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시티’ ‘도심 속 우림’ ‘정원의 도시’…. 싱가포르로 출발하기도 전에 나는 이 나라를 향한 수많은 찬사가 내 기대치를 높이진 않을까 바짝 경계했다. ‘그린 시티 안에 더 고차원적인 뭔가가 있을 거야’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 여정인 만큼, 새롭고 좀 더 진화한 자연을 발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물론 발견했다. 우선 팜투테이블의 실험실로 발전한 옥상 정원과 로컬 마켓에서 재료를 구해 오는 최고급 바에서 지구를 위한 식탁의 새 정의를 내렸다. 총면적 두 배에 가까운 양의 식물이 심긴 건물과 유휴 공간을 농장으로 바꿔버린 옥상의 루프톱에선 건축이 품을 수 있는 자연의 한계점을 다시 잡아야 했다. 기술과 예술에 자연이 융합된 미디어 아트 앞에선 무수한 설치작품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감동이 몰려왔다. 그런데 내가 놀라움의 감탄사를 내뱉을 때마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그저 지긋이 웃었다. 이 모든 걸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미소였다.
동물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거대한 새가 날아다니는 버드 파라다이스에서 유유자적 산책을 즐기는 커플 뒤를 따르며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어떤 삶의 방식을 가져야 이런 친환경적인 공간, 맛, 예술, 기술이 당연하게 느껴질까. 그래서 로컬들을 만날 때마다 ‘자연을 즐기는 노하우’를 물었다. 눈치챘겠지만, 은근히 올라오는 부러움을 채 누르지 못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대답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고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집과 가까운 공원으로 나가는 거죠.”
나는 싱가포르 사람들이 자신만의 비밀 자연이나 그것을 느끼는 특별한 순간이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야 지속가능성이 진화하고 발전할 수 있으며, 그것이 싱가포르의 지금을 만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숲속 깊이 걸어야 나오는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 정원’ 같은 건 없어 보였다. 추측은 라이플 레인지 네이처 파크를 가는 날 확신으로 바뀌었다. “오전에 라이플 레인지 네이처 파크에서 취재를 마치고 점심 때 약속 장소로 갈게요. 지도를 보니 10분도 채 걸리지 않더라고요.” 나의 말에 다음 취재원, 그러니까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던 레스토랑 오너는 말했다. “오! 나도 아침마다 거기서 하이킹을 해요. 우연히 만날 수도 있겠네요!” 인적 드문 한적한 공원을 천천히 가로지르며 동식물을 탐험하겠단 생각은 도착과 동시에 틀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딱 붙는 레깅스를 입은 젊은 러닝 크루, 거대한 백 캐리어에 아이를 업은 아빠, 손을 맞잡고 산책하는 노부부 등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그곳을 걷고 있었다.
300여 개의 공원, 국토 면적 50%에 근접하는 녹지를 품은 싱가포르 사람들에겐 집 앞이 곧 그들만의 비밀 자연이다. 싱가포르가 정원의 도시에서 정원 ‘속’ 도시로 나아가고 있는 이면에는 집을 관리하고 지키듯 내 집 앞의 공원, 그 속에 사는 동식물을 지키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삶의 뿌리에 깊숙이 박힌 자연과의 친밀함이 싱가포르를 더 녹음 짙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싱가포르에선 “나 잠시 휴가 내고 휴양림으로 갈 거야”, “자연 속에서 쉬고 싶다”와 같은 말은 필요하지 않다. 삶이 곧 자연이라 삶이 곧 휴식이었다. 싱가포르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 편안함의 근간은 이 나라가 과거에도 미래에도 영원히 녹색일 거라는 확신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