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새로운 갤러리가 속속 들어서고 있는 멜로즈 힐은 지금 LA에서 가장 뜨거운 크리에이티브 구역이다.
2 아티스트가 만든 놀이공원, 루나 루나. 키스 해링의 회전목마가 보인다.
일라이 브로드와 이디스 브로드의 컬렉션을 전시한다.
2 세계적인 건축 스튜디오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가 ‘장막과 금고(Veil and Vault)’라는
콘셉트로 독특하게 디자인한 더 브로드 내부.
4 LA에 속한 라틴 문화와 예술의 본거지, 올베라 거리.
영화와 음악계에서 LA는 신(Scene)의 시작점이자 부흥의 도화선이라는 수식어를 견고히 유지해왔다. 미국의 시상식인 아카데미와 그래미가 세계가 주목하는 기준이자 성취로 여겨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로 분류되는 예술에서 LA는 독보적인 역사를 쌓아왔지만 미술계의 약진은 최근의 일이다. 대부호의 자산과 기금, 정부 산하의 공공기관 형태로 운영하는 대형 미술관의 탄탄한 라인업에 비해 소규모 갤러리와 비영리기관 같은 인프라는 비교적 빈약했다. 2019년 프리즈(Frieze)가 LA에서 처음 개최된 후 각자도생했던 지역 갤러리들이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2022년 무렵부터 페이스(Pace), 숀 켈리(Sean Kelly), 데이비드 즈위너(David Zwirner) 같은 세계적인 갤러리가 속속 지점을 오픈하면서 ‘아트’와 ‘LA’는 더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조합이 됐다.
고작 열흘가량 머문 내가 이 도시를 관통하는 예술의 약동을 읽고 왔을 리는 만무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예술이 LA의 장면을 변화시키는 움직임은 일개 방문자도 알아차리기 쉬울 만큼 확실히 일어나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건 가는 곳마다 놀라울 만큼 자주 들은 이 문장이다. “I am an artist.” 애벗 키니(Abbot Kinney)의 한 갤러리에서 우연히 만난 요한, 아트 디스트릭트의 벽화와 그라피티를 읽어준 케빈을 비롯해 거리에서, 벼룩시장에서, 카페에서, 레코드숍에서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소개하는 이들을 무수히 만났다. 빠듯한 시간 때문에 더 깊은 얘기를 나눌 기회를 번번이 놓쳐 아쉬웠던 나는 더 브로드(The Broad)에서 자신을 아티스트이자 도슨트라고 소개한 레스터 몬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모두가 부활절 휴가를 떠난 월요일 아침, 그랜드 애비뉴(Grand Ave.)의 한 카페에서 만나 그와 나눈 대화는 표류하던 여정에서 발견한 깃발같았다. “LA는 이제 모퉁이만 돌면 아티스트와 마주칠 수 있는 도시가 됐어요.” 레스터는 그런 경험을 ‘낭만’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자신이 그 낭만을 좇아 이 도시에 온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내게는 이런 경험이 예술이다. 우연히 만난 아티스트와 그의 작품, 삶, 철학과 관련된 얘기를 나눈 것. 이 대화가 게티 센터와 LACMA, 더 브로드에서 고흐, 세잔, 마네, 모네, 드가와 바스키아,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감상하고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아카데미 뮤지엄에서 페드로 알모도바르전을 보는 것만큼이나 의미 있었다는 말을 전한 후 그를 놔줬다.
언젠가 한번 가봐야 할 도시 목록에 LA를 올린 적이 있다면 올해야말로 적기다. 관광 명소 방문 말곤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에게 ‘아트’라는 이정표를 건넨다. 예술이라는 망망한 세계를 가볍게 즐기든 깊이 탐구하든 낭만을 수호하는 이 도시가 당신의 여정을 기꺼이 품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