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주 예찬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Parc Jinmyoung
  • PHOTOGRAPHY BY Bong Jaeseok

반주 예찬

Sup & Sip

반주(飯酒)는 한국 음식 문화의 고유한 결을 담고 있는 특별한 단어다. 우리나라에서 식사에 곁들이는 술이란 밥맛을 돋우고 소화를 돕는 조연이기 때문이다. 절제와 풍류가 깃든 우리만의 반주 문화를 다양한 스타일의 요리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서울의 식당 5곳을 소개한다.
  • written by Parc Jinmyoung
  • PHOTOGRAPHY BY Bong Jaeseok
2026년 05월 04일

고사리익스프레스 신당

지난 3월 발표된 <미쉐린 가이드>의 화두는 지속가능성이다. 미식의 기준이 맛을 넘어 식자재 수급과 환경적 책임으로 확장되면서 <미쉐린 가이드> 그린 스타의 비중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이번에 그린 스타로 선정된 고사리익스프레스 신당은 그 변화의 중심에 있다. 지속가능성을 브랜드 핵심 가치로 삼은 이곳의 그린 스타 등재는 오늘날 미식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 고등학교 때부터 요리 외길을 걸어온 김제은 대표는 대학 시절 푸드 트럭을 거쳐 비빔밥 전문점을 운영했다. 그녀를 미슐랭 셰프로 이끈 결정적 계기 중 하나는 ‘잘못 배송된 고사리’였다. ‘왜 채소 기반의 소스는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고사리 실험은 페스토와 오일 소스 펀딩 성공으로 이어졌고 망원동 팝업 매장을 거쳐 신당동에 안착했다. 전통시장 분위기를 살려 국수 한 그릇에 막걸리 한잔 곁들이는 식당을 만들고 싶었다는 김 대표의 바람을 담아 완성한 이곳은 번잡한 시장통 사이 강렬한 그라피티와 붉은 차양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일상 속 채식화’를 지향하는 이곳의 모든 메뉴는 고사리 오일 소스를 베이스로 하되, 쑥갓이나 들깨 등 곁들이는 제철 식자재에 따라 비빔 누들로 변주된다. 고사리 칠리 소스를 곁들인 대만식 전병 역시 전통주와 합이 좋은 인기 메뉴다. 모든 식자재를 로컬에서 수급하고 판매된 그릇당 수익 일부를 강원과 단양의 산림 보호 프로젝트에 환원한다. 현재까지 탄소량 235톤 감축과 나무 2만7433그루 보호라는 구체적인 성과로 그 진정성을 증명하고 있다.
주소 서울시 중구 퇴계로85길 12-10
영업시간 화~토 11:30~21:30(브레이크 타임 15:00~17:00, 일·월 휴무)
인스타그램 gosariexpress

리퍼

최근 국내 와인 신에서 가장 역동적인 장르를 꼽자면 단연 호주식 와인 바다. 내추럴 와인의 본고장이라는 상징성, 호주 특유의 여유로운 감성과 다문화적 배경이 투영된 요리가 인기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서교동의 리퍼는 이러한 호주식 다이닝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호주에서 15년간 내공을 쌓은 박진영 대표와 제빵・와인을 전공한 류지영 대표는 일상 속 캐주얼한 와인 바를 표방하며 이곳을 운영하고 있다. 메뉴 구성 역시 호주의 정체성인 다양성에 뿌리를 둔다. 특히 계절감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데, 인근 망원시장에서 얻은 신선한 식자재를 호주식 터치로 풀어내는 것이 이곳만의 묘미다. 봄이면 한우로 속을 채운 봄동 롤이, 여름에는 감자와 청어 절임에 그리비슈(gribiche) 소스를 얹은 요리가 테이블에 놓인다.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와인 리스트를 구성하는 과정이다. 오픈 초기에는 류 대표의 개인적 취향에 집중했다면, 요즘엔 시음회에서 만난 와인에 단골들의 취향을 먼저 대입해 본다고. ‘이 와인은 그분이 좋아하겠다’는 즐거운 상상이 리스트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는 셈이다. F&B 브랜드나 셰프들과 협업하는 팝업 행사도 종종 열리는데, 고정된 틀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변주를 주는 호주 다이닝 특유의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길 65
영업시간 월·목·금 18:00~24:00, 토·일 17:00~24:00(화·수 휴무)
인스타그램 ripper_seogyo

비노야코스모스

명란파스타, 봉골레, 나폴리탄. 익숙한 이 요리들의 공통점은 일식도, 이탤리언도 아닌 재패니즈 이탤리언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19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서구 음식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독자적 장르가 됐다. 비노야코스모스는 국내 유일의 재패니즈 이탤리언 파인다이닝 알라프리마 수셰프 출신의 함정현 대표가 꾸린 공간이다.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하는 탁 트인 개방감과 따뜻한 우드 톤은 함 대표가 편안함을 주기 위해 얼마나 세심하게 신경 썼는지를 증명한다. 함 대표가 가장 공을 들인 곳은 바. 셰프의 모든 움직임이 가감 없이 전달되는 오픈 키친을 구성하면서 작업대와 바 테이블의 높이를 동일하게 맞췄다. “작업자는 감추고 싶은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최대한 많은 과정을 손님과 공유하고 싶었어요”라는 함 대표의 말에서 재패니즈 이탤리언이 강조하는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이러한 태도는 곧 요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계절감을 강조한 메뉴 구성이 돋보이는데, 여름에는 제철 생선 벤자리의 고소함과 스트라차텔라 치즈의 크리미한 풍미를 루콜라와 함께 시원하게 풀어낸 냉전채 요리가 완성될 예정. 흔치 않은 일본산 와인을 만날 수 있다는 점 또한 매력 포인트다. 현지 생산자를 직접 찾아가 철학과 공정을 확인하고 들여온 비노야코스모스의 귀한 와인 리스트는 요리에 곁들일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12-3
영업시간 수~월 18:00~24:00, 일 18:00~23:00(화 휴무)
인스타그램 vinoya_cosmos

띠넬로 인 서울

이탈리아어로 ‘작은 식당’을 뜻하는 띠넬로(tinello)는 서연경 대표의 유학 시절 단골집 이름이기도 하다. 볼로냐에서 즐겨 찾던 그 가정식 식당은 팬데믹의 고비를 넘기지 못한 채 자취를 감췄다. 추억이 사라진 아쉬움을 달래고자 동명을 선택했다는 것이 서 대표의 설명. 타일 디자이너였던 그는 일터였던 신사동에 둥지를 틀고 여전히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료를 위한 다정한 사랑방을 자처한다.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은 공간은 마치 작은 미술관 같다. 직접 그린 그림부터 화가인 단골손님이 선물한 작품까지 풍성한 볼거리가 시선을 붙잡는다. 전시관처럼 도열한 빈티지 모카포트는 이곳의 백미다. “이건 볼로냐 하숙 시절, 주인 할머니가 ‘모카포트도 하나 없냐’며 쥐여준 거예요. 아마 수 세대를 걸쳐 제게 왔겠죠.” 낡고 닳은 모카포트로 커피를 내리는 그의 손길에 띠넬로의 철학이 배어 있다. 그 다정함과 그리움은 메뉴로도 이어진다. 유학 시절 해 먹던 요리부터 현지인 친구의 어머니에게서 배운 레시피까지 이곳의 이탈리아 가정식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정통에 가깝다. 수제 라구 소스로 맛을 낸 라사냐, 제철 식자재의 풍미를 살린 파스타 등이 대표 메뉴. 여기에 이탈리아 와인에 조예가 깊은 서 대표가 큐레이션한 와인을 더하면, 잔을 기울이는 찰나조차 이탈리아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25길 11
영업시간 월~토 18:00~24:00(일 휴무)
인스타그램 tinello_in_seoul

티티그릴

국내 태국 음식의 새로운 지평을 연 툭툭누들타이가 연남동을 떠나 신사동 시대의 막을 올렸다. 지난해 12월 자리를 옮기며 ‘티티그릴’로 이름을 바꾸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하게 재정립한 것이다. 전형적인 태국 음식점의 풍경 대신 티티그릴이 택한 것은 정제된 세련미다. 테라코타가 뿜어내는 이국적인 에너지 속, 비슷한 톤의 우드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해 뻔하지 않은 모던 아시아 다이닝의 정수를 보여준다. “태국 현지 아티스트들과 함께 완성한 공간이에요.” 태국다운 정서는 모름지기 태국인의 감각에서 비롯되는 것. 공간 구성부터 작은 소품 하나에 이르기까지 현지 아티스트들의 손길을 거쳐 공간이 완성됐다. 티티그릴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불 향 가득한 태국식 그릴 요리를 주력으로 한다. 탱글한 새우와 훈연 향을 머금은 촉촉한 치킨구이가 어우러진 모둠 플래터는 티티그릴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메뉴다. 여기에 정통 육가공 전문점 세스크멘슬에서 공수한 샤퀴테리를 넣어 깊은 감칠맛을 내는 똠얌꿍과 함께 툭툭누들타이의 명성을 이어온 ‘겉마속촉’의 대명사 텃만꿍(새우튀김)까지. 이 화려한 라인업 앞에서 맥주 한 모금만으로 갈증을 달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152길 37
영업시간 월~금 18:00~02:00(토·일 휴무)
인스타그램 ttgrill_