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118년의 손맛, 우와지마의 전통 어묵집
노나카 가마보코(野中かまぼこ店)

우와지마 시내의 좁은 골목에 자리한 작은 공장에선 1년 내내 향긋한 바다 내음, 묵직한 기름 향, 입맛 당기는 어묵 냄새가 퍼진다. 이 곳의 상호명은 ‘노나카 집안의 전통 어묵’이라는 뜻의 노나카 가마보코. 메이지 40년(1907년) 창업해 지금까지 118년째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어묵을 만드는 곳이다. 작은 생선을 통째로 갈아 넣고 튀긴 우와지마식 자코텐(じゃこ天)과 흰살생선의 살만 갈아 찌거나 굽는 가마보코(かまぼこ) 두 종류를 생산한다.
“새벽마다 가져온 생물 생선만 사용합니다. 자코텐은 멸치과인 하란보(ハランボ)라는 생선, 가마보코는 에소(エソ)라는 생선으로만 만듭니다. 둘 다 전분을 전혀 넣지 않고 얼음과 소금,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가요.” 4대째 이곳을 지키는 노나카 오사무(野中統) 대표는 말했다.
이곳에선 모든 어묵을 맷돌처럼 생긴 기계에 생선을 넣고 곱게 간 뒤 수작업으로 만든다. 가마보코는 손으로 말아서 모양을 잡고, 천연 재료를 넣고 무지개색을 내거나 햇볕에 말린 뒤 다시 갈아 만들기도 한다. 자코텐은 틀에 한 장씩 눌러 담아 일정한 모양을 잡는다. 이 작업은 창가의 테이블에서 하는데, 현란한 손놀림으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무틀에서 형태를 갖춘 반죽은 뜨거운 기름 속으로 들어가며 진한 향을 내뿜는다. 표면이 살짝 부풀어 오르면 생선 살의 거친 결이 드러난다. “신선한 생선일수록 결이 거칠고 구울 때 갈라지기도 하죠.” 노나카 오사무 대표가 완성된 자코텐을 바라보며 말했다.
김기남 셰프와 이진곤 셰프도 직접 자코텐을 빚어봤다. 생선 반죽이 손바닥에 달라붙자 잠시 멈칫했지만, 금세 균형 잡힌 모양을 만들어 숙련된 솜씨를 뽐냈다. 기름에 반죽을 넣는 두 사람의 손놀림은 놀라울 만큼 안정적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노나카 오사무 대표가 미소를 띠며 농담을 던졌다. “내일부터 바로 출근하세요.”
두 셰프가 직접 만든 자코텐을 베어 물었다. 짭쪼름한 감칠맛이 입안 가득 밀려들었다. 두 셰프의 입에서 감탄이 새어 나왔다. “거친 겉면과 달리 속살이 탄력 있고 촉촉해요.” “어떻게 120년 가까이 이어왔는지 단번에 납득되는 맛이에요.”
바다 내음, 기름 튀는 소리, 막 튀겨낸 어묵의 쫄깃한 식감. 노나카 가마보코의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은 118년이라는 시간 동안 변하지 않은 채 우와지마의 골목을 지키고 있었다.
주소 1-53 Horibatacho, Uwajima, Ehime
에히메의 진미, 사라져가는 조개
세토가이(瀬戸貝)

페누아 레스토랑에서 레몬 위에 다져진 세토가이를 맛본 우리는 쫀득하면서도 향이 깊은 이 커다란 조개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김기남 셰프와 이진곤 셰프는 페누아의 모리시게 마사히로 셰프를 따라 세토가이를 잡는 어부를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무라카미 미쓰아키(村上光昭) 선장은 오시마섬 해안가에 정박된 에비스마루(えびす丸)호 위에서 오늘 수확량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옛날엔 어획량이 많았습니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한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세토가이 수확이 엄청났어요. 어시장에선 껍질을 벗긴 세토가이가 흔하게 판매됐죠. 히로시마, 시코쿠 등 특히 세토내해 연안에서 많이 잡혀 이름도 ‘세토의 조개’라는 뜻이에요.” 그는 10개 남짓한 세토가이가 들어 있는 그물을 보여주며 말했다. 성인 남성의 손바닥만 한 크기에 두꺼운 껍질, 은은한 진줏빛을 띠었다. 조갯살은 단단해 술찜, 솥밥, 조림, 구이 등 다양한 요리에 쓰인다.
“요즘은 수확한 걸 어시장에 갖다놓을 새도 없이 알음알음 판매하면 끝나버려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시내 식당에서 솥밥이나 바비큐 재료로 쓰였지만, 최근엔 그마저 사라졌죠. 지금 먹을 수 있는 곳은 제가 알기론 페누아뿐이에요.”
현재 이 지역에서 세토가이 어업은 무라카미 미쓰아키 선장을 포함해 10여 명만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아들과 함께 어업을 나간다. “큰 사이즈는 5~6년, 작은 것도 3년 이상 된 세토가이를 캡니다. 보통 암초나 바위 지대의 수심 20m 부근에서 서식하지만, 최근에는 수심 30m 이하까지 깊이 내려가야 볼 수 있어요. 체력이 부담돼 이제는 아들이 잠수를 맡고, 저는 배 위에서 에어 펌프를 조작합니다.”
어부의 이야기를 한참 귀 기울여 듣던 김기남 셰프가 말했다. “한국에서도 예전엔 지역마다 바다 조개가 있었어요. 통영과 거제의 돌조개, 인천과 군산의 백합같이요. 하지만 한국도 수확량이 줄고 있죠. 이 특별한 식재료의 명맥이 좀 더 이어지고 다시 전성기가 오길 바라요.”
환상의 검은 무화과
구로이치지쿠(黒いちじく)

에이짓카 농장을 지키는 농부 아오노 우쿄(青野 右京)의 손에는 진한 루비색 과육을 머금은 검은 무화과가 가득했다. “지금이 수확기의 절정입니다. 내일이면 완숙될 무화과예요. 당도가 높아 ‘환상의 과일’로 불리죠. 어서 드셔보세요.” 얇고 검은 과피를 뚫고 진득한 과즙이 혀끝에 맴돌았다. “정말 달콤하네요. 흑설탕을 넣은 무화과 같아요. 베리, 몰트 향도 느껴지고요. 씨앗의 사각한 식감도 무척 좋아요.” 한 입 베어 문 이진곤 셰프가 놀라며 말했다. “한국에서 검은 무화과는 쉽게 볼 수 있는 과일이 아니죠. 재배가 까다롭고 수확량이 적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일본은 어떤가요?” 김기남 셰프가 물었다. 일본의 검은 무화과인 구로이치지쿠 역시 수확량이 적어 일본 내 생산량은 전체 무화과의 약 5%에 불과하다. 오시마섬 동쪽에 자리한 에이짓카는 그중에서도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약 5000㎡)를 자랑하는 농장이다.
농장이 자리한 곳은 에히메현 이마바리시의 오시마섬. 세토내해에 둘러싸인 이 섬은 검은 무화과 재배에 이상적인 환경을 갖춘 땅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큰 일교차가 당도를 높인다. 화산성 자갈과 사질 토양이 많아 배수가 탁월하고, 뿌리가 단단한 것도 특징이다. 이런 환경 덕분에 에이짓카의 검은 무화과는 평균 당도가 20브릭스를 넘는다. “과피가 균일하게 검게 변하면서 광택이 사라질 때가 가장 달아요. 과육에 점성이 생겨 스푼으로 떠먹어도 맛있죠.”
농원을 이끄는 아오노 우쿄는 베트남에서 여행업에 종사하다가 2022년 할아버지의 고향인 오시마섬으로 이주했다. “오사카에서 태어났지만, 오시마는 아버지의 고향이자 할아버지의 집이 있는 곳이었어요. 할아버지가 연세가 드시자 이 땅을 어떻게 할지 가족이 상의했죠. 저에게 오시마는 뿌리와 같은 곳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내려왔어요. 집을 지키며 무화과 밭을 관리하기 위해서요.” 베트남에서 관광객을 맞이하며 쌓은 감각은 농장 운영에도 녹아 있다. 방문객을 위한 견학 프로그램이나 체험형 이벤트를 직접 기획해 지역의 새로운 농업 모델을 구축하는 중이다. 농원 한쪽에는 비영리 법인 노시마노사토(能島の里)가 운영하는 무화과 카페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농장에서 수확한 구로이치지쿠로 만든 잼, 소스, 디저트도 맛볼 수 있다.
귤 먹는 도미, 바다의 지속가능성
미캉타이(みかん鯛)


에히메현의 감귤(みかん, 미캉)은 일본 전체 생산량의 20%, 연간 약 21만 톤을 차지한다. 향이 강하고 새콤달콤한 에히메의 상징적인 이요칸(伊予柑)을 비롯해 고급 품종인 베니마돈나(紅まどんな), 과즙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온주미캉(温州みかん) 등 종류만 40가지에 이른다. 이 중 주스 가공용으로 선별되는 양은 약 4만 톤이지만, 착즙 과정에서 발생하는 껍질·씨·과육 찌꺼기 같은 약 1만5000톤의 부산물과 이를 처리하는 비용은 감귤 농가들의 오래된 골칫거리였다. 수분 함량이 70% 이상이라 부패가 빠른 탓에 악취와 처리 비용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에히메 우와지마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해산물 가공·판매 회사 우와지마 프로젝트가 버려지는 감귤 찌꺼기에 주목한 것도 이런 연유다.
“버려지는 감귤 찌꺼기를 에히메의 대표 식재료인 도미에 적용했습니다. 감귤 부산물에는 생선의 비린내를 줄이고 항산화에 도움이 되는 리모넨과 플라보노이드라는 성분이 들어 있거든요. 오랜 실험을 통해 감귤 부산물로 만든 펠릿 사료를 3~6개월간 먹은 도미는 일반 양식어에 비해 지방산 산패율이 낮고, 신선한 빛깔을 오래 유지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귤과 도미의 합성어인 ‘미캉타이’가 그렇게 개발됐죠.” 우와지마 프로젝트의 경영관리부 니시지마 유리코(西島由里子)의 설명이 이어졌다. “미캉타이는 일반 도미보다 비린내가 적고 향긋해요. 생선을 못 먹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죠. 인근의 초등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좋답니다.”
10여 년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양식업체는 20여 곳 이상, 연간 300여 톤이 도미의 사료로 가공된다. 주로 이요칸을 가져와서 냉동 후 1년간 사용하는데, 감귤 사료를 출하 3개월 전부터 먹이는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 사료가 너무 건강한 탓에 도미가 살 찌지 않거든요. 살이 적당히 오른 뒤 향과 질을 향상시키죠.” 이진곤 셰프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렇게 자란 미캉타이는 어디로 수출하나요? 한국에도 보내나요?” 니시지마 유리코가 대답했다. “네, 대부분 일본 내 고급 레스토랑으로 보내고 3kg 이상은 부산까지 수출해요.”
“귤껍질이 폐기물에서 사료로, 사료가 어육으로 바뀌는 순환이 인상적이네요.” 김기남 셰프가 말을 이었다. “귀국하면 제일 먼저 미캉타이를 공수할 방법부터 찾아봐야겠어요. ‘타쿠미 곤’의 손님들에게도 이 맛과 향을 전해주고 싶어요. 물론 이곳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와 함께요.”
DRINK
버려진 농장의 변신
민나노 와이너리(大三島みんなのワイナリー)



세토내해 중앙부, 혼슈 오노미치와 시코쿠 이마바리를 잇는 시마나미카이도(しまなみ海道) 한가운데에 오미시마섬이 있다. 온난한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 덕분에 감귤 재배로 유명한 이 섬이 최근 ‘건축과 와인의 섬’으로 다시 주목받는 중이다. 그 중심에는 건축가 이토 도요(伊東豊雄)가 설립한 민나노 와이너리가 있다. 시작은 2011년, 이토 도요 건축 뮤지엄을 세우고 지역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였다. “세토내해엔 와이너리가 없었고, 고령화로 버려진 감귤 농장이 많았어요. 이토 도요는 감귤이 잘 자라는 환경이라면 포도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죠.” 민나노 와이너리 사무국의 가와타 쇼코(川田祥子)의 말이다. 그녀는 남편 가와타 유스케(川田佑輔)와 함께 2016년 오미시마로 이주했다. 와인 공부를 하던 두 사람은 이토 도요의 제안을 받아 반년 체류할 생각으로 왔다가 이 섬에서 아이를 낳고 정착했다. 이후 부부는 민나노 와이너리의 밭을 일구며 와인 프로젝트를 실현해왔다.
민나노 와이너리의 포도밭은 한곳에 모여 있지 않다. 버려진 감귤밭을 활용하기 때문에 세토우치 일대 20여 개 농장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 “토양과 바람이 제각각이라 포도 맛이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포도를 수확하는 농장에 따라 와인 맛이 조금씩 달라요. 동시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늘 과제죠.” 가와타 쇼코는 밭을 관리·보수하고, 새로운 포도밭을 조성하며 주민과 협의하는 일까지 직접 맡는다. 지역과의 관계가 곧 양조의 일부인 셈이다.
2019년 오픈한 민나노 와이너리 숍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진 와인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김기남 셰프는 머스캣 베일리 A로 만든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을 맛본 뒤 “레드 품종이지만 껍질을 쓰지 않아 맑고 산뜻합니다. 일본식 전골과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진곤 셰프는 같은 품종으로 담은 레드 와인을 음미하며 “딸기 향이 은은하고 부드럽네요.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맛이에요”라고 덧붙였다. 가와타 쇼코가 마지막으로 감귤을 블렌딩한 스파클링 와인을 따랐다. 이토 도요의 캐릭터가 그려진 귀여운 라벨이 눈을 사로잡았다. “산미를 좋아하는 제 입맛에 가장 잘 맞아요. 감귤로 만들어서인지 발포감이 좋아 얼음에 타면 사와처럼 상쾌한 맛이 나겠어요. 여름엔 낮부터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네요.” 이진곤 셰프가 말했다.
해풍을 맞으며 자란 과일로 만든 와인에는 특유의 짠 여운이 남았다. 바다와 바람, 감귤과 포도,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함께 익어가는 이곳에서, 세토내해의 유일한 와이너리이자 이름이 지닌 뜻처럼 ‘모두의 와이너리’라는 의미를 비로소 실감했다.
주소 5562 Omishimacho Miyaura, Imabari, Ehime
100년 넘은 양조장의 진화
우메비진 주조(梅美人酒造株式会社)

에히메현 야와타하마(八幡浜) 항구 골목에 들어서면, 거대한 붉은 벽돌 굴뚝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굴뚝에 새겨진 하얀 글자는 ‘우메비진 본점’이라는 의미의 ‘梅美人 本店(우메비진혼텐)’. 1916년 창업 이후 6대째 가업을 이어오는 우메비진 주조의 근거지다. 이곳은 두 셰프가 출발 전부터 가장 기대하던 니혼슈(日本酒) 양조장이다. 입구에서 우에다 히데키(上田英樹) 대표가 우리를 맞이했다. “여긴 한때 지역 최대 규모의 양조장이었습니다. 지하 3m까지 이어지는 굴뚝을 포함해, 양조장 안에만 총 네 개의 국가 지정 문화재가 있어요.” 우에다 히데키 대표가 우리를 안내하며 말했다. 오래된 목재 기둥이 그대로 남은 발효실은 은은한 쌀 향이 가득했고, 안쪽에는 지금도 사용하는 대형 사케 탱크들이 줄지어 있다. 벽에는 100년 전부터 사용된 온도계와 교반용 나무 주걱이 걸려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진곤 셰프가 온기 가득한 향을 맡으며 “사케 향이 멜론이나 배 같네요” 하고 미소를 지었다.
양조장의 대표 니혼슈 ‘다카오 다이긴조’는 야마다니시키(山田錦)를 35%까지 도정해 만든 최고급 사케다. 한 모금 마신 이진곤 셰프가 감탄을 내뱉었다. “멜론과 배 향이 은은하게 감도네요. 탄산감이 거의 없는데 깔끔하게 사라지면서 미세한 단맛이 남아요.” 쌀 본연의 구수한 향이 살아 있는 ‘우메비진 준마이 다이긴조’를 머금은 김기남 셰프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쌀의 질감이 살아 있고 여운이 깁니다. 전체적으로 묵직한 밀도감이 느껴져요.”
숙성실 문을 열자 나무 향이 한층 짙어졌다. 김기남 셰프가 흥미롭게 물었다. “여긴 위스키 숙성 통이 있네요? 니혼슈만 만드는 게 아니었나요?” 우에다 히데키 대표가 답했다. “100년 넘게 니혼슈만 빚어왔지만, 최근 소비가 줄면서 3년 전부터 위스키 양조를 시작했습니다. 일본산 벚나무, 참나무 종류인 상수리나무, 밤나무 등으로 만든 숙성 통이 있어요.” 몰트위스키 ‘다키(多喜)’까지 마신 김기남 셰프가 말을 이었다. “3년 만에 이런 맛을 구현하다니, 대단합니다. 바닐라와 캐러멜의 풍미가 좋고 스파이시한 밸런스까지 느껴집니다. 100년 넘게 니혼슈를 담은 구력이 위스키에도 발현되었네요.”
우메비진은 에히메현산 ‘마쓰야마미이(松山三井)’와 ‘시즈쿠히메(しずく媛)’, 그리고 일본 최고 주조용 쌀로 꼽히는 효고현산 ‘야마다니시키’로 주조한다. 다이긴조에는 야마다니시키를, 그 외에는 에히메산 품종을 쓴다. 술맛의 중심이 되는 물은 지하 30m에서 길어 올린 천연수다. 신성한 산으로 불린 인근 레이호 킨잔 이즈시산(霊峰金山出石山)의 빗물이 오랜 세월 땅속을 흐르며 미네랄을 머금은 물이다.
우메비진의 술을 삼킨 두 셰프의 표정에는 여운이 오래 남았다. 세대가 바뀌어도 그 향과 질감은 변하지 않는다. 우메비진의 술맛에는 100년이란 시간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주소 1557-2, Yawatahama, Ehime
감귤 향이 퍼지는 양조장
고고시마 비어팜(ごごしまビアファーム)


마쓰야마에서 가장 가까운 섬 고고시마(興居島)는 다카하마(高浜) 선착장에서 페리로 10분이면 도착한다. 세토내해의 잔잔한 물결 위에 떠 있는 이 작은 섬 한쪽에 200여 년 된 고택을 개조한 고고시마 브루어리가 자리한다. “원래 무역업을 하던 집이었어요.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사시고 나서 7년 정도 빈집으로 있던 공간을 2023년 3월 브루어리로 오픈했습니다.” 요코하마에서 오랫동안 셰프로 일했던 나구모 노부키(南雲 信希) 대표는 여행차 방문한 세토내해의 풍경을 잊지 못했다. ‘언젠가 이런 바다 마을에서 오래된 민가를 고쳐 가게를 열고 싶다’는 마음으로 여러 지역을 돌다 이 섬에 정착했다. 팬데믹으로 손님을 받기 어려운 시기였던 만큼 조리·손질 과정이 요리와 닮은 맥주 양조를 선택해 판매 활로를 찾았다.
고고시마 브루어리는 에히메산 재료를 맥주에 녹여낸다. 인근 농가에서 나는 감귤인 이요칸의 껍질만 사용한 ‘이요칸 IPA’, 에히메산 쌀 마쓰야마미이를 넣은 ‘라이스 라거’, 인근의 코튼 존 카페가 로스팅한 커피 원두를 넣고 우려낸 ‘커피 엠버 에일’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이요칸 IPA는 지난해 일본 내 그레이트 비어 어워드(Japan Great Beer Awards)에서 금상을, 세계 각지의 크래프트 맥주를 평가하는 인터내셔널 비어 컵(International Beer Cup)에서 동상을 차지했다. “이요칸 IPA는 7월부터 12월까지 수확하는 감귤로 만듭니다. 여름엔 초록빛을 띠던 감귤이 시간이 지나며 노랗게 변하죠. 그 시기의 과일에 따라 맛과 향이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몇 월에 딴 이요칸을 썼는지가 중요해요.”
감귤 껍질의 쌉싸름함과 홉의 씁쓸함이 겹치는 이요칸 IPA는 예상보다 당도가 낮고 산뜻했다. 이진곤 셰프는 “구운 생선이나 튀김류와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쌉싸름하면서도 부드러워 쉽게 마실 수 있겠네요”라며 잔을 비웠다. 이어 레몬그라스를 넣은 맥주를 맛본 김기남 셰프가 말을 이었다. “고수가 들어가는 벨기에 맥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습니다. 프루티하면서도 친숙한 맛이네요. 가벼운 맥주를 찾는 분들에게 잘 맞을 것 같아요.”
고고시마 브루어리는 시즌에 따라 2~3종류의 라인업을 더한다. 올가을과 겨울에는 대표의 고향인 요코하마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가 수확한 고추로 만든 맥주, 감귤 알맹이만 넣은 프리미엄 감귤 맥주를 준비 중이다. 이 외에도 지역의 셰프와 함께하는 스시 디너, 셰프의 특별식 샤부샤부 코스, 세 종류의 라멘과 수제 맥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시즌별 프로젝트 등을 팝업 형태로 선보인다.
주소 803-1 Yuramachi, Matsuyama, Ehime
밸런스로 완성한 부부의 맥주
오미시마 브루어리(大三島ブリュワリー)

늦은 오후가 되면 오미시마 마을은 저녁을 먹거나 산책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시마나미카이도가 ‘사이클의 성지’로 불리는 만큼, 이 마을은 라이더들이 하루를 쉬어가는 거점이다. 해 질 무렵이면 짐을 풀고 한적한 분위기를 느끼려는 여러 국적의 라이더들로 마을이 붐빈다. 작은 마을이지만 레스토랑과 카페, 디저트 가게, 와인과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바까지 두루 갖췄다. 마을 가운데 자리한 오미시마 비어는 라이더들이 즐겨 찾는 맥주 브루어리다.
에히메현 마쓰야마 출신의 다카하시 교헤이(高橋享平)와 아내 다카하시 나오코(高橋尚子)가 2018년부터 시작한 오미시마 비어는 화려하지 않지만 누구나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맥주를 만든다. 오사카의 브루어리에서 함께 일하던 부부는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 맥주를 만들고 싶다’는 남편의 바람대로 이주를 결정했다.
오미시마 비어의 맥주는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퍼지는 탄산감, 가벼운 바디감, 정돈된 마무리감이 느껴지는 맛이다. “다양한 재료를 과감하게 넣거나 실험적인 풍미를 추구하진 않습니다. 기본에 충실하려 애쓰죠. 밸런스가 완벽하게 맞는 한잔을 만드는 데 집중해요. 같은 레시피를 수십 번 반복해도 매번 미세한 개선점이 나오거든요.” 다카하시 교헤이가 말했다.
이진곤 셰프는 골드 에일과 화이트 에일, IPA, 페일 에일을 각각 조금씩 맛본 뒤 감탄했다. “모든 맥주가 적당히 쓴맛과 몰트의 단맛이 은은하게 어우러집니다. 전체적으로 무척 조화로운 맛이에요.” 김기남 셰프가 말을 이었다. “오미시마산 무농약 감귤을 넣은 화이트 에일에 자꾸 손이 가네요. 평소에 산미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도, 이 맥주는 감귤 맛이 과하지 않아 좋아요. 엄청난 집중력으로 맛의 밸런스를 잡았다는 것이 혀끝으로 느껴져요.”
오미시마 비어의 또 다른 특징은 생맥주로만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병이나 캔이 아닌, 탱크나 그라울러 같은 생맥주 전용 용기에 담아 판매한다. 맛의 미세한 변화조차 막고자 하는 부부의 고집이다. 그럼에도 홋카이도, 규슈 지역의 레스토랑 등에서 주문이 이어진다. “패트병으로 판매하기도 해요. 냉장 보관 후 10일 이내에 드시는 걸 권장하죠. 직접 용기를 가져오는 분도 많아요. 이런 경우엔 2일 이내에 마시길 권합니다.”
견과류나 살라미, 베이컨 같은 간단한 맥주 안주는 있지만 식사류는 판매하지 않는다. 주변에 맛있는 레스토랑이 많으니 그곳에서 식사를 하라는 배려다. 가을엔 인근의 로스터리 공장에서 가져온 원두를 이용한 커피 맥주, 겨울엔 농후하면서도 깔끔한 맛의 흑맥주도 즐길 수 있다.
주소 5589 Omishimacho Miyaura, Imabari, Eh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