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패션 사업가
수잔나 재퍼 Susannah Jaffer × 마히마 구지랄 Mahima Gujral
왜 싱가포르를 지속가능한 패션 산업을 전개하는 거점으로 삼았나요? 수잔나: 싱가포르는 아시아 산업의 본거지이자 공급망의 중심이에요. 특히 지속가능한 생산을 하는 소규모 사업체에 유리하죠. 재고 수준을 추적하고, 제품을 재주문하고, 공급망을 제어하기 위한 재고 관리 시스템이 촘촘하거든요. 브랜드의 운영 상황을 투명하게 알 수 있어서 입점 브랜드를 선별하는 데 도움돼요. 부분 세금을 면제받는 것도 이점이죠. 디자이너에겐 어떤 영감을 주는 도시인가요? 마히마: 싱가포르는 패션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 완벽한 장소예요. 미팅을 하러 간 건물의 정원, 수백 마리의 새가 날아드는 가로수길, 집 근처의 이름 없는 숲까지. 모든 장면이 제 디자인의 원동력이에요. 이런 경험으로 만든 컬렉션이 ‘에브리 데이 저니(Every Day Journey)’예요. 보타닉 가든에서 산책하며 관찰한 나무와 식물에서 영감을 받아 ‘트리 컬렉션(Tree Collection)’도 출시했죠. 지속가능한 패션신에서 중요한 건 뭔가요? 수잔나: 사람, 제품, 포장, 원칙, 지구 다섯 요소를 꼽아요. 먼저 의류 공장 노동자, 원단 공급업체, 염색공, 재봉사 등 노동자들의 환경이 윤리적이어야 해요. 또 제품이나 소재가 얼마나 친환경적인지, 그와 관련된 인증도 중요하게 봐요. 친환경적인 포장 용기를 사용하는지, 얼마나 적은 탄소발자국을 내고 그것을 추적할 수 있는지도 필수죠. 마지막으로 브랜드 사업자가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을 가졌는지 확인해요. 로컬에 뿌리를 둔 신념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옷을 만드는 과정도 궁금합니다. 마하마: 모든 의류의 90%를 천연 허브로 염색해요. 대부분 수공예로 프린팅, 위빙하고 남은 패브릭도 버리지 않고 파우치나 북마크, 벨트를 만들어요. 3년 이상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농지에서 재배된 면화를 사용하죠. 제품의 경로가 추적 가능하고 최종 제품에 잔류물이 없는지 확인해요. 덕분에 오가닉 원료를 70% 이상 함유한 섬유에 주는 GOTS 인증을 받았어요. 그리고 인도에 공장이 있는데, 모든 직원이 안전한 장소에서 일하는지, 공정한 급여를 받는지, 오버워킹을 하지 않는지 확인합니다. 싱가포르의 정책도 지속가능한 패션 산업을 뒷받침하나요? 수잔나: 매년 열리는 지속가능한 패션위크를 비롯해 전시회나 콘퍼런스 같은 이벤트가 많아요. 대나무, 유기농 면, 재활용 직물 사용을 장려하고 리사이클 정책도 만들죠. 예를 들어 얼마 전부터 수거함을 설치해 수선 숍이 버린 옷을 소규모 브랜드가 리사이클하도록 했어요. 그 결과 올해 싱가포르의 매립지와 소각 시설에서 80만Kg 이상의 섬유 폐기물이 감소했습니다. 환경부가 올해부터 탄소세를 올린 것도 인상적이죠. 기업들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About 제린 & 수이
‘제린(ZERRIN)’은 수잔나 재퍼가 윤리적·친환경적 패션 브랜드를 모아 2017년 설립한 플랫폼이자 온라인 쇼핑몰이다. 깐깐한 기준으로 선별한 50여 개 패션·뷰티 브랜드가 입점했다. 수잔나 재퍼는 사진, 영상 촬영, 패션 및 제품 스타일링, 컨설팅 및 콘텐츠 작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인 제린 스튜디오도 함께 운영한다. 마히마 구지랄이 창립한 ‘수이(SUI)’는 제린의 가치를 잘 표현하는 브랜드 중 하나. 자연에서 영감받은 디자인을 적용한 여성복을 소량 생산한다.
숲을 예술로 승화하는 작가
로버트 자오 런후이 Robert Zhao Renhui
싱가포르의 숲을 찍는 시각 예술가로 이름을 알렸어요. 언제부터 시작이었죠? 언제부터 자연을 찍었냐고 묻는다면 열 살쯤 우연히 아버지의 카메라를 만지게 된 게 시작이었죠. 하지만 언제부터 자연을 찍고 싶었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조금 다르겠네요. 태어날 때부터요. 집 앞, 공터, 외곽의 늪지에 멋대로 자라난 야생의 숲과 그때부터 함께했으니까요. 싱가포르와 야생의 자연이라니, 조금 낯선 조합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싱가포르 하면 인공적인 자연을 떠올리죠. 하지만 이 나라엔 생각보다 넓은 야생 자연이 있어요. 그리고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죠. 쉽게 1차 숲과 2차 숲으로요. 저는 세컨더리 포레스트, 그러니까 2차 숲에서 주로 작품 활동을 합니다. 2차 숲은 태초의 삼림을 벌채하고 건물을 세웠다가 다시 허물어 없앤 후 생겨난 숲이에요. 세컨더리 포레스트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환경학자인 친구는 2차 숲이 1차 숲보다 생물다양성이 부족하다고 했어요. 저는 오히려 그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인간의 손에 의해 다시 생겨난 야생 말이에요. 심지어 싱가포르에서 세컨더리 포레스트는 25%에 달하고, 5년이면 완성돼요. 5년만 그대로 놔두면, 무성한 트로피컬 나무가 자라난단 뜻이죠. 자연은 때로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죠. 작품에 동물이 많은 이유도 앞서 말한 생물다양성과 연결되나요? 맞아요. 처음엔 숲에 들어가 동물을 만나는 것이 두렵기도 했어요. 어떤 날엔 새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죠. 하지만 팬데믹 기간에 어디도 갈 수 없었을 때, 세컨더리 포레스트에 살다시피 하며 동물을 작품으로 담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집 근처에서 임신한 멧돼지를 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섯 마리의 새끼와 함께 있더군요. 위기에 빠진 자연이지만, 그 속의 위대함을 봤죠. 그때부터 숲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물을 더욱 긴박하게 포착하려고 노력해요. 누구보다 싱가포르의 야생 자연을 많이 관찰한 당신이 매력적인 야생 자연을 발견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부킷 판장 지역에 살아요. 집 바로 뒤에 숲과 들판이 있어요. 아침마다 조깅을 하는데, 이른 아침에 운이 좋으면 산책하는 사슴 무리를 볼 수 있어요. 싱가포르 국토의 47%가 숲이고, 그 안에는 수많은 열대우림이 있어요. 그만큼 동물의 개체수도 늘어나고 있죠. 동물을 마주칠 때마다 싱가포르가 가진 지속가능성에 희망을 느껴요.
About 로버트 자오 런후이
10여 년간 런던에서 사진을 공부했고 2011년 영국 런던예술대학교의 도이치은행 사진상, 2010년 싱가포르의 젊은 아티스트상을 받았다. 대부분 사진으로 작업하지만, 최근엔 다양한 설치미술과 적용해 선보인다. 지난해에는 세계 동식물 가이드 <A Guide to the Flora and Fauna of the World>(2013)가 영국 미술관 테이트 컬렉션에 인수됐다. 11월 24일까지 진행 중인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싱가포르를 대표한 예술가로 60종 이상의 생물 사진과 영상, 구조물을 전시 중이다.
로컬과 지속가능성을 연결하는 바텐더
아일린 콜차니 Eileen Colzani × 멜 존 차베스 Mel John Chavez
싱가포르에서 ‘친환경’을 주제로 한 바를 찾을 때, ‘스모크 앤 미러스’가 항상 상위에 있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을 하고 있죠? 아일린: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식재료를 최대한 많이, 다양하게 사용해요. 오렌지의 과즙부터 씨앗, 껍질까지 전체를 사용하는 필링 굿(Peeling Good)이 시그너처 메뉴죠. 또 남은 과일 껍질을 재활용해 키스 오브 리바이벌(Kiss of Revival)의 가니시로 쓰거나, 남은 와인을 혼합해 하트 스트링스(Heart Strings)나 리퀴드 시덕션(Liquid Seduction) 같은 칵테일을 만들어요. 멜: 글로벌 주류 브랜드 페르노리카(Pernod Ricard)와 협업해 병 대신 재사용 가능한 포장으로 된 주류를 공급받아요. 새로운 스태프가 들어올 땐 자신의 헌 옷을 가져와야 해요. 그걸로 본인의 앞치마를 만들어주거든요. 식재료는 어떤 방법으로 공수하나요? 아일린: 전체 식재료의 60%를 싱가포르 내 농장에서 구합니다. 모든 허브를 포함해 파인애플, 파란 완두콩, 여주 같은 식재료는 친환경 재배 방식을 도입한 농업 기업 에디블 가든(Edible Garden)에서 받아오죠. 이 재료들로 싱가포르 슬링을 변형한 라이언시티 슬링(Lion City Sling)이나 칵테일 마니아들이 찾는 리브 유얼 드림(Live Your Dream) 등을 만듭니다. 멜: 차이나타운 인근에 있는 아모이 스트리트의 커뮤니티 센터에는 주민들이 직접 농사 지은 식재료들이 모여 있어요. 그곳에서 정향이나 육두구 같은 향신료를 구해오기도 하죠. 나머지 40%는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태국에서 수입하는데, 비행기가 아닌 배를 이용해요. 태국에서 개발한 진이나 럼을 벌크로 가지고 오는 것도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노력 중 하나죠. 전 세계의 바 트렌드가 지속가능성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나요? 아일린: 10년 전을 생각하면 무척 발전했어요. 특히 최근 코로나19 이후 몇 년 동안 폐기물 감소가 F&B의 큰 주제였죠. 이와 관련된 글로벌 커뮤니티도 활성화됐어요. 스모크 앤 미러스도 필리핀, 태국, 베트남, 파리 등의 서스테이너블한 바와 협력을 맺고 바텐더들의 교류를 지원하죠. 새로운 칵테일을 만들 때 영감을 주는 당신만의 장소가 있나요? 멜: 마리나 버라지에 자주 가요. 잔디밭에 앉은 채 수많은 마천루와 5개의 강이 만나는 댐을 보고 있으면 새로운 칵테일의 맛과 디자인에 대한 영감이 떠올라요.
About 스모크 앤 미러스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의 탑층에 자리한 루프톱 바. 예술 작품이 연결된 듯한 이곳에선 빅토리아 콘서트홀, 마리나 베이 샌즈, 국회의사당 같은 랜드마크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타임 아웃>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루프톱 바로 이곳을 2위에 올렸다. 아일린 콜차니는 전 세계 바텐더들과 만나 지속가능한 기술을 교류하는 프로그램을 열고, 멜 존 차베스는 지속 가능성에서 영감받은 다양한 창작 칵테일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