 감귤 껍질을 갈아 올린 듯한 향이 스쳤다. 김기남 셰프가 젓가락질을 멈췄다. “씹을수록 감칠맛이 납니다. 생선이 아니라 고기 같은 식감이에요.” 후쿠오카 준 셰프가 답했다. “쥐치는 날이 따뜻할수록 맛이 올라요. 단단한 살과 부드러운 지방의 균형이 중요하죠.” 통통한 흰살생선은 노릇하게 구워 수제 콜리플라워 페이스트와 함께 접시에 담았는데, 불 향이 은근히 배어 있어 씹을수록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콜리플라워 페이스트는 크림보다 가볍고 고소했다. 남은 생선으로 만든 파스타는 갓 구운 생선의 기름이 면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감칠맛을 냈다.
에히메현의 우치코라는 작은 시골 마을 출신인 후쿠오카 준 셰프는 어릴 적부터 도시를 동경했다. 동시에 생선을 사랑했다. 자연스레 생선을 만지는 셰프를 꿈꾼 그는 유럽을 여행하며 미식 경험을 쌓고, 나고야에서 12년간 일식과 프렌치를 배운 뒤 독립해 고향 인근 중심 도시 마쓰야마에 자리를 잡았다. 덕분에 마리오&라파엘라에선 인근 바다에서 나는 도미, 갯장어부터 보리멸, 전갱이, 정어리, 볼락, 학꽁치 같은 작은 어류로 만든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세토내해는 물살이 잔잔하고 얕은 해역이라 플랑크톤이 풍부해 작은 어류가 무척 많아요. 철마다 나오는 작은 생선으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메뉴는 일주일 단위로 바꿔요. 똑같은 걸 두 번 내는 게 지루하거든요.”
요리를 즐기던 이진곤 셰프가 의아한 듯 말했다. “주방에 간장이 없어요. 오늘 만든 요리에도 간장을 쓰지 않았고요. 아무리 프랜치 레스토랑이라 해도 일본 음식점인데 말이죠.” 빙긋 웃는 후쿠오카 준 셰프의 답변은 놀라웠다. “요리에 절대 간장을 쓰지 않아요. 간장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죠. 간장은 완벽한 조미료인 동시에 재료 본연의 맛을 덮어요. 마늘도 마찬가지죠. 어종에 따라 천차만별인 생선의 풍미를 최대한 살리려면 간장과 마늘을 포기해야 했어요. 버터나 크림을 거의 쓰지 않고, 오일과 채소 페이스트로 소스를 만드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요리를 차근차근 음미하던 김기남 셰프가 입을 뗐다. “간장과 마늘 대신 피망 같은 채소를구워 단맛과 감칠맛을 내셨네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풍미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조미료를 덜어내니 원재료의 맛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져요. 보기엔 서양 요리 같지만 일식과도 조화롭게 섞였어요. 하지만 또 완전히 일식 같지도 않고요.” 이진곤 셰프가 덧붙였다.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던 요리입니다. 무국적, 아니 마리오&라파엘라라는 나라의 요리 같달까요.”
후쿠오카 준 셰프가 웃으며 말했다. “정확합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일본 요리의 이미지를 깨고 싶었어요. 자연스러운 밸런스를 찾고 싶었죠. 양념이 강하면 미각은 피로를 느끼거든요. ‘야사시이(やさしい, 부드럽고 친절한)’ 맛을 내고 싶어요. 손님이 이 음식이 어느 나라 스타일인지 구분하지 않아도 돼요. 맛있게 즐겼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마리오&라파엘라
주소 5 Chome-2-6 Chifunemachi, Matsuyama, Ehime
웹사이트 marioandraffaella.jp
런치 12:00~14:30(플레이트 ¥1,600)
디너 18:00~22:00(셰프 오마카세 코스 ¥5,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