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힘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LEE JIHYE
  • PHOTOGRAPHY BY jeon jaeho

목포의 힘

Mokpo in Depth

개항기 전국의 물류가 모이며 융성한 발전을 거듭했던 항구도시 목포.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고스란히 남은 흔적들을 발판 삼아 원도심을 중심으로 재생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감도 높은 여행지로 탈바꿈한 목포를 깊숙이 들여다봤다.
  • written by LEE JIHYE
  • PHOTOGRAPHY BY jeon jaeho
2024년 11월 01일

Creator

홍동우

Q 2018년부터 ‘괜찮아마을’을 통해 목포와 인근 지역을 여행하는 새롭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벌였다. 주로 어떤 것이 있나? 행정안전부의 지원을 받아 목포에 살고자 하는 청년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이 시작이었다. 청년들은 사업을 하거나 책, 연극 대본을 쓰고 앨범을 완성하기도 했다. 영화를 만든 친구도 있었는데, 나중에 전주국제영화제 한국 장편영화 경쟁 부문에 올라갈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났다. 이후엔 여행사로서 웰메이드 체류형 여행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흑산도 홍어썰기학교를 나와 창업한 사장님의 홍엇집에 들어가 생홍어삼합을 시식한다든가 선뜻 들어가기 힘든 레트로한 외관의 다방에서 쌍화차를 먹어보고, 목포항에서 열리는 새벽 경매장을 구경한 후 해가 뜨면 문을 닫는 포장마차에서 간식을 먹고 일출을 보러 가는 식이다. 계절과 장소에 따라 10개 정도의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Q 캐나다 여행 가이드북 포토그래퍼, 전국 일주 여행사 사장, 제주 게스트하우스 주인이라는 범상치 않은 이력을 가졌다. 여기서 익힌 노하우를 괜찮아마을에서 풀어낸 것인지? 맞다. 가이드북 포토그래퍼를 하며 여행에 흥미를 느꼈고, 대학생 때 갔던 독일 여행에서 카셰어링을 처음 경험한 뒤 스쿠터 셰어링 사업을 시작했다. 여행을 업으로 하고 싶어 전국 일주 전문 여행사를 만들었다. 총 1천300여 명의 사람들과 지구 두 바퀴 거리를 달렸다.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땐 손님들과 옷을 맞춰 입고 여행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은 ‘자꾸 가고 싶은 편안한 여행지를 만들고 싶다’는 것. 괜찮아마을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Q 다양한 지역을 돌아다니다 연고도 없는 목포에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어떤 확신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우선 땅값이 저렴했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월세가 점점 비싸져 고민하고 있을 때, 손님으로 왔던 시인 한 분이 목포를 추천해주셨다. 직접 경험한 목포는 여행지로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KTX와 가까운 원도심 접근성, 저렴한 월세, 융성했던 과거와 그 흔적을 간직한 공간들, 풍부하고 맛있는 먹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Q 괜찮아마을에는 주로 어떤 여행객이 오나? 20~40대 여성이 많다. 우리 세대의 평균 이사 횟수는 8번. 그만큼 고향, 힘들 때 찾는 곳이 사라지고 있다. 괜찮아마을에는 고향에 대한 판타지를 가진 청년들이 주로 온다.
Q 목포의 무엇이 당신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가? 아이러니하지만 소멸, 소외다. 목포는 한 해 200명씩 줄어드는 인구소멸지역이다. 빈 공장, 빈집도 늘어난다. 이를 이용해 재미있는 것을 할 수 있다. 기능을 잃어버린 도시에 남아 있는 인프라를 활용해 관광 기능을 넣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외도 그렇다. 목포에 근대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이유는 개발 가치가 떨어져 소외됐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이 오히려 딥다이브를 좇는 요즘의 여행과 맞아떨어진다.


Project

괜찮아마을

훌쩍 어딘가 가고 싶지만 계획은 세우기 싫을 때. 혼자 여행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내내 혼자이긴 싫을 때. 괜찮아마을은 이런 고민에 빠진 청년들이 목포로 향하는 데 도움을 준다. ‘따뜻한 위로를 받고 가는 여행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괜찮아마을은 홍동우 대표와 뜻을 같이하는 다섯 명의 스태프가 꾸려가는 여행사. 겉만 훑는 여행이 아니라 로컬을 좀 더 들여다보고 그들과 함께 즐기는 여행을 만든다. 그래서 생긴 것이 거주권이다. 거주권의 핵심은 숙박과 여행 프로그램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것. 원도심 투어, 야간 투어, 요트 투어, 남도 투어 등 괜찮아마을이 제공하는 여행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로컬이 직접 운영하는 숙박 시설을 여행자의 취향에 맞게 배정한다. 예컨대 ‘루프톱이 있는 숙소’라거나 ‘조용하게 쉴 수 있는’ 혹은 ‘파티를 하는 숙소’ 같은 취향이다. 거주권에는 24시간 공용 라운지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다 가거나 텀블러, 전기자전거를 대여하는 것도 포함. 스태프들과 원도심을 걸으며 필름카메라로 추억을 남기고, 처음 만난 여행자와 시장에서 산 생선을 함께 구워 먹어보는 것도 좋겠다. 어느새 목포는 언제 어떻게 와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는 마을이 되어 있을 것이다.


Community

공동체의 공간들

목포에는 공동체가 운영하는 소박하면서도 매력적인 공간들이 있다. 마을기업 만인계의 ‘만인살롱’과 건맥협동조합의 ‘1897건맥펍’이 그런 곳이다. 200여 명의 시민이 모인 마을기업 만인계는 ‘만 명이 하는 계모임’이라는 의미의 만인계에서 따왔다. 조선시대까지 성행하던 계문화로, 계원을 모아 각각 일정액의 돈을 걸게 하고 계알을 흔들어 뽑은 뒤 등수에 따라 돈을 나눠줬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마인계터로’라는 도로명으로 만인계의 흔적이 남은 곳에 만인살롱이 들어섰다. “아침엔 7천원이면 든든한 가정식 백반을 먹을 수 있는 뷔페가 열립니다. 원도심엔 로컬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만 50개가 넘는데 사장님이 계원일 경우 10% 할인돼요. 저기 있는 외국인은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3일째 묵고 있는 숙박객인데 아침마다 같은 메뉴를 먹게 하는 게 미안했는지, 오늘은 사장님이 직접 데려오셨네요.” 옆 테이블과 눈인사를 나눈 제갈경희 대표의 말이다. 만인살롱은 지금도 곗돈을 모아 일부는 옛날 방식으로 계통을 돌려 추첨하는 ‘계표 돌리기 행사’를 진행하고 동네 주민을 대상으로 바리스타 교육, 음악회, 인문 강의, 전시회 등도 주최한다. 건해산물거리 한가운데 자리한 1897 건맥펍 역시 200여 명의 상인이 중심이 된 건맥협동조합에서 운영한다. 건해산물거리를 부흥시키기 위해 여관으로 쓰이던 건물을 개조해 맥주펍으로 오픈한 것이 조합의 시작. 2021년부터는 여름밤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는 ‘야장 문화’에 건해산물을 적용한 건맥축제를 열었다. 박창수 이사장은 축제를 기획한 중심 인물. “축제는 토요일마다 약 세 달간 열리는데, 매주 500여 명이 참석합니다. 특히 올해는 다른 지역에서 여행 오신 분들이 반 이상이었어요.” 평소에는 펍과 함께 위층 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으니, 건해산물과 생맥주가 간절한 여행자라면 놓치지 말자.


Street

원도심 투어

일제강점기에 전국에서 3대 항구로 꼽힐 만큼 번성했던 목포는 해방 이후 쇠락을 거듭했다. 산업화의 물결을 타는 데 뒤처지는 바람에 도로나 건축이 재개발되지 않았다. 덕분에 구 목포일본영사관,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구 호남은행, 경동성당 등 다양한 근대건축물이 지금까지 온전히 남아 있다. 구 목포일본영사관은 1900년 빨간 벽돌로 지은 서양식 건축물로 현재는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개관했다. 아름다운 외관으로 드라마 <호텔 델루 나>의 촬영지로 쓰이기도. 내부에는 목포 개항과 당시 조선의 사회상, 일제의 수탈의 역사를 증언하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걸어서 10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엔 목포근대역사관 2관이 있다.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으로 사용됐던 이국적인 석조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에 가장 많은 소작료를 거둔 상징적인 장소. 이곳을 가로질러 노적봉에 오르면 목포 원도심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외세의 경제적 침략에 대항해 국내 최초로 민족자본으로 설립한 호남은행은 현재 목포문화원으로 쓰이고 있다. 목포에 남은 유일한 근대 은행 건물이기도 하다. 1924년 갑자년부터 지금까지 대를 이어 운영하는 갑자옥모자점도 흥미롭다. 작은 골목에 아기자기하게 들어선 상점을 구경하는 재미도 크다. 목포를 상징하는 비파나무 굿즈를 판매하는 비팡이네나 70대에 창업하신 할머니가 운영하는 한마을 떡집, 1949년부터 문을 연 코롬방제과, 채식 레스토랑 최소한끼 등을 들러보길 추천한다.


Stay

스테이 카세트플레이어

구도심의 스테이 카세트플레이어는 1970년대 지어진 여관 ‘우진장’을 리모델링한 숙소다. 서울의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김민지 대표는 2019년 괜찮아마을을 이용해 목포를 처음 여행했다. 아무 연고도 없었지만, 원도심이 주는 편안함과 마을 커뮤니티에 자연스레 녹아들며 왕래가 잦아졌고 코로나 이후엔 워케이션도 했다. 얼굴을 익힌 주민에게 여관 건물이 매물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민 끝에 매입을 결정한 뒤 목포로 내려왔다. 그는 어릴 적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었을 때 감정을 떠올리며 이곳을 구상했다.
“사람들은 가끔 드라마나 유튜브를 보면서 ‘휴식’한다고 말해요. 저는 그게 진짜 휴식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카세트테이프처럼 늘어지게 쉬는 데서 모티브를 딴 숙소를 만들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 저의 휴식은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다락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온갖 상상을 하는 것이었거든요. 스테이 카세트플레이어에서 이런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바람이었죠. 객실에 TV가 없고 침대 하나, 책상 하나만 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공간이 단출할수록 정신이 편해진다고 믿거든요.”
무인으로 운영되는 스테이 카세트플레이어는 1인실부터 6인이 묵을 수 있는 가족실까지 룸 타입이 다양하다. 1층엔 큐레이션한 서적들, 2층엔 공용 공간과 카세트테이프를 들을 수 있는 청음실이 있다. 3층과 4층엔 서로 이어지는 루프톱도 자리했다.


Drink

목포의 술

목포에는 소규모 우리 술 양조장이 두 곳 있다. 통밀 막걸리를 만드는 밀물주조가 그중 하나. ‘국내 최초, 우주 최초’라고 자부할 만큼 통밀 100%로 만드는 막걸리는 흔치 않은데, 통밀 껍질이 들어가서 발효 기간만 일반적인 쌀 막걸리의 2배가 걸리는 데다가 술덧(누룩을 섞어 버무린 밑술)이 워낙 뻑뻑해 교반(술덧을 휘젓는 과정)이 힘들기 때문. 게다가 요즘 유행하는 달콤한 막걸리에 역행하는 드라이한 맛도 한몫한다. 브랜드 기획 일을 하던 박세희 대표의 경험을 살린 감각적인 공간에선 잔술과 가벼운 스낵을 판매하고 원데이 클래스나 파티, 영화 모임 등도 열린다.
다른 한 곳은 목포역 뒤편에 자리한 남도가양주다. 어머니와 함께 전집을 운영하기 위해 술을 배운 신태민 대표는 막걸리 공부를 하다 고서에서 ‘석탄향’이라는 주조법을 알게 된 후 이를 재현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석탄향 주조법으로 막걸리를 빚는 곳이 없을뿐더러 있다 해도 맛보긴 싫었어요. <임원십육지> 같은 고문서에 기록된 글로만 제조법을 익혔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찰진 막걸리는 밑술부터 다르다. 나주평야에서 재배한 쌀을 불려 가루를 낸 뒤 물을 부어 죽을 만든다. 타지 않게 계속 저어주는 것도 고된 일. 죽의 부드러운 맛이 베이스가 돼 감미료 없는 단맛, 깊은 풍미를 낸다. 숙성도에 따라 다채롭게 변하는 맛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Brand

스몰액션

매년 20만 톤씩 버려지는 폐그물을 포함한 바다 쓰레기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목포 지역 업사이클 브랜드다. 폐그물을 수거해 가방과 파우치 등의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을 만들고, ESG를 주제로 한 공간도 운영한다. “그물, 낚시찌를 먹고 죽은 새들을 묻어준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해변에 왜 이렇게 죽은 새들이 많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행동이 어느새 바다를 청소하고, 폐그물을 주워 오고, 재활용하는 브랜드로 변했죠.” 정태영 대표는 서울에서 도시재생사업을 했던 경험을 살려 목포에 내려와 4년 전, 팀원 두 명과 함께 스몰액션을 창업했다. 이름 그대로 바다를 지키려는 개인의 작은 실천이 모이면 결국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기업이나 공공기관과의 협업, 제품 개발과 판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꾸준히 해변 플로깅이나 캠페인을 주최하는 것도 이름에 담긴 초심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스몰액션과 목포 바다 플로깅에 참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구도심에 자리한 국내 최초 플로깅 센터이자 업사이클 공방으로 향하자. 목포에 베이스를 둔 주류 기업 보해양조와 손잡고 꾸민 공간으로, 스몰액션이 직접 수거한 바다 쓰레기로 만든 전시 작품과 사진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 리사이클 제품과 보해양조 굿즈를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