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떠오르는 녹색 랜드마크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lee JIHYE
  • PHOTOGRAPHY BY. Jeon jaeho
  • Supported by Singapore Tourism Board

새롭게 떠오르는 녹색 랜드마크

New Sustainable Landmarks in Singapore

수천 마리의 새가 날아드는 거대한 자연 새장부터 자연과 기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디지털 계곡까지. 싱가포르의 새로운 장소를 탐닉하는 여행자에게 딱 맞는 네 곳을 제안한다.
  • written by lee JIHYE
  • PHOTOGRAPHY BY. Jeon jaeho
  • Supported by Singapore Tourism Board
2024년 08월 30일

Bird Paradise

버드 파라다이스

“그곳에선 생전 처음 보는 새가 날아다니다 당신의 머리 위에 앉을지도 몰라요. 무리 지은 플라밍고는 연한 분홍색 물감을 쏟아놓은 것 같죠. 새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사람 많은 싱가포르의 도심이 금방 잊힐 거예요.” 지속가능한 의류 브랜드 플랫폼을 운영하는 수잔나 재퍼가 취재 도중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자연 속에서 생명체와 교감하려면 어디를 가야 해요?”라고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나온 곳이 버드 파라다이스였다. 싱가포르 사람들이 입 모아 추천하는 그곳으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고 버드 파라다이스로 향했다.
만다이 레이크 로드에 있는 85m 길이의 아치형 통로인 ‘숲의 관문’을 통과하니 버드 파라다이스 이정표가 나타났다. 숲의 관문은 기린, 말레이 태양곰, 아시아 코끼리, 얼룩코뿔새 등에서 영감을 얻은 거대한 바위 조각이다. 버드 파라다이스, 싱가포르 동물원, 리버 원더스, 나이트 사파리, 여기에 곧 오픈할 레인 포레스트로 들어가는 상징적인 입구다.

지난해 초 52년간 싱가포르의 명소였던 주롱 새 공원이 문을 닫았지만, 이 소식에 안타까워하는 새 애호가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만다이 버드 파라다이스가 곧이어 개장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북부 만다이 야생동물 공원 내에 자리한 버드 파라다이스의 규모는 무려 17만㎡. 주롱 새 공원에 터전을 잡았던 3,000마리의 야생 새를 비롯해 400종 이상의 3,500마리 새가 둥지를 틀고 있다. “주롱 새 공원의 새를 무사히 옮기는 것부터 엄청난 일이었죠. 새들이 스트레스받지 않고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이전하는 데만 4개월이 걸렸어요. 비가 오는 날엔 새들이 적응하기 어려워 옮길 수 없었죠.” 만다이 야생동물 그룹의 브랜드 매니저 크리스티 용(Christy Yong)의 말이다. 새를 데려오기 전엔 1년간 약 54만 그루의 나무와 관목, 식물을 심었다. 그중 80% 이상이 동남아시아 원산이다.
그 결과 이곳엔 아시아, 호주, 아프리카를 비롯해 습지, 펭귄 서식지, 보호 조류 전용 구역 등 8개 테마의 거대한 자연 새장이 세워졌다. 필리핀독수리와 검은비둘기, 검은날개 구관조 및 푸른목 금강앵무 등 다양한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다. 크림슨 습지에선 공원에서 가장 높은 폭포를 배경으로 플라밍고가 여유롭게 졸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버드 파라다이스에선 다양한 조류 체험이 가능하다. 가족과 버드 파라다이스를 찾는다면 ‘백스테이지 패스’ 같은 조류 헬스 케어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연구센터를 직접 돌아보며 수의사가 새를 치료하는 방법, 사육사가 갓 부화한 아기 새를 돌보는 방식 등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프로그램으로 발생한 수익금 전액은 멸종위기종 보호에 사용된다. 물론 먹이 체험도 빼놓을 수 없다. 오전 9시가 되면 르완다의 숲에서 영감받은 아프리카 새장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과일을 가득 담은 식판을 들여오는 직원들의 신호다. 그러면 그레이트 블루 투라코(Great Blue Turaco)나 검은관두루미(Black-crowned Crane) 같은 이름도 생소한 새들이 몰려든다. 관광객들은 식판을 하나씩 들고 새들에게 먹이를 줄 수 있다. 앵무새가 사는 로리 로프트에서 11시에 시작하는 먹이(애벌레)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식판을 손에 들기가 무섭게 앵무새들이 몰려들었다. 겁이 없는 앵무새 한 마리는 내 머리 위에 앉아 머리카락 속을 헤집었다. 수잔나 재퍼의 말이 맞았다. 새와 이토록 가까이 교감한 건 어릴 적 시골에서도 없던 일이다. 도심에서 30분 거리, 잘 관리된 자연 속에서 이토록 많은 새와 교감할 수 있는 싱가포르 사람들이 살짝 부러워졌다.


Sentosa Sensoryscape

센토사 센서리스케이프

싱가포르의 구석구석을 살필 충분한 시간이 없을 때, 센토사섬으로 들어가는 건 꽤 현명한 선택이다.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관광지이지만, 또 하나 신선한 충격을 주는 곳이 생겼기 때문이다. 북쪽의 리조트 월드 센토사를 지나 남쪽의 황금 해변으로 이어지는 길 중앙에 자리한 센서리스케이프가 그 주인공. 지난 3월 개장한 센서리스케이프는 350m의 커넥터로 연결된 3만㎡의 몰입형 정원이다. “단순한 휴식이나 길을 건너는 통로 이상의 감각적인 요소들이 있다”던 센토사 마케팅팀 사무엘 림(Samuel Lim)의 설명은 부드러운 물이 뿜어 나오는 룩아웃 루프(Lookout Loop)에서부터 이해되기 시작했다.

전망대 룩아웃 루프를 지나 꽃잎 모양의 화분에 부드럽고 아담한 식물을 채운 택타일 트렐리스(Tactile Trellis), 피톤치드가 진동하는 센티드 스피어(Scented Sphere), 끊임없이 물이 흐르는 양동이가 모인 심포니 스트림즈(Symphony Streams)에 들어서자 어느새 시각과 후각, 청각이 나도 모르게 자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각은 저녁 7시 50분마다 시작하는 이매지나이트(ImagiNite)에서 완벽히 깨어났다. 거대한 꽃줄기를 구현한 글로우 가든(Glow Garden)을 비롯해 모든 공간이 미디어 아트 전시관으로 변한다. 증강현실 앱을 이용해 센티드 스피어에서 춤추는 나비와 생동감 넘치는 꽃 사이를 한참 산책했다. 센서리스케이프를 걷는 것은 감각의 퍼즐을 맞추는 여정 같았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오는 밤, 맑아진 감각이 시원한 강바람과 어우러져 상쾌함이 두 배로 차올랐다.


Rifle Range Nature Park

라이플 레인지 네이처 파크

싱가포르에 2차 숲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싱가포르 자연이 주는 회복력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라이플 레인지 네이처 파크다. 싱가포르는 2030년까지 200헥타르의 새로운 자연공원을 조성해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싱가포르 그린 플랜 2030’ 프로젝트를 실시 중이다. 라이플 레인지 네이처 파크는 싱가포르 산림청이 가장 최근 그 목록에 올린 장소. 과거 채석장으로 사용하다 30년 이상 버려진 열대우림을 건축사무소 헤닝 라슨(Henning Larsen)이 재정비했다. 정비 전 이곳은 겉보기와 달리 식물다양성이 낮은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말레이천산갑(Sunda Pangolin)이나 말레이시아 콜루고 같은 멸종위기 동물들도 살고 있었다. 헤닝 라슨은 전략적 재배를 통해 수확량을 극대화하는 방식인 석세션 플랜팅(succession planting)으로 식물이 빠르게 자라도록 하고, 동물의 이동 경로를 파악해 간격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날아다니는 포유류인 콜루고의 활공 각도를 계산하는 것 등이다. 그 결과 지금 이곳엔 25만5,000여 개의 식물과 300여 종의 동물이 살아간다. 무엇보다 이곳은 싱가포르 최초이자 유일하게 자체 에너지만으로 운영하는 자연공원이다. 태양광 패널을 통해 공원에서 사용하는 연간 운영 에너지 100% 이상을 뛰어넘는 양을 얻는다. 덕분에 싱가포르가 추구하는 ‘그린 플랜’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7km의 트레일 길 사이에는 난이도별로 다양한 산책로가 있다. 겁도 없이 챌린지 루트를 선택했지만 짧은 ‘깔딱고개’ 정도로 힘들진 않았다. 사람들을 따라 지상 31m에 자리한 콜루고 전망대(심지어 전망대 모양도 콜루고다)로 향했다. 탁 트인 푸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전망 좋은 곳’ 리스트에 라이플 레인지 네이처 파크가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이 납득되는 경관이다. 습지로 바뀐 채석장의 흔적, 침식된 암반의 거대한 표면을 가로지르며 자연의 경이를 지척에서 오랫동안 관찰했다. 아랑곳 않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야생동물과 함께.


Changi Airport

창이 공항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머문다는 것은 단순한 대기나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경험이다. 새로 선보인 터미널 2의 미디어 아트 더 원더폴(The Wonderfall)과 환승 구역의 드림스케이프(Dreamscape)에서 보낸 시간이 그랬다. 더 원더폴은 14m 높이의 살아 움직이는 듯한 계곡이 역동적인 영상으로 표현되는 디지털 스크린. 800개 이상의 LED 타일을 사용해 장엄하게 쏟아지는 폭포를 구현했다. 멀티미디어 스튜디오 모먼트 팩토리(Moment Factory)가 파리의 건축회사 보이필스(Boiffils)와 협업한 작품이다. 모먼트 팩토리는 이미 싱가포르 도심을 키네틱 아트로 표현한 터미널 4의 이머시브 월(Immersive Wall)도 작업했다. 영상에는 캐나다 출신 음악가 장 미셸 블라이스(Jean-Michel Blais)의 피아노 선율이 더해져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사람들을 따라 거대한 스크린 가운데 뚫린 문으로 걸어 들어가면 마치 계곡 물살에 숨겨진 미지의 동굴을 탐험하는 기분이 든다. 드림스케이프에는 날씨에 따라 풍경이 바뀌는 디지털 정원이다. 투명한 바닥 아래를 지나다니는 물고기는 사람들의 발자국이 익숙한 듯 평화롭게 유영하고 있다. 여기에 100개가 넘는 생물의 소리가 심포니를 이룬다. 아담해 보이는 규모와 다르게 이곳엔 100종의 2만여 개 식물이 기둥 구조물을 둘러싸며 자라고 있다. 필리핀 팔라완섬의 고유종이자 패턴을 가진 베고니아 블란치(Begonia blancii)나 약재로도 사용하는 화려한 색의 슈데란테뭄 스플래시(Pseuderanthemum splash) 같은 흔치 않은 식물도 볼 수 있다. 팬데믹으로 국경이 봉쇄되는 동안 창이 공항은 자연과 기술, 예술의 경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자연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